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0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06화(306/1105)
306회
53. 공작님의 영입 제의 (10)
제대로 된 티타임을 즐길 겨를도 없이, 우리는 후다닥 차를 마시고 마차에 올랐다.
다그닥거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마차가 출발했다.
세르펜스는 정자세로 앉아서 잘 수 있다지만, 내게 그런 묘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환기를 위해 열어뒀던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베개를 꺼내, 닫은 창문에 가져다 댔다.
여기에 머리를 기대고 잘 생각이다.
“세르펜스, 자는 척하지 말고 진짜 자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어째 대답이 한 박자 늦다.
나는 의심 어린 눈으로 옆에 앉은 세르펜스를 매섭게 노려봤다. 녀석은 슬그머니 내 시선을 피해 정면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에드나 앞에서 잔소리를 퍼부을 수도 없고. 미심쩍지만 그냥 넘어가 줘야지 어쩌겠는가.
“그럼 에드나씨, 저희가 자는 동안 악숭이 감시 잘 부탁합니다. 특히 신규 악숭이요. 쟤는 마력 타래 안 끊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기절할 때까지 머리를 때리면 되는 거죠?”
“······.”
그녀의 과격함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저런 말을 듣고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제가 웬만하면 이런 말은 진짜 안 하거든요?”
“네?”
“차라리 세르펜스를 깨우세요.”
“···네.”
나는 에드나에게 ‘악숭이 기상 시 대처 요령’을 알린 후에야 눈을 감을 수 있었다.
* * *
“시온, 일어나십시오.”
세르펜스의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기울어진 세상이 보였다.
몇 번 눈을 깜박이고 나서야 내가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옆에 앉아있던 세르펜스는 어느새 내 맞은편. 에드나의 옆에 앉아 있었다.
“어, 음···. 도착했어요?”
“거의 다 왔습니다.”
나는 눈을 비비며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베고 있던 베개를 아공간 주머니 안에 집어넣고, 머리를 대충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낼 즈음, 마차가 멈춰 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마차에서 내리자 순백의 갑옷을 입은 성기사가 우리에게 다가와 질문했다. 말투는 정중했으나 표정은 딱딱하기 그지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말고도 여러 성기사들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했다.
바닥은 여기저기 패여 있다.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악숭이···, 그러니까 악마 숭배자들을 잡아왔어요.”
세르펜스는 마차에서 악숭이들을 내리는 중이었기에, 내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잡아 왔다면···?”
“생포해 왔어요. 한 명은 잡은 지 좀 돼서 마력 타래를 끊어 놓은 상태고, 또 한 명은 방금 잡아서 아직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동조자 같은 건데···. 얘기하자면 좀 길어요.”
“세 명이나···. 으흠, 협조 감사합니다.”
성기사는 주변의 동료 성기사를 불러들여, 세르펜스가 맨땅에 내려놓은 악숭이들과 원장 놈을 들고 신전 안으로 옮기게 했다.
“그나저나 또 악마 숭배자인가···?”
성기사가 이마를 짚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골머리가 아프다는 듯한 태도다.
“또라뇨? 저희 말고도 악숭이를 잡아온 사람이 더 있어요?”
“그게 아니라 로시오 상단의 일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거기에도 악마 숭배자가 나타났었잖아요.”
마부석에서 내린 유지스가 다가오며 자신의 추측을 얘기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는 듯, 성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 아니라, 신전에도 악마 숭배자들이···. 아! 혹시 상단 테러 사건 당시, 사람들의 대피를 도우셨다는 그 엘프 분이십니까?”
“네, 맞아요.”
유지스가 기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긍정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보다 신전에도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예. 하필 로시오 상단 측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아니, ‘하필’조차 아니죠.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춰, 본 신전에도 악마 숭배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어쩐지···. 큰 사달이 났는데 교단 관계자분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면목이 없습니다.”
성기사의 얼굴에서 경계심이 사라졌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유지스에게 묵례했고, 유지스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심각한 상처를 입은 채, 놈들에게 쫓기게 되셨다 들었는데···.”
“다행히 일행들과 합류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신성력을 말입니까?”
놀랍다는 듯, 성기사의 시선이 우리 일행을 훑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던 세르펜스가 내 옆에 섰다. 녀석은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걷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참고로 후드를 쓰고 있던 이유는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한 일종의 연출이다.
“세르펜스 A. 프라시더스라고 합니다. 성검의 주인으로부터, 이곳에서 벌어질 악마 숭배자들의 만행을 막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청은 빛 머리칼이 사락거리며 흔들렸다.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는 세르펜스의 모습은 신성함 그 자체였다.
제국의 공작이라는 직책 대신 부탁을 받고 온 사람이라는 소개는 언뜻 자신을 낮추는 것처럼 들렸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곳은 신 룩스메아를 모시는 신전이며, 성검의 주인은 신에게 선택받은 영웅이다.
그런 영웅에게 대륙의 골칫거리인 악숭이 처단을 부탁받았다. 그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이 머나먼 타국까지 찾아온 것이다.
성스러운 외모와 숭고한 목적. 거룩한 마음씨.
“오오···.”
눈앞의 성기사는 그 요소들에 감탄을 흘렸다.
