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7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72화(272/1105)
272회
51. 공작님과 잠입 작전 (3)
“이게 그 자료예요.”
에드나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웬 서류를 꺼내 세르펜스에게 내밀었다.
궁금한 마음에 내가 목을 죽 빼고 기웃거리자, 세르펜스가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서류 내용이 보기 좋게 눈에 들어왔다.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벌어들인 거라면, 신고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불법적인 방법으로 뒷조사한 것이 분명한 에드나가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의 뻔뻔한 행각에 유지스가 동조하며 안타깝다는 듯 탄식을 흘렸고, 세르펜스는 서류에 집중하느라 듣지 못한 척했다.
세르펜스에 의해 닥칠 수밖에 없던 나도 조용히 서류를 함께 읽었다.
녀석과 함께 서류를 읽고 있자니, 학창시절 책가방을 잘못 챙긴 짝꿍과 함께 교과서를 보던 추억이 아롱아롱 떠올랐다.
‘그러게 나처럼 사물함에 다 놓고 다녔어야지.’
속으로 나의 현명함에 찬탄을 보내며, 다시 서류 내용에 집중했다.
서류에는 로시오 상단이 어떤 사업을 통해 덩치를 키워 나갔는지, 한 달 단위로 정리돼 있었다.
에드나의 말대로 재작년에는 적자와 흑자를 오가며, 겨우겨우 연명하듯 유지되던 수익이 작년 1월을 기점으로 급격한 성장세를 그렸다.
그러다가 지금은 또 조금씩 하락세를 그리고 있었다.
“음···.”
마지막 장까지 전부 살펴본 세르펜스가 얕게 침음을 흘렸다.
상단의 성장 뒤에 마왕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의심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확신하게 된 거다.
나와 세르펜스의 얼굴이 심각해지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유지스도 궁금해졌는지 거꾸로 된 서류를 읽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꺾었다.
그 모습을 본 세르펜스가 다 읽은 서류를 유지스에게 넘겼다.
“상단 쪽도 함께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뭔가 알아내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작년 한 해 동안은 공격적으로 투자해서 수익을 올린 것에 반해, 올해 들어서는 굉장히 방어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게 이상합니다.”
“벌 만큼 벌었으니, 이젠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싶어진 거 아닐까요?”
에드나의 질문에 세르펜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로시오 상단은 빠른 속도로 세를 키우긴 했지만, 대륙 전역에 이름을 날릴 수준은 아닙니다. 미래를 꿰뚫어 보는 게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시장을 보는 눈이 뛰어나다면, 이 정도에서 멈출 리 없습니다. 또한, 안정을 꾀하는 것이 목적이라 해도 이상합니다. 투자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출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닙니다. 상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는 법이고, 그것을 메꾸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투자하고 돈을 벌어들여야 합니다.”
세르펜스가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았다.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한 귀로 듣고 흘려도 상관없는 말이다.
녀석이 열심히 떠들어 댔으나, 그저 당위성 부여를 위한 밑밥 깔기에 불과하다.
결국에는 ‘얘네가 작년에 벌어들인 돈은 악숭 세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직접 잠입해서 상단 내에 악숭이가 없는지 확인해 봐야겠다.’로 끝나게 되겠지.
“···그런 이유로, 상단 내부에 숨어들어 악마 숭배자들과의 연결점이 없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 봐라.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내가 대륙 제일의 세르펜스 행동 분석가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 손오공이 있다면, 내 손바닥 위에는 세르펜스가 있다.
“문제는 보육원 쪽도 함께 확인해 봐야 한다는 건데···.”
상단 쪽 문제를 먼저 해결했을 경우, 악숭이들이 원아들을 인질로 잡을 가능성을 경계하는 걸 테다.
세르펜스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힐끔거렸다.
자신이 어느 쪽을 맡아야 할지. 그리고 나는 어디에 두어야 할지 등을 고민하는 거다.
“제가 상단 쪽을 맡을게요.”
