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6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69화(269/1105)
269회
50. 공작님의 마탑 방문 (4)
내 설명이 끝나자, 에드나가 눈을 꽉 감으며 숨을 후욱 뱉어냈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쏟아질 듯한 노기를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일인데···.”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도 에드나는 예의 바르게 감사 인사부터 건넸다.
자책 섞인 그녀의 말에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려 했으나, 갑자기 ‘찌르르’하고 작은 벨 소리가 울렸다.
에드나가 찻잎을 넣은 후 맞춰 놓았던 타이머다.
중요한 내용만 간추려서 이야기를 전달한 덕인지, 차가 우려지는 시간 동안 얘기가 끝나 버렸다.
“그냥 제가 할게요. 두 분은 마저 얘기 나누세요.”
유지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에드나를 저지했다. 그러고는 찻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차망을 건져내고, 찻잔의 물을 버렸다.
에드나의 시선이 유지스를 향하는 틈을 노려, 세르펜스가 또다시 쿠키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왜 혼자서 첩보 작전을 꾸미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다 걸리면 더 민망할 텐데.
“어···. 아무튼,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에드나 씨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저는 바로 저번 달에도 보육원에 다녀왔는걸요. 그런데도 원장이 그런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니···.”
처음 만난 나보다 오래 알고 지냈을 원장의 편을 들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에드나는 순순히 믿어 주었다.
원장이 평소에도 싸한 면이 있었나?
“원래 악숭, 아니, 악마 숭배자들이 남들 모르게 나쁜 짓들 많이 하고 그러잖습니까? 그런 쪽으론 완전 도가 튼 놈들인데, 몇 번 봤다고 알아차릴 수 있으면 세상에 이단 심문관이 왜 있겠어요?”
“드러난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에드나는 유지스가 건네주는 찻잔을 받아들며 한탄하듯이 말했다. 유지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양손으로 찻잔을 감싸 쥐며, 에드나는 뜨거운 차를 식히기 위해 입김을 부는 척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악마 숭배자들이 악마를 소환하려는 날이 언제죠?”
“사실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이번 달이 될 수도 있고, 다음 달이 될 수도 있고···. 일루미나티도 거기까진 미처 조사하지 못했대요.”
“그래도 저를 악마의 그릇으로 삼으려 한다는 말은, 내일 당장 문제가 터질 리는 없다는 소리겠죠?”
“네, 뭐. 그러니까 저희가 이곳으로 먼저 올 수 있었죠.”
정말 시각을 다투는 일이었다면 마탑에 들를 여유도 없었다.
내 말의 뜻을 이해한 에드나가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나요? 보육원과 원장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신 건가요? 아니면 제 힘이 필요하신 건가요?”
“둘 다요.”
“좋아요. 그럼 잠시 방에 좀 다녀올 테니, 차를 마시면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상관은 없긴 한데···.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떠오르신 겁니까?”
“네, 짐 싸야죠.”
“네?”
방금 내가 시간은 넉넉하다는 식으로 말했고, 에드나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었나? 분명 그랬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당장 짐을 싸겠다는 결론이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시라도 빨리 아이들을 구해야죠. 그 아이들을 악마 숭배자의 영향권 내에 오래 두고 싶지 않아요.”
에드나는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앉았던 자리 앞에 놓인 찻잔에서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오려나?
“말이 다소···. 심히 거칠긴 하지만, 역시 좋은 분 같아요.”
에드나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유지스가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우리의 인사 담당관은 에드나를 좋게 평가한 모양이다. 나 역시 동감이다.
“세르펜스가 보기엔 어때요?”
“으음···.”
“어허! 쿠키보다 제 질문에 대답하시는 게 먼저죠.”
고민하는 척, 슬그머니 쿠키 접시 위로 손을 뻗는 녀석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자기가 안 피한 주제에, 세르펜스가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그렇게 바라보면 내가 쿠키를 먹게 허락해 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냥 남들 앞에서도 당당히 먹으면 그만인 것을. 저놈의 내숭은 언제쯤 고칠 생각인지 모르겠다.
단 걸 좋아한다는 것쯤은 대외적으로 알려져도 상관없을 텐데.
