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2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24화(324/1105)
324회
56. 공작님의 쇼핑 (6)
크레페 이름으로 애먹었던 세르펜스가 제과점에서 보인 행보는 괄목할 만했다.
무엇을 사야 할까 고민하는 대신, 전부 다 구매해 버렸다.
‘이런 현명한 녀석.’
하지만 그런 현명한 모습과는 달리, 세르펜스는 자신의 돈으로 구매한 간식들을 나에게 맡기는 우둔한 판단을 내려 버렸다.
이는 설날 받은 세뱃돈을 부모님께 맡기는 어린아이와 같은 선택이다.
그냥 본인이 가지고 있으면, 간식이 당길 때마다 조금씩 꺼내먹을 수 있을 텐데.
‘오늘의 간식으로 내가 뭘 꺼내줄까, 두근두근 기대하는 재미라도 느끼는 거려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선물 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거라면 얼마든지 응해 줄 수 있다. 깜짝 선물은 언제 받아도 즐거운 법이니까.
하지만.
‘보호자의 허락을 받고 나서야 안심하고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거라면···.’
좀 걱정스럽다.
매달 채워주는 사탕만 해도 그렇다.
어차피 사탕 병을 본인이 가지고 있으니, 융통성 있게 하루에 두 개 먹고 다음 날 거르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하루에 딱 하나씩만 먹고 있더라.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지?”
“이제 사탕 가게 가서, 사탕 사고 기차역으로 돌아가요.”
“그런 말을 하려던 눈빛이 아니었다.”
“이번에 사탕 리필해 줄 때, 사과 맛 비율을 더 높여 줄게요.”
나는 팔을 뻗어 녀석의 정수리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세르펜스는 살짝 고개를 숙여 얌전히 내 손길을 받았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내 동정심을 자극해 버렸다는 걸 깨달은 거다.
다친 고양이가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고양이가 아픈 와중에도 그 손길이 좋다며 손을 핥고 머리를 비벼대는 듯한.
누가 누구에게 위안을 받는 건지 모를, 그런 기분을 느꼈다.
“···다채롭군.”
“뭐가요?”
“혼자 감성에 젖는 듯하더니, 나를 안쓰럽게 보질 않나. 그러다 이제는 감동한 얼굴을 하고 있잖은가?”
내 감정 변화를 얘기하는 거였나 보다.
나는 녀석의 머리에서 손을 거뒀다. 그리고 아공간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지도를 꺼내어, 세르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 * *
악마 숭배자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혹은, 호화로운 여행길이었다.
특실은 아주 넓고 편했다.
가끔 기차에서 내릴 때면, 역 근처 레스토랑에서 풀코스 요리를 먹었다. 가끔은 내 주도로 디저트 카페에 가서, 온갖 디저트류를 섭렵하기도 했다.
테라룸 왕국에서 방어구로 유명한 데펜 시(市)에 들러, 윈스톤의 갑옷도 맞췄다.
‘윈스톤이 정말 뛸 듯이 좋아했지.’
신상 갑옷에 대한 기쁨이라기보다, 주군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하사해 주었다는 것에서 비롯된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잠시였다.
전신 갑옷을 맞추기 위해서는 신체 사이즈를 세밀하게 재야 했다.
이게 무슨 문제냐 싶지만, 드워프는 작고 윈스톤은 거대했다.
팔이 짧은 드워프가 줄자를 들고, 윈스톤의 몸 위를 반쯤 기어 다니며 치수를 쟀다.
마치 거목에 매미가 붙어 기어 다니는 듯한 모양새였다. 보다 못한 내가 대신 재주겠다고 나섰으나, 드워프 장인은 막무가내였다.
지금 장인 정신을 무시하느냐며 화를 내는데···.
‘그럴 거면 윈스톤을 보고, 아름다운 근육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하지 말았어야지.’
미의 종족이 아니라, 그냥 변태의 종족 같다. 눈으로만 감상하던 크레아토는 정말 양반이었던 거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사이즈 측정이 끝났다. 약 한 달 후에 완성될 갑옷은 프라시더스 가에서 관리 중인 상단이 공작저로 배송해 주기로 했다.
우리는 데펜 시를 도망치듯 벗어나, 크레아토를 만나기 위해. 정확히는 그에게 맡겼던 우리의 검을 찾기 위해, 칼립스 시로 향했다.
