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7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75화(275/1105)
275회
51. 공작님과 잠입 작전 (6)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에드나가 원장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바로 식사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원장 놈은 할 일이 남았다며 원장실에 남았는데, 그냥 식사 준비를 하기 싫어서 농땡이 치는 것이 분명하다.
안 그래도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궁금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
나는 아기를 웬디에게 맡기고 에드나를 따라갔다.
“얘기는 잘 됐어요?”
“일단, 시온 씨를 고용해 주긴 하겠대요.”
“일단?”
“네, 그런데···. 요리할 줄 아세요?”
당당하게 식칼을 손에 쥐는 나를 보며, 에드나가 불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귀족 출신에 공작가 보좌관인 시온이 요리를 할 줄 아는 건 좀 이상하긴 하다.
집사인 제온이라면 간단한 요리 한두 가지는 할 줄 알겠지만, 요리하는 보좌관은 듣도 보도 못했다.
“대신 검은 좀 배웠어요.”
“······.”
내 대답에 에드나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그녀는 불안한 것을 넘어, 위험한 것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제가 그래도 성인인데, 어린아이에게 식칼을 쥐여주는 것보단 안전하겠죠. 안 그렇습니까?”
“안 그래 보이는데요?”
에드나가 단호하게 말하며 내 손에 들린 식칼을 뺏어갔다.
졸지에 빈손이 되어버린 나는 커다란 냄비에 담긴 수프나 휘젓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일단이라는 건 뭡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바로 대답을 하는 대신, 기다란 마력의 실타래를 풀어냈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허공에서 얽히고설키더니 복잡한 마법진을 그려냈고, 곧이어 푸른색의 반투명한 막이 되어 주변을 감쌌다.
‘아마도 방음 마법이겠지?’
스크롤을 사용했을 때와 다르게, 마력으로 형성된 막은 벽에 달라붙지 않고 직육면체 형태를 이뤘다.
“대신 조건을 달았어요.”
“조건이요?”
내 반문에 에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이 무척이나 심란해 보인다. 도대체 원장 놈이 어떤 조건을 달았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로시오 상단을 테러해 달래요.”
“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요구다.
당연히 상단 측과 한패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이 또한 마왕 놈의 계략일까?
어쩌면 보육원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독차지하기 위해 원장이 배신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원장은 로시오 상단이 악숭 세력과 연관돼 있다는 걸 모른다는 건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가정들이 스쳐 지나갔고, 어지럽게 엉켜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래서 그러겠다고 한 겁니까?”
“아니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순순히 그렇게 해도 된대요?”
“최근 하던 연구가 잘 안 풀려서, 머리 식힐 겸 며칠 머물 생각으로 온 거라고 변명해 뒀거든요.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에 답을 내놓겠다니까, 알았대요.”
“어, 음···. 잘하셨어요.”
원장 놈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요구를 했는지는 몰라도, 절대 좋은 의도는 아니리라.
내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있지만, 양쪽이 모두 내 적이라면 어느 쪽도 아군이 될 수 없다.
따를 필요도 없고, 목적이 불분명한 지금은 더더욱 따라선 안 된다.
“대체 왜 그런 얘기를 한 걸까요? 에드나 씨는 짐작되는 거 없어요?”
“그 새끼 말로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는데···.”
“믿지 마요. 놈은 이곳의 아이들을 돌보고 길러줘야 할, ‘보육(保育)’의 대상이 아니라 ‘고아(孤兒)’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런 놈이 아이들을 위해서 나설 리가 없잖습니까?”
“네, 저도 안 믿어요.”
에드나가 식칼을 들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식칼을 들고 있을 때, 어째서 그녀가 불안하게 쳐다봤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시온 씨는 뭐 알아낸 거 없어요?”
“다짜고짜 원장에 대해 캐물으면 이상하게 보일까 봐, 아직 아무것도 못 물어봤어요.”
“그것도 그렇겠네요.”
이해한다는 듯, 에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라시더스 씨께서는, 보육원 어딘가에 계신 것 맞겠죠?”
