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8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87화(287/1105)
287회
51. 공작님과 잠입 작전 (18)
“죄송하지만 손님, 전 양친 모두 잘 살아 계셔서 말입니다. 성인 남성을 입양하고 싶으신 거라면, 저 말고 저기 원장실에 콕 박혀 있는 원장님은 어떠신가요?”
“아니, 자네가 맘에 들어.”
올해 들었던 말 중 최고로 소름 돋는 말이다.
노인이 진심으로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게 아니란 걸 알지만, 닭살이 오소소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전 그쪽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요?”
“그딴 건 상관없네.”
“저는 상관 많은데요?
“그 또한 상관없네.”
막무가내가 따로 없다.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대뜸 찾아와서 나를 입양하겠다니.
이 노인은 악숭이가 확실하다.
그리고 나를 아들처럼 아껴주기는커녕, 내 영혼은 마왕 소환의 제물로. 이 육신은 마왕의 그릇으로 삼으려 들겠지.
“시온 리벨론. 자네를 데리러 왔네.”
노인 악숭이가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르펜스가 나를 에드나에게 맡겨두고 간 줄 알고,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납치하러 온 주제에 데리러 오긴 개뿔.
‘바로 세르펜스가 튀어나와 제압할 줄 알았는데, 안 나오네?’
아직은 안전하다는 생각에 방심하는 건 아닐 테고.
굳이 내게 말조심하라는 주의를 주고 간 걸 떠올려 보면, 나더러 악숭이 놈을 도발해서 정보를 빼 오라는···.
‘아니다. 도발하지 말랬지, 참?’
아무튼 녀석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볼 생각인가 보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라도 일단 잡아떼보자.
“제 이름은 시온 프리베론인데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내가 그딴 말장난에 속아 넘어갈 거라 생각하는 겐가?!”
“역시 안 되나?”
하긴. 내가 생각해도 안 될 것 같긴 했다.
“대체···. 우리를 대체 얼마나 깔봤으면···!”
갑자기 노인 악숭이가 부들거리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애초에 세르펜스가 지어온 가명은 일반인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함이지, 악숭이를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도발한 적도 없는데, 멋대로 이렇게 도발 당해주면 나도 곤란하다.
이번 여정이 끝나면 위장 신분증을 새로 만들어야겠다. 물론 유지스를 포함해서.
만드는 김에 윈스톤과 에드나 것도 만들고···.
“본인 몸 하나 지킬 능력도 없는 주제에···. 설마 저 핏덩이 같은 마법사 아해를 믿고 이렇게 나오는 건가?”
“그러는 그쪽은 세르펜스가 무서워서, 녀석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본색을 드러낸 주제에?”
“크, 크핫···! 정말이군, 정말 없어!”
“앗!!”
그냥 되받아친 것뿐이었는데 오해하고 방심해주겠다니, 베리 땡큐다.
나이가 꽤 돼 보여서 연륜깨나 쌓았을 줄 알고 걱정했는데 그냥 나이를 헛먹은 모양이다. 하기야 그러니까 그 나이 먹도록 정신 못 차리고, 마왕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있지.
“시온 씨, 저자는···.”
“악마 숭배자···. 즉, 악숭이 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에드나가 아기를 웬디에게 맡기고 소매 안에서 마법 스태프를 꺼내 들었다.
아니마의 것과 마찬가지로 크기 조절 마법이 걸려 있는지, 한 뼘만 하던 스태프가 여의봉처럼 한순간에 길어졌다.
그녀가 스태프를 움켜쥐자, 노인 악숭이도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덩치 악숭이 또한 무게 중심을 낮추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대기했다.
여차하면 성수라도 집어던져야지.
“그런데 원래 목적은 내가 아니라 에드나 씨를 타락시키는 거 아니었나?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지 않아?”
“무슨 일이든 최우선 사항이 있는 법이···, 어허! 거기 핏덩이!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게다.”
노인 악숭이가 중간에 말을 끊고 지팡이로 천장을 겨냥하며 에드나에게 엄포를 놓았다.
건물이 무너진다면 당연히 아이들도 압사당할 거다.
에드나가 작게 혀를 차며 스태프 끝에 희미하게 어린 푸른 빛을 거둬들였다.
‘그나저나 최우선 사항이라니···.’
