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1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14화(314/1105)
314회
54. 공작님과 질의응답 (1)
“간식은 내일 사러 가기로 하고···. 그보다 처리해야 할 서류가 많으면 여기서 오래 머물러야 할 텐데, 괜찮겠어요?”
세르펜스는 돈만 낼 뿐, 공증을 받기 위해 서류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할 사람은 에드나다.
하지만 그녀 또한 우리와 함께 제국으로 향해야 했다.
윈스톤을 영입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땐 악숭이들이 맥을 못 출 때라 알아서 찾아오라고 방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힘을 갖췄다.
또한 기사와 마법사라는 직업적 특성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서류 문제는 위임장을 써서 대리인에게 맡겨두면 됩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왜요? 세르펜스, 현금 없어요?”
“돈이라면 있습니다. 하지만 비용이 얼마나 소요될지 알 수가 없으니···.”
“그냥 넉넉하게 주고, 남는 돈은 에드나 씨의 월급을 가불한 셈 치면요?”
“으음···.”
내 딴에는 그럴듯한 방법이라 생각했으나, 세르펜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머뭇거렸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한 번에 많은 돈을 떠맡게 될 전 원장님이 불쑥 욕심이 생겨서, 돈을 들고 튈까 봐 걱정하는 거다.
“하지만 부족할 수도 있잖습니까?”
에드나 앞에서 그녀의 은사를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세르펜스는 본심과 정반대의 말을 입에 올렸다.
“우선 교단에서 비용을 지급하고, 프라시더스 님께서 제국에 도착하신 후. 그곳의 신전에서 한 번에 대금을 치르는 건 어떻습니까? 프라시더스 님이시라면 신용도 확실하시니, 문제 될 건 없을 겁니다.”
예상치 못한 사람의 입에서 해결책이 나왔다.
월권기사가 문제 될 건 없을 거라 말하였지만, 그가 이런 제안을 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냥 일반 신관이라면 재무 쪽을 담당하나 보다 하며 넘기겠지만, 그는 성기사였다.
“그런 걸 월···, 아니, 성기사님께서 정하실 수 있는 거예요?”
“물어보러 가야죠.”
“······.”
“주교님께서도 당연히 허락해 주실 겁니다. 프라시더스 님께서 아이들의 미래와 대륙을 위해 이렇게 애쓰시는데! 룩스메아 님을 모시는 교단에서 고작 그 정도도 못 해주겠습니까?”
천사펜스의 고결한 얼굴과 청아한 목소리에 홀려, 정신머리가 출타한 월권기사가 당당하게 월권을 부르짖었다.
신앙심이 벅차올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자는 확실히 내겠다고 전해주십시오.”
“헉···! 그, 그런 걸 바란 게 아닙니다! 교단은 공익의 목적을 우선할 뿐, 그런 사익은 절대로 챙기지 않습니다!”
세르펜스의 말에 월권기사가 손을 내저었다.
이는 월권기사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자문회에서 교단이 황실로부터 돈을 뜯어가려고 얼마나 혈안인데···.’
맛있는 식사와 포근한 잠자리 등.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이 ‘신 룩스메아의 거룩하신 은총’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으니. 재정에 관한 걸 알 리가 있나.
“그렇다면 그냥 기부금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하지만 그게···.”
“제가 하워드 님께 너무 감사해서 그렇습니다.”
“흠, 흠! 그렇다면 프라시더스 님의 선의를 봐서라도···.”
월권기사는 선의로 제안했다. 세르펜스는 그 어떠한 이권도 챙기지 않았다.
그저 교단에 기부금을 내겠노라, 구두로 약속한 것뿐인데.
어째서인가 비리와 청탁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대화만 들으면 사과 박스라도 오간 줄 알겠다.
“그럼 시간도 늦었으니, 저는 슬슬 일어나보겠습니다.”
“예? 벌써요?”
“내일 아침 식사를 마치는 대로, 신전을 나서 보육원으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아이들 간식까지 사려면 다소 서둘러야 할 겁니다. 그러니 시온도 너무 늦지 않게 주무십시오.”
