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1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15화(315/1105)
315회
54. 공작님과 질의응답 (2)
“그자를 믿고 있군.”
세르펜스가 녹빛의 눈동자로 나를 직시했다. 그의 말대로다.
나는 [성검의 주인]을 결말까지 읽었다. 주인공과 생사를 같이하며, 함께 울고 웃던 아니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니마가 의심스럽다니. 동의하기 힘들다.
“아! 혹시 아니마가 합류하는 걸 안 마왕이 선택의 날 이전에 수를 써 뒀을까 봐 그래요? 하지만 리빙 데드 마법은 [성검의 주인]에서도 나왔잖아요?”
“그리고 악마 숭배자가 리빙 데드를 조작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그것을 정지시켰지.”
“아니마는 천재인 데다가, 그 핵심 뭐시기가 인형 놀이 마법을 베낀 거라잖아요.”
내 변호에도 세르펜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베네볼렌 씨가 리빙 데드의 작동을 중지시킬 때의 상황을 기억하는가?”
“네, 뭐···.”
“한 시간이나 시체를 살펴봤지.”
“그랬죠.”
“그에 반해 프루이토 씨가 그것의 작동을 중지시켰을 땐 어땠는가?”
“바로 멈췄죠. 아니, 그래도 아니마는···.”
“천재라는 말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스터키가 될 수 없다.”
또 다른 천재인 세르펜스가 그렇게 말하니, 설득력이 장난 아니다.
다방면으로 천재성을 발휘하여 문제를 척척 해결해 나가다가,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어쩌고.
그런 깊은 사연이 있어 보인다.
“딴생각하지 말고, 내 말에 집중해라.”
“전 항상 세르펜스에게 집중하고 있어요.”
“···리빙 데드 마법은 명령을 내리는 마법진과 시체의 몸에 새겨진 회로가 한 쌍이다.”
세르펜스가 내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말한 줄 아나 보다.
보호자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항상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인형과 사람의 몸은 다르다. 솜으로만 채워진 인형과 다르게 인간의 몸에는 뼈와 관절이 있고,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근육이 있으며, 그것을 반응하게 하는 신경이 있지.”
회로 어쩌고 하길래 공학 시간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생물학 시간이었다.
“원본 회로가 새겨진 인형을 보지 못해서 확신할 수는 없으나, 베네볼렌 씨가 한 시간이나 시체를 살펴본 걸 생각하면 상당히 변형되었을 거다.”
[성검의 주인] 주인공은 휴마누스지, 아니마가 아니다.그녀의 활약상은 있으나, 어떠한 발상을 통해 마법을 창작하고, 무슨 수식을 사용해 그것을 구현해 내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젠 비비가 된 시온은 마법에 ‘마’자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고로, 나 또한 마법에 무지하다.
세르펜스가 그렇다고 말하면 넋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헤···. 그, 그렇구나···.’하고 중얼거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에 따라 리빙 데드의 동작을 멈추는 명령도 바뀌었을 거다.”
나는 세르펜스의 말을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바꿔보기로 했다.
예컨대 눈앞의 세르펜스를 당장 재워야 한다고 치자.
이는 아주 쉬운 일이다.
빨리 자면 내일 맛있는 간식을 주겠다고 구슬릴 수도 있고, 침대에 눕혀 놓고 토닥여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손을 탄 세르펜스가 아니라, [성검의 주인] 속 타락펜스라면 어떨까?’
나는 공황상태에 빠질 거다. 얘를 어떻게 재워야 할지, 막막함을 느낄 거다.
달달한 간식? 눈앞에 들이밀어도 이게 뭐냐며 툭 쳐서 바닥에 떨어뜨리겠지.
침대에 눕혀 놓고 토닥토닥? 퍽이나 얌전히 토닥토닥을 받겠다.
애초에 내 앞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텐데, 어떻게 재우란 말인가?
똑같은 세르펜스지만, 처음부터 다시 관찰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핵심 체계가 유지되었다 한들, 결국 타인의 손에서 변형된 마법이다.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그것과 대응하는 마법을 즉석에서 고안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으으···, 이해했어요. [성검의 주인] 속 세르펜스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했는데도 이렇게 막막한데. 완전 새로운 버전이 튀어나온 셈이잖아요?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네!”
“어떻게든 잘 이해한 것 같군. 비록 이번에는 내가 그대의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지만···.”