녀석이 고민하는 것을 알아챈 유지스가 손을 들어 올리며 자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요.”
“만약 그곳에 악마 숭배자가 있다면···.”
“위험한 장소는 아이레에게 대신 봐 달라고 부탁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아이레는 작은 틈새 사이로도 이동할 수 있어서, 비밀 장소도 흔적 없이 드나들기 쉬울 거예요.”
걱정하는 세르펜스의 표정을 본 유지스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직접 들어가지 않고 바람의 정령을 보내겠다는 말에 세르펜스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불현듯 윈스톤이 불쌍해졌다.
‘윈스톤을 보낼 때도 그렇게 걱정해주지 그랬냐?’
친한 정도에 따른 차별이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편파가 심한 녀석을 보고, 세상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사랑한다 어쩐다 하는 소리를 하다니.
마계에서 마왕이 웃다 쓰러질 소리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조사 중에 마법적 처리가 된 곳을 발견한다면, 일단 건드리지 말고 위치만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단에는 유지스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는지, 세르펜스가 유지스에게 주의 사항을 전달했다.
경비 마법이 깨진다면 필연적으로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들킬 수밖에 없기에, 그걸 경계한 거다.
“그럼 아예 제가 같이 갈까요?”
에드나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말했다.
경비 마법이 거치적거린다면 마법사인 자신이 함께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아닙니다. 만약 악마 숭배자가 그곳에 있다면, 제가 직접 가봐야 합니다. 당장은 그자들이 숨어 있을 만한 장소를 특정해두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베네볼렌 씨께는 다른 일을 맡기고 싶습니다.”
“다른 일이요?”
“네. 보육원 원장을 만나 주시기 바랍니다. 만나서 어떤 얘기든 좋으니 대화를 끌어내 주셨으면 합니다.”
“대화요?”
원장이 어지간히도 싫었던 모양이다.
그자와 대화를 나누라는 말에 에드나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러니까···, 보육원 밖으로 유인해 내라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보육원 내부를 살필 생각이라, 멀리 나가시면 곤란합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아이들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세르펜스의 말을 해석하자면, 괜히 밖을 싸돌아다니다가 악숭이들에게 납치당해 일을 번거롭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녀석은 거기에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경고의 말을 곁들임으로써, ‘자신의 안위보다 아이들을 먼저 걱정하는 그쪽이 나는 더 걱정스럽다.’라는 뜻으로 탈바꿈시켰다.
“제국에서는 이미 악마가 한 차례 소환됐었습니다. 악마를 소환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고, 그것을 위한···. 제물···과 그릇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별일이 없다는 건, 분명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녀석이 본인을 앞에 두고 말을 꺼내기 어렵다는 듯, 중간에 한 호흡을 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언제 봐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그놈에게서 말을 끌어내라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분명 그자는 베네볼렌 씨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겁니다.”
“알았어요. 한번 해볼게요.”
에드나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시온을 그곳에 취직시켜 주십···.”
“엑?! 잠깐만요! 세르펜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 짤려요?!”
얌전히 입 다물고 작전 설명을 듣고 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다.
너무 깜짝 놀라서 지금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까지 깜박 잊고 녀석에게 따져버렸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일단 진정해 주십시오.”
녀석이 침착하게 자신의 멱살을 틀어쥔 내 손을 톡톡 치며 말했다.
“내 손이 왜 여기 있담? 거참 신기한 노릇일세?”
“···이제라도 깨달으셨다면 놓아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녀석의 멱살을 놓아준 후,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러 옷 주름을 폈다.
머쓱한 마음에 상하좌우 열심히 펴 봤지만, 내 손이 다리미가 아닌 탓에 쭈글쭈글 주름진 옷은 펴질 줄 몰랐다.
“옷 주름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일단 얘기에 집중해주십시오.”
