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1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16화(316/1105)
316회
54. 공작님과 질의응답 (3)
아예 고개를 돌리고 녀석의 우는 모습을 외면했다.
얼마 안 있어, 녀석의 울음소리가 사그라들었다. 약간의 훌쩍임은 남았지만, 이 정도면 울음을 그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 번 울면 한참 우는 세르펜스가 이렇게나 빨리 울음을 그친 건 처음이다.
‘아직 5분도 안 되지 않았나?’
신기록이다. 이 정도면 기네스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
“다 우셨어요?”
“···훌쩍.”
“그렇게 쳐다봐도 소용없어요.”
내 말에 세르펜스가 불만스럽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적당히 울면 못 이기는 척 달래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끝까지 무시할 줄은 몰랐나 보다.
“앞으로 또 이럴 겁니까?”
“···앞으로는 내가 울어도 계속 모른 척할 건가?”
“그거야 세르펜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죠. 본인이 잘못해놓고 우는 건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입니까? 난 우리 애를 그렇게 안 키웠어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성검의 동료가 악마 숭배자라면 큰일이잖은가? 그래서···.”
그래서 악역을 자처했는데 왜 몰라주느냐는 얘기다.
녀석은 서러움과 서운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솔직하게 털어놓고 협조를 구했어야죠.”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바르게 살아간다는 건 원래 그런 겁니다.”
“···어렵군.”
세르펜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 말을 곱씹었다.
녀석은 내 방식에 어려움을 느끼는 듯했지만, 나야말로 녀석의 방식이 어렵게 느껴졌다.
저렇게 사기 치고 다니다가 걸리면 어쩔 생각인지. 간 떨려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저 녀석, 자기 본성이 까발려지면 어쩌고 하면서 맨날 불안해하잖아?’
스릴을 즐기는 게 아니라면, 이제 슬슬 그만두는 게 좋으련만.
“자, 자! 이제 눈물 닦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이대로 넘어가는 건가?”
“아니마에 관한 거라면,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 당장 저희끼리 머리 싸맨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계약서 얘기라면···. 더 따끔하게 혼내줄까요?”
세르펜스가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질러 닦은 후, 열성적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하나로 묶은 청은 빛 머리카락이 녀석의 목에 이리 감겼다, 저리 감겼다 하며 홱홱 휘둘러졌다.
자못 위협적이다. 저기에 맞으면 장난 아니게 아플 것 같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요. 그거 진짜 제 살 깎아 먹는 짓이니까. 분명 경고했습니다?”
“···다 혼낸 거 아니었나?”
“세르펜스가 걱정돼서 그럽니다! 계속 이렇게 제 속을 썩일 거예요?”
“아, 안 그러겠다.”
“말로만?”
“으, 으음···.”
침음을 흘리며 우왕좌왕하던 세르펜스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익숙한 종이 쪼가리. 효도권이다.
나는 그것을 녀석에게 도로 돌려줬다.
“마음에 안 드나···? 하지만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이라···.”
“그게 아니라 지금 쓰려고요. 머리, 아직 젖어있는 거 보이죠? 잘 좀 말려봐요. 안 그래도 곱슬머리라 감당하기 힘든데. 안 말리고 자면 진짜 답 없어요.”
“그건 선우, 당신의 잠버릇이 가장 큰 원인일 것 같은데···.”
“어허!”
세르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에서 새 수건을 가져와 내 뒤에 섰다.
어깨에 걸쳐진 젖은 수건이 치워지고, 머리 위에 뽀송뽀송한 수건이 얹혀졌다.
남이 머리를 만져주니 미용실에라도 온 것 같다.
‘여기에 따뜻한 드라이기 바람까지 더해지면 훨씬 만족스러울 텐데.’
조금 아쉽긴 했으나,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기분이 나른해지며 화도 살짝 누그러졌다.
“그럼 두 번째 질문 나갑니다!”
“두 번째? 최소 서른 번 이상의 의문문을 들은 것 같은데, 이제 겨우 두 번째라고?”
“같은 주제에 관한 질문은 원래 하나로 뭉뚱그려서 세는 겁니다.”
“지금 그 말, 기억해 두지.”
“···얻다 쓰려고?”
