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0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10화(310/1105)
310회
53. 공작님의 영입 제의 (14)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맛있는 냄새다.
입술에 촉촉한 무언가가 닿았다. 무의식중에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으니, 크리미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느껴졌다.
살짝 벌려진 입안으로 무언가가 침입해왔다. 적당히 온기가 있어 따뜻하다.
다소 눅눅하지만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적당히 수분을 머금어 부드럽다.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을 씹어야 한다는 것을.
입안으로 들어온 무언가를 씹었다. 물 먹은 스펀지를 쥐어짠 것처럼, 액체가 터져 나와 입안을 촉촉하게 적셨다.
우물우물 계속해서 턱을 움직였다. 씹다 보니 약간의 단맛도 느껴졌다. 알 듯 말 듯한 맛이다.
‘배고픈 상태로 잠드니, 먹는 꿈을 꾸는구나!’
이렇게 실감 나는 꿈은 처음이다.
아-, 입을 벌리니 또다시 축축한 무언가가 입안에 들어왔다. 가만히 누워서 입만 벌리면 먹을 게 입속에 들어오다니. 세상에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런 걸 두고 누워서 떡 먹기···. 아니, 이건 떡이 아니다.
‘빵.’
그래, 이건 빵이다. 그것도 수프를 듬뿍 머금은 빵. 내가 느낀 단맛은 탄수화물 특유의 단맛이었다.
그렇다면 수프는 무엇인가.
코를 킁킁거리자 고소한 크림 향 사이로 짭짤한 바다 내음이 언뜻 스치는 듯도 하다. 이건 해산물 향이다.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클램 차우더 수프!!”
나는 정답을 외치며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눈을 뜨니, 한 입 크기로 찢은 빵을 수프에 담그고 있는 세르펜스와 눈이 마주쳤다.
하얀 수프 안에는 바지락이 몇 개 들어있었고, 입을 활짝 벌린 조개껍데기 사이로 통통한 조갯살이 엿보였다.
“···맞췄다.”
눈을 동그랗게 뜬 세르펜스가 정답을 인정했다. 하나도 안 기쁘다.
어이가 없어 입을 벌리니, 이번에도 입안에 빵이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씹으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 애썼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클램 차우더의 녹진한 맛이 이곳이 현실임을 깨닫게 했다.
생각이 정리된 나는 입을 열었다.
동시에, 세르펜스가 내 열린 입에 빵을 욱여넣지 않도록. 손바닥을 내밀어 녀석의 행동을 저지했다.
“자는 사람한테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당신이 원했잖은가. 설마 기억나지 않는 건가?”
이제 일어났으니 스스로 먹으라는 듯, 세르펜스가 수프와 빵. 그리고 귤이 담긴 쟁반을 내 무릎 위에 올렸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수프를 떠먹으며, 잠들기 전 상황을 회상했다.
회상 시작. 마차에서 잠들었다. 회상 종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밥을 먹여달라고 부탁한 기억은 없었다. 세르펜스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시온이 자면서, ‘나도···. 나도 먹을래, 나도 줘, 나도 먹을 거야! 배고파아-···.’라며 잠꼬대를 하셨어요. 아마도 음식 냄새 때문에 잠꼬대를 하셨나 봐요.”
유지스의 목소리다. 그녀는 테이블 앞에 앉아 귤을 까먹고 있었다. 귤껍질 옆에는 빈 접시들이 놓여있다.
따뜻한 난로의 빛이 귤 까먹는 엘프를 비췄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 같으면서도 묘하게 판타지스럽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장식과 낯선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곳이 신전에서 제공해 준 손님 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식사를 왜 여기서 하고 계신 거죠? 여긴 식당도 없대요?”
“제가 낯을 가리는 중이라서요.”
내 질문에 밝고 사교성 넘치는 유지스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낯을 가려 남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방에 와서 먹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왜 하필 내 방에서 이러고 있는지는 안 물어봐도 뻔하다. 세르펜스가 오자고 했겠지.
“에드나 씨는요?”
“세르펜스는 혼자 식사를 할 제가 신경 쓰인다며 따라 나왔고, 에드나 님께서는···.”
“낯가리는 설정의 유지스는 챙길 수 없었고, 세르펜스는 챙길 생각을 안 했을 테고. 에드나 씨는 혼자 신관들 사이에서 식사 중이겠네요.”
