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29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299화(299/1105)
299회
53. 공작님의 영입 제의 (3)
찜찜한 마음을 뒤로하며, 나는 스크롤들을 윈스톤에게 넘기고 마차에 탔다. 세르펜스는 마부석에 올랐다.
환자인 유지스는 진작 마차에 들어가 있었고, 에드나는 원장 놈과 악숭이를 마차에 짐짝처럼 싣고난 뒤 올라탔다.
그러니까, 좌석이 아니라 발밑에 뒀다는 뜻이다.
‘밖이 춥지만 않으면 세르펜스 옆에 타는 건데···.’
발을 내리면 사람이 밟히는 탓에, 나와 유지스는 신발을 벗고 좌석에 다리를 올렸다.
그것만 제외하면 마차 내부는 쾌적했다.
엉덩이와 등에 닿는 쿠션이 매우 푹신하다. 바깥의 찬 바람도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나와 유지스는 기껏 껴입은 외투를 한 꺼풀 벗었다.
“살다 살다, 제국의 공작님께서 직접 모시는 마차에 타게 될 줄은 몰랐네요.”
고맙다 못해 송구스럽다는 듯, 에드나가 중얼거렸다.
프로 세르펜스 탑승러인 나로서는 고작 이런 거로 뭘 그리 유난인가 싶다.
‘살다 보면 세르펜스가 운전하는 마차도 타고, 녀석이 모는 말도 타고, 녀석을 탈 수도 있지.’
나는 그런 것보다, 에드나가 자연스럽게 악숭이를 지르밟고 있는 모습이 더 신경 쓰인다.
유지스의 시선도 에드나의 발밑을 향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리의 시선이 한곳에 쏠리자, 에드나도 그것을 알아보고 넌지시 입을 열어왔다.
“혹시 신경 쓰여요?”
“혹시고 뭐고, 당연히 신경 쓰이죠.”
내 대답에 호응하듯, 옆에서 유지스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틴이 저를 X되게 하려고···.”
“잘못되게 하려고.”
“아, 죄송해요. 잘못되게 하려고 아이들을 미끼로 쓴 건 용서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그가 자격지심을 갖게 된 것에는 제 탓도 있으니···. 하지만 이자는 다르잖아요?”
에드나가 내 정정 신청을 곧바로 적용하여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마를 끌어들이기 위해 저를 이용했고, 저를 이용하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했어요. 만일 여러분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제 터전은 짓밟히고 무너져 내렸을 거예요. 그에 비하면 이런 건 화풀이조차 안 돼요. 그렇지 않나요?”
“그렇긴 하죠.”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자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삶을 짓밟으려는 자를. 제가 사람으로 대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요. 하물며 제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배려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죠.”
그래서 마음 편히 악숭이를 밟고 있다는 뜻이리라.
말에 설득력이 넘쳐흘러, 왠지 나도 같이 밟아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다리를 내리고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 순간.
“으악! 피해!!”
“꺄아아-!”
마차 밖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고, 뒤이어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히잉, 말이 울고 마차가 기우뚱 흔들렸다.
안정된 자세로 앉아있던 에드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마차 천장과 옆면을 짚는 것만으로, 쉽게 균형을 잡았다.
유지스는 엘프 특유의 타고난 균형감각으로 재빨리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나는···.
“악-!”
“으븝!”
자리에서 주륵 미끄러져, 본의 아니게 원장 놈을 무릎으로 찍어 눌렀다. 입에 재갈을 물고 있던 원장 놈이 고통을 호소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 와중에도 마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달렸다.
‘마차에 안전벨트라도 달아야 하나?’
나는 빈 앞좌석을 손으로 짚으며 몸을 일으킨 후, 마차 앞쪽에 난 작은 창을 열었다.
세르펜스에게 운전 똑바로 하라고 따지려는 건 아니다. 그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물어보기 위함이다.
창틀을 손잡이처럼 움켜잡으니, 흔들림도 버틸 만해졌다.
