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9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92화(292/1105)
292회
52. 공작님의 심문 (5)
에드나가 식사를 건네주고 돌아간 후, 세르펜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한 거지?”
“뭐가요?”
“이곳에 다시 들르겠다는 약속 말이다.”
“그게 왜요?”
“······.”
녀석이 뚱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드나 보다.
“설마, 휴가 안 주실 겁니까?”
“······.”
“에잇! 그래, 그래, 인심 썼다! 세르펜스도 따라오고 싶다면 따라오셔도 됩니다.”
“선우, 장난하지 말고 진지하게 대답해라.”
혹 누가 듣기라도 할까, 조심하느라 둘만 있을 때도 ‘당신’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했던 세르펜스가 오랜만에 내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이때다 싶어 그의 세례명을 마구 불러댔던 나와는 대조적이다.
“아니, 뭐···. 솔직히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포기라도 한 건가?”
“그건 아닌데···. 룩스메아도 양심이 있으면, 돌려보내기 전에 작별 인사할 시간 정도는 주지 않겠어요?”
“하아···.”
세르펜스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면 온 세상의 시름을 혼자 끌어안고 사는 줄 알겠다.
“누가 밥상머리 앞에서 한숨 쉬래요?”
“···그게 중요한가?”
“고민해서 해결할 수 없는 일로 고민하는 건, 심력과 시간 낭비입니다. 괜히 스트레스 받아 봤자, 세르펜스만 손해에요.”
“당신을 보고 있으면 정말···,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세르펜스는 그동안 인생의 많은 부분을 손해 보면서 살아왔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하자, 세르펜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 자신이 누구를 걱정하느라 마음을 졸이는 줄 뻔히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따지는 거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기왕이면 마음 편히 즐기면서 삽시다!”
“한 번뿐···이라고 해도 되는 건가?”
“마왕 놈은 회귀했고, 시온은 환생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번이라고 봐야···. 에베베, 몰라, 몰라! 괜히 얘기 복잡하게 만들지 마세요!”
하마터면 논점이 흐려질 뻔했다.
이게 다 룩스메아 때문이다.
그래도 덕분에 세르펜스에게도 행복해질 기회가 생겼으니. 마음 넓은 내가 한 번 봐줘야겠다.
“아무튼 그러니까 먹고 싶은 것도 다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하면서 살자고요.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는 좋지만, 그것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할 필요는 없잖아요?”
“으음···.”
“악숭이 퇴치가 끝나고 난 뒤에도 뾰족한 수가 안 생기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고. 지금은 어서 빵이나 먹어요.”
“결론이 왜 그따위지?”
“먹는 게 남는 거니까!”
내 대답에 녀석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평소의 기분 좋은 웃음이 아니라,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 쓴웃음에 가깝다.
식사가 반 정도 진행되었을까?
음식 냄새라도 맡았는지, 노인 악숭이가 으으 신음을 내며 정신을 차렸다.
“거, 노인네가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튼튼하시네.”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데, 옆에서 식사 중이던 세르펜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다시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러 가는 거려니 생각했으나, 녀석은 뜻밖에 입을 열어 놈에게 질문했다.
“그 ‘리빙 데드’ 마법은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에드나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 마법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심산인가 보다.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네. 그분께서 전수해주신 마법의 명칭을, 네놈들이 어떻게 알고 있는 겐가?”
세르펜스의 질문에 악숭이가 되려 의문을 표했다.
그 말을 듣고 났더니, 나에게도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마왕이 직접 알려줬다고? 공에 눈이 멀어 계획도 다 말아먹고, 납치하러 납셨다가 제압당하는 멍청이에게?”
“직접···은 아니고, 대사제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전해 듣고 그 가르침을···.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알려 줘야 하는 게냐!”
“자기가 나불나불 떠들어 놓고, 화를 내면 어쩌자는 거야?”
참 웃기는 놈이다.
놈이 화를 내든 말든, 내 앞에는 든든한 세르fence가 버티고 있다. 나는 마음 놓고, 잠시 멈췄던 식사를 재개했다.
녀석도 적당히 하고 빨리 식사를 하면 좋으련만.
“···잠깐, 그러고 보니 내 또또는 어디 갔지?!”