“그래서 질문은?”
노골적으로 말을 돌리는 게 어째 불안하다.
그래도 질문은 해야 했기에, 머리를 살살 만져주는 세르펜스의 손길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윈스톤 말입니다. 왜 그러셨어요?”
“어째서 그를 보육원에 남기고 왔느냐는 질문인가? 그거라면 보육원을···.”
“에이. 우리끼리 이러지 말자고요.”
“······.”
녀석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덜 혼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거다.
나는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말이 듣고 싶은 게 아니므로, 세르펜스를 좀 더 추궁해 보기로 했다.
“유지스를 들어서 옮길 정도로 과보호했잖아요. 아, 물론 그게 바람직하다는 건 아닙니다. 저도 때때로 세르펜스를 과잉 우쭈쭈 하곤 하지만, 고치려고 노력하잖아요.”
“오늘 안 달래준 것을 말하는 거라면, 안 고쳐도 괜찮다.”
“안 됩니다. 버릇 나빠져요.”
머리를 만지는 녀석의 손길이 느려졌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을 세르펜스의 얼굴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그려졌다.
“아무튼요. 유지스가 크게 다쳐서 온 걸 보고 충격 많이 받았잖습니까? 그래놓고 윈스톤은 두고 왔다는 게 좀 걸려서요. 아무리 악숭이가 우리 쪽에 전력을 집중할 거라고 판단을 내렸다 해도 그렇지. 세르펜스는 ‘만에 하나’를 놓지 못해서 항상 불안해하잖아요.”
머리 위에서 으음, 세르펜스의 침음 소리가 들렸다.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거다.
“설마 아직도 윈스톤에게 마음을 못 연 겁니까?”
“그런 건 아니다. 또한, 윈스톤 경이 잘못되어도 상관없다 생각한 건 더더욱 아니다.”
고개를 들어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진실을 말하는 표정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우선 마왕은 보육원을 노릴 이유가 없다.”
“뭔가 아 다르고 어 다른 느낌인데. 악숭이들이 세르펜스 레이드 공대 모집한 것과 다른 얘깁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다를 거다. 선우, 당신은 베네볼렌 씨가 아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보육원을 노릴지도 모른다 말하였으나···.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예? 어째서요?”
“마왕은 ‘나’를 알고 있잖은가?”
세르펜스는 유명인이다.
성검의 주인 내정자로서 대륙은 물론 마계까지 그 유명세가 뻗어 있다.
이제 성검은 휴마누스의 손에 쥐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세르펜스는 여전히 유능하며 눈에 띈다.
단체로 기억 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이상, 이미 알려진 이름이 지워질 리는 없다.
그러니까 녀석의 말은 마왕이 ‘세르펜스 A. 프라시더스’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마왕의 뒤통수를 후려쳤던 세르펜스’를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타락펜스가 악숭 세력에 가담하여 꾸몄던 계략과 잔혹한 행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을 추악하다 일컫는. 세르펜스의 자조적 발언이었다.
“또 그런다, 또.”
“하지만 당신이 없었다면 일어났을 일이지.”
“이젠 일어나지 않을 일이죠.”
“나는···, 가끔 두렵다. 마왕이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시온 리벨론’과 ‘레비비셴티오 리벨론’의 연속성이.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내게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면. 혹은 그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밀어낸다면. 지금의 평온이 깨질까 봐, 한없이 두려워진다.”
얼굴을 마주 보고 있지 않아서, 부담이 덜한 까닭일까?
어쩌면 속을 털어놓고 얘기를 나눈 게 오랜만이라, 감성에 젖은 걸지도 모른다.
세르펜스가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본론에서 살짝 빗나간 얘기를, 묻지 않았음에도 술술 말하는 걸 보면 하루 이틀 고민했던 게 아닌가 보다.
“제가 옆에 있을 텐데, 뭐가 걱정입니까?”
“······.”
“그런 일이 벌어져도 제가 옆에서 꽉 붙잡아 줄 테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요.”
“···그래, 믿도록 하지.”
녀석이 내 머리 위에 수건을 푹 눌러 씌우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수건을 치우자, 미적지근해진 우유를 홀짝이는 세르펜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울어서 그런지 눈시울이 아직도 붉다.
