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9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93화(293/1105)
293회
52. 공작님의 심문 (6)
밤이 깊어졌고 교육 나갔던 아이들이 하나둘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소년 시온이 그러했듯. 그들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모두 무탈했다.
돌아온 아이들은 세르펜스를 보고 의문을 표했다.
밖에 나갔다 왔더니, 낯선 이가 버젓이 원장실을 점거해버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당한 일이건만.
원장 놈은 웬 노인과 함께 묶여있었으며.
그들을 제압한 것으로 추정되는 낯선 이는 ‘나는 고귀하다.’라는 문장을 빚어내 만든 듯한 사람이었으니.
아무리 몸이 고단하다 한들 관심이 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악숭 세력이 보육원에 마수를 뻗쳤다는 사실은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 거다.
하지만 에드나는 그들에게 설명하기를 택했다.
“다들 배고플 텐데, 자세한 얘기는 식사부터 끝내놓고 하자.”
마침 내일이 주말인 덕분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 필요가 없었다.
늦은 식사를 끝낸 아이들은 침실로 가는 대신, 놀이방에 둘러앉아 에드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설명이 끝난 뒤.
아이들은 근심에 잠겼다. 앳된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에드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녀의 사과는 자신 때문에 아이들이 말려들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에드나가 자신을 탓한다면, 아니마를 탓하는 거나 다름없다.
‘애초에 악숭이가 에드나에게 이런 짓을 한 건, 아니마를 끌어들이기 위함이니까.’
아니마에겐 죄가 없다. 나쁜 것은 오직 악숭이다.
그녀는 아니마를 탓할 수 없기에, 아이들에게 자신을 탓하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에드나의 사과는 이런 일을 아이들이 알게 해서 미안하다는 의미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보호받을 수 있는 건, 일종의 권리다.
그리고 권리란, 대게 약자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
“그럼 시온이 그저께 다쳐서 온 것도 다 악마 숭배자들이 꾸민 일이라는 거예요?”
한 아이의 질문에 에드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할 때 스승님께서 내일 나와줄 수 있느냐고 묻길래, 왠지 꺼림칙해서 거절했는데···.”
“그래, 잘했어.”
에드나는 내일은 어디 나가지 말고 보육원에 붙어 있으라는 말을 끝으로, 아이들을 해산시켰다.
“하아-···.”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에드나는 참아왔던 한탄을 한숨에 담아 길게 토해냈다.
불현듯, 존경과 연민의 감정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지난날.
나는 시온의 몸뚱이를, 인생을 빼앗아 버린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제온에게 나를 탓해도 좋다는 말을 해버렸다.
그것도 세르펜스가 보는 앞에서.
그게 녀석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하지 못했다.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나는 내 생각만 했고, 그 결과 녀석은 자책했다.
내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으니, 자신이라도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에드나 씨는 나보다 어른이구나···.’
그녀의 나이는 고작 스물아홉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그녀가 까마득한 어른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그녀 또한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중 하나였겠지. 이 보육원의 아이들처럼.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존경스럽고,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시온 씨는 거기서 뭐 하세요?”
조용히 숨을 고르던 에드나가 돌연 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원장실에서 고개만 빠끔 내민 채, 놀이방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어, 그게···, 훔쳐본 건 아니고, 그냥 좀 신경 쓰여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어차피 다 아는 얘기를 했는데 불쾌할 게 있나요? 숨겨야 할 얘기였으면 방음 마법을 썼겠죠.”
“아···, 그러게요?”
“저희가 여기서 얘기를 나누는 바람에, 방으로 돌아가시지 못하고 눈치 보고 계신 건가 해서 물어본 거예요.”
에드나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세르펜스를 돌아보았다.
내가 방에 못 가는 진짜 원흉인 그는 나를 대신하여, 아기를 안고 젖병을 물리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광경이다. 밧줄로 꽁꽁 묶인 채 기절한 노인 악숭이와 원장 놈만 없었으면.
“아뇨. 그런 거 아니니, 죄송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은 여기서 밤샐 예정입니다.”
“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세르펜스 혼자 악숭이를 감시하면 심심할 것 같아서, 말벗이라도 되어 주려고요.”
진짜 이유는 세르펜스가 자신의 시야 내에 있으라고 붙잡아 둔 거지만.
거기까지 구구절절 말하는 건 녀석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거라면 저도 함께···.”
“아닙니다. 베네볼렌 씨께서는 보육원 방비에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대체 언제 다가온 건지, 내 뒤에 선 세르펜스가 그녀의 말을 잘라먹으며 말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에드나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악마 숭배 세력을 견제하는 행동.
즉,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마법진을 설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르펜스의 보좌관인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며, 나를 잡으러 온 노인 악숭이가 돌아오지 않으니.
세르펜스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거다.
노인 악숭이의 동료들이 그를 버리고 도망갈 가능성도 있으나, 쳐들어온다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오겠지.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이 많으니, 방어태세를 굳건히 해야만 한다.
“네, 그렇게 할게요. 시온 씨 말대로 이것저것 챙겨오길 잘했네요.”
에드나는 곧장 품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마탑에서 챙겨온 마법진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꺼내어 늘어놓았다.
“근데 세르펜스. 저 악숭이는 언제까지 감시해야 합니까?”
원장 놈은 깨어나도 하등 상관없지만, 악숭이는 그렇지 않았다.
이곳의 마법이 여느 판타지 소설의 마법처럼 주문이나 수인을 맺어야 한다면 편했을 텐데.
입을 막고 손을 묶어놔도 마력의 실을 뽑아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마법을 쓸 수 있는 탓에, 계속 경계해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르펜스도 재울 수 있었을 텐데.