악숭이 놈이 갑자기 ‘또또’라는 이름의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정황상 불타버린 리빙 데드를 말하는 걸 테다. 무슨 강아지에게나 붙일 법한 이름에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세르펜스가 턱짓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마력석을 가리키자, 놈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자기는 폭파하려 했으면서.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무, 무슨 짓을···.”
“시체에 걸린 마법을 해제하고 불태웠습니다.”
“···해제했다고? 지, 지금이 며칠이지? 내가 기절한 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겐가?!”
“두 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친절하게도 세르펜스는 악숭이의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 주었다.
물론 선의에서 저러는 건 아니고, 놈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무슨 수로?”
“마법진의 일부를 보여주셨잖습니까? 그 덕분에 베네볼렌 씨께서 해주법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세르펜스가 마치 감사라도 표하는 것처럼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녀석의 그런 태도에 악숭이는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그린 마법진은 정지 마법조차 아니었네! 그런데···, 그분께서 직접 고안하신 위대한 마법을 어찌 그리 쉽게···!”
“위대한···? 베네볼렌 씨께서는 굉장히 조잡하고 간단한 마법이라며 비웃으시던데, 정말 마왕이 만든 마법이 맞습니까?”
녀석이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그래서 더 잔인했다.
이런 방식의 심문은 녀석의 방식이 아니다.
[성검의 주인]을 통해 읽었고, 프라시더스 령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내가 직접 겪었던 심문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거대한 뱀에게 휘감긴 듯, 숨통이 조여드는 서늘한 감각.
방심하는 순간 한입에 집어 삼켜질 것 같은 압박감.
생존 본능을 자극하며 먹잇감을 농락하는 방식이 내가 아는 세르펜스의 심문법이다.
저렇게 순진한 얼굴로 속을 박박 긁는 게 아니라.
저런 방식은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건지 모르겠다.
“베네볼렌 씨께서는 성검의 동료조차 아닌, 일반 마법사일 뿐임에도 그 마법을 10분 만에 파훼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는 아이들을 달랜 후, 식사 준비까지 마치고, 현재 아이들과 식당에서 식사 중이십니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로, 빵과 우유를 사고 남은 잔돈으로 핫바까지 사 먹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허황된 말이다.
그러나 심각하게 분석하는 듯한 녀석의 표정이.
정말로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진심으로 의문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여서 사실처럼 들렸다.
나는 녀석의 사기 행각을 비난하는 대신,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에 신빙성을 높여 주었다.
우리 애가 하는 말이 다 맞아요!
“마왕이 그 정도밖에 안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고작 그런 자와 싸우기 위해, 어릴 때부터 노력해 왔다니···. 정말 실망입니다. 성검의 주인으로 선택받지 못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억울할 정돕니다.”
“아! 설마 룩스메아는 그래서 휴마누스에게 성검을 넘긴 걸까요? 세르펜스까진 나설 필요도 없다, 뭐 그런 거죠! 툭 까놓고 말해서 세르펜스가 휴마누스보다 검술도 뛰어나지, 신성력도 많지, 마법에 관한 식견도 풍부하지! 여러모로 훨씬 더 낫잖아요?”
“그런 말씀은···. 으음, 부끄럽습니다.”
세르펜스가 손바닥으로 제 뺨을 감싸며 수줍어하는 척했다.
곧 죽어도 ‘황태자 전하야말로 성검의 주인에 어울리는 분이십니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주 바람직하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
“그 하나의 진실이란···?”
“당연히 마왕이 바보 머저리라는 거죠!”
“과연, 신의 사자다운 현명함입니다.”
세르펜스가 감탄스럽다는 듯이 짝짝 박수를 쳤다.
악숭이를 도발하기 위함이란 걸 아는데도, 어째 나를 놀리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아, 아니네···! 그렇지 않아, 마왕님은···. 테네브리오 님께서는 위대한 분이시네! 그분께서 만든 마법도 범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고명한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결과가 나와버렸잖습니까?”
“아니야···. 그 마법은, 나조차 익히는 데 한참 걸린···.”
“죄송하지만, 그냥 본인의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런 잔인한 녀석.
그의 언행에 혀가 절로 내둘러졌다.
“세르펜스, 불쌍하니까 너무 그러지 마요. 다른 악숭이들은 성검 일행의 뒤통수를 치려고 폴드 공국 공왕과 손잡고 계략을 꾸미고 있는데, 여기서 이러는 거 보면 딱 봐도 좌천당한 거잖아요. 저 자식은 분명 공왕이 악숭 세력의 편에 가담한 것도 모를걸요?”
