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7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77화(277/1105)
277회
51. 공작님과 잠입 작전 (8)
밤중에 세르펜스가 던지고 간 폭탄 때문에. 그리고 아기를 돌보느라, 잠을 어찌 잤는지 모르겠다.
날이 밝기 전에 세르펜스가 잠깐 들러 신성력으로 체력을 회복시켜주고 가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오늘 일정에 차질이 생길 뻔했다.
“표정이 어둡네요.”
아기를 등에 업고 아침 식사용 수프를 휘젓고 있는데, 옆에서 요리 중이던 에드나가 툭 말을 던졌다.
앞에 아이들이 없다고 나도 모르게 긴장의 끈을 풀었던 모양이다.
“어젯밤 제가 했던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주변에 그런 얘기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불평이 튀어나와 버린 것뿐이니까.”
에드나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를 직접 만나기 전에는 ‘아니마의 보호자’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굳건하고 씩씩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녀는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나마 의지할 데라고는 아니마와 전 원장 선생님뿐이었는데, 그 둘은 지금 그녀의 곁에 없다.
줄곧 혼자 속앓이를 해왔겠지.
그렇게 쌓여왔던 것이 낯선 이방인인 내 앞에서 터져버린 걸 테다.
‘만약 우리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정말 세르펜스의 말대로 되어버렸겠지.’
마왕 새끼의 저열한 계략에 치가 떨린다.
에드나를 해치면 [성검의 주인]에서 그랬듯이 아니마가 각성해 버릴 테니까, 이런 수를 쓴 거겠지.
에드나의 정신을 붕괴시켜 타락의 길을 걷게 하여, 아니마까지 회유한다는 빌어 처먹을 발상을 떠올리다니.
누가 악마들의 왕 아니랄까 봐.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저, 에드나 씨.”
“네?”
“세상에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죄 없는 이들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이득을 바라지 않고 남들을 돕고자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 원장 선생님께서 힘없는 어린아이였던 에드나 씨를 도왔던 것처럼. 에드나 씨가 이곳의 아이들을 신경 써주는 것처럼. 이 세상은 그렇게 각박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진짜 많이 신경 쓰였나 봐요?”
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낼 줄 몰랐는지, 에드나가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그 모습에 괜히 멋쩍어져서, 나는 하하 웃어넘기며 걸쭉해진 수프를 그릇에 옮겨 담았다.
“시온 씨가 말씀하신 좋은 사람이 지금 제 눈에도 한 명 보이네요.”
“와···. 그렇게 바로 말씀하시니까, 제가 칭찬을 바라고 말한 것 같아졌잖아요.”
“그랬어요? 누나에게 칭찬받고 싶었어요?”
“그런 건 아니지만, 전 오는 칭찬 안 막습니다!”
내 당당한 태도에 에드나가 깔깔 소리 내 웃었다.
그녀가 웃음다운 웃음을 터트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거 알아요? 시온 씨는 어딘가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네, 저도 알아요. 제 무수한 장점 중 하나죠.”
“겸손함은 좀 부족한 것 같네요.”
에드나가 또다시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평소보다 살짝 높아진 목소리 톤과 웃음기 섞인 목소리, 부드럽게 휘어진 눈꼬리와 말려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살짝 드러난 새하얀 치아.
그 모든 요소들이 그녀가 나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마음에 없는 소리로 장난치는 중이란 신호를 보내왔다.
“그 또한 제 장점 중 하나입니다. 칭찬을 부정해서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저의 깊은 배려심의 발로죠.”
“네, 네. 그럼 배려심 깊은 시온 씨, 그 배려심을 발휘해서 아이들을 깨워서 식당으로 오라고 전해주시겠어요?”
“예압!”
나는 한결 가뿐해진 마음으로 부엌을 나섰다.
에드나를 위로해 줄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내가 격려를 받은 것처럼 머릿속이 산뜻해졌다.