“네. 아까 부르니까, 바로 튀어나왔···. 아, 맞다! 그 녀석 저녁 식사 챙겨줘야 하는데!”
“······.”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참···. 프라시더스 씨는 마음이 넓으신 것 같네요.”
나와 세르펜스의 이름이 헷갈린 건 아닐 테고.
세르펜스의 식사를 챙겨주겠다고 말한 건 난데, 어째서 녀석이 칭찬을 받는 건지 모르겠다.
“부르면 나오신다니, 잠깐 오셔서 받아 가시라고 하면···. 아···, 그분께선 이런 음식은 안 드시려나요?”
에드나가 메마른 잡곡 빵을 손에 들고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그런 걱정을 할 수 있게, 녀석이 잘 먹고 자랐다면 오죽 좋을까.
“세르펜스는 매운 거 말곤 다 잘 먹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열심히 휘젓고 있던 수프를 크게 한 국자 퍼서 오목한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에드나의 손에 들린 잡곡 빵과 그녀가 만든 매시 포테이토 샐러드를 한 접시에 담아 쟁반에 올렸다.
내가 교정시켜 주기 전, 세르펜스가 먹던 식단과 큰 차이가 없다.
빵과 스프는 동일하고 과일이 매시 포테이토 샐러드로 바뀌었을 뿐.
물론 세르펜스가 먹던 건 좀 더 부드러운 빵이었지만, 영양학적으로 봤을 때 흰 밀가루 빵보단 잡곡 빵이 훨씬 몸에 좋다.
또한 매시 포테이토 샐러드에는 다진 자색 양파와 주황색 당근이 군데군데 섞여서, 색도 예쁘고 영양가도 좋아 보였다.
‘···어째, 녀석이 먹던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데?’
더불어, 이 음식들은 간도 제대로 되어 있었다. 영양뿐 아니라 맛도 더 좋겠지.
“이거 그냥 통과해도 되는 겁니까?”
“가능하긴 한데, 더 하실 얘기가 없다면 그냥 거둘게요. 슬슬 가지고 나가야죠.”
내가 허공을 가로지른 마력의 벽을 가리키며 질문하자, 에드나가 그것을 해제해 버렸다.
나는 한 손에 쟁반을 들고 부엌에 난 창문을 열었다.
“아···.”
아도르라는 세례명을 부르려다 흘낏 뒤를 돌아보았다. 에드나가 수프를 그릇에 퍼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함부로 자신의 세례명을 까발린다면, 녀석은 화를 낼 것이 분명하다.
나는 창틀에 쟁반을 올려놓고, 잠시 고민했다.
내가 자신을 부른다는 걸 녀석이 알아들을 수 있으면서, 누가 들었을 때 의심받지 않을 만한 호칭은 어떤 게 있을까?
고민은 짧았고, 실행은 즉각 이루어졌다.
“야옹아, 맘마 먹자.”
“미쳤어요?!”
세르펜스가 나타나는 것보다 에드나의 반응이 더 빨랐다.
“그냥 암구호 같은 겁니다. 이름을 불렀다가 원장이 듣고 누군가에게 알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습니까?”
나는 에드나를 돌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했다.
암구호라는 변명은 지금 생각해 낸 거지만, 좋은 아이디어 같다.
아무래도 사람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고양이를 부르는 게, 누군가에게 들켰을 때 의심도 덜 사겠지.
“그건···, 그렇긴 하네요.”
그녀 또한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런데 얘는 왜 안 오···, 어?”
내가 고개를 돌린 잠깐 사이에 쟁반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혹시 밑으로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싶어서 밖을 내다봤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건 새하얀 눈뿐이다.
그렇다는 건 세르펜스가 가져간 거겠지.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창밖에는 발자국 하나 찍혀있지 않았다.
“우리도 빨리 먹으러 가죠.”
나는 새로이 쟁반을 꺼내, 에드나가 그릇에 퍼담은 수프를 그 위에 올렸다.
수프가 담긴 그릇의 개수는 총 10개. 그중 일곱 개는 어린아이 용인지 자그마했고, 세 개는 일반적인 크기였다.
“일 나간 애들은 안 와요?”
