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8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84화(284/1105)
284회
51. 공작님과 잠입 작전 (15)
“난 또 뭐라고···. 그게 왜 내 잘못이지?”
모남이가 뻔뻔하게 자신의 잘못을 부인했다.
“듣자 하니 스승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도, 그쪽이 괜찮으니 시온이더러 가죽 손질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면서요?”
내가 이래 봬도 신성 제국 공작의 보좌관 생활 3년 차다.
자고로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공작 보좌관 생활 3년이면 어디 가서 사기는 안 당한다.
지금이라면 솔레르티아와 부딪혔을 때, 쌍방과실을 구실 삼아 배상금을 반절로 줄일 자신도 있다.
당시에는 그녀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에 당황하고, 값비싼 스크롤 가격에 정신이 혼미해서 그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세르펜스라면 분명 알아챘을 테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녀석은 나에게 ‘막대한 빚’이라는 목줄을 채우려고 일부러 모른 척했던 것 같다.
나와 자신의 관계에서 좀 더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그리고 내가 사직서를 내고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계략이었던 거다.
그놈의 빚 때문에 해고당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던 과거를 떠올려봤을 때, 틀림없다.
이것은 추측이 아닌 확신이다.
어차피 지난 일이고 라드라바의 유산 덕분에 전부 갚았지만, 막대한 금액의 빚이 생겼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은 언제 떠올려 봐도 아찔했다.
문득 녀석이 얄미워졌다.
다음 달 녀석의 사탕 병에 계피 사탕을 하나 섞어 넣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어쨌든! 더 이상 사회 물 안 먹어본 옛날 옛적의 어수룩한 내가 아니다, 이거야!’
나는 조마조마해 하는 시온과 마법 스태프를 꺼내 든 에드나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나만 믿고 기다리라는 의미다.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냐?”
윙크에 대한 반응은 엉뚱하게도 모남이 쪽에서 튀어나왔다.
놈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질겁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네가 무슨 짓을 하건, 더는 깎아줄 수 없어.”
“거, 말을 참 이상하게 하시네? 대체 뭘 깎았다는 겁니까? 그쪽이 잘못 계산한 걸 짚어준 것뿐인데! 그쪽도 인정했잖아요?”
“······.”
악숭이들도 참, 일을 시킬 거면 좀 머리가 돌아가는 놈에게 시킬 것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쯧쯧 혀를 찼다.
“어쨌거나···, 그놈이 끝까지 안 하겠다고 버팅겼으면 내가 어떻게 맡겼겠어? 어린애가 말이야, 간사해가지고···.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는 건 말 안 했나 보네.”
내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모남이가 말을 돌렸다.
혼자 구시렁거리며 뭐라 뭐라 지껄거리는데, 어린애가 간사하니 어쩌니 말하는 꼴이 꼰대가 따로 없다.
“그런데 그쪽은 왜 아까부터 반말질이세요? 보아하니 나잇대도 저랑 엇비슷해 보이는데.”
“멍청하긴···. 이런 가난한 고아원에서 일하는 놈하고 시내에 번듯한 가게가 있는 나하고 어디 급이 같아?”
어디 혼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다 오셨나.
신분제 사회에서 돈 가지고 급을 따지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놀랍다.
“그래 봤자 귀족도 아니면서···.”
“나는 말이지, 귀족님 옷도 만드는 사람이야!”
만들어서 뭐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다.
모남이는 귀족님 옷을 만들지만, 나는 그 옷을 입는 귀족님이다.
“돈이 없어서 말빨로 해결하려는 수작이 뻔히 보이는 걸, 넓은 아량으로 참고 들어줬더니···!”
“처음부터 그쪽이 제대로 계산해 왔으면 피차 시간 낭비도 안 했을 텐데. 그 잘난 돈으로 지능은 못 사나 봐요?”
정곡을 찔렸는지 모남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평소 혈압 관리를 제대로 못 했는지, 놈이 뒷목을 부여잡았다.
“이 자식이···!”
배경처럼 서 있던 두 명의 호위 중 한 명이 팔을 걷어붙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또 다른 한 명은 살짝 뒤로 넘어가려는 모남이를 부축했다.
양쪽에 호위를 세우는 게 멋있어 보여서 두 명을 데리고 온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역할 분담이 잘 돼 있었다.
“우리 애 때린 게 그쪽입니까? 애가 아주 만신창이가 돼서 왔던데. 교단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치료비가 얼마나 나올지···.”
“이거 이제 보니 완전 자해 공갈 사기꾼이네! 고작 멍 좀 든 거로 신관을 만나?!”
모남이가 가련한 척 호위에게 부축 받으며 소리쳤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먼저 공갈 사기를 친 저쪽이 할 소리는 아니다.
