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5화(25/1105)
25회
7. 공작저의 집사님 (1)
점심시간, 식당에서 오랜만에 잭을 만날 수 있었다.
공작령에서 샀던 선물을 나눠주기 위해, 수도로 올라온 날부터 퇴근 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어째서인가 그와는 좀처럼 마주칠 수 없어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잭!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보좌관님께서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그런 편입니다.”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랐다는 것 말고는 잘 갔다 왔다.
나는 그렇다 치고, 잭의 반응도 영 시원치 않았다.
그는 이미 거의 식사를 마쳐가던 상태였지만, 할 말도 있었기에 그가 앉은 테이블에 합석했다.
“고향에 다녀오셨다 들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아뇨, 고향에는 별일 없이. 아주 잘 다녀왔습니다.”
나와 세르펜스가 영지에 내려가 있는 동안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은 수의 사용인들이 휴가를 다녀왔다고 들었다.
잭 또한 그중 하나.
“그런 것 치고는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시던데···. 무슨 일 있으신 거 아닙니까?”
“그게···. 담당 구역이 바뀌었습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잭이 말했다.
그는 본관에서 손이 잘 닿지 않는 천장 쪽을 청소하거나, 힘쓰는 일을 주로 도맡아 했었다.
“어쩐지, 평소 계시던 곳에 찾아가도 안 보이신다 했더니···. 대체 무슨 일을 맡으셨길래 그러십니까?”
“···도서관 담당이 되었습니다.”
휴가를 다녀오니, 자신도 모르는 새 담당이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요즘에는 사서를 도와 책을 나르거나, 책장을 청소하고 있다나?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더라니···.
“대화할 사람도 없고, 있어도 떠들 수가 없으니 아주 죽겠습니다.”
잭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처럼 말 많은 사람을 도서관에 처박다니, 너무 잔인한 처사다.
“시종장님께는 말씀드려 보셨습니까?”
“당연히 해봤습니다. 하지만 집사님께서 지시하신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혹시 제가 집사님께 잘못이라도 한 걸까요?”
한스가 아무리 저택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집사라 해도 그렇지. 엄연히 시종장의 권한이 있는데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
그것도 잭을 콕 집어서 담당 구역을 바꿨다니···.
“참, 보좌관님께서 얼마 전 부탁하셨던 것 말입니다.”
한스의 행동에 대해 의구심을 느끼며 생각에 잠기려는 찰나, 잭이 재차 말을 걸어왔다.
내가 잭을 굳이 찾아다닌 이유는 단지 안부 인사 따위를 주고받으려던 게 아니다.
부탁했던 것이 있었기 때문.
수도를 떠나기 전, 잭이 휴가를 얻어 고향에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당신의 아버지를 내가 한 번 만나 뵐 수 있겠냐고.’
그 답을 듣기 위함이다.
만약 그의 아버지만 괜찮으시다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주말에 잠시 다녀올 생각이다.
그 부탁을 하기 위해 밑밥을 깐다고, 잭의 세르펜스 찬양에 맞장구치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아주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아버지께서 거절하셨습니다.”
···역시 안되는 것인가.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실망도 그다지 크진 않았다. 단지 조금 아쉬울 뿐. 오히려 나보다 잭이 더 시무룩한 모습이다.
“저도 공작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그냥 지금과 별다를 거 없다는 얘기 말고는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정말 너무 궁금했었는데, 아쉽습니다.”
대신 물어봐 주기까지 했을 줄이야, 역시 세르펜스 열혈팬답다.
그나저나 저렇게 노골적일 정도로 켕기는 반응이라니, 오히려 만나봐야 할 것 같다.
어떻게 꼬드겨야 하지?
“혹시 보좌관님께서 집사님께 제 처우에 관해, 말 좀 잘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그게 좀···.”
지금 그 양반이랑은 좀 불편한 사이라, 선뜻 그러겠노라 대답하기 힘들었다.
탐탁지 않다는 시선으로 날 보는 거야 예전부터 그래왔으니 상관없었으나, 요즘은 그 이상이다.
며칠 전 있었던 사건 이후로, 그것이 정점에 달해 이젠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저택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타나 노려보고 있거나, 가끔 혀를 차기도 했다.
‘세르펜스에게 좋은 밥 먹인 것 말고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난리야?!’
황궁의 연회가 있던 날은 또 어땠던가.
어떻게 그런 저급한 원단으로 지어진 옷을 입고 연회에 참여할 수 있냐며, 트집을 잡아댔다.
‘옷 사는데 돈 보태줄 것도 아니면서!’
세상에 가장 나쁜 놈이, 아무것도 보태주지 않으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양반이다.
그나마도 시온이 가지고 있던 옷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입었던 거다.
같이 간 세르펜스 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지가 더 난리다.
“그쪽은 아예 제 담당 밖의 영역이라···. ”
“아버지께 다시 한번 잘 얘기해보겠습니다. 예? 제발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그에겐 더 깎일 점수도 없는 것 같은데. 시도 정도는 해봐도 상관없으려나?
가만 보니 이걸 부탁하고 싶어서, 내가 부탁했던 것을 먼저 언급한 모양이다.
‘혹시 얘가 담당 구역 바뀐 거, 나 때문인가?’
세르펜스도 내가 자신에 관해 묻고 다니던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한스도 알고 있을 테니.
어차피 한 번쯤은 한스와 대화해 볼 필요성을 느끼던 차다.
“일단 말씀은 드려보겠지만, 결과는 장담 못 합니다.”
“괜찮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약속은 지킵니다!”
* * *
오늘 업무가 끝나자마자, 나는 일단 솔레르티아의 방으로 향했다.