교육인 척하는 노동 때문에 외출해야 하는 아이들은 벌써 일어나서 씻고 식당에 앉아있었으므로, 내가 깨워야 할 아이들은 일곱 명뿐이다.
내가 그들을 가볍게 흔들어 깨우자, 비몽사몽 한 와중에 보이는 낯선 사람의 얼굴에 아이들이 깜짝깜짝 놀라 했다.
덕분에 잠이 달아났는지, 벌떡벌떡 잘 일어나서 깨우기가 수월했다. 일은 편해졌지만, 어린아이가 경계심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아프다.
‘혹시 원장 새끼가 때렸나?’
그런 거라면 같은 성인 남성인 나를 보고 놀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나중에 조용하게 물어봐야겠다.
유일하게 놀라지 않은 아이는 웬디뿐이었다. 어제 아기를 함께 보며 어느 정도 친해진 덕분인지, 웬디는 놀라는 대신 내 품을 파고들었다.
나는 등에는 아기를 업고 웬디를 두 팔로 안아 든 채, 식당으로 향했다.
웬디는 의자에 앉혀지고 나서야 부스스 잠에서 깨어 눈을 비볐다.
“어? 꿈이 아니었네?”
내가 아기띠를 푸는 모습을 지켜보던 웬디가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앞으로 고쳐 안으며 웬디의 옆에 앉자, 웬디가 싱글벙글 웃었다.
‘나는 웬디에게 좋은 추억으로 기억에 남을까? 아니면 매정하게 떠나간 배신자로 기억에 남을까?’
새로운 만남에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이별부터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얄궂다.
식사를 끝마치기 무섭게 웬디를 제외한 10대 아이들은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또 ‘교육’을 나가는 것이리라.
“얘들아, 간식 챙겨가! 간식!”
“간식···이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우리 보육원에 간식 따위가 있던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같이 어리둥절해 하는 얼굴을 한 아이들을 이끌고, 의기양양하게 이불 보따리 안에 든 간식을 보여줬다.
“에드나 씨의 선물이야.”
“그걸 왜 아저씨가 자랑하듯이 말해요?”
“······.”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던 홍길동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내가 산 간식을 내가 샀노라 말하지 못하여, 졸지에 남이 산 간식으로 생색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저마다 손에 간식거리를 들고 에드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보육원을 나섰다.
나와는 반대의 의미로 남이 사 온 간식으로 생색내는 사람 된 에드나가 계면쩍게 웃으며, 내게 눈빛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있죠, 시온 선생님.”
“응?”
바짓자락이 잡아당겨 지는 느낌과 함께 아래에서 웬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눈이 마주친 웬디가 자세를 낮춰달라는 듯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왜에? 선생님한테 할 말 있어?”
“네, 잠깐 귀 좀 대주세요.”
쭈그려 앉아서 질문했더니,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려는지 이제는 귀까지 대달라 한다.
일단 웬디가 시키는 대로 손을 오므려 귓가에 댔다.
“저 과자들, 에드나 언니가 아니라 선생님이 사신 거죠?”
“···응?!”
소곤소곤 전해진 귓속말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웬디를 바라봤다.
눈앞의 작은 아이는 그런 내 표정이 웃긴다는 듯 히히 웃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에드나 언니는 선물을 사와도, 항상 옷이나 장난감처럼 오래 쓸 수 있는 걸 사오거든요. 또, 어제 원장 선생님이 말했잖아요. 이 간식들 비싼 거라고. 그리고 선생님네 집은 돈 많다면서요?”
“어어···.”
“먹어보니까 진짜 맛있더라고요. 예전 원장 선생님이 계셨을 때도 이렇게 맛있는 초콜릿은 먹어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초콜릿이 쫀득쫀득할 수가 있죠?”
어제 먹었던 초콜릿의 맛을 되새기며 군침을 흘리는 순수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어제 욕실에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는 걸 알면서 욕실로 안내해 준거, 혹시 일부러야?”
“에헤헤···, 그땐 에드나 언니가 머물다 갈 줄 몰라서요.”