내가 모남이 일을 대신 처리한 것처럼 방해될 거라 여긴 것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따로 내려진 지시가 있는 것 같다.
빌어먹을 마왕 놈이 나를 잡아오면 큰 상을 내리겠다는 말을 해둔 게 아닐까 한다.
성검의 동료이자 상당한 전력을 보유한 아니마를 포섭하기 위한 작전보다, 나를 생포하는 게 우선이라니.
이딴 관심은 필요 없다.
“보아하니, 이곳의 아이들을 꽤 아끼는 모양이군. 좋아, 내가 기회를 주마. 저자를 얌전히 넘겨준다면 앞으로 이곳 아이들에게 절대 손대지 않겠다고 약조하지.”
다 개소리다.
앞으로 손대지 않으면 뒤로 손대거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내거나 할 게 뻔하다.
아니면 약속 자체를 어길 수도 있고.
이 세상에서 절대 믿지 말아야 할 존재가 있다면 첫째가 마왕이요, 둘째가 악마요, 셋째가 악숭이다.
에드나도 그걸 아는지, 여전히 경계의 눈빛을 띠고···.
“지x하고 자빠졌네.”
욕을 했다.
노인 악숭이가 너무 말 같잖은 소리를 해대는 통에, 아이들 앞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렸나 보다.
에드나가 욕쟁이라는 정보를 사전에 듣고 왔는지, 악숭이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면, 그래. 이곳 아이들이 진 빚을 처분해 주는 건 물론이고, 평생 편히 먹고살 수 있도록 지원도 아끼지 않겠네.”
세르펜스가 이 자리에 없어도 재고할 가치가 없는 제안이다.
내가 이곳에서 악숭이에게 납치를 당했는데, 정작 에드나와 아이들이 멀쩡하다면 의심을 사는 게 당연하다.
에드나가 세르펜스의 손에서 아이들과 자신을 지키려면 악숭이 편에 붙는 수밖에 없다.
아니마와 에드나라는 1+1 행사 상품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나 보다.
‘나를 팔아버린 것에 보복하려 해도, 악숭이가 나를 볼모 삼아 세르펜스의 행동을 제한한다면···.’
일어날 리 없는 일이다. 불길한 상상은 그만두자.
세르펜스가 몰래 숨어서 나를 지켜주고 있고, 에드나는 노인 악숭이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거절하죠.”
아이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는지, 에드나의 말투가 다시 공손해졌다.
당연하게도 공손한 건 말뿐이었고 그녀는 눈 깜짝할 새에 마법진을 허공에 그려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을 끝내고, 마력을 뽑아내 단숨에 그것을 구현한 거다.
복잡한 마법을 완성하긴 힘들지만, 기습 용도로는 쏠쏠하다.
노인 악숭이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단번에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악숭이가 만들어 낸 마법진은 땅에 스며들어 지반을 뒤흔들었다. 건물을 무너트리겠다던 말이 허언이 아니었나 보다.
“으앙-!!”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놀란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바닥이 조금 흔들렸을 뿐, 선반 위에 올려놨던 헤진 솜인형조차 굴러떨어지지 않았다.
투명한 푸른빛의 마력이 건물과 가재들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끼리의 싸움은 심리 싸움이라더니···.’
특히 처음 사용하는 마법은 더더욱 그러했다.
노인 악숭이는 나를 살려서 데려가고자 했다. 건물을 무너뜨리니 어쩌니 하는 소리도 떠들어댔다.
불길을 일으키는 등 광범위 공격 마법을 퍼부으면 내가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적당히 고른 마법이 지진을 일으키는 거겠지.
힌트를 준 악숭이가 멍청한 거다.
노인 악숭이는 바로 마법을 해제하며 새로운 마법을 시전했다. 불길한 검은 마력이 허공에 수 놓였다.
그에 반해 에드나는 건물을 보호하는 마법을 유지하며, 새롭게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더블 캐스팅도 가능해?’
좀 더 놀라워하고 싶었으나, 상황이 급박했다. 마법을 시전하는 에드나에게 덩치 악숭이가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에드나의 마력이 덩치 악숭이를 잠시 붙들었고, 그러는 동안 노인 악숭이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방금 기습적으로 사용했던 마법에 비해 훨씬 커다랗고 복잡한 마법진이 검은빛을 뿌리더니, 짙은 안개로 변하였다.
