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5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55화(255/1105)
255회
47. 공작님의 장점 (2)
“그럼 어서 장점을 말해보시죠!”
“···어째서 강도처럼 말하는 건가?”
“어허! 말 돌리지 말고!”
단점을 말하라 한다면 끊임없이 늘어놓을 거면서, 어째서 장점을 말하는 건 저토록 어려워하는지.
내가 아무리 녀석을 긍정해준다 한들. 그리고 내 말에 녀석이 위안을 얻는다 한들.
결국 타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저 위안으로 그칠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서 자신의 입으로 한 말이라면. 본인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이런 내 깊은 생각도 모르고! 뭐? 강도?’
하지만 주요 논점을 빗겨나가서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리는 것 또한 어린아이의 특성 중 하나.
어른인 내가 이해해 줘야지 어쩌겠는가? 우리 애는 언제쯤 어른이 될는지 모르겠다.
“으음···, 장점···.”
“생각 안 나면 제가 알려준 두 가지를 먼저 말하면 되잖아요?”
“······.”
세르펜스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녀석은 입을 꾹 앙다물고 있었음에도, 그게 어려워서 이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당신은 어떻게 스스로가 잘생겼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지?”
“세르펜스는 그 얼굴로 왜 못하는 거죠?”
“그거야···.”
세르펜스는 자신감이 결여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내가 비속어까지 써가며 얼굴에 금칠해댔음에도, 아직 확신이 부족한가 보다.
그 정도로 칭찬을 들었으면 ‘내가 그렇게 잘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녀석은 대체 뭐가 문제일까?
“시온이 말해준 세르펜스의 장점이라는 게, 얼굴인가요?”
“네! 유지스가 보기에도 잘생겼죠?”
“물론이죠.”
나의 외모를 언급할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다.
수식어 따윈 필요하지 않다는 듯, 간단명료한 유지스의 반응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윈스톤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렇소.”
“그게 답니까?”
“···주군은 지금도 잘생기셨지만, 앞으로도 잘생기실 거요.”
앞으로 윈스톤에게 이런 질문은 삼가는 게 좋겠다.
“아무튼, 세르펜스 평소에 얼굴 엄청 써먹잖아요? 그거 자기가 잘생긴 거 알아서 그런 거 아니었습니까?”
“내가 말인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가녀린 얼굴로 글썽거리는 표정을 짓는다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꾸며내며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거나, 무진장 해사하게 웃으면서 사람의 넋을 빼놓는다거나!”
“···그냥 슬픈 사람, 무지한 사람, 기뻐하는 사람을 연기한 것뿐이잖은가?”
그 모든 것이 메소드 연기일 뿐이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인정할 수도 없다.
“그럼 작년 연회에서 유지스와 반짝반짝하던 건 뭡니까?”
“반짝반짝?”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오지 마 오라를 뿜어댔잖습니까!”
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녀석이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그러다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이 ‘아!’하고 짧은 탄성을 뱉어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면 보통은 끼어들기 힘들잖은가? 추가로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으면, 제삼자가 어느 타이밍에 말을 끊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딴 뒷사정이 있었을 거라고는 꿈에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한두 명쯤은 끼어들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다들 예의를 잘 지켜주어서 좀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심, 자신이 잘생겼다는 걸 알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러워 빼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녀석은 정말 모르고 있었다.
‘···이쪽이 가장 이해시키기 빠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무슨 일이든 첫걸음을 떼기가 어려운 법.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한 가지라도 당당히 말할 수만 있다면,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외모를 보는 기준이야 주관적이지만, 가장 직관적인 것이기도 하다.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외관이다. 사람들이 뭣 하러 귀찮음을 무릅쓰고 매일 면도를 하며 깔끔함을 유지하는가.
뭐하러 비싼 돈을 들여가며 외모를 가꾸고 옷을 차려입는가.
아무리 외모지상주의를 까더라도, 외관의 중요성은 백번 말해도 부족하다.
내가 무슨 얼굴에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괜히 녀석의 얼굴을 첫 번째 장점으로 꼽은 게 아니다.