‘따끔거릴 텐데···.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인가?’
괜히 더 안타깝다.
“베네볼렌 씨가 대륙에 위협이 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녀를 배제할 거다. 그게 인질 때문이라 하여도. 내가 그런 사람이란 것을 마왕은 알고 있다.”
갑작스럽게 본론으로 되돌아왔다.
언제 불안에 떨었느냐는 듯, 세르펜스가 비정하게 말하였다.
“그게 마왕이 보육원을 노리지 않을 이유란 겁니까?”
“그렇다. 아이들을 인질로 삼는다 한들, 제대로 써먹기도 전에 내가 베네볼렌 씨를 처리할 테니까. 그리고 그녀의 죽음을 악마 숭배 세력이 한 짓으로 가장할 거다.”
당당한 날조 선언이다. 그 패기가 장난 아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마왕이 아는 나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냥 마왕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얘기죠···?”
“······.”
녀석이 우유를 마시며 딴청을 부렸다.
“세르펜스는 이곳에 온 사람이 누나가 아닌 저라는 걸, 감사히 여기셔야 합니다.”
“···그건 무슨 뜻이지?”
“저니까 ‘공작님, 회개해주세요!’하고 공손히 부탁하는 거지, 우리 누나였으면 국물도 없어요. ‘공작님, 회개하세요.’하고 으름장 놓았을걸요?”
“당신이 언제 나를 공손하게 대했다고···.”
“진짜 불손의 끝을 보여줘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르펜스가 허리를 쭉 펴고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다.
“흠, 흠! 어쨌거나···. 마왕이 아는 나는 책무에 얽매여 나 자신을 죽이다가, 성검의 주인으로 선택받지 못하여 존재 의의를 잃은 자다. 내가 선우를 소중히 여기는 것조차, 신의 사자인 당신과 함께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라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말로 그렇다면 마왕 놈의 세르펜스 캐해석은 괴멸적이라 아니 말할 수 없다.
그따위로 하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후려 맞지.
“작년에 ‘그 사건’이 있었으니, 내가 당신과 유지스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는 걸 이젠 어느 정도 눈치챘겠지만···. 그 장소에 윈스톤 경은 없었잖은가?”
녀석의 말대로.
윈스톤은 나와 세르펜스가 한 방에서 오손도손 생활하는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탓해야만 했다.
불쌍한 윈스톤.
실력과는 무관한 일이었는데. 그 시간에 밖에 나가, 간식을 사다 바쳤으면 진작 친해졌을 텐데.
“그런 이유들 때문에 윈스톤과 아이들은 마왕에게 아웃 오브 안중이다, 이 말이죠?”
“마왕의 안중에 없다는 뜻이라면 그러하다.”
영락없는 깍두기 취급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악마 숭배자들이 보육원을 노렸다 해도 윈스톤 경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다.”
만에 하나를 놓지 못한다고 지적한 게 불과 몇 분 전이건만. 세르펜스는 또다시 만에 하나를 언급했다.
“유지스는 내가 부탁이 아닌 애원을 하더라도, 눈앞에 목숨이 위태로운 자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자에게 손을 뻗을 거다. 이것저것 따질 겨를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윈스톤은 안 그럴 거라는 겁니까?”
“윈스톤 경은 기사다. 그렇기에 약자를 외면하지 못한다. 하나, 주군의 명령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들을 외면할 수 있다.”
기사가 지켜야 할 최우선 덕목은 ‘충의’라는 얘기를 하는 거다.
“이제는 사라진 말룸 백작가의 기사였을 때. 그는 충언할지언정, 명을 거역하지는 못했다. 당신이 읽었던,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악마 숭배자들의 흑기사였을 때도 마찬가지다. 주군에게 충성하는 것 이외의 다른 덕목들은 그저 주군의 인격을 드높이기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세르펜스를 존경하는 이 대륙의 수많은 기사들에게 송구스러워졌다.
“윈스톤 경이 모든 약자를 위한 기사가 되겠노라 선언했다면. 그는 약자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불살랐을 거다. 하나 그는 ‘나’라는 개인의 기사가 되었다. 그는 나를 슬프게 하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