“뭐요?! 그 작고 어린애가 저런 덩치한테 맞았는데 고작 멍만 들었겠습니까? 애가 의젓해서 돈 걱정하느라 티를 안 내서 그렇지, 어디 한군데 금가고 부러진 게 당연하잖습니까?!”
어젯밤 찾아온 세르펜스에게 물어봤더니, 자세한 건 직접 촉진해 봐야 알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단 겉보기에는 타박상뿐인 것 같다고도 말했지만, 어차피 이놈들이 그쪽 방면 전문가도 아니고. 모를 테니 상관없다.
“치료비로 50만 아스는 주셔야겠습니다. 교단이 소득에 따라 치료비를 달리 측정해주기에 이 정도지. 그쪽은 룩스메아 교단에게 감사한 줄 아세요.”
“아니, 아니! 잠깐만! 분명 내가 때린 게 아니라고 했잖아!”
“네, 네. 그쪽의 충실한 호위 분께서 때린 거겠죠.”
“그러니까 아니라고!”
“···네?”
모남이 놈이 억울하다는 듯이 제 가슴을 퍽퍽 치며 말했다.
맞은 본인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다.
나는 놈에게 콧방귀를 날리며, 구석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시온을 쳐다봤다.
“저, 저기···. 선생님, 절 때린 건 저 손님이 아니라 제 스승님인데요···?”
“···응?”
“거봐! 내가 아니라고 말했잖아!”
시온의 말에 모남이가 기세등등해 하며 소리쳤다.
자칭 야만적인 사람이 아니라더니. 사기는 치지만 어린애는 안 치는 주의인가 보다.
“그럼 그 50만 아스는 가죽 공방 스승 놈에게 받으시던가···. 아니, 그러게 왜 저런 덩치를 둘이나 데리고 다녀서 사람을 헷갈리게 합니까?”
“뭐 이런 뻔뻔한 놈이 다 있어?!”
모남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그냥 무시하자.
“그러고 보니, 혹시 가죽 공방에 찾아갔을 때도 그 호위들이랑 같이 갔습니까?”
“그랬는데?”
절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끌어내렸다.
나는 미끼를 던졌고, 놈은 그것을 콱 물어버린 거다.
“그래서였네! 저런 덩치들을 대동하고 어린애를 그렇게 쪼아대니까, 애가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한 거였네! 그쪽이 협박해서 가죽 손질을 시켜놓고, 못 하니까 모든 잘못을 애한테 뒤집어씌우다니. 어른으로서 창피하지도 않아요?”
“···뭐?”
“가만 생각해보니,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네···? 고작 곁꾼 노릇이나 하는 어린애한테 왜 그 귀한 가죽 손질을 맡겼지? 애가 먼저 한다고 나섰어도 막아야 할 판에, 어째서? 가죽을 망치는 것보단 기한을 어기는 게 나을 텐데? 처음부터 돈 뜯어낼 작정으로 이런 짓을 꾸민 거 아닙니까? 예?! 애초에 그 가죽이 진짜 비싼 거 맞긴 해요? 그 계약은 실존하는 거고요?”
내가 말을 다다다 쏘아붙이자, 모남이가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보다 보니 허술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 자식···, 악숭이가 맞긴 한가?’
내가 가장 처음 만난 악숭이는 좀 맹한 구석이 있었지만, 자신의 동료를 서슴없이 고문하는 잔인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페라리우스 백작의 보좌관 노릇을 하던 악숭이는 완전 광기에 찌들어 있었고.
테네브리오의 예언자를 자칭하던 놈은 제온에게 접근하여 그의 의심을 부추기는 계략을 꾸몄으며.
공작가의 은퇴한 사용인을 납치했던 악숭이는 사람의 정신을 제대로 흔들 줄 알았다.
‘그런데 모남이 이놈은···.’
다짜고짜 무력시위라도 벌일 줄 알았는데, 얌전히 나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어린애를 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모남이 놈은 악숭이에게 이용당한 멍청이거나, 돈 받고 고용된 사기꾼이거나. 그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이 자식이! 누굴 사기꾼으로 보고···! 계약서 가져와서 보여줘?!”
“그걸 어떻게 믿어요? 그새 어디서 가짜 계약서를 작성해올지 누가 압니까?”
“돈이 없어서 자꾸 이렇게 말로 때우려나 본데,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오면요?”
“그 좋아하는 치료비로 1500만 아스가 나오게 하는 수가 있어!”
간단히 말해서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라는 소리다.
날 두드려 패는 거로 1500만 아스를 퉁치자니. 어지간히도 내가 얄미웠나 보다.
“아, 그건 좀 곤란한데.”
“곤란하면 허튼수작 그만 부리는 게 좋을 거야.”
정말 곤란해지는 사람은 내가 아닌 모남이건만. 모남이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머금었다.