‘오히려 저렇게 숨기는 쪽이 더 어린애 같지 않나?’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스물) 여섯 살이 자긴 어린애가 아니라 말하고 있는 꼴이다. 딱 제 나잇대의 행동이다.
너무 나무라지 말자.
“이따 에드나 씨 몰래 또 줄 테니까, 쿠키는 이제 그만 집어 드세요.”
“으음, 그래.”
세르펜스가 어른스러운 척, 고고한 자세로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입안에 남은 단맛을 씻어냈다.
“성검 일행인 그 마법사와 보육원의 원아들 모두,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겠죠.”
그러니까 서둘러서 짐을 챙겨 오겠다는 걸 테다.
하고 있던 실험이든, 개인의 수련이든. 에드나에게도 일정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을 전부 제쳐 둘 정도로 그들을 걱정하는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르펜스에게 다음을 요구했다.
“그리고 말이 험한지는···, 잘 모르겠군.”
“모르겠다고요?!”
에드나의 욕설 수위를 평가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방금 세르펜스가 한 말은 그냥 간과하기 어려웠다.
우리 아이의 언어 습관, 이대로 괜찮은가?
“유지스가 귀를 막아주긴 했지만, 벌레 새끼라던가 버러지라던가 하는 말은 들었잖아요.”
“새끼라는 말은 당신도 썼잖은가.”
“마왕 새끼랑 벌레 새끼랑 레벨이 같습니까?!”
“개새끼도 있다.”
“······.”
“게다가 그중에서 가장 심한 새끼를 꼽으라면 단연코 마왕 새끼 아닌가?”
“거, 새끼 얘긴 이제 그만합시다···.”
윈스톤이 나를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측하는 것조차 두렵다.
“그리고 벌레든 버러지든, 약하고 보호해 줘야 할 존재라는 뜻이잖은가.”
“···상대를 하찮은 존재라고 비하할 때 씁니다. 명백한 욕이죠.”
벌레 새끼라는 말을 ‘연약한 너를 내가 지켜주고 싶어.’라는 뜻으로 해석하다니. 참신함을 넘어 괴랄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녀석이 왜 저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짚이는 구석이 있었기에, 잘못된 부분만 가볍게 정정해 주었다.
“그럼 당신보다 입이 더 험한가?”
“비교도 안 됩니다. 아까 얼마나 심한 상욕이 나왔는지 세르펜스가 들었으면···, 어휴. 지금쯤 세르펜스는 넋이 완전히 나가서 멍때리고 있었을걸요? ”
“‘졸라’보다 더 심한가?”
“······.”
세르펜스의 질문에, 윈스톤 뿐 아니라 유지스까지 날 비난의 눈초리로 노려봤다.
이곳이 에드나의 실험실만 아니었더라면 ‘무릎 꿇고 손들기’형에 처할 뻔했다.
“욕설 얘기는 그만합시다. 사람을 봐야죠, 사람을!”
“그 욕 때문에 고민하는 것 같기에.”
“···세르펜스 앞에서는 되도록 자제해 달라고 부탁해 봐야죠.”
“나 때문이었나···?”
세르펜스가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순진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벌써 불안감이 엄습한다.
에드나를 성검 일행 쪽에 넘기면 아니마와 짝짜꿍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텐데. 우리 아이의 바른 언어 습관을 위협하면서까지 그녀를 우리 파티에 넣어야 하나?
“마법사의 전력은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거다.”
내 갈등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세르펜스가 귀신같이 말했다.
나도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성검의 주인]에서 아니마가 펼친 활약상의 반만 따라가도 큰 도움이 될 거다.
마법 스크롤은 어디까지나 정해진 마법만 사용할 수 있다. 스크롤을 닥치는 대로 사들인다 한들, 모든 상황에 대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어디 그뿐이랴? 상황에 따른 변형은커녕 위력 조절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세르펜스가 에드나의 그···, 어마어마하고도 무시무시한 욕설을 배운다면···!’
내가 말을 하는 족족 따라 해대던 세르펜스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아른거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세르펜스.”
“말해라.”
“에드나 씨가 하는 나쁜 말이 뭔가 재밌어 보이고, 처음 보는 단어라 신기할지라도. 절대 따라 하면 안 됩니다. 아셨죠?”