세르펜스는 여러 방면에 능통한 팔방미인형 천재지만, 유감스럽게도 ‘유선우학’에 한해서는 이해도가 조금 떨어지나 보다.
– 삐이─···.
아까 올려놨던 주전자의 물이 다 끓었나 보다.
내가 세르펜스의 눈치를 보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뿐만 아니라, 마법이란 쉽게 훔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항상 주위 환경에 따른 변수를 고려해야 하지. 따라서 그 마법에 관한 이해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세르펜스가 마법학 강연을 이어나가는 동안, 나는 따뜻한 우유를 한 잔 타서 녀석에게 건넸다.
녀석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특히 리빙 데드 마법은 시체에 새겨진 마력 회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명령을 내리는 마법진을 슬쩍 본 것만으로 그것을 중지시킬 수 없듯이, 인형을 움직이게 하는 마법을 훔쳐보고 마력 회로까지 알아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회로가 새겨진 인형을 누가 훔쳐 갔을 수도 있잖아요?”
“인형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면 그렇다고 말을 했겠지.”
“몰래 보고 난 뒤, 눈치채지 못하게 돌려놨다면 모를 수도 있죠.”
“······.”
세르펜스가 내 눈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안경 너머로 전해지는 시선이 따끔하게 느껴질 정도라, 나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떨었다.
녀석이 시선을 내리깔고 따뜻한 우유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투명했던 유리알에 허연 김이 훅 어렸다가, 서서히 옅어졌다.
“그래, 가능성은 열어두는 게 좋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세르펜스가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마법을 변형하기 위해서는 이해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어째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은데···.”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시험에 꼭 나올 거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마법과 이해도의 상관관계’에 밑줄을 쫙 긋고, 별표를 세 개 달아놨다.
“선우, 당신의 말대로 아니마 프루이토는 세기의 천재다. 베네볼렌 씨는 천재라 할 정도는 아니나, 수재라 할 수 있지. 그런 둘이 만들어낸 마법을 분석하여 변형한다는 건, 보통 수준의 마법사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물며 리빙 데드 마법은 인형과 비교가 불가능하리만큼 복잡한 구조의 시체를 움직이는 마법이잖은가?”
“그렇···죠?”
“그 정도의 변형이 가능한 실력이라면, 차라리 마법을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편이 훨씬 낫다. 하다못해 핵심 체계를 고스란히 가져다 쓰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인형 대신 시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마법에 변형을 줘 놓고, 정작 중요한 핵심 체계는 왜 고스란히 가져다 써서 쉽게 무력화 당하느냐. 뭐 그런 얘기다.
“더구나 리빙 데드 마법은 이미 한 차례 간파되었잖은가?”
[성검의 주인]에서 리빙 데드가 등장하자마자, 아니마에게 공략당한 걸 말하는 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았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어···, 리빙 데드 마법을 만든 마법사 영입에 실패했다···?”
“크게 틀리지는 않는군.”
어째서 교수들은 강의하면서 간간이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는지 모르겠다.
대답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학생의 모습을 보며 카타르시스라도 느끼는 걸까?
“나는 리빙 데드 마법의 제작자가 아니마 프루이토일 것이라 확신한다.”
“아니, 결론이 왜 그래요?!”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한가?”
그렇지는 않다. 녀석은 충분히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아니마가 리빙 데드를 바로 무력화시킬 수 있었던 것도.
또다시 그렇게 될 걸 알면서 마왕이 마법 체계를 고치려 하지 않았던 것도.
마법을 뜯어고칠 수 있으면서, 핵심 체계는 변형 없이 고스란히 가져다 쓴 것도.
아니마가 리빙 데드 마법을 만들었다면 모든 게 해명이 된다.
자신이 만든 마법이니까 해제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마왕은 마법을 고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거겠지.
‘핵심 체계를 그대로 쓴 건···.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거려나?’
그것을 단번에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에드나뿐일 테니까.
세르펜스의 말대로, 여러 정황이 리빙 데드 마법의 창시자는 아니마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잖아요. 아니마가 악숭이라면, [성검의 주인]에서 악숭 세력이 에드나를 왜 건드렸던 건데요?! 다 잡은 물고기를 방류하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
“지금 장난해요?”