수증기라기엔 보기만 해도 찐득하고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 검은 안개가 돌풍처럼 몰아쳐 우리를 덮치려는 순간.
“꾸엑-!”
어디선가 사람이 날아와 노인 악숭이에게 명중했다.
노인 악숭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고, 통제를 잃은 안개 마법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단순한 공격용 마법이었다면 그대로 날아왔을 텐데.
저렇게 허무하게 사라진 거로 보아, 섬세한 기능이 달린 마법이었나 보다.
“베네볼렌 씨는 저자들이 자결하지 않도록 제압해주십시오.”
어느새 나타난 세르펜스가 태연하게 덩치 악숭이를 막아서며 말했다.
원장 놈이 인간 미사일이 되어 쏘아져 나가지만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착각할 뻔했다.
“네, 네?! 아, 네!”
인간 미사일의 위력에 놀란 에드나가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거대한 바위 주먹을 만들어 노인 악숭이의 머리를 꿍 때렸다.
원장 놈을 밀어내고 일어나려던 노인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물리 방어력이 형편없는 마법사의 비애다.
한편 세르펜스는 검을 뽑아 드는 대신 맨손으로 덩치 악숭이의 팔을 잡고, 옆구리 쪽으로 빠져나가 그대로 꺾어버렸다.
관절을 뽑은 정도가 아니라, 뼈 자체가 또각 부러졌다.
그렇게 우두둑하는 소리가 한 번, 두 번, 세 번, 네···.
“악! 세르펜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나는 급한 대로 내 주변의 아이들을 끌어안아 눈을 가리며 녀석에게 소리쳤다.
사람이 베이고 피가 튀는 건 비위가 상하지만,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인 사람을 보는 건 소름이 끼친다.
세르펜스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아공간에서 이불을 꺼내 덩치 악숭이를 덮어주었다.
드디어 녀석도 이불을 휴대하고 다닐 때 얻을 수 있는 효용을 깨달았나 보다.
용도가 용도인 만큼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 자는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대외펜스가 슬픈 표정을 꾸며내며 대답했다.
이제는 살아도 산 게 아니게 되었다거나, 지금 막 죽은 따끈따끈한 시체라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다.
“살아있는 게 아니라면···.”
“네. 당신이 알고 있는 ‘그것’입니다.”
“뭐···. 그럴 것 같긴 했어요.”
뼈가 마구잡이로 부러지는데 앓는 소리를 한 번도 안 내다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하는 동안 바둑을 뒀다던 관운장이 와도, 저만큼 뼈가 부러진다면 비명을 질러댔을 거다.
[성검의 주인]에서는 일반 언데드와 구분하기 위해 리빙 데드라 칭했지만, 사실 어느 쪽이든 ‘저것’에겐 과분했다.아무런 자아도, 의지도 갖추지 못한. 시체로 만든 단순한 자동인형에 불과하니까.
심장에 박힌 마석을 원료로, 몸에 그려진 마법진을 회로 삼아 움직이는 도구다.
일반 언데드에 비해 만들기 까다롭고 재료도 오지게 많이 들지만, 그런 단점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두 가지 장점 덕분에 [성검의 주인]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시체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장점이고, 흑마석이 아닌 일반 마석으로도 작동이 가능하다는 두 번째 장점이다.
그 때문에 여러 쓰임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자주 쓰인 건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을 타락시키기 위한 미끼였다.
그 외에도 흑마력을 숨기기 위해 마력 구속구를 찬 악숭이가 호위로 자주 써먹었다.
“마력 흐름이 멈추면 폭발하도록 되어 있어, 부득이하게 이런 식으로 제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빙 데드에 그런 기능이 달려 있다는 얘기를 세르펜스에게 해 준 건 나다.
당연히 알고 있는 얘기를 녀석이 굳이 떠든 건, 대외 이미지 때문이다.
세르펜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불에 둘러싸여 바동거리는 리빙 데드를 신성 결계로 한 번 더 감쌌다.
표정과 행동의 부조화가 장난 아니다.
“검으로 팔다리를 잘라내는 방법도 있지만···.”
“아, 예···. 잘하셨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부연 설명은 굳이 안 해도 될 텐데. 정말 하나도 안 고맙다.
‘표정 관리만 하면 되는 줄 아나?!’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녀석의 신성한 얼굴과 우수에 잠긴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그거면 될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