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2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21화(321/1105)
321회
56. 공작님의 쇼핑 (3)
“···일 끝나셨으면 이제 슬슬 시작할까요?”
낯을 가리느라, 홀로 식당에서 송별회를 준비하던 유지스가 복도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준비라고 해봐야 기다란 식탁 중앙에 케이크를 올리고, 사람 수대로 접시와 식기, 물잔 등을 놓는 것뿐.
유지스는 진작 송별회 준비를 다 끝내고, 덩그러니 식당에 앉아 있었을 거다.
그리고 세르펜스와 에드나가 각자의 일을 끝내길 기다리며.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설정을 떨쳐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 않았을까?
나는 모든 일의 원흉인 세르펜스를 노려보았다.
녀석에게, ‘네 거짓말이 어떤 사태를 야기했는지 똑바로 마주 봐라! 그리고 사과해라!’라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저는 윈스톤 경을 불러오겠습니다.”
세르펜스가 내 시선을 피하며 후다닥 앞마당으로 도망쳤다.
잠시 후 밖에서 뛰놀던 아이들과 그들의 감독을 맡은 윈스톤이 놀이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뒤따라 들어온 세르펜스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태연하게 식당으로 향했다.
‘···얼씨구?’
그래도 미안하긴 한지, 녀석은 유지스 옆을 지나치며 그녀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빨리 제대로 사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지 안 되겠다. 나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차며 식당에 들어섰다.
세르펜스는 내 눈치를 보면서도, 안 친한 사람 옆에 앉기는 싫은지 나를 자신의 오른쪽에 앉혔다. 그리고 왼쪽에는 유지스를 앉혔다.
우리 애 낯가림이 심해서 걱정이다.
유지스는 낯가림 설정에 따라, 자신의 왼쪽 빈자리에 윈스톤을 앉혔다.
이쪽은 이쪽대로 설정 몰입이 심해서 걱정이다.
영문도 모른 채 유지스 옆에 앉혀진 윈스톤은 멀뚱멀뚱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아무 생각 없이 권하는 자리에 그냥 앉은 것 같다.
‘그리고 에드나는···.’
케이크를 잘라 아이들의 접시에 하나씩 담아 주었다.
아이들에게 떠나야 한다고 말하기 전, 그녀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혹은 마음의 정리를 하는 거다.
아이들뿐 아니라 식탁에 둘러앉은 모든 이들의 앞에 케이크 조각이 놓이고 나서야,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송별회를 시작하기 전에 너희에게 먼저 해야 할 얘기가 있어.”
에드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입맛을 다시며 포크를 손에 쥔 아이들이 일시에 동작을 멈췄다.
케이크로 향하던 아이들의 손을 멈추게 할 만큼, 에드나의 목소리에 담긴 무게가 무거웠다.
“로시오 상단은 완전히 문을 닫았고, 상단의 모든 권리는 교단으로 넘어갔어.”
바로 떠난다는 말을 꺼내긴 힘들었는지, 에드나가 다른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소개비로 갚아야 할 빚은 처음부터 부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교단 측에서 빚을 청산해주는 건 물론이고 냈던 이자도 돌려주겠대.”
에드나의 말에 시온을 비롯하여, 교육을 받으러 다니던 다섯 명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슬쩍 옆을 보니, 세르펜스와 유지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아마도 내가 씻고 있을 때 월권기사에게 들었나 보다.
“교육을 맡아주던 새끼···가 아니라, 놈들은 교단에 불려가 훈계를 받을 거야. 성기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번 주는 푹 쉬고 다음 주부터 나가면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고 일도 잘 가르쳐 줄 거래.”
빚을 청산해준다는 말에도 눈만 끔벅거리던 아이들이 뒤늦게 와아, 탄성을 내질렀다.
당장 들어오는 돈보다, 앞으로의 미래가 더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소년 시온은 기뻐하지 못했다. 되려 침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시온, 너도 포함이야.”
“저, 정말요?! 전 잘렸는데···.”
“네가 그 사람 밑에서 배우는 게 싫지만 않다면.”
자신을 모질게 때린 사람 밑에서 다시 배운다는 게, 무섭지도 않은 걸까?
소년 시온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번 주는 푹 쉬라는 걸 보아, 스승이란 작자들은 일주일 동안 신전에서 굴려지는 거려나?’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새로운 스승을 찾는 것도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앞으로는 그자들이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거다.
‘아니지? 지은 죄가 있는데!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설설 기어야지!’
자신의 원천 기술을 다 빼줘야 할 거다.
교단이 중간에 끼어들었으며, 월권기사가 특별히 신경 써 주겠다고 약속했다.
성직자가 사사로이 권위를 내세우는 건 불가하나,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성인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일은 당연하고도 정의로운 일이다.
“그리고···.”
에드나의 말문이 막혔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가 세르펜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이다.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말문을 열고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하기는커녕.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기도 벅찬 짧은 시간이다.
그녀는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가 입술 밖으로 새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이러면서 아니마는 잘도 떠나보냈네.’
에드나가 자신과 대륙의 미래를 위해, 아니마를 떠민 건 절대 아니리라.
성검의 동료가 된다는 게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아니마가 좁은 마탑을 떠나, 그리고 자신의 품을 떠나, 여러 사람을 만나고 성장하길 바라서.
아니마를 보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지금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떠나려는 것처럼.’
그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의 표정에 의문과 불안감이 깃들었다.
“베네볼렌 씨는 악마 숭배자들과 싸우기 위해, 저희와 함께 제국에 가기로 힘든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낸 것은 세르펜스였다.
