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7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80화(280/1105)
280회
51. 공작님과 잠입 작전 (11)
에드나가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한 뒤. 나와 시온만 덩그러니 놀이방에 남았다.
전쟁이라도 벌어진 양, 고함과 울음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에 싸늘한 적막이 가라앉았다.
“···제가, 잘못 한 거예요.”
여린 소년의 목소리가 정적의 틈새를 비집고 가느다랗게 울렸다.
나는 시온의 좁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자.”
어쩌다 그렇게 다쳐서 돌아온 것인지 묻고 싶었으나, 조금만 더 미루기로 했다.
놀이방 한 편에 비치된 구급상자를 가지고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흙먼지를 닦아내고,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 연고를 싹싹 긁어모아 다친 소년의 상처 부위에 얹었다.
따가웠을 텐데도 시온은 작게 움찔거리기만 했을 뿐, 새어 나오는 신음을 억눌러 참았다.
‘어휴, 차라리 울고 떼쓰는 게 낫지.’
어린아이가 아픔을 참는 모습은 그보다 더 안타깝다.
‘세르펜스가 치료해주면 바로 낫겠지만···.’
그래서 더 문제다.
이런 상처가 하루아침에 나아버리면 모두에게 의심을 살 테다. 같은 이유로 세르펜스도 치료해주길 거부하겠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으면 비싼 약들을 잔뜩 사놓는 건데.
신성력을 남발하는 세르펜스와 함께 다니다 보니, 상처약 챙길 생각을 미처 못 했다.
“뭐 따뜻한 거라도 마실래?”
“···괜찮아요.”
“핫초코 좋아해?”
“···됐어요.”
“혼자 마시기 눈치 보여서 그래.”
“······.”
방에 있는 벽난로는 매립형이 아닌 노출형이라서, 물을 끓이려면 그냥 난로 위에 주전자를 올려두기만 하면 됐다.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주전자에 물을 붓고, 그것을 벽난로 위에 올려놓는.
그 일련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던 소년 시온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저씨, 진짜 돈 많아요?”
“응?”
몹시 뜬금없는 질문이다.
당황해하며 바라본 소년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해서, 대답을 피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 몸의 주인인 ‘시온 리벨론’은 백작가의 차남이다.
별 볼 일 없는 가문이라 한들, 귀족은 귀족. 평민에 비하면 충분히 부유하다.
시온이 살면서 한 고생이라고는 수도에 올라와 혼자서 자취하며, 구직하러 돌아다닌 게 전부겠지.
그리고 ‘나’ 또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중산층 수준은 된다.
학자금 대출도 없고, 용돈도 부모님께 타서 썼다.
용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누나에게 가서 애교를 부렸다. 그러면 누나가 눈 썩는다며, 내 안면에 지폐 몇 장을 내던져 줬다.
그 덕분에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으니.
‘···나도 진짜 고생을 안 하고 살았구나?’
이 세계에 와서 세르펜스의 보좌관이 된 이후에는 그 이상으로 풍족함을 누렸다.
좋은 것만 입고, 좋은 것만 먹었다.
소년의 질문에 아니라고 부정해봤자 기만이 될 뿐이다.
그렇다고 긍정한다면,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런···, 편이지?”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맥아리 없는 어중간한 대답이었다.
“그럼 우리 보육원도 살 수 있어요?”
“그, 글쎄···?”
어차피 내가 쓰는 돈은 대부분 경비로 처리돼서, 리벨론 가에 보내는 돈을 제외하면 월급에는 거의 손도 안 댔다.
돈은 충분하다.
만약 부족하더라도 세르펜스에게 빌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보육원은 돈만 주면 바로 받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냥 건물을 사도 국가에 신고해야 하는데, 그게 무려 보육 시설이다. 서류 심사부터 여러 애로 사항이 꽃핀다.
“그 정도는 아니구나?”
“으응···.”
“아저씨 이름도 시온이랬죠?”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는 내게 관심 하나 안 줬으면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것저것 물어오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우리 보육원 뒤쪽에 있는 빵집 주인아저씨 이름도 시온인 거?”