한스는 아직 근무시간이다. 게다가 워낙 신출귀몰하다 보니, 지금 시간대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가 퇴근하고 난 후, 그의 방을 찾아가는 편이 나았다.
‘정 안되면 새벽에 층간소음이라도 일으키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어차피 셋 다 같은 건물에 머무르고 있으니, 크게 귀찮을 것도 없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2층에 머물렀는데, 복도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이었다.
공작령에서 돌아왔던 날, 방을 안내 받는 걸 봤기에 알고 있을 뿐. 실제로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저번에 스크롤을 만들 때 보니까 바닥이 장난 아니던데···.’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으니, 그 이상이리라.
마법 시약이 담겼던 병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참고 자료가 될 책이나 연습장으로 쓰였던 종이들이 널브러져 있겠지.
‘발 디딜 틈이라도 있으려나?’
더욱이, 그녀는 하루에 몇 번이고 방 밖으로 나오기 귀찮다며, 아침은 거르고 점심때 식당에서 먹고. 그때 저녁에 먹을 것까지 미리 받아다가 방에서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어질러져 있지 않을까···?
– 똑똑.
“솔레르티아씨, 저 시온입니다.”
묵묵부답이다. 스크롤 제작에 너무 몰두해서 못 들은 건가?
문을 몇 번 더 두드리며,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를 좀 더 키웠다.
“솔레르티아씨! 안 계십니까?”
“···시온씨?”
‘끼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솔레르티아가 복도로 나왔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내가 두드리던 문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뒤쪽의 문이 열렸다는 것 정도?
“···저는 이 방을 쓰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셨군요.”
괜히 빈방에 열심히 노크한 것이 무안해서 겸연쩍게 말하니, 솔레르티아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방 하나를 더 빌렸어요! 그곳은 침실이고, 제가 나온 곳은 작업실이라 보시면 돼요.”
확실히 개인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일하는 곳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하다 보면 생활 전반이 피폐해진다.
“그렇군요! 아, 혹시 제가 방해한 겁니까?”
“괜찮아요, 괜찮아~. 어차피 조금 쉴 생각이었는걸요.”
솔레르티아가 작업하느라 포니테일로 높게 올려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치며, 명랑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가볍게 흔드니 연보랏빛 머리카락이 따라서 넘실거린다.
“어차피 하실 말씀이 있어 오신 것 같은데, 오신 김에 제 방에서 차라도 한잔하실래요?”
“그래 주신다면야, 저야 감사하죠.”
솔레르티아가 싱긋 웃으며 자신이 나왔던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가 침실 문고리에 다른 열쇠를 꺼내 꽂았다.
“들어오세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대부분의 생활을 작업실에서 하는 탓인지, 방안은 무척이나 깔끔하고 어딘가 좋은 향기까지 났다.
“그럼 차를 내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방 한쪽에 마련된 원형 탁자에 딸린 의자에 앉아, 차를 준비하는 솔레르티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벽난로를 켜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계절이라 그런지, 마력을 일으켜 만들어낸 불꽃으로 물을 끓이는 모습이 보인다.
‘스크롤 제작이 주력이긴 하지만, 역시 마법도 쓰는구나.’
너무 당연한가?
언젠가 [성검의 주인]에 나왔던,
『 신성력은 공생을 추구하고, 마력은 편리를 추구한다.』
···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거기에 덧붙여, 신성력은 누군가를 치유하거나 지키는 것에 가장 적합한 힘이라 칭했고.
그에 반해 마력은 인간의 이익과 염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하는 힘이라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짜 신기하네···.’
이 세계에 와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푸른 빛이 마치 실타래처럼 풀어지며, 허공에 수를 놓았다. 그러더니 이내 그 형질 자체가 변화되어 불꽃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는 게, 무척이나 신묘하기 그지없다.
‘무궁무진하게 변화하는 힘’이라는 표현에 걸맞았다.
‘세르펜스가 신성력을 사용할 때는 신성해 보일지언정, 신기하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그도 그러할 게 신성력은 그냥 ‘빛 뿜뿜’ 같은 느낌이었다.
어차피 그냥 둬도 자체발광하는 세르펜스였으니. 그가 실제로 빛을 뿜어낸다 한들 신기할 것 하나 없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솔레르티아가 우려낸 찻물을 내 앞에 놓인 찻잔에 따라주며 물었다.
“그냥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져서 말입니다. 첫날 왔을 때 저녁을 함께한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잖아요?”
“저야 점심때 말고는 안 나가니까요. 그마저도 점심시간 거의 끝 물때라···.”
어쩐지 점심 시간대 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한 번도 못 봤다 했다.
나는 항상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식당으로 튀어갔으니, 못 만날 수밖에.
“좀 쉬엄쉬엄하시지. 일만 하시면 너무 힘드신 거 아닙니까?”
“괜찮아요, 재밌는걸요? 게다가 가게도 빨리 열고 싶으니까요. 다 저 좋으라고 자발적으로 하는 거예요.”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야 다행입니다. 전 솔레르티아씨께서 붙임성이 워낙 좋으셔서, 다른 분들과도 어울리시고 할 줄 알았는데···.”
“저도··· 처음에는 그러고 싶었죠.”
그저 가볍게 꺼낸 화제였는데, 돌아온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연신 생글생글 밝게 웃던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
“여기 사람들, 공작님 얘기밖에 안 해요.”
“······.”
그녀가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건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른 얘기도 합니다.”
“···안 하시던데.”
“처음 온 사람에게 영업, 아니.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고, 알아줬으면 하는···. 그런 건데···.”
“······.”
내가 왜 이걸 변호하고 있는 거지? 이 화제는 여기서 그만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