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8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81화(281/1105)
281회
51. 공작님과 잠입 작전 (12)
소년 시온이 방에서 나간 후.
나는 창문을 열고 세 발짝 뒤로 물러났다.
“나를 고양이라 소개하고 다니면서, 고양이 취급하는 게 아니라고?”
언제부터 듣고 있던 건지, 세르펜스가 고양이처럼 사뿐하게 착지하며 불퉁하게 말했다.
‘야옹아, 맘마 먹자.’라는 말을 듣고, 맘마를 가져간 녀석이 불만도 많다.
“그냥 코드 네임입니다. 첩보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죠.”
“···헛소리하는 걸 보니, 기운을 차렸나 보군.”
녀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장 놈이 제멋대로 떠들어 댔을 때부터,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감시 당한다는 불쾌함보다 설명하기 편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면, 내가 이 녀석에게 많이 익숙해지긴 했나 보다.
“정신이 건강하니까, 회복이 빠른 겁니다. 아도르도 절 본받으세요.”
세르펜스는 내 말을 무시하며 창문을 걸어 잠갔다.
“그래서 아도르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잖아도 관련된 문제로 밤에 찾아올 생각이었는데, 지금 말하면 되겠군.”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도, 녀석은 다 알아들었다는 듯 평이하게 대답했다.
심지어 짚이는 구석도 있는 모양이다.
매우 궁금했지만, 녀석의 말을 들어보기 전에 나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생겼다.
“설마 지금 얘기하러 왔으니까, 밤에 안 와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또 대화가 옆으로 새는군.”
“아도르가 자꾸 대답을 회피하니까, 대화가 늘어지는 거잖아요? 자러 안 올 겁니까?”
“그래, 그래. 알았다. 오늘 밤엔 꼭 자러 오겠다.”
한 번만 붙이면 되는 ‘그래’를 왜 두 번씩이나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안 이랬는데. 저런 뺀질거리는 말투는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인지 모르겠다.
대답에 성의가 없었지만, 녀석 성격에 말한 이상 지키겠지.
“좋아요. 그럼 이제 말 하셔도 됩니다.”
“···어째서 내가 사정하는 꼴이 된 거지?”
“아, 빨리 얘기나 해요. 그래야 저도 밥 먹고, 야옹이 밥도 주고, 에드나 씨랑 얘기도 하고 하죠.”
“누가 들으면 나 말고도 따로 챙겨야 할 고양이가 있는 줄 알겠군.”
“없어요, 없···.”
무심코 손사래를 치며 대답하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내가 갑자기 말을 하다 말자, 세르펜스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멀뚱멀뚱 눈을 깜박거리는 녀석의 모습 그 어디에서도 문제의식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보는 거지?”
“어, 음···. 미안해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앞으론 조심할게요.”
“뭐가 말이지?”
“아뇨, 그냥···. 모르면 됐어요. 네, 그럼 된 거죠.”
앞으로는 세르펜스의 자아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라도, 녀석의 면전에 대고 고양이 취급하는 건 그만둬야겠다.
“아무튼 하려던 얘기나 빨리해 보세요.”
“으음···, 그래.”
녀석은 여전히 찜찜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내 계속된 재촉에 마지못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은 로시오 상단 측과 전서구를 이용해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전서구요? 그, 편지 배달하는 비둘기?”
“그래.”
내 질문에 세르펜스가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뭐가 미안한지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고, 멋대로 화제를 돌려 버린 내 행동 때문에 삐진 거다.
‘냅두면 괜찮아지겠지.’
그보다, 원장 놈이 온종일 원장실에 처박혀서 대체 뭘 하나 했더니. 전서구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펜팔 상대가 로시오 상단 측 사람이란 건 어떻게 아셨대?”
“펜팔이라는 단어는 좀···. 아니, 그 문제는 됐다.”
“지가 말해놓고 지가 됐대.”