그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둘러본 뒤, 에드나에게 큰 용기를 내주어 감사하다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제야 이 송별회가 정확히 누구를 떠나보내기 위함인지 깨달은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떠나야 한다는 건 진작 알고 있던 바다. 그리고 내가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고작 일주일도 안 된다.
하지만 에드나는 나와 비교도 안 되는 긴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했다.
“어···, 아니마 언니처럼요?”
리나의 질문에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는 거침없이 반말하던 리나가 세르펜스에게는 존댓말을 썼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반말을 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쌍방 반말은 문제없다.
또한, 세르펜스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람을 대할 때 존댓말을 사용한다.
천사 같은 세르펜스가 예의 바르게 존댓말을 쓰는데, 거기다 대고 반말을 찍찍 내뱉는 몰상식한 사람은 세상천지에 악숭이와 휴마누스 뿐이다.
“그럼 에드나 누나도 아니마 누나처럼 대륙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거예요?”
“네. 본디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지만, 직접 본 베네볼렌 씨의 능력이 워낙 출중해서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세르펜스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번쩍 들어올려 질문한 데런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고개를 돌려 왼쪽에 앉은 세르펜스를 바라보다가, 그 옆에 옆에 앉은 윈스톤과 눈이 마주쳤다.
윈스톤은 당황과 황당 사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드나 영입을 주장하던 유지스의 모습과 그녀의 주장에 동의를 표했던 세르펜스의 모습을 기억해 낸 거다.
“죄송합니다. 여러분에게 베네볼렌 씨가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는 잘 알고 있으나···. 부디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세르펜스가 말하였다.
사실은 그저 통보일 뿐이지만, 그의 처연한 얼굴과 간절한 음성은 마치 그가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들리게 했다.
세르펜스는 신성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미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한 명 한 명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없던 신앙심도 샘솟게 하는 그 모습에. 에드나는 감동을 숨기지 못하고 기도하듯 양손을 꼭 맞잡았다.
‘고마울 만도 하지.’
에드나가 보육원 때문에 세르펜스에게 고용된 거라는 걸 알게 되면, 아이들이 얼마나 커다란 부채감을 느낄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세르펜스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토씨 하나 내뱉지 않았다. 자신의 부탁 때문에 에드나가 결단을 내렸다고 표현했다.
나는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입을 열었는지 안다.
케이크를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을 테고, 에드나에게 마음의 빚을 달아두기 위함도 있으며, 훗날 아이들이 보육원 운영비가 나오는 경로를 알게 되었을 때 올라갈 자신의 위신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런 계산과는 무관하게.
어떤 방식으로 말을 꺼내야 모두가 이해할 수 있으며, 상처받지 않을지. 그것을 따져보고 뱉은 말이라는 걸 알기에.
녀석의 발언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프라시더스 씨의 말대로, 나는 프뤼네 왕국을 떠나 있을 거야. 그동안 너희를 만날 수도 없고···.”
“괘, 괜찮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에드나가 말하자, 한 아이가 그녀를 위로했다.
그 아이를 시작으로,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괜찮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따스한 마음에 결국 에드나는 눈물을 터트렸다.
괜찮아는 곧 울지 마로 변했고, 아이들 사이에 앉아있는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그녀의 울음이 멎고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야 우리는 포크를 들 수 있었다.
비록 에드나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으나,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달콤한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마카롱을 뻥카롱으로 만든다고 다른 제품까지 맛없을 거라 판단했던 건, 내 성급한 일반화였다.
우려가 무색하게도, 케이크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쿠키라도 몇 개 살 걸 그랬나?’
지나간 구매 기회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단지 앞으로 다가올 충동구매만이 우리와 함께할 뿐이다.
어차피 기차를 타려면 페롤 령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뻥카롱 가게에는 들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차를 타고 하루 반나절 정도 가면 유명 디저트 가게가 나온다. 거길 들르자.
“···음?”
케이크를 탐하지 않는 척, 느릿한 속도로 케이크를 야금야금 아껴먹던 세르펜스가 돌연 포크질을 멈췄다.
“누군가 왔습니다. 이 기운은 분명···.”
녀석이 눈살을 좁히긴 했으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걸 보아 위험인물은 아닌가 보다. 누구인지도 아는 것 같고.
드르륵 소리와 함께 윈스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보고 오겠습니다.”
커다란 덩치의 윈스톤이 움직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 틈을 타 유지스가 윈스톤의 접시에 담긴,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케이크를 세르펜스의 접시 위에 쏟아부었다.
세르펜스는 윈스톤의 것이었던 케이크를 반으로 잘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케이크 뒤로 숨겼다.
나는 두 케이크 도둑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후, 윈스톤이 식당으로 돌아왔다.
그의 뒤로 그냥 사람 한 명과 ‘3분의 2 윈스톤’ 두 명이 따라 들어왔다. 모남이와 호위들이다.
“교단의 명으로 봉사 활동을 하러 왔다고 합니다.”
모남이는 어떻게 되는 건가 궁금했었는데, 사회봉사 처분을 받은 모양이다.
마침 잘 됐다.
에드나의 월급 말고도 보육원에 추가 수입이 있었으면 했는데. 딱 좋은 호구···후원자가 나타났다.
‘이야~, 룩스메아 교단 일 잘하네!’
숭배자와 숭배 대상이 나란히 무능한 악숭 세력과는 급이 다르다.
어쩜 필요한 걸 이렇게 딱 맞춰서 대령할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룩스메아의 무능함을 룩스메아 교단이 모조리 메꿔주는 느낌이다.
나는 흐뭇한 눈으로 보육원의 살림살이를 책임져 줄 호구원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