“응, 들었어.”
“나는요, 그 아저씨가 항상 부러웠어요. 그 아저씨는 항상 부드럽고 맛있는 빵을 실컷 먹을 텐데. 내 손에는 거칠고 딱딱한 빵이 들려있었지요. 같은 시온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이름 말고는 같은 게 하나도 없어서···.”
삐이-, 주전자가 눈치 없게 울었다.
시온은 기다려주겠다는 듯,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핫초코 두 잔을 타서, 그중 한 잔을 소년에게 내밀었다.
“마시멜로도 있는데···.”
“······?”
하나 넣어줄까 묻는 거였는데, ‘있는데 뭐 어쩌란 거지? 자랑하는 건가?’라는 눈빛이 돌아왔다.
나는 그의 머그컵에 마시멜로를 하나 집어넣었다.
“···다네요.”
마시멜로가 녹아든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신 소년 시온이 짧은 감상을 말했다.
“사실, 저도 알고 있었어요. 가죽 공방에서 곁꾼 노릇이나 하면서, 보육원을 산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그런데도, 그렇게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웬디도 그렇고, 이곳의 아이들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갔다.
그것도 온전한 어른이 아니라, 불안정한 어른이.
“저는 원장 선생님께서 하신 말들이 무슨 뜻인지, 어느 정도 이해해요.”
아마도 원장 또한 불안정하고, 그래서 비뚤어져 버린 어른 중 하나겠지.
나는 그가 싫고, 끔찍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를 동정한다.
원장 놈의 외침은 에드나의 정신을 몰아가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그 안에는 분명 진심도 담겨 있었으니까.
‘동정한다고, 용서할 생각은 없지만···.’
악숭 세력의 계획을 돕는 놈에게 공감하는 건 위험하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무엇보다, 애초에 내가 용서하고 자시고 할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저기, 안 물어봐요?”
“뭘?”
“아까 제가 잘못한 거라고 말했잖아요.”
“어른들이 싸울 때 아이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자기 잘못이라 말하는 건, 태반이 어른들 잘못이더라.”
“저 아이 아니에요.”
아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소년 시온이 볼멘소리로 반박했다.
이 와중에 ‘아이’라는 말에 불만을 품는 것만 봐도, 그는 아이가 맞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다.
“20대 청년을 아저씨라 부를 정도면 어린애 맞지, 뭘.”
“그걸 담아두고 계셨어요?”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여 보이자, 소년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쨌든 아저···, 선생님 말씀은 틀렸어요. 저는 아이가 아니고, 제 잘못에 책임져야 해요.”
시온이 나를 부르는 호칭을 바꿨다. 어지간히도 어른 대우를 받고 싶었나 보다.
어차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는 별것 아닌 일로 소년과 실랑이를 하는 대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오늘 공방에 한 손님이 맡긴 가죽을 찾으러 오셨어요. 급하게 쓸 일이 생겼다는데, 아직 무두질이 안 끝난 상태라···. 그런데 하필 스승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신 바람에, 공방엔 저밖에 없었어요.”
얘기가 다소 두서없이 시작됐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자 맞았을 때 느꼈던 고통도 함께 되살아났는지, 어느 정도 진정된 모습을 보였던 소년이 불안하게 머그잔을 만지작거렸다.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길래, 이제 가죽을 늘리고 훈연하는 일만 남았다니까, 그 정도는 제가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니까 내일 와 주시면 안 되겠냐고 했는데, 정말 급한 일이라 한 시간이라도 빨리 가져가야 한댔어요. 그리고 제가 조금이라도 해 두면 일이 일찍 끝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응, 그래서?”
“듣다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욕심이 났어요. 언제까지고 허드렛일만 할 순 없잖아요? 기회라고 생각했죠. 보기에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거든요···.”
우울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모습을 보니, 대충 어찌 된 영문인지 알겠다.
보기에는 쉬워 보일지 몰라도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어깨너머로 훔쳐본 실력으로,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근데, 그게 엄청나게 비싼 가죽이라···, 흐끅···! 가죽이 망가지는 바람에 무슨 계약이 취소됐다고···, 그것까지 보상해 내라는데···.”
