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6화(26/1105)
26회
7. 공작저의 집사님 (2)
“아, 참! 제가 어제 연회에서 솔레르티아씨의 스크롤에 대해 홍보해놨습니다!”
“네? 아직 가게 위치도 안 잡혔는데요?”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했다. 괜히 민망해져 멋쩍게 웃으며 말하니, 솔레르티아가 까르르 웃었다.
“흐응~, 이거 물량에 좀 더 신경 써야겠는걸요?”
“맞습니다! 제가 바로 그 말을 하려던 참입니다! 가게를 열자마자 문전성시를 이룰지도 모릅니다.”
“어머, 감사해라~! 만약 시온씨 말씀대로 손님이 많아진다면···. 제가 드릴만 한 건 없고, 스크롤을 구매하실 때 지인 찬스로 약간의 할인 정도는 해드릴게요!”
내 과장된 말에, 솔레르티아가 앙큼하게 웃으며 답했다.
눈을 찡긋하면서 하얀 치아가 드러내며 웃는 표정이, 생기발랄하고 톡톡 튀는 그녀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그런데 내가 그 비싼 스크롤을 살 일이 있기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으나, 일단 그 호의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법. 기간제도 아니라 영구 할인이라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공작저에 오신지 사나흘 정도 되셨는데,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아직까진 없어요. 말씀하신 대로 일주일도 채 안 됐는걸요.”
“하하, 그렇긴 하네요.”
“적어도 한 달쯤 후에 물어보시면···. 아, 그때쯤이면 가게를 구해서 나가려나요?”
어디까지나 그녀는 가게 위치가 정해지기 전, 임시로 공작저에 머무는 것뿐이다.
오픈 전까지 상비해 둘 스크롤을 만들어둔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이곳은 일반적인 숙소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연구를 위한 안전장치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제작 가능한 스크롤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특히, 새로운 스크롤을 개발하는 건 시도조차 못 하겠지.’
가게를 열 건물을 인수하고 나면, 그곳에 제대로 된 연구실도 갖출 테니.
지금처럼 공작저의 식객 노릇을 할 필요는 없다.
“그건 좀 아쉽군요.”
“시온씨가요? 왜죠?”
···그렇게 직설적으로 들어오면 또 할 말이 없어지는데?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어···, 음···.’하고 침음만 흘리니, 솔레르티아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이에요, 장난~. 기차에서 함께 동고동락 한 사이인데, 당연히 아쉬워하셔야죠!”
“그럼요, 그렇죠!”
“처음 뵈었을 때를 생각하면, 매정하게 눈 하나 깜빡 안 하실 줄 알았는데.”
“아, 아뇨! 그땐 제가 좀 오해를···.”
내가 어물거리자, 솔레르티아가 또다시 발랄한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 맘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도가 튼 모양이다.
“그땐 그랬다는 얘기예요~, 이젠 시온씨가 얼마나 정이 많고, 다감한 사람인지 아는걸요.”
곰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 솔레르티아가 어느 정도 식은 홍차를 호록 들이켰다.
그 모습에 비록 세르펜스와 같은 귀족적인 우아함은 없었지만, 자유분방한 그녀와 무척이나 잘 어울려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아무튼 생활하시다가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제게 말씀해주세요!”
“그럼 시온씨가 직접 다 해결해주시나요?”
“물론 해결은 공작님께서 해주실 겁니다!”
내 넉살 좋은 말에 솔레르티아가 첫 만남 때를 떠올렸는지, 쾌활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다 떠넘겨도 되는 거예요?”
“어차피 공작님께서도 집사나 다른 사람들에게 시킬 텐데요, 뭐.”
“하긴, 그건 그렇네요!”
솔레르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시온씨는 공작님과 상당히 친근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요. 아마 저만큼 그분과 친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 휴마누스는 자신이 더 친하다 반박을 하겠지만, 어차피 그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세르펜스는···.
‘좀 애매하네?’
당장은 친근하다기보다 기이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당장은 안 친해도 앞으로 가장 친한 사람이 될 예정.
‘미리 이렇게 얘기해둬도 별 상관없겠지?’
