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1화(31/1105)
31회
8. 공작님 없는 공작저 (2)
나의 순정이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앞서, 가차 없이 내던져버렸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무시하고 넘어갈 내용이 아니었다.
‘대체 누가, 무슨 의도로 내게 이런 글을 보낸 거지?’
이것을 보낸 사람은 세르펜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어째서 그것을 나에게 알리려 하는가.
‘···세르펜스도 날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으려나?’
내가 그에게 다가가려 한 것과 달리, 이 쪽지는 척 봐도 좋은 의도를 가지고 보낸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세르펜스를 향한 뚜렷한 악의가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몰래 불러내서 해야 할 만큼 뒤숭숭한 이야기는 뭐가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그의 보좌관인 나에게 알려야 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이 서신이 도착한 타이밍도 세르펜스가 자리를 떠난 이후다.
당일도 아니고 다음 날이라는 건 공작가 사람이 아닌 침입자가 따로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냥 조금 더 안전한 상황을 노린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쓰인 어조 상으로나 시기상으로나, 이건 정말 그의 치부를 밝히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세르펜스의 결점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지?’
그의 어린 시절?
그것은 안타깝고, 동정해줘야 할 일이지, 그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세르펜스의 정신적 결함은 충분히 약점이 될 만했다.
‘하지만 그걸 눈치챈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
다른 누가 봐서 눈치챌 수 있는 수준이었으면, [성검의 주인]의 스토리 자체가 성립되지도 않았다.
정신적인 면 외에, 꼬투리가 잡힐만한 게 뭐가 있을까?
그가 자신의 부모를 죽였다거나, 전 보좌관을 죽였다거나, 암흑가에 손을 뻗치고 있다거나···.
‘어쩌지? 전부 치명적인데?’
하지만 [성검의 주인]에서 그러한 사실을 들켰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암흑가에 대해서도, 악마 숭배 세력에서 세르펜스를 모함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 천운으로 들어맞았을 뿐.
부모와 보좌관 살해에 대해서 밝혀지는 일은 끝까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것을 보낸 사람이 정말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거라면?
그리고 그것을 세르펜스가 알아채, 원작이 시작하기 전에 살인 멸구를 했던 거라면···.
“···젠장.”
어쩐지 이것이 오리지널 시온이 죽게 된 원인일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역시 나가지 말아야 하나?
아니다.
만약 이대로 넘어갔다가, 나중에 엉뚱한 타이밍에 터지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다.
‘가령 예를 들자면 선택의 날 직후···.’
정말 세르펜스의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만나서 정체를 알아내어 그에게 알려야 하는 게 아닐까?
‘어떻게든 세르펜스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직접 만나지 않고도 상대방의 정체와 그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만 확정할 방법은 없을까?
“···잠깐. 글을 보낼 수 있다는 건 받을 수도 있는 거 아냐?”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으나, 꽤 그럴듯했다.
나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용건이라면, 내일 다시 방문해서 쪽지를 두고 가려 하지 않을까?
낯선 사람이 내 방을 마구 드나든다니, 몹시 뒤숭숭했지만 어쩌랴.
‘세르펜스를 비롯해 공작저의 전력 대부분이 빠진 탓이겠지···.’
누군가에게 알려 경비를 강화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것은 보류해두자.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공책을 한 장 찢어서, 그것에 글을 적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모르는 상대와 그런 외진 장소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어째서 공작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런 곳에서 해야 하는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함정이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라면 당신의 신원을 밝히고,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적은 종이를 반으로 접은 후, 알아보기 쉽게 겉면에 ‘답신’이라 크게 적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좋아, 그럼 이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솔레르티아의 작업실로 향했다.
원래 본신의 무력이 없는 사람은 안전을 돈으로 사야 하는 법이다.
“네, 150만 아스입니다~.”
호신용으로 쓸만한 스크롤을 사고 싶다는 나의 말에, 솔레르티아가 스크롤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가장 저렴한 스크롤이 50만이라고는 듣긴 했으니, 효용성이 큰 건 가격이 더 붙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너무···.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제 몸 하나 지킬 수 있는 정도면 됩니다.”
“네. 저급 방어용 스크롤, 160만 아스 짜리예요. 이것도 깎아드린 건데요?”
