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5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60화(260/1105)
260회
49. 공작님과 드워프 장인 (1)
혹시 베일이 안 가고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대로변에 나와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르펜스의 말을 잘 알아들은 모양이다. 휴마눈새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긴. 휴마누스급으로 눈치가 없었으면 순순히 물러나지도 않았겠지.’
큰 고비는 넘긴 셈이다.
세르펜스도 살짝 안도하는 기색이다. 엘프 분장을 들키더라도 타국의 왕자에겐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녀석은 반쯤 뛰는 것에 가까운 빠른 걸음으로, 눈에 보이는 대장간에 쏙 들어가 버렸다.
* * *
대장간 내부에 걸린 검을 요리조리 자세히 살피던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으음···.”
“왜, 마음에 안 드는가?”
수염을 멋들어지게 정리한 드워프가 친절한 목소리로 넌지시 질문했다.
대장간을 몇 군데나 들렀는데, 다들 저렇게 친절함을 보였다.
꼬장꼬장한 꼰대 성향이 강한 드워프가 정말로 나긋나긋한 성격을 가졌을 리는 없고, 자기 작품에 자부심 강한 그들이 주문을 받겠다고 영업 미소를 띠는 건 더더욱 아닐 거다.
“그런 건 아닙니다. 무척이나 훌륭합니다.”
“그럼 왜?”
“칼립스 시의 장인들이 하나같이 뛰어나, 다른 분들의 작품도 더 구경하고 싶어서···.”
세르펜스가 수줍어하는 표정을 꾸며내며 소심하게 말끝을 흐렸다. 드워프는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그렸다.
그렇다.
미를 숭상하는 드워프답게 세르펜스의 미모 때문에 친절해진 것이다. 드워프는 세르펜스의 얼굴에서 영감을 얻으려는 듯, 그를 유심히 살폈다.
세르펜스의 얼굴 한 번, 유지스의 얼굴 한 번.
그렇게 둘의 얼굴을 열댓 번 정도 번갈아 뜯어보고 난 후, 윈스톤의 근육에도 흘깃 시선을 주었다.
그러는 동안 내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 구성원이라면 뭐···.’
세르펜스와 유지스의 얼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가끔이라도 그 시선을 뺏어온 윈스톤의 근육이 대단한 거다. 이래서 사람은 특출난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나 보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부럽거나 아쉽지 않았다.
첫째로 드워프의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둘째로 나의 가장 큰 매력은 외면이 아닌 내면에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애초에 진짜 내 얼굴도 아니고.’
나는 느긋하게 대장간에 걸린 무기들을 구경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예리하게 벼려진 날과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을 보며 찬탄을 내뱉었는데,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 보니 다 거기서 거기 같다.
세르펜스의 말대로, 다들 하나같이 뛰어난 장인들이라 흠잡을 곳이 하나 없는 탓이다.
어디서 주문하든 완벽한 무기를 얻게 될 것이다.
“좀 더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세르펜스가 괜히 미안하다는 표정을 꾸며내며 말했다.
어쩐지 묘한 기시감이 찾아왔다.
맛있는 거 사 준다는 말에 혹해서, 누나를 따라 백화점에 갔을 때 똑같은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아니, 확실하게 들었다.
“나만큼 뛰어난 장인도 없을 텐데···. 차라리 내 창고를 구경하는 게 어떠한가?”
세르펜스의 떠나겠다는 말에 드워프 장인이 크게 아쉬워했다.
이제껏 들렀던 다른 대장간에서도 들었던 말이다. 놀랍게도 전부 다 저런 소리를 하더라.
칼립스 시 특유의 손님을 배웅하는 기본 양식 같은 거려나?
“나중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그때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는 안 오겠다는 뜻이다.
“그래, 다 둘러보면 어차피 이곳을 찾게 될 테니까. 아, 자네 혹시 누드모델 같은 건 관심 없···.”
드워프 장인의 말을 뒤로하며 세르펜스는 도망치듯···이 아니라, 진짜로 도망쳤다.