내 목표는 그와 친해져서 고민 상담도 해주면서, 그가 타락하는 것을 막는 거다.
그러고 나면 이리저리 꼬드겨서 성검따윈 개나 주고, 평화로워진 대륙 곳곳을 놀러 다니는 거지!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휴마누스는 개가 되나?’
어쨌든 업무 따윈 나를 제외한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기고, 영지에서 암행 다녔던 것처럼 여기저기 구경이나 다니면 딱 좋을 것 같다.
‘느닷없이 판타지 소설에 빙의한 것도 억울한데, 돌아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된 거.
판타지 세계의 축제나 관광지는 어떤 모습인지 구경이라도 해야지, 덜 억울할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세르펜스와 같이 다니면 안전 보장은 물론, 돈 걱정 없이 놀 수 있겠지?’
돈 많은 친구와 해외여행 간 느낌 내지는, 회사에서 복지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해외여행 같은 느낌이려나.
뭐가 됐던 바람직하다.
‘나는 맘 편히 놀 수 있어서 좋고, 세르펜스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좋고!’
그 뒤로 솔레르티아와 한 시간가량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죄송하지만, 저는 이만 작업하러 돌아가야겠어요.”
“괜찮습니다! 저도 약속··· 비슷한 게 있어서. 안 그래도 슬슬 일어나려던 참입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보좌관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집사님께 잠시 드릴 얘기가···, 잠깐만요. 다리가 좀···.”
한스의 방문 옆의 벽에 기댄 채, 쪼그려 앉아 기다렸더니 다리가 굉장히 저렸다. 슬슬 그냥 바닥에 털썩 주저앉을까 고민하려던 차에 그가 와주어서 다행이다.
휘청거리며 벽을 짚고 일어서니, 한스가 ‘쯧-.’하고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세르펜스도 그렇고 이 주종은 왜 나를 자꾸 저런 눈으로 보는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까요, 아니면 좀 돌려서 얘기할까요?”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작님의 뒷조사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선수를 빼앗겼다. 운은 내가 띄웠는데, 왜 그걸 저 양반이 이어받는 거지?
한스가 선빵필승 전략을 알고 있었을 줄이야!
‘그나저나 저 얘기를 들으니, 확실하네.’
잭이 도서관에 보내진 것은 아무래도 내 탓이 맞았나 보다.
물론, 그가 도서관에 처박힌다 해서 아예 못 만나는 건 아니었다. 퇴근 후도 괜찮고, 업무시간에도 잠깐 불러내는 정도야···.
하지만 더는 캐묻고 다니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뒷조사라뇨?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보좌관님은 보좌관답게. 그저 그분을 잘 보필하기만 하시면 됩니다.”
“어떤 분인지 알아야, 더 잘 모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공작님에 관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대체 무슨 정보가 더 필요하다는 겁니까?”
혹시 잡아떼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턱도 없었다.
“공작님이 어떤 분이시든 그저 충직하게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을. 당신은 그것을 왜 못하시는 건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치고, 정작 집사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요?”
“이제 고작 한 달을 넘기신 주제에, 그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저희 로베르토 가는 대대로 프라시더스 가에 충성을 바쳐왔고, 저 또한 40년 넘게 이 저택에서 근무해왔습니다.”
삐딱하게 턱을 치켜들고, 깔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한스의 얼굴에 자긍심이 넘쳤다.
“그것 봐요. 공작님이 어떤 분이든 상관없다? 대대로 프라시더스 가에 충성을 바쳤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사람을 보고 따를지 말지를 판단해야지, 대대로 가문에 충성해 왔다니.
‘그게 무슨 충성이야?’
그냥 가업을 물려받았을 뿐. 과연 고리타분하다 못해, 고이고 썩은 사상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선 이게 보통이고, 그것에 대해 섣불리 따지고 든다면 반역죄 같은 걸로 잡혀들어가겠지.
“당신이 모시는 것은 프라시더스 공작가란 껍데기뿐 아닙니까? 프라시더스 공작이 아닌 ‘세르펜스’라는 사람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죠?”