“으음···. 다시는 마법을 쓸 수 없도록, ‘타래’를 끊어버린다면 감시하기 수월하겠지만···.”
세르펜스는 그렇게 말하며 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이 세계의 마법사들은 심장에 마력의 실을 둘둘 감아, 실타래를 만들 듯 뭉쳐놓는다. 녀석이 말한 ‘타래’란 바로 그 마력의 실타래를 뜻했다.
녀석은 마치 실 한 가닥을 끊으면 되는 것처럼 말했으나, 실상은 죄 헤집어 놔야 한다.
두툼하게 둘둘 말려진 실타래를 가르고, 가르고, 또 갈라서.
그것을 다시 잇지 못하도록. 새로운 실을 자아내지 못하도록. 내부를 진탕 망가트려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과정에서 마법사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이단 심문관들이 흑마법사들을 고문할 때, 마력의 실타래를 끊는 거로 워밍업을 한다나 뭐라나···.’
마법 감응력이 높을수록. 심장에 감아 놓은 마력의 양이 더 많을수록.
고통은 더해지고, 또 길어진다.
그 고통은 어지간한 고문 이상이라는 게 [성검의 주인]에 나온 설명이다.
즉, 녀석은 내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를 살피는 거다.
“이 주변에 룩스메아 교의 신전은 없어요?”
“있···.”
“있긴 하나, 매우 작아서 악마 숭배자를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나는 에드나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녀의 말이 문장을 구성하기도 전에 세르펜스가 대답해버렸다.
이 자식은 대륙 전역에 퍼져있는 신전 위치와 규모를 외우기라도 한 건가?
“외지에서 악마 숭배자를 상대할 때, 믿을 만한 원군은 룩스메아 교단뿐입니다. 그렇기에 어딜 가든 교단의 위치와 규모를 가장 먼저 파악해 둬야 합니다.”
내 표정에 떠오른 의문을 눈치챈 세르펜스가 알아서 설명했다.
목적지가 정해진 후 알아봤다는 뜻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리 작은 교단이라도 그렇지, 제압된 악숭이 하나 감시 못 해요?”
“저자가 아니라, 저자를 죽여서 정보 유출을 막으려는 악마 숭배자를 말한 겁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알아들었을 텐데.
내가 무슨 유지스라도 되는 줄 아는가 보다.
“그럼 저 악숭이는 어쩌려고요?”
“페롤 령에 있는 교단에 넘길 생각입니다.”
“···세르펜스가 다녀오려고요?”
분리불안 증상이 있는 녀석이 나를 여기에 두고, 혼자 옆 영지에 다녀온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신뢰하지 않는 에드나에게 그 일을 맡길 것 같지도 않고.
나를 데려간다면 그건 그거대로 모양이 이상하다.
“윈스톤 경이 오고 있잖습니까?”
“윈스톤에게 사과하세요.”
“···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헛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녀석이 너무 윈스톤을 막 굴리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실언을 하고 말았다.
신경 쓰지 말라고 했음에도 신경 쓰이는지, 세르펜스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녀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갑자기 왜 그러···.”
“잠시.”
아기를 내 품에 떠넘기듯 안긴 후, 세르펜스는 창문을 열더니 그대로 몸을 날렸다.
“세르펜스? 어디 가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녀석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바라보던 그때.
펑 하는 폭발음이 들리더니, 저 너머에서 새하얀 눈이 내렸다. 아니, 폭발의 여파로 쌓여있던 눈이 흩날렸다.
– 쾅!
상황 파악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그 소음의 근원지는 보육원의 현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하던가?
방금 들렸던 폭발음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소리였으나,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줄 알았다.
세르펜스가 먼저 달려나갔다. 그가 적의 접근을 허락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녀석이 나가기 전에 보였던 그 표정이 내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놀이방 중앙에서 마법진을 그리던 에드나는 현관 쪽을 바라보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나도 원장실 밖으로 고개를 빼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윈스톤의 거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옆에는 생면부지의 남성이 함께했고, 등에는···.
“유지스?!”
“상황 설명은 나중에 하겠소. 우선 유지스 님을 편히 눕힐 장소가 필요하오.”
신발에 묻은 눈을 털어낼 여유조차 없는지, 윈스톤이 축축한 발자국을 남기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창백하다 못해 퍼렇게 질린 얼굴과 입가에 흐르는 붉은 피는 유지스의 상태가 위중함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곧장 아공간 주머니에서 침대를 꺼냈다.
보육원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에드나가 값비싼 침대를 턱턱 꺼내놓지 말라고 말했었지만, 그런 걸 떠올릴 경황이 없었다.
에드나도 그딴 건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우리는 윈스톤의 등에 업혀있는 유지스를 조심히 내려 침대에 눕혔다.
침대에 내려놓고 보니, 상태는 더 심각했다. 옷 이곳저곳이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어쩐지 얼굴에 핏기가 없더라니.
그만큼의 피를 흘린 거다.
“세르펜스는 이런 환자를 두고 대체 어딜 간 거야?!”
“지혈제와 붕대를 가져올게요!”
“기다리시오!”
윈스톤이 세르펜스를 찾아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나와, 약을 가지러 안쪽으로 달려가려는 에드나를 저지했다.
“응급처치는 끝났소. 주군께서 곁을 지나치실 때, 치료해 주셨소.”
신성력이 대충 불어넣기만 한다고 모든 상처가 치료되는 건 아니다.
그렇게 쉬운 거라면 성검 일행의 상처 치료는 성검으로 신성력이 증폭된 휴마누스가 도맡았겠지.
아무리 세르펜스라 해도 잠깐 스쳐 지나가면서 신성력을 사용한 거라면, 정말 응급처치밖에 안 된다.
“그리고 주군께서는 현재 추격자들을 상대하고 계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