내가 같은 상황이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았다.
상상만으로도 숨 막힐 듯 어색하다. 불쌍한 에드나.
어쨌든 이 자리에 나와 세르펜스, 유지스뿐이라는 게 확실시되었다. 좋은 기회다.
“세르펜스.”
“음?”
“꿇어요.”
“······?”
세르펜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녀석의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마주 보고 나서야,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다.
나는 쟁반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에 쟁반을 놓고 침대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세르펜스, 신발 벗고 올라가서 무릎 꿇어요.”
그제야 세르펜스가 침대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 손도 번쩍 들어 올렸다. 나는 다시 침대로 다가가 녀석의 등 뒤로 베개를 대주었다.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베개에 등을 기댔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싶다. ‘무릎 꿇고 손들어’는 불편한 자세를 취하게 하는 것에 의의가 있거늘.
살짝 뒤를 돌아보니, 유지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도 따끔하게 혼내지 못하고, 결단성 없이 휘둘리는 부모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다.
‘베개라도 치울까?’
시무룩한 세르펜스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다.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보고 반성하는 표정이다.
아이가 반성하려고 노력 하는데, 굳이 아이에게 힘든 체벌을 강요할 필요가 있는 걸까?
무릎만 꿇게 했는데 스스로 손을 올려 힘든 길을 가려는 아이에게, 기댈 곳을 빼앗아야만 하는 걸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베개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유지스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자, 세르펜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죠? 말해보세요.”
“자는 사람에게 빵을 먹였다. 아무리 배고파 보여도 그러면 안 됐었는데···. 미안하다.”
시들펜스가 울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태도가 아주 보기 좋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려는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아이가 자고 있는 부모님 입에 음식물을 넣는 건 흔한 일이거든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어요.”
자칫 잘못해서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면 위험할 수도 있으나, 치료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동석했다. 동석했다기보다는 세르펜스 본인이지만.
어쨌든 안전성도 확보되었으니 문제 될 건 없다.
한 번 타이르기는 해야겠지만, 혼내야 할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맛있는 걸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잘 알아요. 하지만 자는 사람 입에 넣는 건 안 돼요. 기다렸다가 일어나면 주세요. 아셨나요, 세르펜스 어린이?”
“으음···. 알았다.”
세르펜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요, 세르펜스. 어린이라는 말에는 부정 안 하셔도 되는 건가요?!”
“네, 됩니다.”
유지스의 경악 어린 말에 세르펜스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내가 녀석을 애 취급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그러지 말란다고 안 할 내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백 년 안에는 다 크겠죠?”
유지스가 내게 물었다. 과연 엘프라서 그런가, 시간 개념이 남다르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수프를 크게 한 수저 떠 마셨다. 조갯살도 딸려 들어왔는지, 통통하고 탱글탱글한 조갯살이 입안에서 팍-하고 터졌다.
싱싱한 바지락을 썼나 보다.
“그게 아니라면···, 으음···. 식사할 때 안 깨워서?”
“제가 너무 곤히 자는 바람에 미안해서 못 깨운 거겠죠. 아니면 깨웠는데 안 일어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침과 점심을 걸러서?”
“안 드셨어요?! 아니, 그 전에 지금 대체 몇 시죠?! 점심때인 줄 알았는데?!”
“저녁 여덟 시다.”
어쩐지 눈이 번쩍 떠지더라. 완전히 푹 자 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잠들어버리자, 다들 피곤해져서 그냥 자러 간 거겠지.
“유지스라도 세르펜스 데리고 뭐라도 챙겨 드시지 그러셨어요.”
“저는 낯을 가리는 중이라서요.”
“······.”
설정값 때문에 식사도 들고 와서 따로 하는 사람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었나 보다.
그녀는 극한의 컨셉충이었다.
아니다. [성검의 주인]에서는 이러지 않았으니, 컨셉충이 ‘되었다.’라고 표현하는 편이 알맞으리라.
전부 세르펜스의 영향이다.
“이, 이것도 아니었나? 그렇다면 대체···.”
유지스가 컨셉충이 된 것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르펜스는 아직도 낑낑대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떠올리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 마법사를 안 챙겨서 그러나?”
그게 잘못인 걸 알고 있긴 한가 보다.
