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0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04화(304/1105)
304회
53. 공작님의 영입 제의 (8)
암흑가에서 세르펜스가 악마를 상대할 때, 나는 신성 버프를 받은 상태였다. 그 덕분에 녀석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빠르다. 하지만 버프 없이도 녀석의 움직임이 보였다.
악마를 상대하던 그때와 비교하면, 초원을 달리는 치타와 집에서 우다다하는 고양이 만큼의 차이가 있다.
‘동작 자체가 크지 않다는 것도 한몫했지.’
정면에서 마주하는 적은 이성이 없다. 그런 광전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흑마법사는 검술에 조예가 없다.
따라서 움직임에 허와 실을 섞을 필요가 없다.
세르펜스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아슬아슬하게 적의 공격을 피하며, 그들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혔다.
눈 속에서 세르펜스의 발목을 노리던 해골 손은 어느 순간부터 튀어나오지 않았다. 발길질에 채여 모두 박살 나기라도 한 모양이다.
모습을 숨긴 채 암기를 날려대던 암살자 악숭이는 세르펜스의 공격을 받고, 나무에서 뚝 떨어졌다.
움직임이 없는 거로 보아 그대로 절명한 듯하다. 푹신한 눈밭에 떨어졌으니 추락이 사망의 원인은 아닐 거다.
다만 도끼 광전사와 철퇴 광전사 이후, 광전사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각각 검과 해머를 든 광전사들의 몸에 자잘한 검상이 생기고, 오러가 희미해졌지만 그뿐이었다.
흑마법사 또한 아직 무사했다.
“어, 어떡하죠? 많이 지쳐 보이시는데···.”
에드나가 초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말한 ‘지쳐 보인다.’의 대상은 다름 아닌 세르펜스다.
하얀 입김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통에, 녀석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그뿐만이 아니라 잔뜩 인상을 찌푸린 얼굴이라던가, 희미하게 흔들리는 검 끝, 땀에 의해 목덜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등.
그 모든 것이 녀석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연기지만.’
이후에 합류할 악숭이 무리를 방심시키기 위해서다.
호흡은 그냥 들이쉬고 내쉬고를 빠르게 한 것뿐이며, 흔들리는 검은 녀석이 일부러 손을 떤 거다.
표정 연기야 하루 이틀 하는 게 아니니 넘어가자.
문제는 머리카락인데, 애초에 저건 땀 때문이 아니다.
현재 눈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체온에 의해 녀석의 몸에 닿은 눈이 녹고, 그 물기에 젖은 머리카락이 들러붙은 거다.
완전히 팔팔한 상태는 아니겠지만, 연기를 펼칠 정도의 여력은 있는가 보다.
소품(?)까지 활용하며 열연을 펼치는 모습을 보니 되려 안심이 된다.
‘기왕 하는 거, 더 흠뻑 젖어야 제대로 지쳐 보일 것 같은데···.’
조금 아쉽다.
슬쩍 유지스를 바라보니, 그녀도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신성력으로 신체 반응을 조절해서, 인위적으로 땀을 흘리는 방법은 없으려나?’
나중에 세르펜스에게 물어봐야겠다.
“정말 큰일입니다. 곧 있으면 저희를 쫓던 또 다른 무리가 도착할 텐데···. 유지스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것도 문제지만···. 아까 날아왔던 마법들을 생각하면 흑마법사가 한 명뿐일 리가 없어요. 저 흑마법사 말고도, 다른 흑마법사들이 주변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거예요. 정말 큰일이네요.”
나와 유지스는 ‘긴장감 조성을 위한 엑스트라의 대사’ 비슷한 것을 사이좋게 주고받았다.
흑마법사 악숭이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말려 올라갔다. 우리의 대화와 세르펜스의 연기로 희망이 생긴 거다.
세르펜스는 그 성원에 힘입어, 검에 서린 신성력을 조금 거두어들였다. 찬란하던 신성한 빛이 희끄무레해졌다.
“에드나 씨, 마력은 얼마나 남았어요?”