“오전 중에 비둘기 한 마리가 원장실로 날아들었고, 원장은 베네볼렌 씨가 한동안 보육원에 머물게 됐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비둘기 다리에 묶었다.”
내 중얼거림에도 세르펜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꺼냈다. 녀석 나름의 소심한 복수다.
설명은 생략됐지만, 세르펜스가 중간에서 비둘기를 가로채서 편지를 훔쳐 읽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요?”
“점심때쯤, ‘계획을 앞당길 테니, 준비하라.’라고 쓰인 답장이 도착했다.”
“그 계획이란 건···.”
세르펜스는 길게 말하는 대신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답은 충분했다.
‘어쩐지 원장 놈이 말을 막힘 없이 해대더라니···.’
예전부터 준비해왔던 게 틀림없다.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혀를 굳게 한다.
긴 시간 울분을 쌓아오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터져버린 거라면.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서. 적어도 한 번쯤은 말을 더듬었어야 했다.
하지만 원장 놈은 이날 이때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미리 준비라도 한 양. 마치 머릿속으로 같은 상황을 몇 번이고 그려온 사람처럼.
에드나를 자극하는 말만 쏙쏙 골라와서 청산유수처럼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리고 내일. 그 손님이 보육원에 들이닥쳐, 가죽 값을 내놓으라며 깽판을 부리고 아이들에게 해코지라도 한다면. 그리고 그 모습을 에드나가 보게 된다면···.’
사람이 밉고, 세상이 원망스러워질 테다.
이 계획의 가장 악랄한 점은 악숭이가 조작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는 거다.
내가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의심을 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나에게 닥쳐온 고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에드나였다면···.’
괴로워하는 아이들의 현재와 고통밖에 남지 않을 아이들의 미래를 외면하지 못하고, 완벽하게 휘둘렸을 거다.
그러다 뒤늦게 악숭이 놈들에게 당했다는 걸 깨달아도.
상황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틀어졌고, 이미 손은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졌기에.
어차피 닥쳐 왔을 미래가 앞당겨졌을 뿐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그렇게 타락해버리지 않았을까?
“그···, 크흠. 그다음은요?”
암울한 생각에 목이 잠겨서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야 제대로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 나를 보며 세르펜스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녀석은 내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로 입술을 몇 번 뗐다 붙였다 하며 망설였다.
“후우···.”
몇 번이나 오물거리던 녀석의 입술은, 결국 구체성을 갖추지 못한 투명한 숨결만을 토해냈다.
“원장은 비둘기를 돌려보낸 후, 편지를 벽난로에 태웠다.”
마음을 다잡았는지, 세르펜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 질문에 대답했다.
“그게 끝이에요? 원장이 쓴 답장은 없어요?”
“주고받은 편지는 그 두 장이 전부다.”
“그 편지 내용 그 어디에 로시오 상단 얘기가 나온 거죠? 보낸 이와 받는 이를 착실하게 적어뒀을 것 같지는 않은데?”
내 질문 세례를 받은 녀석이 침착하게 품에서 작은 종이쪽지를 꺼냈다.
그것을 받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한 귀퉁이에 작은 귤···. 정확히는 유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 쪽지의 출처는 유지스가 분명하다.
‘다섯 알의 유자가 한 줄로 늘어선 모양이 무척이나 아기자기하고 귀엽긴 한데···.’
유자 하나만 유독 커다란 건 저번과 마찬가지였으나, 저번보다 하나가 더 늘었다.
저번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게 아니라, 줄지어 있어서 유자의 개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겠다.
보통 다섯 개 중 하나를 크게 그리려면 맨 앞이나 중앙에 그리기 마련인데, 유지스가 그린 유자 그림은 네 번째 유자가 커다랬다.
‘···이게 윈스톤이구나?’
그렇다.
유자의 개수는 일루미나티 멤버의 수를 의미했다.
“답장이 왔을 때, 함께 묶여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쪽지를 펼치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자, 세르펜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전서구를 중간에서 가로챈 유지스가 전서구 다리에 묶인 편지를 읽고, 보육원에서 보내졌다는 걸 알아채서.
