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8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83화(283/1105)
283회
51. 공작님과 잠입 작전 (14)
엘로윈 보육원 생활 3일차 아침이 밝았다.
어제저녁 한바탕 울어 젖힌 탓에, 식탁 앞에 둘러앉은 아이들과 에드나의 눈이 팅팅 부어 있었다.
정작 이런 사달을 만든 빌어 처먹을 원장 놈은 꿀잠이라도 자는 건지 일어나지도 않았다.
‘아침부터 싫은 놈 얼굴 안 봐도 되는 것 하나는 좋네!’
남의 속을 죄 뒤집어놓고 맘 편히 늦잠을 즐기고 있는 꼬락서니가 아주 괘씸했으나, 불편한 사람과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은 마음에 들었다.
지금 기분으로 원장 놈과 겸상했다간 체할 게 분명하다.
식사는 침묵 속에서 진행되었다.
수프에 푹 담가 흐물텅해진 싸구려 빵을 꼭꼭 씹으며 속으로는 원장 놈을 씹고 있는데, 놀이방 쪽에서 이상한 소음이 났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귀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니 사람 말소리였다.
원장 놈이 일어나서 혼자 씨부렁대는 건가 싶어 그냥 모르는 척할 생각이었으나, 무시하려 해도 드문드문 들려오는 목소리가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제가 나가 볼게요.”
에드나도 말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반사적으로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녀의 앞에 놓인 반 이상 남은 빵과 멀건 수프도 시야에 들어왔다.
어젯밤 한참 눈물을 쏟은 사람이 먹는 것까지 부실해서야. 오늘 하루를 버틸 기력이 부족해질 것이다.
“제가 보고 올 테니, 에드나 씨는 식사나 마저 하세요.”
나는 에드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하며, 거의 다 먹어가던 빵을 한입에 욱여넣고 수프까지 후루룩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렇다고 이미 먹은 걸 토할 수는 없잖아요. 됐으니까 그냥 앉아요.”
“어차피 입맛도 없어서 그만 먹을 생각이었어요.”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에드나 씨가 그러면 애들이 보고 따라 합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당장만 해도 먹을 기분이 아님에도 자리에 앉혀진 아이가 한둘이 아니다.
아이들은 식사를 멈추고 나와 에드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나가 식당 밖으로 나가면 따라서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겠지.’
애들이 기분 안 내킨다고 밥을 안 먹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아침 먹을 기분이 아니어서 아침을 거르게 되면 점심이 되기 전에 배가 고파지고, 그럼 군것질거리를 찾게 된다.
그러고 나면?
입안에 군것질거리 특유의 달달한 여운이 남아있는데, 밋밋한 점심 같은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점심을 거르면 또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배가 고파져 간식을 왕창 먹게 된다.
그러면 배가 차니까 저녁을 거르고, 배가 고프니까 야식을 먹게 되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속이 더부룩해져서 또다시 식사를 건너뛰게 된다.
먹을 간식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한 끼 식사를 건너뛰면 배가 고파서 다음 식사 때 과식을 하게 된다.
과식은 소화 불량을 일으키고, 배가 아파 다음 식사를 건너뛰고, 그러면 또 배가 고파서 과식하게 되고.
명백한 악순환.
다 큰 성인이야 자기 건강 자기가 챙기며 알아서 조절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다르다.
한창 자라야 할 시기에 기분 내키는 대로 먹고 안 먹고를 반복하다 보면 성장에 지장이 생긴다.
‘그래선 절대 안 되지!’
에드나도 대충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는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식사를 재개했다.
식사할 기분이 아니라더니 깨작거리긴 했으나 어쨌건 먹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한 후 놀이방으로 향했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어떤 개보다 못한 자식이 아침부터 찾아왔는지, 그 상판대기나 봐야겠다.
걸음을 옮길수록 웅성거리듯 들려왔던 목소리가 점차 뚜렷해졌다.
“······.”
“··· 부술까요?”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부수자는 말로 들렸다.
대체 뭘 부수자는 건지 그것까진 듣지 못했으나, 뭐가 됐건 부서져서 좋을 건 없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잠깐, 잠깐!!”