“대체 나를 몇 살로 취급하고 있는 거지?”
(스물) 여섯 살 애기펜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을 표했다.
“몇 살로 취급하냐뇨? 그냥 딱 세르펜스 제 나이로 보고 있는데.”
“거짓말하지 마라. 최소 스무 살쯤은 제하고 보는···.”
세르펜스가 말을 하다 말고 미적지근해진 차를 홀짝였다. 녀석이 갑자기 대외 모드로 돌입할만한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준비 다 끝났어요. 어서 출발하죠.”
아니나 다를까, 에드나가 문을 열고 돌아왔다.
짐을 최소한으로 꾸린 건지, 그녀는 옷 네다섯 벌 넣으면 꽉 찰 것 같은 크기의 가방을 메고 있었다.
“여러분들의 짐은 숙소에 두고 오셨나요?”
“아, 맞다!”
에드나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뒤늦게 아공간 주머니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세르펜스가 아직 주인 없는 아공간 주머니를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공작님, 그거 주세요!”
세르펜스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자, 녀석이 손 위에 아공간 주머니를 올려 줬다.
나는 그것을 에드나에게 전달했다.
“앗···! 이건 아공간 주머니잖아요?!”
건네받은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고 그 안에 손을 넣어보더니, 그 정체를 알아챘는지 에드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공간 주머니를 살피는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당장 그것을 분해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다.
부디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다시 가셔서, 혹시 모르니까 침대랑···.”
“침대요?”
“네. 그리고 옷도···. 그냥 넉넉하게 옷장째로 넣고 오세요.”
“침대랑, 옷장이요···?”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은 사람처럼, 에드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나?
“자세한 사정은 기차에 타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자, 자! 빨리빨리!”
나는 그녀를 등 떠밀어 실험실 밖으로 내보냈다.
이번에는 선별 작업이 없는 탓인지, 에드나가 아까의 반절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돌아왔다.
“챙길 건 다 챙기셨어요? 여기 있는 실험 도구들 안 넣어도 됩니까?”
“저, 왠지 마탑을 영영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는데···.”
“악마 숭배자들. 그러니까, 악숭이를 상대하는 건 고작 하루 이틀 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 합니다.”
내 말에 거짓은 없다.
대륙은 넓고 악숭이들은 많다. 그들을 모두 소탕하려면 하루 이틀로는 부족하다.
어째서인지 윈스톤이 나를 사기꾼 보듯 보는 것 같았지만, 그건 단순히 내 착각에 불과하겠지.
윈스톤의 표정을 읽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런 건가요···?”
“그럼요! 악숭이랑 싸워 보셨어요? 아니시죠? 그럼 그냥 경험자의 말을 따르는 게 최곱니다.”
에드나가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정체 모를 풀떼기와 보석 결정 등등을 아공간 주머니 안에 쓸어 담았다.
“···저 지금 납치되는 거 아니죠?”
“누가 납치하면서 피해자의 짐까지 챙겨갑니까?”
“뭔가 좀 이상한데···.”
“걱정하지 마세요. 에드나 씨가 ‘원하신다면’ 우리 공작님의 명예를 걸고 마탑으로 되돌려 보내드릴 테니까.”
“어째서 본인의 명예가 아닌 건가요?”
“제 명예보다는 아무렴 공작님의 명예가 더 믿을 만하잖아요?”
내 말이 합의된 사항이냐고 묻는 듯, 에드나가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그에 세르펜스는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온의 연봉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녀석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조금도 온화하지 않았다.
“아니, 내 연봉은 왜 걸어요?!”
“당신이 태연하게 남의 명예를 걸길래···. 반드시 지켜질 약속이니, 무엇을 걸어도 상관없다는 의미 아니었습니까?”
“아니···.”
“아닙니까? 지키지 않을 약속에 제 명예를 거셨던 겁니까?”
세르펜스가 충격받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슬픈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내가 쓰레기가 된 기분이다.
나는 저 표정이 연기라는 걸 잘 알지만. 유지스도 눈치챘고, 윈스톤도 반쯤 짐작하고 있을 테지만.
오늘 처음 보는 에드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 지켜요! 지킬 거라고요!”
마탑에 돌아오고 싶지 않도록, 에드나를 잘 설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