“당시의 상황을 책으로 읽었던 당신도 모르는 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 다만, 가정할 뿐이지.”
세르펜스가 느릿하게 잔을 들어 올리고, 그 내용물을 입에 머금고, 삼켰다.
일련의 동작이 우아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바라보는 내 속은 바짝바짝 타오른다. 일부러 나를 안달 나게 하려고 이러는 건가 싶어, 괜히 울컥하기까지 했다.
마실 걸 괜히 줬나?
“선택의 날 이전부터···.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했던 선택의 날이 아니라, 당신이 없는 세상의. 당신이 ‘읽었던’ 선택의 날 이전에, 이미 그자가 악마 숭배자였다면 어땠을 것 같나?”
“가령 예를 들어서, 말이죠?”
“그래. 프루이토 씨가 성검의 동료로 차출된 건, 황태자가 성검의 주인으로 선택된 이후다. 악마 숭배자들에게 협조하다가 성검의 동료로 선택되었다면. 동료들의 눈을 피해 악마 숭배자와 접촉할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연락이 끊겼다면. 프루이토 씨가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오해한 악마 숭배자들이···.”
“불가능한데요?”
“음?”
세르펜스가 말을 멈추며 고개를 갸웃했다.
“진작 에드나 씨에게 들켜서 반성문 100장 쓴 뒤, 탈퇴했겠죠.”
“···진지하게.”
내 말이 농담처럼 들렸나 보다. 세르펜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도 자신의 가정에 맹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거다.
“저도 진지합니다. 애가 질 나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비행을 하는데, 보호자라면 바로잡으려 애쓰는 게 당연하잖습니까?! 그리고 에드나 씨가 하지 말라는 걸 아니마가 할 리가 없잖아요?”
“······.”
“그리고 무엇보다! 아니마는 교류할 친구가 없어요. 항상 에드나 씨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면서, 어떻게 에드나 씨 몰래 악숭이를 만납니까? 세르펜스는 대외 버전을 연기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시늉이라도 했지! 걔는 그런 거조차 없었다니까요?”
“으, 으음···.”
마법에 관한 해석은 세르펜스의 말에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아니마의 협소한 인간관계에 악숭이 따위가 끼어들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차라리 악숭 세력의 이간책이라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 [성검의 주인]에서는 휴마누스가 너무! 심각하게! 눈치가 없어서 의심조차 못 하고 넘어가 버린 거죠.”
내 의견에, 세르펜스가 ‘듣고 보니 그럴듯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가정이 틀렸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네, 네. 알아요. 저도 무작정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아니에요. 사람 마음이 어디 생각하는 대로 흘러갑디까?”
의심이 생겨나면, 경계하고 시험하려 드는 건 사람의 본능이다.
믿기 위해서든,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서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단 파고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애먼 사람을 인질로 잡지는 말자고요. 에드나 씨와 한 계약, 사실상 아이들을 인질로 잡은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잖아요. 아이들을 인질 삼아 에드나를 묶어 놓고, 에드나를 인질 삼아 아니마를 좌지우지하려는 건···. 어떻게 봐도 옳은 행동이 아니에요.”
“······.”
“그리고 마지막에 그 백지수표 같은 조항은 뭡니까? 아니마랑 에드나 씨랑 싸움이라도 붙일 생각이에요? 보육원 아이들과 아니마 중에 고르라고? 아무리 제가 세르펜스를 우쭈쭈 부둥부둥한다 해도, 이번만은 옹호해 줄 수 없어요.”
“으읏···.”
세르펜스의 두 눈에 울멍울멍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울어도 소용없어요. 안 달래 줄 겁니다.”
“흐윽···.”
“저, 저도 매정할 땐 매정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가련한 새끼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절 바라본다 해도···.”
“우우···.”
“운다고 다 해결되는 줄 알면 오산입니다!”
“흐읏···.”
“아니,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하셨어요?! 저에게 혼날 줄 몰랐던 거 아니잖아요? 아니까 매도 먼저 맞겠다고 쭐레쭐레 와서 자진 납세한 거잖아요?!”
“으흑···!”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안 달래주니까 서럽나 보다.
달래주고 싶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잘못해도 울면 넘어가 준다는 걸 알게 되면,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될 거다.
“뚝 그치기 전까지, 전 아무 말도 안 하렵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입을 꾹 다물었다. 녀석의 울음소리가 한결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