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1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20화(320/1105)
320회
56. 공작님의 쇼핑 (2)
서점에서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친 우리는 제과점으로 향했다.
“저 이번에는 안 들어갈래요.”
제과점 앞에 도착한 에드나의 말이었다.
제국 수도의 내 단골 제과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건만.
그녀는 화려하게 치장된 제과점 간판을 보고 기가 질려, 제과점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이쯤 되면 좀, 많이 짠한데···?’
무의식중에 그녀의 고용주인 세르펜스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녀석은 에드나가 가난에 찌들든 말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눈치다. 그저 빨리 들어가서 제 간식을 사달라는 눈빛만 내게 쏘아 대고 있을 뿐.
참고로 세르펜스의 입에 들어가는 모든 간식 비용은 프라시더스 가의 경비로 처리된다.
이 말인즉슨 돈은 세르펜스가 지급하되, 결제만 내가 하는 시스템이다.
돌연 아니마가 에드나 앞에서 귀여운 척하기 위해 군것질한다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당연히 에드나가 사서 먹이는 줄로만 알았는데.
제과점에 들어올 엄두도 못 내는 에드나의 모습을 보니, 모든 것은 내 편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아니마는 자신이 아직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임을 에드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제 돈을 주고, 제 발품을 팔아 군것질거리를 사 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마···. 너도 컨셉에 충실하구나···?’
혹여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세르펜스도 일부러 단것에 집착하는 척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녀석을 자세히 살폈다.
녀석은 제과점 문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문이 약 1센티가량 열려 있었다.
“···안 들어가십니까?”
그 좁은 문틈으로 새어 나온 달콤한 향을 맡으며, 세르펜스는 조바심을 드러냈다.
이 자식은 ‘진짜’다. 컨셉 따위가 아니다.
단것을 애정 하는 세르펜스의 마음에는 한 치의 거짓도 존재하지 않았다. 순도 100% 진심이다.
“당연히 들어가야죠!”
내 대답이 떨어지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제과점 안에 들어선 세르펜스는 후드를 더욱 깊숙이 눌러썼다.
수면 아래, 치열하게 자맥질하는 백조와 같이.
후드로 드리워진 그림자 아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분주히 쿠키와 타르트 등을 구경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나는 녀석이 좀 더 구경하게 내버려 두고, 점원에게 가 말을 붙였다.
“홀 케이크를 사려고 하는데, 지금 당장 가져갈 수 있는 거 있어요?”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언제든지 제과점에 방문하면 살 수 있는 게 케이크였으나, 이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하루에 한두 개 한정된 개수만 준비해 두거나, 예약으로만 판매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네! 어떤 사이즈를 원하시나요?”
걱정과 달리 점원의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여기는 이 근방에서 잘 나가는 가게라서 그런가, 다양한 케이크를 준비해 둔 모양이다.
“제일 큰 거로요.”
“가장 큰 사이즈는 생크림 케이크뿐인데, 괜찮으세요?”
“그럼 그걸로 살게요.”
“네, 25만 아스입니다!”
과연 정신 나간 가격이다. 가격만 들으면 2단 케이크쯤 되는 줄 알겠다.
이러니까 평민들이 케이크를 기념일에만 사 먹고, 그러니까 케이크를 미리 안 만들어 놓지.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50만 아스권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렸다.
“바로 포장해드리겠습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점원의 질문에 나는 세르펜스를 돌아보았다.
구경은 끝났는지, 녀석은 어느새 내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마치 호위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없습니다.”
대답과는 반대로, 세르펜스는 점원이 볼 수 없는 각도에서 마카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얼굴도 가리고 있으면서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일단 마카롱도 하나 주세요. 제일 잘 나가는 맛으로. 바로 먹을 거니까, 포장은 안 해주셔도 됩니다.”
간식거리도 떨어졌겠다, 온 김에 왕창 사 가야겠다.