“······.”
이쯤 되면 오히려 50만 아스짜리 스크롤은 어떤 마법이 담겼는지 궁금해진다.
쓸데가 있긴 한 건가?
“시온씨 월급 안 받으셨어요? 공작가 보좌관이시면 꽤 받으실 텐데?”
“받긴 했는데···.”
그녀의 말대로 경력 하나 없고, 학벌도 실력도 별로인 신입 주제에 상당히 많이 받았다.
월급으로 450만에 품위 유지비로 100만 아스, 총 550만 아스나 받았으니.
참고로 여기서 말한 품위 유지비는 준남작위에 대한 것으로, 다음 달부터는 자작 위가 적용되어 200만 아스가 더 오를 예정이라는 설명을 추가로 들었다.
그리고 세르펜스가 미리 고지했던 대로 빚 변제는 ‘월급’에서만 회수되었다.
즉, 품위 유지비는 그대로였으니 남은 금액은 250만 아스. 이 정도만 되어도 상당히 넉넉한 금액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은 금액의 절반을 리벨론 가에 보내 버린 이후라는 것?’
사용인 중에서도 급여 일부를 고향에 보내는 경우가 많아, 한스가 모아서 보내준다기에 겸사겸사 나 또한 그에게 부탁했다.
‘그때 한스가 ‘주제에?’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었지···.’
어차피 숙식을 모두 공작저에서 무료로 해결하고 있었으니, 125만 아스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고 생각했다.
지금 스크롤 가격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음 달부터 보내는 건데···!’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 이미 늦었기 때문에 하는 게 후회인 거다.
아니면 그냥 자아 성찰이게?
“그, 그게···. 125만 아스를 제외하고 모두 본가로 보내버려서···.”
“아, 혹시 가문이 많이 힘드신··· 아니, 아니에요! 시온씨는 그··· 효자시네요.”
솔레르티아가 격려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빚을 갚는다는 얘기를 안 한 것이 천만다행.
한스도, 행정관들도 모두 내 월급에서 그것이 빠져나가는 중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녀는 세르펜스가 모두 갚아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으니.
졸지에 큰 빚을 얻어, 기울어가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희생하는 가장처럼 보일 뻔했다.
‘그나저나 저급 방어가 160만 아스라면, 대체 내 빚은 얼마나 되는 거지?’
세르펜스가 돈 가지고 장난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알아서 해달라고 했는데···.
이런 건 모르는 게 약이니, 안 묻길 잘한 것 같다.
···연봉 협상은 언제 하려나?
“으으─읏···. 조, 좋아요! 이번은 첫 구매 특전으로 재료비만 받을게요! 120만 아스만 주세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인 채, 인상 쓴 얼굴로 골똘히 고민하던 솔레르티아가 결단을 내렸다는 듯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만이에요! 그리고 이거 어디 가서 소문내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솔레르티아가 스크롤을 건네주며,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쩜 이다지도 상냥할 수가!’
안 그래도 나 때문에 가게 개업이 늦춰졌는데, 그나마 만든 스크롤도 원가로 넘겨주다니!
‘세르펜스보고 호구 운운하더니, 본인도 만만찮은 것 같은데?’
그나저나 원가가 120만 아스라면 그녀의 노동력이 40만 아스가 되는 셈인가? 저급 스크롤인데도?
“그런데 솔레르티아씨, 이 정도 스크롤을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십니까?”
“···마, 마법사는 연구하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요! 그리고 저는 실력도 출중하니까요! 완전 고급인력이에요!”
내 질문의 의도를 단박에 눈치챈 듯, 솔레르티아가 느닷없이 변명을 시작했다.
만드는데 얼마 안 걸렸구나, 이거···.
“연구비 지원받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 전액 지원은 아닌걸요!”
“······.”
그러고 보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의 재질이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인다.
애초에 마법 스크롤은, 연구비로 매일 막대한 금액을 날리는 마탑에서 수익 창출을 위해 제작·판매하고 있는 물건.
그것을 본직으로 삼는 그녀가 가난할 리 없었다.
“······.”
살짝 간과했던 점이 떠올랐다. 가게를 여는 날이 조금 미뤄진 것은 사실.