크레아토의 대장간에는 ‘작업 중’ 팻말이 걸려있었으나, 우리는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크레아토 씨, 저희 왔어요~!”
“오오오···! 어서 오게나!”
내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소리치자, 작업장 쪽에서 크레아토가 바로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세르펜스에게 달려들었다.
인사하는 놈 따로 있고, 환영받는 놈 따로 있나 보다.
“그래도 같이 술 마시면서,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헛차! 흣차!! 후, 후드를! 제발 치워주게나!”
크레아토가 내 말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세르펜스가 눌러 쓴 후드를 벗기기 위해, 콩콩 점프하며 연신 손을 내뻗었다.
드워프 세계는 냉정해서 친한 사람보다도 예쁜 사람이 우선인가 보다. 크레아토의 관심사는 온통 세르펜스의 후드로 쏠려 있었다.
세르펜스는 그런 크레아토의 손길을 전부 회피하며 내 뒤로 숨었다.
“시온 군, 오랜만이구먼! 반갑네! 그런 의미에서 자네 친구가 뒤집어쓴 후드를 치워주는 게 어떤가?”
세르펜스가 후드를 눌러쓰고 있는 동안에는 크레아토와 대화 진행 자체가 불가능할 성싶다.
게임으로 치자면, 특정 조건을 만족하기 전까지 퀘스트를 내어주지 않는 npc 같은 거다.
“작업 중 팻말이 걸려있던데, 아직도 완성이 안 됐어요?”
“그럴 리가 있나! 검은 물론 검집까지 다 만들고, 소소한 취미 생활 중이었네.”
세르펜스의 후드를 벗기며 질문하자, 크레아토로부터 정상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비록 대답에 쓸데없는 첨언이 덧붙여졌지만, 못 들은 거로 하자.
“검 주세요, 검! 나의 예쁘고 찬란한 신성석으로 만든 검!”
“내 취미가 뭔지 궁금하지도 않은 건가?”
“시온 씨, 신성석도 만들 줄 아세요?!”
크레아토의 발언은 흘려듣더라도 에드나의 발언은 간과할 수 없었다.
그녀가 신의 사자라면 신성력을 갖추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했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신성력 없는 내게 신성석을 만들었느냐는 질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신성력도 없는 제가 무슨 능력으로 신성석을 만듭니까? 세르펜스가 만들어 준 게 당연하잖아요?”
“아···.”
“내 취미 생활은 무시하는 건가?!”
에드나와 대화를 나누는데,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지방방송이 너무 시끄럽다.
이 정도면 날 무시한 것에 대한 복수는 충분히 했으니, 관심을 가져줘야겠다.
“네, 네. 위대하신 드워프 장인님의 훌륭하신 취미는 뭐죠? 아이, 궁금해라! 어떤 놀라운 예술 작품을 만드셨을까! 너무 기대됩니다!”
“에헴! 그렇게 간절히 보고 싶다고 사정하니, 내 특별히 보여주도록 하겠네!”
진심으로 내가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딴 것보다 검부터 보고 싶은데.
크레아토가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작업실로 뛰어가, 작은 보석함을 가지고 나왔다.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웬 안경이죠?”
“듣자 하니, 천사···. 아, 아니···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프라시더스 군이 안경을 자주 쓰고 다닌다길래, 특별히 준비해 봤네!”
이른바 패션 안경이란 소리였다.
그리고 세르펜스가 이걸 전부 껴보지 않는 이상, 검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연계 퀘스트인가?’
보석함 안에는 심플한 테두리부터 천사 날개를 형상화한 화려한 안경까지. 심지어는 모노클과 안경 줄까지 있었다.
나는 안경을 하나씩 꺼내어 세르펜스에게 건넸다.
녀석은 내켜 하지 않는 기색이었으나, 검 세 자루라는 인질이 잡혀있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느닷없이 시작된 세르펜스 안경 패션쇼에 에드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이 나뭇잎을 형상화한 연녹색 테두리에 오렌지색 보석이 박힌 이건···. 유지스 겁니까?”
“정확하네!”
유지스도 안경을 꼈다. 처음 껴 본 패션 안경이 상당히 마음에 든 눈치다.
“어떤가? 마음에 들지? 안경값은 안경 낀 모습을 봤으니, 그걸로 됐네. 전부 가져도 좋아!”