내가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으로 매장 안을 둘러보며 말하자, 점원의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냥 점원인 줄 알았는데 가게 주인의 친인척이라도 되는가 보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좋아할 리가 없다.
점원이 장갑을 꺼내 끼고, 온도 조절 마법이 걸린 진열장에서 조심스럽게 붉은빛이 감도는 마카롱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작은 그릇에 그것을 올려 내 앞에 내밀었다.
색으로 보아, 아마도 라즈베리나 딸기 맛 중 하나로 추정된다.
이걸 어떻게 점원 몰래 세르펜스에게 건네줘야 하나 고민하며, 마카롱을 집는 그 순간.
– 파삭.
이상한 일이다.
점원이 집었을 때는 멀쩡하던 마카롱이 어째서 내 손에서는 이다지도 쉽게 바스러지는 걸까?
정말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나는 보고야 말았다. 마치 동굴과도 같은 공허한 공기층을.
이게 마카롱인지 공갈빵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뻥카롱이잖아!!’
어쩐지 점원의 손길이 지나치게 조심스럽더라니.
나는 조용히 분노하며 남은 마카롱을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쫀득함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케이크랑 방금 먹은 마카롱 값만 계산해주세요.”
“네에···.”
내 싸늘한 목소리에 점원이 실망한 표정으로 잔돈을 거슬러 주었다.
내게 거스름돈을 건넨 점원은 케이크를 포장하기 위해 뒤로 돌았는데, 어깨가 흘러내리다시피 축 처져 있었다.
그리고 점원 말고도 실망한 이가 또 한 사람 있었으니.
“서···, 시온?”
아뿔싸.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나머지 세르펜스의 존재를 잠시 망각해 버렸다.
하마터면 나를 본명으로 부를 뻔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혼란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세르펜스의 영롱한 초록빛 눈동자가 오늘따라 짙고 어두워 보였다.
후드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 탓일까? 아니면 그 안에서 요동치는 배신감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뻥카롱이잖아?’
가게의 신뢰도가 이미 바닥을 쳤다.
이 제과점은 [가나안 대륙 유명 맛집 500선]에 실리지 않았다. 페롤 령 또한 [죽기 전에 반드시 가 봐야 할 관광 명소]에 소개되지 않았다.
근방에서 잘 나가는 제과점이라 해도, 결국 그저 그런 제과점일 뿐이었던 거다.
나는 우리 아이가 직접 고른 첫 디저트가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녀석의 앞에서 혼자 마카롱을 먹으며 놀리려던 의도는 없었다.
단언컨대 룩스메아의 신격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이런 내 깊은 속뜻도 모르고.
세르펜스는 자신이 먹고 싶은 걸 정확히 말로 표현하지 않아 벌어진 사태라고 받아들였나 보다.
반성하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는 눈빛을 보내는데, 완전 미치겠다.
나는 차마 그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점원에게서 케이크가 담긴 상자를 받아들고, 서둘러 가게 밖으로 빠져나왔다.
뒤통수가 따끔하다. 세르펜스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다.
정말 이대로 나가는 거냐며, 다른 건 안 사는 거냐고.
그동안 참아왔는데, 얼마나 더 참아야 다시 예전처럼 1일 1간식을 할 수 있느냐고.
애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떼어내, 힘겹게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에서 기다리던 유지스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시온, 표정이 왜 그래요? 가게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본 보좌관은 이 제과점에 무척 실망했습니다.”
“네?”
“뻥카롱을 팔더라고요.”
“저런···.”
유지스가 내 실망감에 공감을 표하며 탄식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케이크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아공간 주머니 안에 고이 보관했다.
공과 사는 철저히 해야 하니까.
“그럼 케이크 말고는 아무것도 안 산 건가요?”
“어쩔 수 없죠. 그렇다고 다른 영지까지 갈 수는 없잖아요.”
“한동안 디저트 없이 살아야겠네요.”
유지스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가득 실렸다. 그녀도 머릿속으로 실망감에 시들해진 세르펜스의 모습을 그리고 있나 보다.