‘왜···. 성격이 나빠서 온갖 면에서 욕을 쳐들어도, 얼굴이 존잘이면 외모로는 욕 못 하잖아? 끽 해봐야 얼굴이 아깝단 소리만 듣지.’
모처럼 취향 안 타는 완벽한 미모를 타고난 주제에, ‘내가 잘생긴지 모르겠다.’ 웅얼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답답함을 넘어 화가 난다.
기만인가? 이건 기만이다.
이런 걸 두고 기만이라 하지, 다른 걸 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무력은 대륙을 짊어져야 하니,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서 그렇다 치자.
간단한 단어 몇 개로 자문회에서 나왔던 내용을 전부 복기하는 것도, 전 공작 탓이라 하자.
‘그런데 얼굴은 왜?! 공작놈이 자기랑 닮은 얼굴을 못생겼다고 까지는 않았을 거 아냐!’
매일 아침 씻으며 보는 거울 속 얼굴이 천상의 것이라,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눈멀어 미추 구분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닐지 의심스럽다.
“아니, 잘생겼다는 말을 난생처음 들어본 사람처럼 왜 이래요?!”
“당신에게서 들은 게 처음이다.”
“아뇨, 다시 한 번 기억을 잘 되짚어 보세요. 그 왜, 솔레르티아 씨도 세르펜스 맨얼굴 처음 보고 잘 생겼다고 했잖아요?”
“그럴 거라고 짐작했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실망한 것 아닌가?”
“그 상황이 어떻게 그따위로 해석될 수 있죠?!”
자괴감이 낳은 괴물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나는 괴로움에 머리를 감싸 쥐며 몸을 비비 꼬았다.
세르펜스의 환장할 이야기에 유지스와 윈스톤은 아예 녹다운당했다.
처음에는 적당히 끼어들 틈을 노리는가 싶던 유지스도 귀찮아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는지, 조용히 내게 응원의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윈스톤은 처음부터 전력에 넣지도 않았다. 그는 완전히 넋을 놓아 버렸다.
하루에 장점 하나 챌린지.
과연 이 녀석이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외모에 대해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 못 들어보셨습니까?”
“천사 같다든가, 조각 같다든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세르펜스가 시무룩해하며 말했다.
어째서 우울하게 말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천사 같다는 말은 그냥 착해 보인다는 말로 이해했다 칩시다. 그런데 조각 같다는 말은요?”
“무생물처럼 보여서 섬뜩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는 의미잖은가?”
“···세르펜스, 내일부터 저랑 문학 공부 시작할래요?”
너무 잘생겨서, 잘생겼다는 말로는 부족해서 일어난 참사다.
가장 쉬운 길이라 여겼던 것이 끝판왕이었을 줄이야!
인생을 너무 쉽게만 살아가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딴 교훈은 평생 배우고 싶지 않았다.
“세르펜스는 유지스 말고도 다른 엘프들 많이 봤죠?”
“많이는 아니지만, 외교를 위해 찾아온 이들을 몇 번 보았다.”
“그들 외모가 어땠죠? 자신과 비교해서 잘생겼던가요?”
“으음···.”
옳거니!
드디어 녀석의 말문이 막혔다.
“미의 종족인 엘프가 아름답다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세르펜스의 얼굴이 잘났음을 이젠 인정하시죠!”
“엘프는 진실의 종족이지, 미의 종족이 아니다. 미의 종족은 드워프다.”
“망할 세계관!!”
최대한 조곤조곤 녀석을 이해시키려 했으나, 결국 화를 못 참고 버럭 소리 지르고 말았다.
세르펜스의 말대로, 이 세계에서 ‘미의 종족’이라 불리는 종족은 엘프가 아닌 드워프다.
그렇다고 드워프가 여타 판타지 소설과 다르게, 팔다리가 쭉쭉 뻗은 미남미녀라는 소리는 아니다.
[성검의 주인]의 드워프 또한 수염이 덥수룩하고 땅딸막한 전형적인 드워프 이미지 그 자체.그들의 외모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사랑하며, 그것을 이끌어 내기에.
드워프가 미의 종족이라 불리는 것이다.