느닷없이 세르펜스가 시간을 운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는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아직 한창 떠들고 놀 때다. 심지어 나는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즉, 녀석의 행동은 이곳이 나에게 배정된 방이라는 걸 이용한 축객령이다.
‘제 볼일은 다 끝났다 이거지.’
– 드르륵!
녀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낯을 가리는 유지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밀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낯가림 설정이 점차 버거워져, 차라리 혼자 방에서 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녀는 방 안의 모든 이들에게 꾸벅꾸벅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조용히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마치 도망치는 듯한 빠른 퇴장이다.
“저도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월권기사가 밖으로 나갔다.
분위기에 휩쓸려 에드나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르펜스는 문지기처럼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다가, 에드나가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문을 닫고 나갔다.
순식간에 방 안에는 나 혼자 남았다.
‘그래 봤자 세르펜스는 다시 돌아오겠지. 창문으로.’
녀석은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 한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으니 멍하니 있는 게 어색할 만도 하다.
그리고 정적 속에 홀로 가만히 있다 보면,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하기 마련이다.
녀석이 일에 중독된 사람처럼 막중한 업무를 홀로 떠안은 건 책임감과 불신감 탓이나, 온전히 그 이유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르펜스에게는 잡념을 물리칠 수 있는.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핫초코라도 한 잔···. 아니다. 핫초코에도 카페인이 들어있으니까, 따뜻한 우유가 더 낫나?’
물을 끓이기 위해 주전자를 꺼내 물을 붓는데, 드륵 하고 창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세르펜스다.
“거기 앉아요.”
나는 흘깃 녀석을 곁눈질한 후, 물 채운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렸다.
막상 녀석의 얼굴을 보자 핫초코 쪽에 무게가 좀 더 실렸다.
세르펜스가 매일 사탕을 하나씩 챙겨 먹고 있다지만, 사탕의 단맛과 초콜릿의 단맛은 다른 단맛이다.
슬슬 초콜릿이 당길 때가 됐다.
“···당신이 내게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알고 있다.”
그저 물을 끓이고 있을 뿐인데, 내가 핫초코와 우유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것까지 눈치채다니.
드디어 세르펜스가 내 우쭈쭈 패턴의 분석을 마친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쪽인데요?”
“······!”
“뭘 그렇게 놀라요?”
“음, 아니다. 거기까지 눈치챘을 줄은···.”
“네?”
다른 건 모르겠고, 대화가 어긋났다는 사실만은 눈치챌 수 있었다.
“아니마 프루이토 쪽이다.”
여기서 아니마의 이름이 왜 나오는지. 대체 무슨 중간 과정을 거쳤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침묵이 깔렸다.
“이게 아니었···나?”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세르펜스, 저에 대해 좀 더 공부하는 게 어때요?”
세르펜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라면 애가 신나게 떠들 수 있도록, ‘아이고~.’, ‘그랬어요?’, ‘오구오구~.’ 등등. 적당히 리액션을 해 줬을 거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아니마의 이름이 나왔다는 건 꽤나 중요한 얘기일 터였다.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무슨 얘긴데요?”
내 질문에 세르펜스는 입을 여는 대신, 벽에 귀를 붙였다. 그걸로도 모자라 똑똑 두드려보기까지 했다.
이곳의 방음을 점검하는 거다.
평소라면 주저 없이 방음 스크롤을 꺼내 찢었을 테지만, 이곳은 신전이다.
신성력을 가진 이들이 잔뜩 돌아다닌다. 방음 스크롤을 쓰면 바로 들킬 테니, 안 쓸 수 있다면 안 쓰는 게 좋다.
세르펜스가 벽에서 귀를 떼고, 자리에 앉았다.
스크롤을 꺼내지 않는 거로 보아 방음이 나쁘지 않은가 보다.
“내가 어째서 믿지도 않는 베네볼렌 씨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려 했는지. 선우, 당신이 궁금해하고 있을 줄 알았다.”
“아, 맞다! 그거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그리고 그자를 고용하는 과정에서 보인 내 태도를 지적하려는 줄 알았는데···.”