후다닥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세르펜스는 지도와 펜을 꺼내 들었다. 뭘 하려는 건가 궁금증이 들어, 목을 쭉 빼고 녀석의 행동을 들여다봤다.
그는 방금 나왔던 대장간 위치에 X자를 커다랗게 여러 번 덧그리고 있었다.
다시는 안 올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근처조차 얼씬거리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 표명이었다.
“열린 곳은 다 돌아본 것 같은데, 어쩔까요?”
“으음···.”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면 내일 다시 돌아보는 건 어때요?”
지도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 세르펜스에게 유지스가 질문했다.
드워프 장인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서 발도 들여놓지 못한 곳이 태반이다.
내일이 되면 작업을 끝마치고 손님을 받으려는 드워프가 있을지도 모르니, 내일 다시 돌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다.
그 예로, 방금 들렀던 대장간도 몇 시간 전만 해도 ‘작업 중’ 팻말이 걸려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돌아보고 싶습니다.”
세르펜스가 간절한 목소리로 답했다.
녀석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엘프 분장을 아직 들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워프의 안목이면 자신이 엘프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의미 없이 뺑뺑 돌고 있는 거다.
처음에는 들키면 어쩌지 하는 심정으로 조마조마해 하던 녀석이, 이제는 안 들키면 어쩌나 불안해하였다.
대장간을 하나씩 돌아보고 나올 때마다 그의 얼굴에 초조함이 더해졌다.
‘정말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한 건가?’
결국 녀석의 간절한 바람에 못 이겨, 우리는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구매한 것은 아니고 오늘 하루 전세한 것인데, 마부는 드워프가 아닌 인간이었다.
테라룸 왕국에는 드워프제 물건을 사러 외국에서 오는 이들이 많다 보니, 이를 공략한 관광 산업의 일종이다.
마차 내부에는 해당 마차를 제작한 드워프의 이름이 멋들어진 필체로 새겨져 있었다. 다른 장식들과 어우러져, 서명조차 예술의 하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리 멋져도 남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마차는 그다지 사고 싶지 않다. 이름이 보일 때마다, 남의 거 얻어 타는 기분이 들 테니까.
보통은 서명을 넣어도 구석에 작게 써놓지, 저렇게 대문짝만하게 써놓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가 탄 마차의 눈에 띄는 위치에 서명이 적힌 이유는 별거 없다.
‘간접 홍보를 대가로 장기 계약을 맺어 마차를 좀 더 싸게 사들였다나 뭐라나.’
이용객은 드워프제 마차를 타는 호사를 누릴 수 있고, 마차 대여 업체에서는 돈을 벌고, 마차를 제작한 드워프는 손쉽게 자신의 작품을 자랑할 수 있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게 누군지 몰라도 머리 한 번 참 잘 썼다. 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다.
“이제 순순히 포기하는 게 어때요?”
“한 군데만 더 들러보고.”
“이제 슬슬 숙소를 잡아야 할 것 같은데···.”
“······.”
세르펜스는 내 말을 무시하며, 창밖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젠 그냥 오기로 저러는 거다.
“주군, 저쪽에···!”
세르펜스가 보는 방향의 반대쪽을 살피던 윈스톤이 소리치자, 마차를 몰던 마부가 눈치 있게 말들을 멈춰 세웠다.
윈스톤이 가리킨 방향에는 한 드워프가 ‘작업 중’ 팻말을 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유지스가 작게 혀를 찼다.
‘유지스도 세르펜스가 형이라 말하는 걸 듣고 싶었구나···!’
중립인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내 동지였다.
마음 한쪽이 든든해졌다.
“시온, 어서 내려라.”
“지금 헛수고하시는 겁니다.”
“헛소리.”
승리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 누구도 녀석이 엘프가 아니라는 진실을 꿰뚫어보지 못했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나는 그저 녀석의 마지막 발악을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뒷짐을 지고 팔자 좋게 느긋이 걸음을 옮기자, 세르펜스가 뾰로통하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장간에 먼저 들어가 버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녀석이 부정행위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뒷짐을 풀고 서둘러 녀석을 따라 들어갔다.