‘자화자찬이 너무 심해서, [성검의 주인] 독자들은 자뻑의 종족으로 불렀지만.’
그 정도로 ‘미의 종족’으로서 드워프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 상황에 하등의 도움 안 되는 TMI다.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에 분풀이하진 말아라.”
내 말실수를 커버해주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얄미운지 모르겠다.
이 자식이 슬슬 이해하고 두 번째 장점으로 넘어갈 법도 한데, 자꾸 반박해대는 꼴이 갑갑해서 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니 녀석이 정말 자신의 외모가 별로라 생각하는 것인지, 그냥 자신에게 장점이 있다는 것을 마냥 부정하고 싶은 것인지, 혹은 잘생겼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싶어서 이러는 것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 간다.
“세르펜스.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일에 솔직하게 아니라 대답하는 건 참 좋은 자세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알고 계셔야 할 것이 하나···. 아니, 두 개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어야 할 것?”
기만펜스가 가증스럽게도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빛내며 되물었다.
“첫째. 세르펜스가 잘생겼다는 장점을 인정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오늘 달성해야 할 장점 개수가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무조건 세 가지를 채우셔야 합니다.”
“뭐···?”
“그리고 둘째. 공작저가 아니더라도, 세르펜스가 답을 하지 못하는 즉시 벌칙을 수행하도록 시킬 겁니다. 가령 예를 들어 오늘 장점 세 개를 말하지 못했다? 그럼 뒤쪽의 일반 열차칸 있죠? 거기서 ‘나는 잘생겼다!’를 세 번 외치셔야 하는 겁니다. 물론 얼굴 까고.”
“자, 잠깐만···.”
세상에 분풀이하지 말라는 녀석의 말을 받들어, 나는 세르펜스에게 분풀이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모든 분을 자신이 다 감내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나도 이런 강압적인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이 이다지도 원하는데,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한 칸당 한 번씩. 3칸 도는 게 좋으세요, 아니면 한 칸에서 세 번 외치는 게 좋으세요?”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세르펜스가 미트볼을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진심입니다.”
내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님을 깨달은 모양이다. 녀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뜬금없이 유지스가 수첩을 꺼내 들어 무언가를 적는다거나, 윈스톤이 넋 빠진 표정으로 미트볼이 어쩌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거나.
이상 행동을 보였으나, 그런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세르펜스의 얼굴에 구멍을 내겠다는 심산으로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저, 저는···. 잘생···, 겼, 습니다···.”
결국 녀석이 기다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패배 선언을 하였다.
정말 기나긴 여정이었다.
이를 소설로 풀어썼다면 족히 한 편 분량을 뽑아낼 수 있을 정도다. 그럼 작가는 무슨 외모 얘기로 한 편을 날려 먹느냐며 욕을 오질 나게 들었겠지.
“왜 갑자기 말투가 겸손해지셨습니까? 다시!”
“나, 나는···, 크읏···. 잘생··· 겼다?”
“어째서 의문형이죠? 다시!”
“나는···, 흐윽! 잘··· 생겼다···.”
“자신감 넘치게, 다시!”
“나는 잘생···겼다···!”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젖어든 녀석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어쩐지 내가 몹시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 녀석에게 자신감을 채워주고 싶었는데 흑역사만 만들어준 것 같다.
“저기···, 진심이 안 담겨서 무효라고 말하면 울 겁니까?”
“···최근 악마 숭배에 관심이라도 생긴 건가?”
이 말은 곧 악숭할 놈이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즉, 세르펜스가 욕을 했다는 뜻이다. 그것도 대륙에서 가장 심한 욕을! 나에게! 돌려서!
나는 녀석이 이렇게 수준급의 비꼬기 실력을 갖췄는지 처음 알았다. 이런 것도 장점으로 봐야 하는 걸까?
게다가 천사 같은 성스러운 얼굴 탓에 세르펜스의 욕이 다른 식으로도 들린다.
욕을 들었다는 느낌보다 심판대에 세워진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욕을 할 거라면 다른 욕으로 부탁합니다!”
“미친···.”
세르펜스는 나의 요구를 바로 들어주었다. 하나도 안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