물이라도 좀 뿌려볼까 고민하고 있자니, 녀석이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손을 잡고 테이블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에드나가 우리의 이런 행동을 무척이나 해괴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에 비해 유지스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시온은 시온이로다.’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를 고수했다.
“어쨌거나, 잘리는 게 아니면 뭔데요?”
“그냥 위장 잠입일 뿐입니다. 당신은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세르펜스가 ‘네 수준에 딱 맞는 일이지 않은가?’라는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제 딴에는 나를 비꼬려던 것 같은데, 나에게 보살펴지고 있는 세르펜스가 내게 그런 눈빛을 보내 봤자 아무렇지도 않다.
* * *
로시오 상단의 본단은 보육원이 있는 알고르 령과 인접한 페롤 령에 있었다.
어차피 알고르 령은 직접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탓에, 우리는 유지스와 함께 기차에서 내렸다.
유지스는 로시오 상단으로 향했고, 나와 에드나는 마차를 빌려 타고 페롤 령으로 향했다. 세르펜스는 몰래 뒤따라 오겠다고 했으니, 알아서 잘 따라오고 있겠지.
그냥 같이 타고 가다가 보육원 근처에서 먼저 내리면 될 것을. 수상하니 어쩌니 하면서 고생을 자처했다.
“아이들 돌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괜찮으시겠어요?”
보육원 근처에 다다르자, 문득 걱정됐는지 에드나가 내게 질문했다.
내가 세르펜스를 따라 보육원 봉사를 다녀온 게 몇 번인데. 괜한 걱정이다.
세르펜스와 에드나에 비해 보육원 봉사 짬밥은 뒤떨어질지 몰라도, 나는 아동 복지 학과생이다.
전문적인 지식의 깊이로만 따지자면 내가 더 낫다.
“세르펜스도 보육원에 주기적으로 봉사활동 다니거든요? 그때마다 저도 함께 갔으니까,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하시네요.”
“제가 원래 좀 착합니다.”
“아뇨, 시온 씨 말고 프라시더스 씨요.”
아이들에게 머리가 쥐어뜯긴 것도 나고, 네발로 바닥을 기면서 말이 된 것도 나다.
실감 나는 구연동화도 못하는 주제에, 고운 목소리만 믿고 책을 읽어주기만 하는 세르펜스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세르펜스 그 자식은 동화책 내용을 1도 이해 못 할 텐데.’
슬쩍 들어보니 국어책 읽기가 따로 없더라. 그저 활자 자체를 읽어내려갈 뿐이었다.
녀석은 동화책 읽는 재미를 모르는 게 틀림없다.
답답한 마음에 나의 실감 나는 구연동화 실력을 뽐낼 겸, 시범을 보여주려 했건만. 세르펜스의 목소리에 매료된 아이들은 내게 동화책을 넘기려 하지 않았다.
그때를 회상하자 서러움에 찔끔 눈물이 났다.
“제가 심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뭘 그런 것 가지고 우시나요?”
에드나가 매정하게 말했다.
마탑에서 들었던 그녀의 심한 말 퍼레이드를 떠올리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 참. 그리고 일단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잠도 보육원에서 자게 될 텐데, 잠자리가 불편해도 침대는 꺼내지 마세요. 아이들이 괴리감 느껴요.”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내 대답에도 에드나는 여전히 못 미덥다는 표정이다.
대체 그녀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걸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달리던 마차가 멈춰 섰다.
프라시더스 령의 교단 소속 보육원은 그 근처만 가도 꺄르르하는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했었건만.
“조용···, 하네요.”
마차에서 내려도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바깥에 이렇게나 눈이 쌓였는데,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다니.
아무리 프뤼네 왕국에는 눈이 자주 내린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마당에 눈사람이 하나도 없는 건 이상하다.
‘아니지? 에드나의 말대로 아이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면···. 이게 당연한 건가?’
벌써 착잡함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제가 오는 날에는 아이들이 먼저 나와 반겨줬었는데···.”
에드나도 착잡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씁쓸하게 텅 빈 마당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