서둘러 놀이방에 뛰어들어가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 명의 사내는 아이들이 뒹굴고 노는 매트 위에 구둣발로 서 있었다.
심지어는 현관 발매트에서 신발에 묻은 눈도 털지 않고 그냥 들어온 모양이다. 검고 질척거리는 눈 녹은 물이 발자국 모양으로 여기저기 찍혔다.
“이제야 나왔···, 넌 누구지?”
신발도 안 털고 멋대로 침입한 것부터 예의라고는 눈 씻고 쳐다봐도 찾을 수 없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초면부터 반말질이다.
‘자기가 찾아와 놓고, 누구냐고 묻는 건 또 뭐람?’
마치 누가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러고 보면 세르펜스가 원장 놈이 보낸 편지 내용을 얘기할 때, 나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아마도 그다지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한 원장 놈이 그냥 빼먹은 모양이다.
“전 며칠 전부터 여기서 일하게 된 보육 교사인데요. 그러는 댁이야말로 누구세요?”
“그 꼬맹이한테서 아무 말도 못 들었나 봐?”
내 소개를 듣고 나자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지, 모피 코트를 걸친 사내가 껄렁하게 말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냥 모직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덩치가 상당한 거로 보아 모피 코트 사내의 호위쯤으로 보인다.
“그 꼬맹이라면···, 그···!”
소년 시온에게 가죽 손질을 떠넘겨 놓고, 손해를 배상하라며 난동을 부렸다던 그 손님인가 보다.
일부러 다쳐서 돈을 뜯어내는 사기 행위는 자해 공갈이라 부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일부러 물질적 손해를 만든 후 돈을 뜯어내는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우리 애 때린 게 그쪽입니까?”
“때려? 내가? 난 그렇게 야만적인 사람 아니야~.”
모피 코트 사내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놈의 손가락에 끼워진 큼지막한 반지들이 너클처럼 흉흉하게 빛났다.
원 펀치에 쓰리 강냉이는 족히 털어버릴 것 같다.
‘퍽이나 안 야만적으로 보이네.’
아니면 옆에 선 덩치들이 야만적인 일을 대신 해 줘서, 본인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방금 부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요?”
“그건 내 충실한 피고용자들이 한 얘기고.”
후자의 예상이 맞았다.
아무튼 그 손님···. 아니, 손놈이 맞긴 한 모양이다.
에드나가 아니라 내가 나오길 천만다행이다. 식사를 끝낸 아이들이 나오기 전에 대충 돈을 쥐여주고 빨리 내쫓아 버려야겠다.
“그래서 얼맙니까?”
“3500만 아스.”
“···네?!”
뭔 말 같잖은 금액을 들은 것 같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귀를 후비고 다시 질문했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3500만 아스라고.”
“고작 가죽 쪼가리 하나에?! 님 도르신?”
내가 제국 황실로부터 받는 한 달 품위 유지비가 300만 아스다. 3500만이면 그 열 배 이상이다.
아무리 계약 해지로 인한 위약금이 붙었다 한들, 비싸도 너무 비싸다.
“그래···. 너 같이 없는 놈들이 대체 뭘 알겠어?”
모피 코트남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할 거면 더 비싸 보이는 코트를 입고 오든가.’
윤기가 흐르는 게 그럭저럭 고급스러워 보였으나, 내 아공간 주머니 안에 든 코트에 비할 데가 아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위해, 세르펜스가 사준 코트들은 윤기 정도가 아니라 부티와 귀티가 좔좔 흘렀다.
“가죽 가격이 700만, 팔기로 계약됐던 옷이 2300만. 그리고 위약금이 500만 아스다, 이 말이야.”
입이 떡 벌어졌다.
‘대체 무슨 가죽이었길래 가죽 가격이 그따위로 비싸지? 그리고 무슨 옷이 2000만 아스가 넘어?!’
수도의 유명 의상숍도 아니고, 작은 영지의 옷 가게에서 이런 가격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내 돈 주고 옷을 사 본 적이 없어서 몰랐을 뿐. 여기는 원래 옷이 비싼가 보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도 그러할 게, 이 세상에는 재봉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장인 정신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여 만드는 것이니만큼, 비쌀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같이 가난한 서민은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금액이라, 놀라서 말이 안 나오나 봐?”