마찬가지로 세르펜스가 중간에서 전서구를 가로챌 걸 예상하여, 남의 전서구를 통해 자신의 소식을 전했다는 뜻이다.
“···혹시 아도르도 답장 보냈어요?”
세르펜스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과감한 사람들을 보았나.
“아도르는 뭐 그렸어요? 고양이 다섯 마리?”
“···어차피 펼쳐 볼 텐데, 굳이 겉에 표시할 필요는 없잖은가. 그보다 무슨 내용을 썼는지를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우문현답이다.
일단 나는 세르펜스의 답장 내용을 묻기 전에 유지스의 쪽지를 먼저 읽기로 했다.
쪽지를 펼치자, 유자알처럼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 ‘배지’의 변색 확인. ‘그들’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장소 발견. 다음 지령은? ]저번에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용건만 짤막하게 적혀있었다.
‘배지’라 함은 룩스메아 교단에서 준 흑마력 감지 기능이 달린 기념 배지를 말하는 걸 테고, ‘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악숭이를 말하는 걸 테다.
흑마력이 발견됐고, 상단 어딘가에 악숭이가 숨어있는 것 같다는 말을 참 있어 보이게도 적어놨다.
아무래도 유지스는 첩보물 놀이에 흠뻑 빠졌나 보다.
“아도르는 뭐라고 답장했어요?”
“편지에 나온 ‘계획’이 무엇인지 확실시되기 전이라서, 일단 그 주변에서 계속 대기하라 했다. 다음에 전서구가 온다면, 가죽 공방의 공방주와 손님에 관한 조사를 맡길 예정이다.”
전서구를 보내는 게 유지스인지, 로시오 상단의 누군가인지. 분간이 안 되는 발언이다.
“주기적으로 연락할 방법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뇨, 없는데···. 잘 된 일인데···.”
남의 전서구를 잡아다가 편지를 몰래 읽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편지까지 배달시키다니.
보통 이런 발상을 떠올리나?
“아무튼, 그건 이제 됐고. 에드나 씨에게 편지에 대해 말해도 되죠?”
“으음···, 그래.”
“대답이 영 시원치 않네요.”
“거리낄 것이 없어져서, 바로 상단에 쳐들어가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니까.”
세르펜스가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죠? 흑마력도 감지됐다는데, 그냥 쳐들어가도 되는 거 아닙니까?”
“쉿···. 그런 건 목소리를 낮춰서 말해라. 밖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쩔 생각이지?”
주변의 기척은 본인이 다 감지하고 있으면서, 참 걱정도 팔자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전부 귓속말로 하든가.
“상단을 테러하도록 유도하면서, 상단 내부에 악마 숭배자들이 있다는 건 이상하잖은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세르펜스가 바로 귓속말로 자신의 의견을 전해왔다.
듣고 보니 확실히 이상하다.
“미끼라고 생각하세요?”
“그녀는 배지가 변색 되었고, 그들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견했다고 했을 뿐. ‘그들’을 발견했다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세르펜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녀석은 분명히 완전한 문장을 말했는데, 말하다 만 것처럼 설명이 부족하다.
다시 한 번 자세하게 질문한 뒤, 자신의 영민함을 칭찬해달라는 건가?
“그래서요?”
“아마 그 장소에 ‘사람’은 없을 거다. 외부에서 공격을 당했을 때, 흑마법에 당한 것처럼 위장하는 장치가 준비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일단 그 얘기도 전달할게요.”
내 대답을 들은 세르펜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을 마친 그는 다시 창문으로 나갈 생각인지, 찰칵거리며 걸쇠를 풀었다.
나는 창문이 열리기 전에 재빨리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유, 우리 아도르. 똑똑하기도 하지!”
“···뭐 하는 거지?”
“방금 칭찬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 했···지만, 나쁘진 않군.”
항상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 같아서 내가 오해한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결과적으로 녀석이 만족했으니, 만사 오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