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6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66화(266/1105)
266회
50. 공작님의 마탑 방문 (1)
아침 일찍 기차에 올라, 어젯밤 벌어졌던 술판을 회상했다.
세르펜스는 거절의 의사를 표했었지만, 우리의 검을 만들어 줄 크레아토의 사기 증진을 위해서라는 말로 꼬드겼더니 마지못해 넘어왔다.
크레아토가 준비해 뒀다는 술은 정말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은 크레아토의 음식 솜씨였다.
‘안주가 아주 예술적이었지! 캬~, 아름다운 맛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였나?’
실로 감동적인 맛이었다.
어릴 적 보던 만화에서 주인공의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난리 블루스를 춘 것이 이해가 되었다.
갑자기 벌어진 술판을 내키지 않아 하던 세르펜스조차 얼굴이 활짝 펴졌으니, 말 다한 거다.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드워프, 크레아토는 먼 길을 떠나는 우리를 위해.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의 요리를 잘 먹던 세르펜스를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이틀 치나 싸주었다.
그 맛이 자꾸 아른거려서, 벌써 도시락을 까먹고 싶어졌다.
“방금 아침 먹었잖은가?”
“네? 제가 뭘 어쨌다고요?”
“당장 도시락을 먹고 싶다는 표정으로 아공간 주머니가 있는 안주머니를 힐끔거렸다.”
눈치 빠른 꼬맹이 같으니.
나는 불만을 가득 담아 세르펜스를 노려봤다. 녀석은 그런 내가 같잖았는지 가볍게 코웃음 칠 뿐이었다.
“나를 팔아서 얻은 도시락이 퍽 마음에 들었나 보군.”
“세르펜스도 맛있게 먹었으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
“입을 삐죽거리려면, 옆에 둔 검이나 치우고 삐죽거리시죠?”
잠깐 툭 튀어나왔던 녀석이 입이 쏙 들어갔다.
세르펜스가 크레아토에게 빌린 검을 슬쩍 발밑으로 치웠다.
“하지만 어젯밤엔 당신이 너무 심했다.”
“제가 또 뭘요?”
“그 드워프 장인과 함께, 둘이서 나를 너무···. 으음···, 민망하게 만들었잖은가.”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안해졌는지, 세르펜스의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하여간, 민망하고 부끄러울 일도 많다.
누가 들으면 내가 크레아토의 앞에서 녀석을 둥개둥개하며 비행기라도 태워준 줄 알겠다.
물론 그럴 근력도 안 되지만.
녀석은 내가 연약하다는 것에 백번 감사해도 모자라다.
“주군, 방금 그 말씀은 듣기에 따라서 조금···.”
“······?”
갑자기 끼어든 윈스톤의 말에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모르는 거다.
어쩔 수 없다. 내가 나서서 세르펜스의 말을 바로잡아 줄 수밖에.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가 세르펜스를 아기 취급을 했습니까, 아니면 고양이 취급을 했습니까?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었잖아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아니,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지만···.”
윈스톤이 괴롭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가 뭔가 놓친 게 있는 걸까?
어쩌면 유지스는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 또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윈스톤은 자신의 왼쪽. 그러니까 복도 쪽에 난 문에 이마를 박았다.
‘이상한 사람일세?’
아무래도 술이 덜 깨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가 보다.
그러게 나처럼 세르펜스에게 신성력 케어를 받았으면 좋았을걸. 괜히 자신의 간 기능을 과신하며 자존심을 세우니까 저렇게 되는 거다.
윈스톤 레드포드, 그의 나이 올해 서른둘. 슬슬 몸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나이다.
아직 팔팔하고 젊은 나이지만, 그것을 맹신하다가 훅 가기 좋은 나이기도 하다.
누나 왈, 젊음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나이는 20대까지라 했다.
‘이제 막 서른이 되었을 뿐인데도 체감하는 게 다르다나, 뭐라나···.’
윈스톤에게 안쓰럽다는 시선을 3초간 던져주고, 그가 편히 쉴 수 있도록 그에게서 신경을 껐다.
“아무튼, 어젯밤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근데 세르펜스가 혼자 부끄러워 한 거잖아요.”
“당신이 말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란, 내가 단것을 잘 먹는다는 것뿐이었잖은가.”