놈의 기대와 달리, 딱히 그렇지만은 않다.
내 아공간 주머니 안에 있는 마법 스크롤 가격만 다 합쳐도 억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게 아니더라도 암흑가의 전당포에서 쓸어 담은 재화들이나 라드라바의 유산 등을 떠올려 보면, ‘3500만 아스쯤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침착함을 되찾고 나자, 놈의 말에서 위화감 같은 게 느껴졌다.
“잠깐만요. 뭔가 계산이 이상한데요?”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정말 이상함을 못 느꼈다고요? 그쪽 뭐 옷을 파네 어쩌고 했던 거 보면 가게를 하는 것 같은데, 그딴 금전 감각으로 괜찮으시겠어요?”
“뭐, 뭐?!”
그냥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모피 코트남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아니, 잘 생각해봐요. 가죽 가격이 700만, 옷 가격이 2300만이랬죠? 근데 옷 가격에 소재인 가죽 가격은 당연히 포함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중복되는 700만 아스는 한 번 빼는 게 맞죠.”
“······!”
모피 코트남···. 줄여서 모남이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저 반응은 알면서 그딴 계산을 했다는 뜻이었다.
지레 찔려 하는 모습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일부러 그러신 거라면 엄연한 사기 행각이고, 모르고 그러신 거라면···. 멍청한 게 죄는 아니니, 이번 한 번은 용서해 드리죠.”
내가 코웃음 치며 말하자 모남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뿐만이 아니라 1600만 아스의 일부는 기타 부자재의 가격인데, 그래서. 그 부자재를 썼습니까? 아직 안 썼죠? 부자재가 식재료처럼 가만 놔두면 썩기라도 한대요? 그것도 아니죠? 그러니까 그 가격도 제외해야죠.”
“하지만 앞으로 그 재료들을 쓸지 안 쓸지도 모르고···.”
“그럼 그 부자재들 가져오세요. 그래야 값을 치르죠. 어디서 은근슬쩍 돈을 삥땅 칠 생각입니까?”
나는 모남이가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놈의 말을 가로챘다.
“그리고 남은 금액은 옷 만드는 장인의 노동력과 시간에 따른 비용인데···. 안 만들었으니, 상관없잖아요.”
“원래 옷을 만들기로 한 시간 동안 주문을 못 받았으니, 그에 대한 비용은···.”
“그럼 그걸 청구하셨어야죠, 만들지도 않은 옷 가격이 아니라.”
아주 웃기는 짬뽕이다.
“그래서 그 기간은 얼마나 되는 데요?”
“하, 한 달···.”
“에이, 구라까지 말고요. 엄청 짧으니까, 전문 장인도 아닌 어린 소년에게 700만 아스나 되는 가죽을 맡긴 거 아닙니까? 한 시간이라도 당겨야 한다면서. 한 달이면 하루에 2분씩만 안 자도 한 시간 채우겠네!”
“······.”
이번에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지, 모남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알록달록 물들였다.
“가죽 가격 700만에 위약금 500만. 더하면 1200만이지만, 대충 시간 낭비한 금액 생각해서 1500만 정도로 합의 보죠?”
“그럴 돈은 있고···?”
모남이가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돈이 없다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사정사정할 줄 알았던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당황한 모양이다.
“그 전에, 그쪽이 시온에게 줘야 할 보상금부터 책정하죠.”
“···뭐?! 손해를 본 건 난데 왜 내가 그놈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거지?”
“네에?! 사람을 패고 직장에서 잘리게 했으면서, 그냥 넘어가실 생각이었어요?!”
원래는 돈만 쥐여주고 빨리 쫓아낼 생각이었으나, 너무 괘씸해서 마음이 바뀌었다.
‘값을 후려칠 거면 적당히 후려쳤어야지.’
애초에 그런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아이들과 에드나 때문이었다.
그들이 보기 전에 몰래 돈을 건넬 생각이었는데 이미 늦어버렸다.
모남이의 계산 오류를 지적하는 동안, 다들 식사를 마치고 식당과 놀이방을 잇는 복도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슬쩍 돌아보니 에드나의 결연한 얼굴과 소년 시온의 초조한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