“괜찮으십니까?”
“지금이 괜찮고 자시고 할 때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습격입니다.”
세르펜스의 말대로라고 화답이라도 하듯, 또다시 쾅 소리가 들려왔다.
공격 마법이라도 날아왔나 보다. 아까 들렸던 폭음의 정체도 마법이었던 모양이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으로 마차가 기우뚱한 것 외에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다. 세르펜스가 바로 결계를 펼쳐 막아낸 거겠지.
가까운 거리에서 폭음이 들려와도, 말들은 날뛰지 않았다. 땅을 박차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훈련된 전마도 아닌 말들이 저러는 건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세르펜스가 신성력으로 진정시킨 게 분명하다.
“벌써요?”
“악마 숭배자들은 저희가 보육원을 떠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벌써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엑?!”
“보육원에는 베네볼렌 씨께서 설치하신 마법진들이 있었으니,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지면 공격해 올 줄 알았습니다.”
세르펜스가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처음 날아온 마법은 기습, 두 번째 날아온 마법은 결계의 강도 테스트라도 되는 걸까? 공격 마법도 더는 날아오지 않았다.
짧은 정적이 찾아왔고, 그것은 나를 진정시키기 충분했다.
“그걸 왜 지금 말해요?”
“예? 습격한다면 저희를 노릴 거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세르펜스어 해석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보육원이 아니라 우리를 습격할 거라는 말 자체에, 우리가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내포돼 있었다는 뜻이다.
그걸 알면서 윈스톤의 중요도가 어쩌고 하는 말을 대놓고 한 걸 생각해 보면···.
‘대화가 들릴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언제 발견했는지는 뻔하다.
출발 전, 녀석이 보육원 내부와 외부를 살피겠다며 돌아다녔으니.
“그때 바로 공격하시지!”
“그럴까 했지만, 정찰원인 것 같아서 그만뒀습니다.”
괜히 건드렸다가, 우리가 떠난 후 보육원이 습격받을까 봐 그냥 뒀다는 뜻이다.
“으음···. 그래도 인적이 드문 곳에서 공격해 오길 바랐는데···.”
세르펜스가 침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적들에게 쫓기는 중이건만. 녀석의 목소리만은 태연하기 그지없다.
오늘 새벽 아이처럼 펑펑 울어 대던 녀석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평정심이다.
“아, 됐고! 그래서 이대로 쭉 달려요? 어째 공격도 안 날아오는데요?”
“이대로 마을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멈출 생각입니다. 유인책이란 건 알지만···.”
“여기서 싸울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죠.”
평탄하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출발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악숭이들이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마차를 모는 게 세르펜스가 아니라 휴마누스였으면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을 게 분명하다.
악숭이들이 일반인을 마구잡이로 공격하여, 성검 일행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런 장면이 [성검의 주인]에 나왔었다.
‘마왕이 [성검의 주인] 시절 세르펜스를 알고 있는 게 이럴 땐 좋네.’
괜히 사람들을 공격하며 힘을 빼느니, 앞에 함정을 설치해놓고 그쪽으로 유인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는가 보다.
“으, 으븝! 읍!”
속으로 안도인지 착잡함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원장 놈이 바동거리며 난리를 쳤다.
시끄럽게 소리를 내 봤자 얻어맞고 기절할 걸 알기에, 보육원에서는 깨어나도 눈치만 조용히 살피더니.
이 멍청한 놈은 자기를 구해 줄 원군이라도 나타난 줄 아는가 보다.
이런 놈을 닥치게 하는 방법은 아주 쉽다.
“지금 나타난 건 악숭이들이고, 댁이랑 에드나 씨가 밟고 있는 악숭이를 죽이러 온 건데. 그렇게 반겨도 되겠어? 저 악숭이라면 몰라도 그쪽은 이용당한 거라고 주장하면 정상참작이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진짜 그냥 생을 포기하게? 그럴 거면 지금 당장 에드나 씨에게 죽여달라 하지그래? 어차피 댁은 아는 게 쥐뿔도 없어서, 뽑아낼 정보도 없는데.”