“으잉? 특이한 손님이 오셨구먼.”
작업을 끝낸 후 목욕까지 하고 왔는지, 드워프가 촉촉해진 수염을 수건으로 살살 두드리며 말했다.
드워프의 수염이 내 머릿결보다 부드러워 보여서 어쩐지 패배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는 향유까지 발랐는지 좋은 냄새도 났다.
‘이 세계 드워프들 좀 이상해···!’
어디다가도 토로할 수 없는 불만을 가까스로 삼켰다.
“특이하다니, 무엇이 말입니까?”
세르펜스가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렇게 기대했다가 아니면 얼마나 실망하려고.
이 드워프는 보나 마나, ‘이렇게 아름다운 손님이 두 명이나 한 번에 찾아오다니! 이 얼마나 특이하고 특별한 일인가!’ 따위를 외치기 위해 판을 깔아둔 것이 분명하다.
“자네 말일세. 내 몇백 년을 살아왔지만, 살다 살다 엘프도 아닌데 엘프 귀를 달고 온 손님은 처음 보는구먼.”
“아, 알아봐 주시는 겁니까···?”
“으잉?! 좋아서 그러고 있던 게 아니었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럴 수는 없다.
패배를 맛보고 도탄에 빠지는 것은 내가 아닌 세르펜스가 되어야 했는데!
세르펜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 만큼, 내 마음은 어두워졌다.
“어, 어떻게 알아본 거죠? 누가 봐도 완벽한 엘프잖아요!”
“설마 다른 놈들은 못 알아본 게냐? 으하하하하! 다들 눈이 썩어 빠졌구먼!”
눈이 썩은 건 다른 드워프들이 아니라, 눈앞의 드워프다. 이럴 수는 없다.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려도 유분수지,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세르펜스가 뭔가 귀띔이라도 준 거 아닙니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이 나를 돌아보며, 어떻게 자신을 의심할 수 있느냐는 듯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꾸며냈다.
하지만 눈은 명백하게 웃고 있었다. 얼마나 기쁜지, 연기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인가 보다.
짐짓 미간을 좁히면서 눈웃음치는 그 얼굴이 어째 나를 업신여기는 것처럼 보여, 얄밉기 짝이 없다.
설마 일부러 이러는 건가?
“세상에 엘프 귀가 저렇게 안 어울리는 엘프가 어딨다고! 으하, 으하하···!”
한바탕 웃어 재끼던 드워프가 이 자리에 없는 드워프들을 조롱하듯 말했다.
세상에 저렇게 안목이 떨어지는 드워프가 있을 수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우리 애한테 엘프 귀가 안 어울릴 리 없잖습니까! 세르펜스에게 엘프 귀가 안 어울리면 대체 엘프 귀는 누구를 위한 거죠?!”
“그야 엘프를 위한 거겠지.”
“아니,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한데···.”
그래도 인정할 수 없다.
세르펜스는 엘프 중에서도 1등 미인인 유지스도 인정한 명예 엘프 아니던가.
“이래서 뭣도 모르는 아마추어들은 안 된다니까? 설마 아름답다고 해서 엘프 귀만 달면 무조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게냐?”
“그럼 대체 뭐가 어울린다는 겁니까?”
“날개.”
나의 발악을 들으며, 승리감에 도취해 있던 세르펜스가 드워프의 발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귀하고 부드럽고 수려하며 고상한! 신성한 순백의 날개다!”
“헉!!”
안목이 없다는 말은 전면 취소다.
이렇게 식견이 높은 분을 내가 몰라뵙다니,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이 숭고한 아우라! 처연하면서도 그늘 없이 찬란한 미모! 이것은 엘프가 아닌 천사의 자태로다! 이 아름다움은 지상이 아닌 천상의 것이야!!”
“세르펜스, 찾았어요! 바로 여깁니다! 여기에 진정한 장인이 있어요!!”
비록 내기에선 졌지만, 아쉬울지언정 아깝지는 않았다. 그 대신 훌륭한 장인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테라룸 왕국 최고의 무기 장인은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드워프다. 장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