어두운 안색을 한 나와 유지스를 보며, 에드나가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디저트를 얼마나 좋아하길래···.”
* * *
보육원에 도착하자마자 에드나는 마법진 해제 작업에 들어갔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해제한 건, 현관에 걸어 두었던 출입 통제 마법진이다.
본의 아니게 건물 안에서 농성 아닌 농성을 하던 아이들은 그제야 자유를 되찾았다.
제 한 몸 바쳐, 심심한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가 되어 주었던 윈스톤도 신체의 자유를 되찾았다.
몇몇 아이들은 밖에서 눈밭을 뛰놀았고, 몇몇 아이들은 그대로 놀이방에 남아 새로 사 온 책에 관심을 보였다.
“웬디야, 정말 그게 마음에 들어···?”
“네! 완전 실용적이에요!”
“으, 응···. 그래, 공부 열심히 하렴.”
웬디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가나안 대륙 기초 상식 대백과]를 놀이방 바닥에 펼쳐놓고 엎드렸다.
아직 글을 떼지 못한 아이들이 웬디의 옆에 달라붙었다.
‘···저 책이 저렇게까지 인기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의무 교육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며, 교육은 있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전 대륙이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고 문자 체계가 쉬워서 망정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태반이 문맹이었을 거다.
아무튼, 이곳의 아이들은 에드나를 보고 자라 성공에 대한 욕망이 크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을 쌓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안타깝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너무 어린아이들 위주로 생각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큰 아이들을 위해 교육 관련 책을 섞어 열세 권을 채우는 건데.
“이거 재미없어···.”
물론 저런 거 말고 쉬운 거로.
돌이켜 보니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 중, [원활한 (중략) 대백과]에 관심을 보인 아이는 웬디뿐이었다.
웬디 옆에 달라붙었던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동화책을 잡은 다른 아이 곁으로 이동했다.
금방 흥미를 잃은 아이들과 달리 웬디는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파고들었다.
– 달칵.
원장실 문이 열리고, 세르펜스와 전 원장님이었던 현 원장님이 놀이방으로 나왔다.
가장 중요한 위임장은 에드나가 작성해야 한다지만, 그 밖에도 앞으로 작성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다.
세르펜스는 그 서류 작성을 위한 준비와 원장 놈이 개판으로 처리했던 서류들의 재정리를 도우러 원장실에 들어갔었다.
지금 그 일을 끝마쳤나 보다.
“벌써 끝나셨어요? 저도 서둘러 마친다고 마쳤는데···.”
때마침 2층에서 마법진을 해제하고 내려온 에드나가 둘을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위임장 양식 작성도 끝났으니, 에드나 씨는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유능펜스의 말에 에드나의 입이 떡 벌어졌다.
녀석의 서류 처리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르는 탓이다.
세르펜스의 대단함은 전 대륙에 널리 알려졌으나, 매스컴이 발달한 세상이 아니다 보니 정보 전달에는 한계가 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정보의 손실이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제국에서는 어떤 분야를 들이밀어도 세르펜스가 최고라 말할 정도로, 그에 관해 잘 알려졌다.
얼굴이면 얼굴, 마음씨면 마음씨. 지식, 검술, 행정 및 통치 능력 등등.
하지만 외국으로 넘어갈수록. 그리고 사회 계층이 낮아질수록 그 정보가 깎여 나갔다.
외국의 노동자 계층에 이르러서는 성검의 주인 내정자로서 갖춰야 할 요소들.
고결한 성품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검술 실력. 그리고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신성력에 관한 이야기만 겨우 전해졌을 뿐.
천사가 강림한 듯 신성하고 고결한 미모가 그저 천사만치 아름답다 수준으로 평가 절하되었다.
그 외의 요소는 언급조차 없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세르펜스에게서 바라는 것만 보고, 멋대로 떠들어 댔다 말해도 틀림이 없으리라.
‘잠깐만. 의식의 흐름이 어쩌다 여기까지 다다른 거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