“방어막을 유지해야 하고, 앞으로 더 나타날 적들을 생각하면 아슬아슬···.”
내 질문에 대답하다 말고, 에드나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후우─, 긴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슬아슬하다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부정했다.
“프라시더스 씨의 상태를 보아···. 어쩌면 방어막을 걷고, 남은 마력을 죄다 공격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몰라요. 지금 남은 마력량으로는 위험할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죄송해요. 저를 돕기 위해 먼 곳까지 오셨는데···.”
세르펜스의 연기가 정말 실감 나긴 했나 보다.
아까 마차에서 한계에 몰린 척하겠다는 얘기가 분명히 나왔었는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는지. 혹은, 세르펜스의 연기가 이렇게 뛰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는지.
에드나는 스태프를 꽉 움켜쥐며 죄책감을 토로했다.
무진장 미안해졌다.
그건 유지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녀의 표정 또한 어두워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으니, 침울한 분위기가 절로 생겨났다.
“만약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제가 어떻게든 버텨볼 테니, 두 분께서는 프라시더스 씨를 챙겨서 멀리 도망가 주세요.”
“네에?! 그럴 리는···, 아, 이게 아니라. 그럴 수는 없어요!”
“맞습니다. 그럴 수는 없고 말고요!”
결의에 찬 에드나의 말에 유지스가 화들짝 놀라 하며 소리쳤다. 나도 재빨리 유지스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나, 에드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나름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났어요. 그런데도 고아가 되었죠. 대륙이 전란에 휩싸이면 수많은 전쟁고아가 생겨날 거에요.”
“그런 얘기를 왜 지금···.”
“여러분은 대륙의 안녕에 필요한 분들이잖아요. 이런 곳에서 죽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갑자기 에드나가 ‘주인공의 성장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엑스트라의 희생 장면’을 연출했다.
악숭이 앞에서 세르펜스가 연기 중이라는 걸 까발릴 수도 없고.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그때.
– 까앙!
세르펜스의 얇은 세검이 무지막지한 해머와 맞부딪히며 부러졌다.
당당하게 무기를 현지에서 조달하겠노라 말했던 그는. 검 광전사의 손에 들린 검을 빼앗지 않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도끼와 철퇴를 손에 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날아왔던, 바닥에 꽂힌 단검도 뽑아들지 않았다.
아공간 주머니 안에 예비용 검이 넘쳐났지만, 꺼내지 않았다.
‘일부러 부러뜨린 것 같은데···?’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지치기 전에, 슬슬 끝을 볼 생각인가 보다.
한 발짝 크게 물러난 세르펜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새하얀 입김이 피어나며 시야를 가리는 게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모으고 두 명의 광전사들을 노려보았다.
세르펜스의 검에 깃들었던 신성한 빛은 옅어졌지만, 하늘은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그의 청은 색 머리칼이 새벽빛에 물들어 오묘하게 빛났다.
검푸른 오러를 뿜어내는 적들을 향해, 부러진 검을 겨누는 그 모습이 자못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 피유우우─, 퍼엉!
흑마법사가 난데없이 하늘을 향해 불덩이를 쏘아 올렸다.
하늘 높이 올라간 불덩이가 혼자 폭발했다. 어디로 보나 신호탄이었다.
– 콰르르릉!!
눈앞이 검은빛으로 번쩍했다. 세상의 ‘밝음’을 집어삼키는 듯한 빛이다.
검은색 번개가 에드나가 만들어낸 방어막에 내리쳤다. 방어막이 크게 진동하며 타닥타닥 스파크가 튀었다.
번개는 세르펜스에게도 내리꽂혔다.
하늘에서는 번개가 내리쳤고, 바닥에 깔린 눈 녹은 물이 전기를 머금고 파지직거렸다.
그 탓에 세르펜스는 발을 새로 디딜 때마다 신성 결계를 밑에 깔아야 했다.
– 우르릉, 쾅!
단발성 마법이 아니라 광범위로 적용되는 마법이었나 보다. 사방에서 검은 번개가 쳤다.