“크레아토 씨가 ‘단것을 좋아하다니! 얼굴은 물론 입맛까지 달콤한 게, 그야말로 천사 그 자체로군!’이라 맞장구친 건 제 탓이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거기다 대고, 맞는 말이라며 당신도 맞장구쳤잖은가!”
“어디 저만 그랬습니까? 유지스도 동의한 일을, 왜 저한테만 뭐라고 하는 겁니까?”
세르펜스가 슬쩍 유지스를 흘겨봤다.
시선을 받은 유지스가 괜히 창밖을 구경하는 척하며, 세르펜스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 모습에 세르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천사가 단 음식을 좋아한다는 학술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 전에 나는 천사가 아니다.”
“미의 종족인 드워프 공인까지 있었는데, 자신의 미모를 아직도 부정하시는 겁니까?”
“그, 그건···. 그렇다고 진짜 종족이 바뀌는 건 아니잖은가···.”
논리적으로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했는지, 녀석이 드디어 백기를 들었다.
꼬랑지를 말고 자신감 없이 대답하는 저 꼴을 보라지!
나는 세르펜스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기 천사라는 단어가 있잖습니까? 어린아이는 단것을 좋아하는 법이니, 아기 천사도 당연히 단것을 좋아하겠죠. 또한 아기펜스도 단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죠. 아기 천사 이콜(=) 단것을 좋아함, 아기펜스 이콜 단것을 좋아함. 즉, 아기 천사 이콜 아기펜스! 어떻습니까, 제 기적의 삼단 논법이!”
“기괴한 삼단 논법이겠지.”
“어쭈? 말을 갖고 놀 줄 아는 녀석인가?”
“······.”
세르펜스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온, 그 공식은 제가 보기에도 좀 이상한데요?”
딴청 부리던 유지스가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리며 내 공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런 일에서는 내 편이라 할 수 있는 그녀가 의문을 제시했다는 건, 정말로 내 논리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네? 어디가 말입니까?”
“양변에 동일하게 ‘아기’라는 값이 있잖아요.”
“아차! 그걸 나눠야 정리가 끝나는구나!”
양변을 ‘아기’로 나누면 ‘천사=펜스’가 된다.
’00펜스’ 형태가 아닌 그냥 펜스는 더 이상 세르펜스의 이명이라 할 수 없다. 그저 울타리(Fence)에 불과할 뿐.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잠깐! 그렇다면 세르펜스의 펜스를 천사로 치환한다면 어떨까?”
“자꾸 그런 되도 않는 소리를 할 거라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않는데요?”
“그래도 다물어라.”
“······.”
눈치 볼 사람도 없겠다, 세르펜스가 바로 나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어젯밤에는 그냥 눈치만 살살 주길래, 취기도 올랐겠다 알면서 그냥 무시했더니 불만이 쌓였던 모양이다.
‘빨리 공작저로 돌아갔으면 좋겠···.’
아니다. 공작저에 돌아가면 나는 미친 듯이 수련을 해야 한다. 세르펜스는 더 이상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날 굴려댈 테다.
또한, 녀석은 한 가지에 꽂히면 은근히 저돌적으로 변하는 면이 있다.
처음 먹었던 미트볼 토마토 리조토에 꽂혀서, 아직도 미트볼 요리를 가장 좋아한다든가.
내 아공간 주머니 속 성수가 오염됐을 때, 모든 업무를 미뤄 두고 성수를 찍어대던 모습이라든가.
‘공작저로 돌아가면 오전 내에 업무를 순삭하고, 오후 내내 날 수련 시킬 게 분명해···!’
그렇다면 차라리 입다물고 얌전히 앉아 있는 지금이 더 나을 것 같다.
답답해도 귀찮거나 힘들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함이 옳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나마 특실 칸을 구하지 못했기에 다행이지···.’
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등받이에 늘어지듯 몸을 기댔다.
우리가 구한 표가 일등석에 침대칸이라 한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매우 협소하다. 여기서는 맨몸 스쿼트조차 못한다.
만약 이곳이 넓디넓은 특실이었다면, 나는 이미 구르고 있었을 거다.
‘살다 살다 비좁은 공간에 감사함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 * *
‘···라고 감탄하던 시절도 있었지.’
지금에 이르러서는 쓴웃음밖에 안 나온다.
무심코 배를 손으로 쓱쓱 문질렀다. 볼록 튀어나왔던 뱃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다만, 아릿하게 남은 근육통이 이 자리에 지방이 존재했었음을 내게 상기시켰다.