“읍···.”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도 파악하지 못한, 멍청한 원장 놈은 조용히 입을 닥쳤다.
브로치 하나 먹고 떨어진 모남이라면 모를까. 원장 놈은 변명의 여지 없이 악숭 세력의 조력자이며 이단이다.
하지만 제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놈답게, 내 말에서 희망을 얻고 입을 다물었다.
여담이지만, 기절한 척 기회를 노리던 악숭이는 유지스가 뒷목을 후려쳐서 기절시켰다.
과연. 정령력을 못써도 단련한 근육과 기술은 어디 가지 않았다.
말이 빠르게 달려 준 덕분에 우리는 금세 마을을 벗어났다. 마차가 멈춰 섰다.
“크아앙-!”
어디선가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작은 창 너머로 보이던 세르펜스의 뒤통수가 사라졌다. 마부석을 박차고, 그 짐승에게로 몸을 날린 거다.
작은 창으로는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문 쪽에 난 커다란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영롱한 빛을 뽐내는 신성 결계가 마차를 감싸고 있었다. 살짝 목을 빼 확인해 보니 말까지 보호해 놨다.
세르펜스는 결계 밖에서 거대한 짐승들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녀석과 다섯 마리의 짐승들 사이에는 금이라도 그어놓은 듯, 땅이 일직선으로 움푹 패어 있었다.
‘세르펜스가 검을 휘둘러 견제한 거려나?’
늑대와 닮은 검은 짐승들은 하나하나가 1.75 윈스톤 정도의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크르릉···.”
짐승이 긴장된 숨결을 내뱉을 때마다, 아가리에서는 하얀 입김 대신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렇다는 건 하나의 결론에 도착한다.
‘마물.’
볼타 산맥의 결계가 깨져서 그곳의 마물이 여기까지 도달할 시간이라면, 진작에 소란이 벌어졌을 거다.
즉, 평범한 동물에게 인위적으로 흑마력을 주입해가며 키워낸 마물이리라.
탄생과 동시에 농밀한 마핵의 기운을 받아들인 볼타 산맥의 마물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악숭이들은 얼마든지 그 차이를 메꿀 수 있다.
윈스톤이 투기장에서 상대해 온 사람들에게 그러했듯. 혹은 인스턴트 마법사를 만들어낸 방식으로 생명력을 불태워 강화한다면.
비용과 시간이 꽤 소비되겠지만, 능히 강력한 마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세르펜스는 그런 마물들을 앞에 두고도 조금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녀석이 기감을 펼쳐 주변을 살피는 중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마물들은 크르릉거리며 자세를 낮췄다. 당장에라도 세르펜스에게 달려들 듯, 앞다리 근육이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늑대의 형상을 한 마물들은 신호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다는 건 마물을 조종하는 흑마법사가 어디에 있다는 건데···.’
그렇기에 세르펜스도 쉽게 달려들지 못하고 주변을 살피고 있는 거다. 여기까지 유인한 놈이 마물만 덜렁 던져놓고 갔을 리는 없으니까.
휘이잉, 찬 바람이 불어왔다. 긴장감이 휘몰아쳤다.
가만히 마물을 노려보던 세르펜스의 시선이 우리의 머리 위를 향했다. 그의 얇은 검이 그곳을 향해 휘둘러졌고, 은빛의 신성력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크아아아-!!”
세르펜스가 검을 휘두르느라 열린 옆구리를 물어뜯기 위해, 마물 중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다른 네 마리의 마물은 세르펜스의 전후좌우로 흩어져 공세를 펼쳤다.
눈을 한 번이라도 깜박였다면 놓칠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콰르릉!
뒤늦게 세르펜스가 쏘아 보낸 신성력과 악숭이가 날린 마법이 맞부딪히며 거대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무슨 마법을 날린 건지, 하얀 눈발이 세르펜스가 쳐 놓은 결계 위로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