하지만, 결국 값은 모두 치렀으니 만들어 두었던 스크롤을 모두 판매한 것이나 다름없잖아?
‘원가 판매라고는 했지만, 대량 재고 처분할 때 끼워주는 덤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인맥 관리 및 장기적인 고객 유치를 목적으로 본다면···.’
호구 소리는 취소해야겠다. 수완이 대단한 여자다.
“참! 이거 ‘프라시더스 공작가의 보좌관님’에게 판매한 거니까, 계약 위반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공작님께 말씀해주셔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계약서 내용 중 수익 배분 사항이 있었다.
가게를 통하지 않은 개인 대 개인 거래는 자칫 계약 위반이 될 수도 있었다.
나로서는 미처 생각도 못 했던 부분. 과연 그녀가 제작한 스크롤에서 느껴지는 대로, 꼼꼼한 사람이었다.
“그보다 유력가의 보좌관이란 거. 역시 많이 위험한가 봐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조심하세요.”
솔레르티아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라?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 스크롤 비용···. 혹시 경비로 처리할 수 있는 건가?’
이 세계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은 그녀를 만난 것으로 갱신되었다.
* * *
정체불명의 사람으로부터 답장이 온 것은 그 다다음 날이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오늘 자정 세미타 거리 6번지로 나와라. 직접 만나서 알려주겠다.]“아, 왜 또!”
답장이 온 것은 반길 일이었으나, 정작 내용이 텅 비어있다.
첫술에 배부르랴, 계속 시도해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나가든 말든 생각해보자.
[그쪽은 부모님께, 모르는 사람은 함부로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도 못 배웠습니까?]>[일단 나오면 알려주겠다. 오늘 자정이야말로, 세미타 거리 6번지로 꼭 나오길.]
이번에는 바로 다음 날 답신이 왔다. 아니 근데 왜 자꾸 반말이지?
[네가 공작님에 대해 뭘 아는데? 보좌관인 나보다 더 잘 알아?]>[그것은 글로는 전할 수 없다. 세미타 거리 6번지로 나와라.]
네가 무슨 첫사랑을 시작한 10대 소년·소녀냐?
자신의 마음을 차마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어, 학교 뒤뜰로 불러내어 고백하는 소리 하고 자빠졌다.
[누구냐, 넌?]일요일은 쉬는 날이어서 내가 자리를 비우는 타이밍에 침입하기 어려웠는지, 이번 답신은 월요일 퇴근 후에 받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온 답변도 한결같았다.
>[약속 장소에 나오면 알려주겠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냐?!”
나는 정체불명의 쪽지들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지난 주말 구베르노 행정관에게 된통 깨졌는데!
오늘만 해도 그와 식사를 함께하며 문답을 주고받은 탓에, 눈칫밥을 먹은 터라 체할 것 같은 상태다.
‘그나저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이 편지는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 몰락한 어느 왕국에서부터 시작된 편지로···(중략)···이 편지와 같은 내용을 친필로 써서, 일주일 내로 7명에게 보내지 않는다면 불행한 일이 생기기 시작할 겁니다.
처음에는 종이에 손이 베이는 작은 일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중략)···
이 글은 모두 진실입니다.
300년 전 어느 왕국에서 수도의 게이트가 탈취당해, 하루아침에 망해 버린 것도 모두 이 편지를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저 또한 막대한 금액의 빚을 얻고 나서야, 고민하다 이렇게 펜을 듭니다.
명심하십시오.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닥치기 전에, ‘일곱 명’에게 ‘친필’로 보내야 합니다. 반드시.]
>[오늘이 마지막이다. 너의 전임자가 죽은 이유를 알고 싶다면 세미타 거리 6번지로 나와라.]
그놈의 세미타 거리 6번지···. 꿀이라도 발라놓았나 보다.
“···그래, 내가 졌다.”
더 이상의 시간 끌기는 무리인 듯했다.
그래도 전 보좌관에 대한 얘기라는 키워드는 얻었으니 나름 선방한 셈인가?
어쩔 수 없이 겉옷을 챙겨입고, 품 안에 솔레르티아 표 스크롤을 숨긴 채 저택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