“당신 따위가 분별없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그리고, 공작님이 곧 프라시더스 가문 그 자체이신데. 그것을 분리해서 봐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 그러신가요? 저는 당신이 현재가 아닌 선대 공작에게만 충성하는 줄 알았지 뭡니까?”
“선대 공작님이 여기서 왜─! ···혹시, 현 공작님으로부터 무언가 들으신 겁니까?”
한스의 음성이 한순간에 싸늘히 가라앉았다.
“아뇨, 그분은 아무 말씀도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잭의 아버지를 만나려 한 겁니까?”
“아무것도 듣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니 다른 쪽으로 알아볼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
이 저택에서 일어난 일에 한해서, 그가 모르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이런 무서운 인간 같으니.
“대체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고, 또 알려고 하는 겁니까?”
이것과 비슷한 질문을 세르펜스에게도 들었던 것 같은데.
보통 소설 속 빙의물을 보면 다들 티 안 나게 잘만 넘어가던데, 나는 왜 잘 안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수상해 보이나?
“모르니까 물어보고 다니는 거잖습니까?”
“그렇다면 제게 물어도 되는 일을 어째서 은퇴한 사람까지 찾아가서 물으시려는 겁니까?”
“집사님은··· 뭔가 찝찝해서?”
“그게 아니라, 무언가 켕기는 이유라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 그렇게 보는 것도 이해한다.
나 같아도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멩이 같은 놈이 느닷없이 상관에 대해 캐물어 대며, 과거를 조사하고 다니면 의심했을 것이다.
‘게다가 저 양반은 세르펜스가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지켜봤다는 것 같으니···.’
한스의 시선에서 본다면, 생판 모를 남이 불쑥 찾아와서 육아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하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몰래, 아이한테 이상한 걸 가르치려 드는 사람으로 보겠지.
“공작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마땅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굳이 파고들지 마십시오.”
“그러는 집사님께서 제게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건, 공작님께 허락은 받고 하시는 겁니까?”
“저는 공작님께 해가 될 만한 의심 분자를 추궁하는 것뿐입니다.”
“그건 공작님께서 허락하신 일입니까?”
“이건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임무입니다.”
“그냥 그쪽이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요? 전 허락 받고 하는 겁니다.”
내 말에 한스가 멈칫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직접 보고, 판단을 내리라고.”
중간에 많은 것이 생략되었고, 그게 뒷조사를 맘껏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애초에 뒷조사가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르펜스도 이제는 알아챘겠지.
그의 과거에 대해, 비록 추측이지만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떠벌려놨으니.
‘실제로 다 맞춰버렸잖아?’
그리고 본인이 도망침으로써, 그것이 맞다는 걸 몸소 증명해주지 않았는가.
나는 그저.
잘못된 것이 세르펜스가 아니라, 그의 부모와 그것을 방관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그것은 불합리한 학대였고, 당신은 더이상 그들이 남긴 족쇄에 얽매일 필요가 없음을.
당장은 그 부당함 때문에 억울하고 분하더라도, 그것을 외면할 게 아니라 마주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당신 따위가 공작님을 판단하고, 모실지 말지를 선택하겠다는 소립니까?”
그게 그렇게 되어버리나?
에라, 모르겠다. 첩자 같은 놈보단 주제도 모르는 놈이 훨씬 낫다.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감히?”
“고리타분하고 수동적인 것 보다, 혈기 왕성하고 주체적이니 더 좋지 않습니까?”
능청스러운 나의 말에 한스가 눈매를 좁히며 노려본다.
나 역시 꿇릴 게 없으니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어깨를 당당히 폈다.
“굳이 제가 알면 안 될 건 없잖습니까? 왜요, 뭔가 켕기는 구석이라도 있나 봅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없으면 말고요!”
깐족거리는 말투로 어깨를 으쓱이자, 한스의 두 주먹이 꽉 쥐어지는 게 보인다.
손등에 핏줄도 선 게, 나이도 있는 양반이 저래도 괜찮은 건가.
“괜히 남에게 화풀이하지 마시고, 잭도 본래 위치로 돌려보내시죠?”
“그런 말씀은 권한 침해입니다.”
“당신이 하신 건 권력 남용이죠.”
‘으득─’하고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