누구보다 신성력 낭비에 앞장섰던 세르펜스 주제에. 너무 신성력을 남발하면 자연 회복력이 떨어진다며 치료를 하다 만 결과다.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만 회복시켜 놨다.
‘기차 안은 한정된 공간이었지만, 시간이 한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는데!’
일등석 칸은 스쿼트조차 할 수 없는 좁디좁은 공간이나, 복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망각했다.
또한.
윗몸일으키기는 침대에서도 할 수 있음을 간과했으며, 윈스톤이 아공간 주머니에 아령을 넣고 다닐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근력 운동도 횟수가 늘어나면 유산소 운동이 된다는 진리를 뼈에 새길 수 있는, 아주 끔찍한 시간이었다.
더불어 윈스톤에 의해 식단까지 철저하게 관리 ‘당해서’, 먹는 즐거움마저 반으로 줄었다.
‘가끔 기차에서 내려 숙소를 잡았을 땐 정말···.’
바로 어제도 있었던 일이다.
우리가 마탑이 있는 프뤼네 왕국의 베리타 영지에 도착한 것은 오늘이 아닌 어제저녁.
세르펜스는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뒤뜰을 빌려서 검술 지도에 들어갔다.
저녁놀이 저물어갈 무렵 시작됐던 녀석의 지도는 하늘이 깜깜해지고, 달이 휘영청 떠오를 때까지 계속됐다.
혹독했던 훈련을 떠올렸더니, 진저리 나서 몸이 부르르 떨릴 지경이다.
이젠 정말로 두 번 다신 찌지 않으리라.
“그렇게 입고도 아직 추운가?”
세르펜스의 목소리와 함께, 어깨 위로 무언가 툭 걸쳐졌다. 녀석이 입고 있던 로브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과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세르펜스가, 부르르 몸을 떠는 나를 안쓰럽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미 기모가 달린 내복과 두툼한 여행자 옷을 입고, 코트를 걸치고 그 위로 망토까지 두른 상태다.
그 위에 별로 두껍지도 않은 로브가 얹어졌다고 체온이 확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고맙···.
‘···기는 개뿔!’
나를 떨게 한 것은 프뤼네 왕국의 매서운 추위가 아니라, 바로 눈앞의 세르펜스였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람?
하나도 안 고맙다.
“왜 그렇게 노려보는 거지?”
“제가 쌓아온 지방들은 지금 이 순간, 생존을 위해 비축했던 거였습니다. 즉, 지금 제가 추위를 타는 것은 모두 세…, 페르센트가 절 다이어트 시켰기 때문입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 부리지 마라.”
몇 번을 부르는 가명인데, 아직도 적응하지 못했느냐는 눈으로 녀석이 날 노려봤다.
좀팽이 같은 세르펜스와 다르게 나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대인배다. 나는 녀석의 잘못을 너그럽게 넘어가 주기로 했다.
“아니요! 지방이 추위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한다는 건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
세르펜스가 대답하기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런 헛소리까지 장단을 맞춰 줘야 하는 건가, 회의를 느끼는 얼굴이다.
녀석의 생각을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유추해 보자면, ‘나도 수고를 들여서 네 건강을 위해 힘써줬는데, 돌아오는 대우가 고작 이따윈가?!’라며 한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럼 이불이라도 꺼내서 뒤집어쓰고 다니던지.”
녀석이 입을 삐죽이며 빈정거렸다.
정말 추웠으면 녀석의 말대로 했겠지만, 사실 그 정도로 춥지는 않았다.
‘애초에 추워서 떨었던 것도 아니고.’
프뤼네 왕국은 사시사철 춥고 쌀쌀한 나라지만, 가장 추운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현재는 제국으로 따지자면 한겨울 수준의 기온이다. 지금 걸치고 있는 옷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감기에 걸려도 세르펜스가 치료해 줄 텐데, 뭘.’
적당한 쌀쌀함은 되려 기분을 맑게 해준다.
숨을 깊게 들이켜 차가운 공기로 폐부를 가득 채웠다가, 몸 안에서 데워진 숨을 뱉어냈다. 지붕 위에 덮인 새하얀 눈만큼이나 하얀 입김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입김이 걷히고, 거대한 탑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의 목적지인, 마법사들이 쌓아온 지식의 탑이라고도 불리는 ‘마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