“오긴 오는데, 돌아오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일단 따로 빼 뒀어요.”
미성년자에게 노동을 시키는 거로도 모자라서 야근까지 시키다니. 완전 악덕 기업이 따로 없다.
분명 야근 수당 같은 건 챙겨주지도 않을 거다.
더불어 애들 몫을 따로 빼 뒀다는 에드나의 말로 미루어 보건대, 저녁밥도 제공하지 않는 것 같다.
도의적으로 참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다.
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억누르며 에드나와 함께 음식과 식기류를 날랐다.
식사는 부엌과 별도로 마련된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대충 상을 펴놓고 먹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옷과 장난감 등이 허름한 것과 다르게 건물 자체의 시설과 구조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기야 건물과 시설을 마련한 것은 로시오 상단이 아니라, 보육원을 설립했던 다른 상단이니까.
“···그런데 뜨거운 물은 왜 안 나오는 거지?”
“네?”
문득 든 의문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흘렸던 모양이다.
에드나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몇 달 전에 고장 났어요!”
마치 놓치면 안 될 기회라도 온 것처럼, 리나가 잽싸게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리나의 말에 에드나의 시선이 원장에게로 향했다.
“그냥···, 너 번거롭게 할까 봐 말 안 한 거지. 뜨거운 물이 안 나오는 건 1층뿐이니까···. 2층에도 욕실 있잖아?”
에드나의 질타 어린 눈빛에도 원장이 뻔뻔하게 대답했다.
“1층 전체? 그럼 설거지는 어쩌고.”
“불이 바로 옆에 있는데 뭐 어때? 끓여서 쓰면 되지. 애초에 기름진 음식을 먹을 일이 없는데···.”
원장이 혼자 중얼거리며 불만을 쏟아냈다.
이놈은 어딘가 꼬여도 아주 단단히 꼬여있었다.
“물 자체가 안 나오는 건 아니니, 아마 마법진 쪽이 잘못된 걸 거야. 이따 내가 확인할게.”
아무리 원장 놈이 마음에 안 들어도 아이들이 써야 할 시설이다.
에드나가 반쯤 포기한 것에 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와! 그럼 저희도 이제 다시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 아얏! 갑자기 왜 꼬집어?”
“쉬잇! 안돼! 그런 말 하면 원장 선생님한테 혼날 거야!”
신이 나서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데런의 옆구리를 리나가 꼬집으며 따끔하게 말했고, 에드나의 시선은 다시 원장에게로 향했다.
누가 보면 일부러 원장을 물 먹이려는 한 편의 콩트 같은 상황이다.
“내가 말하지 말라고 한 건, 1층에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는 것뿐이야! 애들이라 2층까지 올라오기 귀찮아서 그냥 1층에서 씻었나 보지.”
이 추운 날씨에.
고작 계단 한 층 오르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찬물로 씻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기보단 원장이 2층 욕실을 독점했다고 보는 쪽이 더 신빙성 있다.
아이들이 아무리 에드나를 따른다 한들, 보육원에서 함께 지내는 건 원장이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에드나가 돌아간 후, 그에게 혼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걸까?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식사를 재개했다.
“수도 말고는 더 고칠 거 없어? 며칠간 머무르는 김에 다 고쳐놓을 테니까, 그냥 지금 말해.”
“그거 말고는 없어.”
“정말?”
“지금 생각나는 건 없는데···. 나중에 떠오르면 말할 테니까, 제발 그렇게 좀 보지 마!”
미심쩍다는 에드나의 시선에 원장이 버럭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렸다.
씩씩거리며 식당 밖으로 나가는 그 모습은 어른의 행동이라기엔 너무 철없어 보였다.
그 뒷모습을 에드나가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
“언니, 언니! 우리랑 가치 살아여?”
우리가 왔을 때, 가장 먼저 에드나에게 안겨들던 여자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완전 눌러사는 건 아니고, 며칠 만?”
“히히~, 신난다!”
아이가 히 하고 웃자, 앞니가 빠져 휑한 치열이 드러났다.
그 귀엽고 순수한 모습에 에드나가 부드럽게 웃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