웬디가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몸을 비비 꼬았다.
내가 간식을 사 온 걸 맞추는 것 정도야, 작은 의문만 가져도 바로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온도 조절 장치가 있는데도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것에, 자연스레 의문을 갖도록 유도하는 건 어떨까?
‘비록 세르펜스와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팔려서, 자기 전 씻을 때가 돼서야 온도 조절 장치를 발견해 버렸지만···.’
그건 예기치 못한 사고 같은 거다.
열세 살이면 내가 살던 세상 기준으로 초등학교 6학년···.
‘아니지? 여기는 0살부터 나이를 세니까 중학교 1학년인가?
그 정도면 깊은 사고가 가능한 나이지만, 구상을 떠올리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재치는 타고난 것이다.
어째서 이런 아이에게 원장 놈은 멍청하다는 개소리를 지껄인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웬디야···, 너 설마 천재니?”
“아, 아니에요! 저는 체력도 약하고 손재주 같은 것도 없고, 에드나 언니처럼 마법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음, 그리고 또···.”
진심에서 우러나온 내 감상에 웬디가 손사래를 치며 울적하게 중얼거린다.
가스라이팅 피해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원장 새···,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억누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질문했다.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한다고 했음에도. 소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웬디는 갑자기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며 ‘네.’하고 대답했다.
“앞으로 그 새···가 그딴 말을 지껄, 아니, 지저귀면 그냥 무시해.”
“네?”
“원장 선생님이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면 그냥 한 귀로 흘리라고. 아니, 이미 마음에 담아뒀던 것도 다 털어버려! 넌 천재야! 굉장해! 똑똑해!”
“정···말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웬디가 얼떨떨하게 물었다.
“자, 자. 잘 생각해봐. 여기서 간식을 사 온 사람이 나라는 걸 눈치챈 아이는 너뿐이잖아?”
“다른 언니 오빠들은 선생님이 부자라는 건 듣지 못했잖아요. 여기 남은 애 중에서는 제가 나이가 가장 많으니까···.”
“그것도 원장 선생님이 한 말인 거지?”
“네···.”
대충 알겠다.
원장 새끼가 어째서 웬디만 이곳에 남겨뒀는지.
‘질투한 거구나?’
에드나의 말에 따르면 그놈은 취업을 못 해서, 이전의 원장 선생님이 이곳에 취직시켜 줬다고 했다.
인성이 문제였다고는 하지만, 성격이 거지 같아서 취업길 막힌 놈치고 자기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반성하는 놈은 못 봤다.
‘게다가 원장 놈은 에드나와 동기랬잖아?’
비슷한 나잇대에 비슷한 시기에 보육원에 들어왔는데, 에드나는 뛰어난 마법 재능을 인정받아 훌륭한 마법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의 원장 선생님은 에드나의 재능을 밀어주기 위해 이리저리 발로 뛰어다녔다.
그에 반해 원장 놈은 변변찮은 직장도 못 구해서, 그대로 보육원에 남겨졌다.
‘설마 그래서 지금 아이들에게 분풀이하는 거야?!’
이곳에 남겨져 아기를 돌보는 웬디와 교육 나간 아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짓밟혀 시들어 간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교육이라는 핑계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건, 과연 로시오 상단이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수단일까?
그게 아니라면.
‘아이들의 재능을 발밑에 두고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넘어간 원장 놈의 선택이려나···?’
[성검의 주인]에서 보육원 원장의 협조 아래, 아이들이 악마 소환의 제물로 바쳐지고 에드나가 그릇이 되었다는 내용을 읽었을 때.나는 그저 악숭 세력에서 단단히 한자리를 꿰차려 했다든가, 아니면 악마의 힘을 빌려 무언가 이루고 싶었던 게 있다든가.
어쨌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그렇게 추측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놈이 진정으로 바랐던 건 에드나의 몰락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재능이 오히려 독이 되어, 악마의 먹잇감이 되는 걸 보며 즐거워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