에드나는 방어막에 마력을 더했다.
피아 구분이 없는 마법인지, 흑마법사 악숭이 또한 방어막을 펼쳐 자신의 몸을 지켰다.
마땅한 자기 보호 수단이 없는 광전사들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쓰러졌다.
“적의 원군은 아직 안 온 게 아니었어요! 어쩐지 흑마법사가 한 명밖에 보이지 않는 게 신경 쓰이더라니···. 그들과 합류해서 이런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나 봐요. 몸 상태만 정상이었으면 진작 알아챘을 텐데···.”
악숭이들의 위치를 찾으려는 듯, 유지스가 연신 고개를 두리번대며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마법을 펼치고 있는 적들이 모습을 드러낼 리는 만무했다.
“어···? 세르펜스는 어디 갔죠?”
“녀석이라면 유지스가 두리번거리는 동안에 저~쪽으로 뛰어갔어요.”
녀석이 향한 곳에는 악숭이들이 있을 거다.
광범위 마법을 유지하느라 여념이 없는 흑마법사들을 기습하러 간 거다.
부러진 검을 대충 집어 던지며, 참 잽싸게도 달려가더라.
에드나가 방어막을 유지 보수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봤다면 어처구니를 영원히 상실할 뻔했다.
세르펜스가 사라진 지 수 분의 시간이 흘렀다.
끝없이 쏟아질 듯했던 검은 번개가 멎어 들었다.
“끄, 끝난 건가요···?”
에드나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어막 너머로 눈 녹은 물이 파직거리며 스파크를 내뿜고 있었기에, 방어막을 유지한 채였다.
“아직이요. 저기 흑마법사가 남아있잖아요?”
사방에서 떨어지는 번개 때문에 방어막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세르펜스가 사라진 방향을 ‘이게 아닌데···?’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던 흑마법사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언뜻, 놈의 시선이 마차 바닥과 혼연일체가 된 악숭이에게 향한 것 같다.
“저놈이 이번 일의 대가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생포하는 게 좋지 않···.”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돌연 흑마법사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안색이 안 좋다고 표현할 수 있는 색이 아니다.
놈이 만들어 낸 보호막이 스르르 걷혔다. 동시에 놈의 몸도 쓰러졌다.
– 파직, 파지직···.
정적이 흘렀다.
세르펜스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그 정적은 더 길어졌을 거다.
“으음, 결국···.”
녀석은 마치 이렇게 될 것을 알았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손에는 기절한 악숭이 하나가 덜렁 들려있었다.
에드나가 방어막에 사람 하나 드나들 구멍을 만들어냈고, 세르펜스는 그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독···이려나요?”
“어떤 종류의 힘이든, 몸 안에 ‘기운’을 담고 있는 자는 독에 쉽게 당하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독을 받아들이려 해도, 죽음이 가까워지며 의식이 무의식으로 전환되는 순간. 몸 안의 기운이 그것을 배척하려 합니다. 극독이라 하여도, 저자의 흑마력이면 적어도 1분은 버텼어야 합니다.”
“그럼요?”
“일종의 저주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력이라면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한 겁니다.”
녀석이 오늘도 친절한 설명을 내게 베풀며, New 악숭이를 밧줄로 꽁꽁 묶었다.
“이제까지 생포한 악숭이들은 그런 거 안 했잖아요?”
“그럴 겨를이 없었잖습니까.”
“···아.”
세르펜스의 악숭이 생포 비결을 알게 되었다.
빛과 같은 빠르기로 상대를 제압하여 기절시킨다. 심문 도중 흑마법을 사용할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 또 기절시킨다.
더 이상 캐낼 게 없으면 기절 시킨다. 이후에 깨어나도 기절시킨다.
“잠깐, 그럼 수면제 같은 것도 소용없어요?! 자꾸 때려서 기절시키기 좀 그래서, 앞으로는 수면제라도 사서 들고 다닐까 했는데···.”
“네, 소용없습니다.”
“······.”
마력 구속구 말고는 정말 답이 없는가 보다. 정말 어디서 구하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