내가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이곳 어딘가에 숨어있는 세르펜스가 놈에게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는데.
“당장 증거가 없는 건 피차일반이고, 가죽을 망가뜨린 것도 쌍방과실이니까 반반 부담합시다. 예? 그럼 750만 아스고, 치료비 50만 아스는···. 그쪽이 가죽 공방 주인에게 알아서 받아 가시죠? 애가 공방주에게 맞은 충격으로 공방주 얼굴만 보면 경기가 일어날 것 같다니까. 그 정도는 인정으로 해 줍시다.”
“뭐? 어···, 아니, 내가 왜···.”
“왜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모든 원인이 다 그쪽 때문인데! 게다가 우리 애는 퇴직금도 못 받고 공방에서 쫓겨난 데다가, 이번 일이 소문나서 직장 구하기 힘들어졌는데···. 아직 열네 살밖에 안 된 미래가 창창한 어린아이의 앞길을 막아 놓고, 시치미를 뚝 떼다니! 악마 숭배할 놈이 따로 없네!”
“아, 악마 숭배라니! 어떻게 그런 심한 욕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떠봤더니, 모남이가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저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놈은 악숭이가 아닌 모양이다.
“에헤이, 어디 그쪽에게 악···, 마 숭배자라 했습니까? 모른 척하면 악마 숭배하는 놈들이나 마찬가지라 했지. 그런 의미로 쫓겨난 것과 소문에 대한 보상금으로 각각 200만 아스씩, 총 400만 아스. 어때요?”
“돈도 없는 놈이, 입만 번지르르해서···!”
“아까부터 자꾸 돈 없다 돈 없다 하시는데, 그쪽이 무슨 세무서 직원이라도 됩니까? 저도 돈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남은 금액이 얼마죠? 300만 아스? 드려요?”
“줄 수 있으면 어디 줘 보든지!”
모남이가 한껏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내게 돈이 없다고 확신하는 모습이다.
하기야, 이렇게 열심히 돈을 깎아댔으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300만 아스만 주면 얌전히 가실래요?”
“나더러 고작 300만 아스나 먹고 떨어지라고?”
“애초에 이런 가난한 보육원에서 300만 아스라도 받아낼 수 있는 게 어딥니까? 감지덕지한 줄 아셔야지.”
“뭐, 이런 놈이···.”
“이런 놈이 여기서 일하고 있으니까, 300만 아스라도 받아 가실 수 있는 겁니다. 여기 원장이 어떤 놈인데, 보육원 운영비를 떼어다가 애들 빚을 갚아줄 것 같습니까? 천만에요! 아예 내쫓아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원장을 그렇게 욕해도 돼?”
“뭐 어때요. 이 난리가 났는데도, 나와보지 않는 사람인데.”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모남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루비 브로치를 꺼내 던져 줬다.
“···이건?”
“그거 진짜 루비입니다. 잘 팔면 400까지도 받을 수 있는 건데, 남은 돈은 그냥 수수료라 칩시다.”
“진짜···라고?”
“그렇다니까 그러시네. 전 돈 많거든요. 여기서 일하고 있는 건, 그, 뭐냐···. 봉사 활동 같은 겁니다. 네.”
“······.”
브로치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모남이가 그것을 품속에 고이 챙겨 넣었다.
귀족 옷도 만든다더니. 옷에 보석을 꽤 달아 봤는지, 그것이 진짜 보석이라는 걸 눈치챘나 보다.
“돈이 많다면 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깎은 건데?”
챙길 거 챙긴 모남이가 뒤늦게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
“당연히 애가 부담 가질까 봐 그랬죠. 저는 안 갚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애 생각은 다를 거 아닙니까? 마음의 빚이 3500만 아스인 것과 300만 아스인 게 어디 같아요?”
“······.”
“대체 보육원 아이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런 짓을 벌인지는 몰라도, 괜히 힘없는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그쪽도 착하게 살아요. 그따위로 살다간, 언젠가 악마 숭배자라고 오해받아서 이단 심문관들에게 잡혀갈지도 모릅니다.”
“무,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그니까 마음 곱게 쓰라고요.”
“······.”
놈은 한동안 나를 말 없이 노려보다가, 뒤돌아 출입문으로 향했다.
“···이대로 그냥 가시는 겁니까?”
“계산 끝났으니 가야지.”
“하지만 그 여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됐어. 어차피 지금도 충분히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 같은데, 뭐 하러?”
모남이가 자신의 호위와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며, 퉁퉁 부은 눈을 한 에드나를 흘낏 쳐다봤다.
복잡해 보이는 시선이 에드나를 향했다.
에드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다가,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었는지 ‘아!’하고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본 모남이는 마치 도망이라도 치듯, 서둘러 보육원 밖으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