세르펜스는 신분 증명패를 내밀었으나, 성기사는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는 쉐인 B. 하워드라고 합니다. 프라시더스 님의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쉐인이라 소개한 성기사의 입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슬금슬금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쓰는 모습이다.
흔하디흔한, 상투적인 답변도 세르펜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면 특별한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우선 자세한 상황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여기서 계속 대화를 나누기도 좀 그러니, 안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저도 그러고는 싶지만···.”
세르펜스가 말끝을 흐렸다. 안타깝다는 듯 시선을 살짝 내리까는데, 타이밍 좋게 그의 긴 속눈썹에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 광경을 정면에서 맞닥뜨린 쉐인의 표정은 아주 가관이다. 성기사는 자신이 세르펜스에게 큰 결례라도 범한 게 아닐지, 전전긍긍해 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로시오 상단은 악마 숭배 세력과 연계하고 있었습니다. 상단 활동을 통해 올린 수익은 악마 숭배자들이나, 그들의 협조자에게로 흘러들어 갔을 겁니다. 그런 이유로 여기 있는 유지스에게 상단 조사를 맡겼던 겁니다.”
“즉, 이번 테러는 그 증거를 없애기 위한 자작극이라는 겁니까?”
쉐인의 질문에 세르펜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담한 일이라고 말하는 듯, 어두운 표정은 덤이다.
“그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그렇다면 다른 목적도 있다는 겁니까?”
“어쩌면 아직 증거가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월권이 아니라면, 로시오 상단의 본단을 조사해보고 싶은데···.”
녀석이 쉐인의 말을 무시하며 딴소리를 했다.
세르펜스는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기다란 속눈썹을 날갯짓처럼 살랑거렸다.
천사 같은 미모의 뜻이 ‘착한 얼굴’이 아니라 ‘신성하게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걸 깨닫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월권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습니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성기사가 천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애초에 세르펜스가 자신의 질문을 무시하며, 제 할 말만 떠들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표정이다.
‘월권은 세르펜스가 아니라 저 성기사가 하는 것 같은데?’
외부인에게 조사를 맡길 수 있는 권한이 과연 저 성기사에게 있을지 의문이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 주실 수 있습니까? 가는 동안, 아까 말씀드렸던 악마 숭배자들의 다른 목적과 제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 등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세르펜스가 자신이 씹었던 말을 ‘말씀드렸던’ 말로 둔갑시켰다.
녀석의 말에 쉐인은 크게 기뻐했다. 아닌 척했지만 다 티 난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세르펜스는 신성력의 양도 양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기술 또한 매우 뛰어나다. 검술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신앙심 또한 드높다고 정평이 났다.
같은 분야의 최고 실력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셈이다. 그것도 전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다 큰 성인이라도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게 당연하다.
“물론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워드 님.”
세르펜스가 무척이나 기쁘다는 듯이 밝게 웃었다. 눈이 부실 지경이다. 어디서 선글라스라도 구해봐야겠다.
“아 참. 그리고 신전을 습격했다던 악마 숭배자들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당연히 말씀드려야지요!”
정말 말하는 게 당연한 걸까?
나는 눈앞의 성기사를 앞으로 월권기사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유지스가 다시 한 번 고삐를 잡았고, 나와 세르펜스, 에드나, 월권기사는 마차에 올라탔다.
어쩐지 월권기사를 유괴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마차에 타고 나서야 에드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그녀는 뭔가에 홀린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르펜스와 월권기사가 나눈 대화의 흐름이 명백하게 이상한데, 다들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게 괴상한 탓이다.
이상한 게 세상인지 자신인지, 헷갈리는 것처럼 보였다.
에드나가 세르펜스의 얼굴을 안 보고 몇 걸음 뒤에 떨어져 있던 탓이다. 녀석의 표정 연기를 봤다면 월권기사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신전에 들이닥친 악마 숭배자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흑마법사들은 마법을 쓸수록 바짝바짝 말라갔고, 무기를 든 자들은 인간 같지 않은 괴력을 보였습니다.”
“아, 그건 그거네요! 인스턴트랑 약물 중독!”
아는 얘기라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외쳐버렸다. 누가 다짜고짜 스피드 퀴즈를 내면 엉겁결에 답을 말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월권기사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인스턴트는 그냥 일반인인데, 악숭이들이 만든 시약을 투여받아서 마력 대신 피와 생명력을 소모해서 마법을 쓰는···. 아, 이쪽도 약물이구나? 악숭이 얘네 약물 참 좋아하네.”
“그 내용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위쪽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기를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전에 마주쳤었거든요.”
애초에 그 정보를 넘긴 게 세르펜스다.
이 월권기사는 거기까지는 모르나 보다. 저래 보여도 교단 내에서 높은 직책의 성기사인 게 아닐까 했건만. 그냥 평범한 월권기사였다.
“그리고 후자의···, 괴력을 가진 사람들은 바스툴 왕국의 투기장 사건과 관련된 거잖아요? 당시 피해자인 윈스톤 경이 세르펜···, 에베베베-! 공작님께 충성을 맹세했으니. 공작님과 공작님의 보좌관인 제가 아는 것도 당연하죠!”
“······.”
일부러 공작님을 여러 번 강조해서 말했지만, 별 도움이 안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