알면서 왜 그랬는지 묻고 싶었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지적하면 애가 지친다. 다음을 기약하자.
“그것도 잘못이긴 한데, 일단은 넘어가죠. 다른 이유가 있어요.”
“으으음···.”
고민에 빠진 세르펜스의 모습을 지켜보다, 무심코 손에 들린 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폭신한 식감이 매우 훌륭하다. 수프에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그냥 빵 자체만으로도 맛있다.
이 집 요리 잘하네!
“혼내는 사람 태도가 그게 뭐지?”
“죄송해요.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럼 어쩔 수 없군. 계속 먹어라.”
세르펜스가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동안, 나는 빵과 수프를 먹었다.
한석봉이 글을 쓰는 동안, 한석봉 어머니가 떡을 먹은···이 아니라 떡을 썬 것처럼.
내가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녀석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아, 이래서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바로바로 지적해 줘야 하는 건데.’
시간이 흐르면 자신이 왜 혼나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린다. 지금이 딱 그 짝이다.
나는 힌트를 주기 위해 유지스를 눈짓했다.
“···혹시 저도 뭔가 잘못 했나요?”
애꿎은 유지스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어왔다.
그녀는 슬쩍슬쩍 의자에서 궁둥이를 붙였다 뗐다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자신도 세르펜스 옆에 가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건지 갈등하는 모습이다.
“아니요. 유지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유지스는 이번 일의 피해자다. 나는 그녀에게 내 몫으로 배정된 귤을 내밀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얌전히 귤을 받았다. 유자는 아니지만, 그 친척쯤은 된다. 귤도 좋아하나 보다.
‘그런데 이런 추운 나라에서도 귤이 나나?’
수입품인가보다.
“혹시 당신과 유지스가 낯선 사람의 접촉을 싫어한다고 거짓말한 것 때문인가?”
“대강 비슷합니다.”
“미안하다···. 그리고 유지스에게도 죄송합니다.”
세르펜스가 양팔을 번쩍 들어 올린 자세 그대로 고개만 푹 숙이며 사과했다.
녀석의 사과에 유지스는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용서한 거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아직 마음이 안 풀렸음을 행동으로 보였다.
“왜 그러셨어요?”
“그자가 당신을 뺏어가려고 해서···.”
“아니, 아니! 그게 아니죠! 그냥 들어주려고 한 것뿐이잖습니까?”
“그자를 어떻게 믿고 당신을 내어주지?”
“성기사가 저를 납치하기라도 할까 봐요?!”
“그게 아니더라도···. 그자가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당신이 크게 다칠 것 아닌가. 나라면 넘어지더라도 당신과 유지스를 우선적으로 지키려 하겠지만, 그자는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잖은가.”
친구가 소중한 장난감을 빌려 가서 함부로 쓰고 망가트릴까 봐, 불안해서 그랬다는 뜻이다.
“세르펜스, 그러면 안 돼요. 같은 반 친구랑 사이좋게 놀아야죠.”
“그자는 내 친구가 아닐뿐더러, 같은 반 또한 아니다.”
옳은 말이다. 잠시 착각했다.
세르펜스는 어린이집 고양이 반 친구가 아니며, 나도 장난감이 아니다.
“그런 사소한 건 넘어가고. 뭐, 그래요. 세르펜스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생기고, 욕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때로는 나눌 줄도 알아야 하고, 어느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원한다고 해서 전부를 가질 수는 없어요.”
“으음···.”
세르펜스가 침음을 흘렸다. 표정이 진지하긴 한데,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단순히 혼나서 침울해진 것 같다. 조금 삐진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짚어나가자.
“세르펜스. 저와 유지스를 옮겨야 하는데, 누가 도와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 말고, 그냥 정중히 거절한다.”
이 부분까지 처음으로 돌아가길 바란 건 아니었다. 녀석이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면, 내가 조곤조곤 설명해 줄 생각이었다.
나는 조용히 머리를 감싸 쥐었고, 유지스가 그런 나에게 무언가 내밀었다. 귤의 낱알이다. 통통한 반달 모양이 탐스럽다.
‘설마 내가 귤을 까달라고 건넨 거라고 착각한 건 아니겠지?’
그녀의 친절은 고마웠지만, 이미 그녀에게 준 귤이다.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