“그런 계획이 있었다고···?!”
나의 떠보는 말에 노인 악숭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으면 확신할 수 있었을 텐데.
‘아, 이렇게 되면 좀 애매해지는데···.’
다른 지역이라 보안 유지를 위해 정보를 차단한 탓에 저 악숭이가 모르는 것뿐인지, 공국이 무고한 것인지.
어느 쪽도 확언하기 어렵다.
‘세르펜스한테 의심병이 옮았나?’
어찌 됐건 노인 악숭이가 공국의 일에 관하여 아는 게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빵을 수프에 푹 찍어 입에 넣었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성검의 일행인 아니마 프루이토를 우리 쪽에 끌어들이는···, 중대한 작전을 하명 받아서···.”
“아무런 무력도 갖추지 못한 나를 납치하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작전이라며?”
“그···, 그래! 에드나 베네볼렌! 그 핏덩이 같은 게 사실은 대단한 천재였던 게야! 그래서 위대한 분께서 만드신 마법을 파훼할 수 있었던 거지! 으하, 으하하하···! 그래, 그랬던 거야!”
놀라운 상향 평준화다.
초점이 풀린 눈으로 허허 웃고 있는 모습이, 완전 정신을 놓은 것 같다. 아마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리라.
허망한 노인의 표정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어디서 저 비슷한 걸 본 것 같은데···?’
작년에 세르펜스가 볼타 산맥 토벌을 갔을 때 마주했던 악숭이가 최후에 지었던 표정이 딱 저러했다.
악숭이들은 마왕을 깎아내리면 맥을 못 추나 보다.
안타까움에 혀를 쯧쯧 차고 있는데, 악숭이 놈에게서 검은 마력이 연기처럼 줄기줄기 흘러나왔···다가 곧장 흩어졌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두말할 것도 없이 세르펜스가 놈을 기절시킨 거다.
“어? 그냥 기절시켜도 돼요? 뭔가 술술 불 것 같은 분위기던데?”
“당신이 잘못 본 거다. 누가 봐도 흑마력이 폭주하기 직전이었다.”
“세르펜스가 도발해서 그런 거잖아요? 그렇게 남의 속 뒤집어 놓는 방법은 어디서 배웠대?”
진심을 담아 감탄한 말에, 세르펜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대를 따라 한 거잖는가?”
“아유~! 우리 세르펜스, 이젠 농담도 잘하네! 우쭈쭈쭈!”
“···진담이다.”
“에이, 장난치지 마시고.”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내 눈을 똑바로 봐라. 지금 내가 장난치는 것 같은가?”
기절한 악숭이를 내팽개친 세르펜스가 다시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의 녹색 눈동자가 맑은 빛으로 반짝였다. 마주친 두 눈에는 한 점의 거짓도 담겨있지 않았다.
“적당히 선을 지키면 꽤 유용할 것 같아서 따라 해 봤다.”
“근데 방금 그 선을 넘겨서 악숭이가 폭주한 거 아닙니까?”
“그건 당신 탓이잖은가?”
“제가 뭘요?”
“···모르면 됐다.”
세르펜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다 식은 수프를 우아하게 휘저은 후, 식사를 이어나갔다.
나는 빈 그릇에 수저를 비스듬히 걸쳐놓고 손을 뗐다.
“악숭이의 반응을 보면 역시, 리빙 데드 제작법은 마왕이 알려준 게 맞는 것 같죠?”
“내가 보기에도 그래 보이는군.”
“리빙 데드 마법이 만들어진 건 인형놀이 마법이 유출된 이후여야 하는데, 마왕 놈이 자기가 만든 마법이라며 리빙 데드 마법을 떡하니 내놓았다면···. 아니, 뭐라는 거야?”
“본래 마법이 유출 ‘됐어야 할’ 시점은, 당신이 이곳에 오고 난 이후라는 거겠지.”
내 머릿속에서 떠도는 막연한 생각을 세르펜스가 간단하게 요약정리해 주었다.
즉, 인형놀이 마법이 새어나간 건 ‘현재’의 시간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성검의 주인]이 진행 중일 때 새어나간 거려나?’
결국 악숭이를 심문해서 알아낸 거라곤, 마법을 유출시킨 놈이 누군지 영영 찾을 수 없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