내가 자신을 혼낼 줄 알고, 도둑이 제 발 저려 자진 납세하러 왔다는 뜻이었다.
알아서 혼나러 왔다니.
이를 기특하게 여겨야 할지, 혼날 걸 알면서 왜 그랬냐고 혼내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설마 혼나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죠?”
“선우가 나를 걱정하거나, 내 앞날을 위해 고민해 주는 건 기쁘지만, 일부러 심려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효심 깊은 세르펜스의 발언에 감동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우리 세르펜스, 벌써 다 컸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냥 감탄사 같은 거니까, 내버려 둬요.”
잠깐이라도 감동할 틈을 안 준다.
내가 장난스레 입술을 샐쭉거리자, 녀석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아직 안심하긴 일러요. 일단 이유를 들어 본 후, 혼내야 할 것 같으면 혼낼 겁니다?”
“칫.”
세르펜스가 작게 혀를 찼다.
내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건 기쁘지만, 혼나는 건 역시 싫은가 보다.
“아무튼 잘 왔습니다. 그간 세르펜스에게 묻고 싶었던 얘기가 한둘이 아니에요. 그런데 기회가 돼야 말이죠?”
“확실히. 단둘이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잠들기 전 두런두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바로바로 풀어냈을 텐데. 이곳에 와서는 잠조차 제대로 못 잤다.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은 당연히 없었다.
“우선 세르펜스가 먼저 화제를 꺼냈으니, 그 주제부터 얘기해보죠.”
“내가 베네볼렌 씨를 경계하면서도 그녀를 고용한 건···. 선우도 예상했겠지만, 가까이 두고 감시하기 위함이다.”
너무 뻔한 결과라 답을 맞혔음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 인형 놀이 마법을 빼돌린 마법사에 관한 얘기도 거짓말이죠?”
“역시 눈치챘나?”
“당연하죠.”
“그래, 전부 거짓말이다. 그 악마 숭배자는 끝까지 마왕이 전해준 마법이라 말하였다.”
응용 하나 들어가지 않은 기초 중의 기초 문제다.
이 정도 문제는 세르펜스학 입문반에 불과한 윈스톤이 와도 풀 수 있을 정도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에드나 씨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술책이잖아요?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을 곁에 둬도 진짜 괜찮겠어요? 맨날 신경을 곤두세워 경계해야 할 텐데. 신경과민증이라도 생기는 거 아닌지 몰라?”
“음?”
“엥?”
함정. 이번 역은 함정입니다.
사칙 연산만 잘하면 되는 기초 문제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함정 문제였다.
너무 쉽고 간단해 보여서 그 속에 숨겨진 함정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발목을 붙들려 버렸다.
‘세르펜스학 박사 학위를 딴 내가 이런 함정에 걸리다니!’
충분히 숙달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잔 실수가 거의 없어졌을 때. 자신감이 생겼을 때.
사람은 방심한다.
공부든 육아든 일이든. 뭐가 되었든 다 마찬가지다.
초보자라면 항상 긴장하고 있어서 절대 하지 않을 치명적인 실수.
그런 실수가 숙련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그 방심 때문이다.
‘이런 게 바로 겸손을 잊은 자의 말로라는 건가···?’
분하고 원통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쉬운 문제라 생각하고 지문을 대충 읽고 넘긴 내 탓인 것을.
“아까 어느 쪽이냐는 질문에 대답했잖은가. 내가 의심하는 건 성검의 동료인 ‘아니마 프루이토’다.”
어쩐지. 어느 쪽이냐는 질문에 아니마의 이름이 나온 게 이상하다 했다.
아니마와 에드나 중 어느 쪽을 의심하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 마법사는 성검의 동료다. 리빙 데드를 이미 봤거나, 보게 되겠지. 그자가 베네볼렌 씨와 만나게 된다면, 필시 그 마법의 핵심 체계에 관해 얘기를 나누게 될 거다. 그때를 대비하여, 그자가 방심하도록 미리 손을 써둔 거다.”
나는 세르펜스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들었다.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곱씹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기왕이면 어떤 과정을 통해 아니마를 의심하게 된 건지. 그거 먼저 알려 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