시온은 자신의 잘못이라 말했지만, 분명 억울한 마음이 있었을 거다.
마지막 선택은 시온이 한 게 맞았으나, 거절하는 아이를 한사코 밀어붙인 건 손님이다.
스승이 제대로 기술을 가르쳐줬더라면 자신이 실수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리고 손님은 왜 하필 자신이 혼자 있을 때 찾아왔는지 등등.
수도 없이 원망했을 거다.
‘아니긴 뭘 아니야? 어른 잘못 맞잖아.’
착잡함이 마음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그런데 스승님이 제멋대로 하는 조수는 필요 없다면서, 다시는 공방에 나오지 말래요.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주변에 다 알릴 거라고···. 소문나면 어디서 일도 구하지 못할 텐데···. 저 이제 어떡하죠?”
“어린애는 돈 문제 가지고 걱정하는 거 아니야.”
“저 어린애 아니라니까요?”
“그래, 그래. 어쨌든 선생님이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진정해.”
“돈··· 빌려주실 거예요? 못 갚을 수도 있는데?”
당연히 빌려달라는 소리가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누가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경제관념 하나는 제대로 박혀있다.
“보육원은 못 사도, 그 정도 돈은 있어.”
“얼만지도 모르면서?”
“너도 내가 얼마 있는지 모르잖아?”
“······.”
똑같이 되돌려 줬을 뿐인데, 시온은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조개처럼 꾹 닫아버렸다.
“아무튼···. 공방에 못 나가는데, 돈은 어떻게 받을 거래?”
“내일 손님이 보육원에 찾아온댔어요.”
“그래, 알았어. 돈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방에 돌아가서···. 아니, 아니다. 에드나 씨에게 가서 저녁 달라고 해.”
“별로 배 안 고파요.”
큰일 날 소리다.
밥은 힘내려고 먹는 거지,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먹어야 하는 거야. 속이 든든해야 힘이 나고, 머리도 돌아가지. 속이 허하면 해결될 일도 안 돼요!”
“···선생님은요?”
“응?”
“식사 안 하세요?”
“먼저 하고 있어. 선생님은 잠깐···, 야옹이 좀 보러?”
어젯밤 세르펜스가 한 얘기 때문인지, 어딘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오늘 일어난 일들이 과연 우연일 뿐일까?’
녀석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어느 정도 확실시된 게 있어야 에드나에게 설명이라도 할 수 있지. 나 혼자 내린 추측을 위로랍시고 건네기엔, 그녀는 너무 지쳐있다.
“고양이요? 길고양이? 이 주변에서 그런 거 못 봤는데?”
“눈처럼 새하얀 고양이라, 눈밭에 파묻혀 못 본 거겠지. 내가 어제 밥도 줬는걸?”
“헤···, 예쁘겠다.”
“당연하지! 누구 새낀데.”
“적어도 선생님 새끼는 아닐 것 같은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는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이다.
세르펜스를 보여줘서 소년의 깨우침을 돕고 싶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낯가림이 심해서 아직은 소개해 줄 수는 없지만, 나중에 꼭 보여줄게.”
“그렇게까지 보고 싶은 건 아닌데···.”
“내가 자랑하고 싶어서 그래.”
“······.”
떠나기 전에 애들 건강 검진이라도 한 번 해주고 가야겠다.
내게 그럴 능력은 없지만, 세르펜스에게 그럴 능력이 있으니 상관없다.
일루미나티 창립 신화에 따르면 수장과 그의 보좌관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라 하였다.
즉, 녀석의 능력이 곧 내 능력이나 다름없다.
정 안 되면 효도권을 써도 되고.
“아 참! 그때까지 고양이 얘기는 다른 애들한테 비밀이다? 겁이 많은 녀석이라, 도망쳐버릴지도 모르거든.”
“선생님은 어제 왔는데,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아요?”
“그냥 눈빛만 봐도 통해.”
“······.”
어째 안 믿는 눈치다.
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