“···이제 슬슬 완성된 검을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안경을 쓴 세르펜스가 크레아토의 말을 흘려들으며 말했다. 녀석의 얼굴이 부쩍 피곤해 보였다.
크레아토는 그 얼굴도 마음에 드는지, 크게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검을 가지러 작업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세르펜스를 대신하여, 안경이 든 보석함을 챙겼다.
“드워프는 원래 다 이래요?”
에드나가 허망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같은 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크레아토가 고급스러운 검은 천에 쌓인 검 세 자루를 들고 나왔다.
딱히 보관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나씩 꺼내며 자랑질을 하기 위함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자, 그럼 가장 먼저 레드포드 경의 검일세!”
거대한 먹빛의 검이다.
손잡이는 물론, 검집과 검날까지. 검정 일색에, 윤곽도 단순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하다는 말이 쏙 들어가 버린다.
섬세해도 이렇게 섬세할 수가 없다.
검의 가드나 폼멜, 검집 장식 등. 검날을 제외한 금속이 들어가는 모든 부위에 화려한 무늬가 조각되었다.
음각과 양각이 적절히 어우러져, 빛이 반사되는 각도가 달라 묘하게 화려했다. 단순한 윤곽마저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질 정도다.
윈스톤은 예술 작품과 다름없는 검을 받아 들고, 그 섬세한 무늬를 감상하는 대신 검날의 균형을 살피고 허공에 붕붕 휘둘렀다.
외관 따윈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알록달록 무지갯빛 총천연색 검이라도, 검으로써의 기능만 훌륭하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까?
‘감정이 메말랐네···.’
내가 크레아토였다면 통탄을 금치 못했으리라.
그러나 이제 고작 첫 번째 검을 선보였을 뿐이다.
윈스톤의 검은 크레아토가 만든 사천왕···. 아니 삼천왕인가? 아무튼 그중에서 최약체였다.
“그럼 다음은···. 으으음···. 허어어···.”
크레아토는 검은 천 아래, 두 자루의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대체 뭘 꺼내려고 저렇게 망설이는지 모르겠다.
“이걸세···!”
한참을 뜸 들이던 크레아토가 꺼내 든 검은 한 자루의 유려한 세검이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세르펜스의 검이다. 녀석의 검을 제일 신경 써서, 가장 마지막에 선보일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세르펜스의 검은 단순한 외곽선을 가진 윈스톤의 검과 달리, 그 형태부터 몹시 화려했다. 특히 가드 부분이.
복잡하게 이리저리 꼬인 선이 손등을 보호하는 듯한 모양새다.
어찌 보면 깃털이 내려앉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뱀이 똬리를 튼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야비한 뱀이 아니라, 신성한 백사 같은 느낌인가?’
은백색의 화려한 검에 포인트로 장식된, 녀석의 눈동자를 닮은 녹색 보석이 돋보였다.
“한번 뽑아 보게나.”
크레아토의 권유에 세르펜스가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하는 소리조차 없이 검이 매끄럽게 뽑혔다. 쭉 뻗은 매끈한 검날이 첨예한 빛을 흩뿌렸다.
반질반질한 검날에 세르펜스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녀석의 눈동자에도 은백색의 검이 비추어졌다.
세르펜스는 훌륭한 검사였고, 돈도 많으니 비싸고 귀한 검도 얼마든지 다뤄 봤을 거다.
하지만 성검을 받기 전까지 써야 할 대용품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검을 잡는 건 처음이리라.
“으음···. 감사합니다.”
녀석이 지그시 눈을 감아, 일렁거리는 눈동자를 숨기며 검을 도로 검집에 꽂아 넣었다.
다시 눈을 뜬 세르펜스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크레아토에게 빌렸던 검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자신의 검을 매었다.
검은 새것이었으나, 검을 매는 검대(劍帶)는 사용감이 있었다.
‘휴마누스가 준 검대는 안 쓸 생각인가?’
사람은 죄를 저지를지언정, 도구에는 아무런 죄도 없건마는.
아직도 녀석의 마음속 깊은 곳에, 휴마누스를 향한 앙금이 가득 쌓여있나 보다.
“그럼 이제 마지막 검일세.”
“오, 오오오!!”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순간이 왔다.
지금 내 앞에 테이블이라도 있었으면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두구두구두구 bgm을 깔았을 텐데.
아쉬운 대로 나는 오오오, 탄성을 내질렀다.
마지막 검이라 더욱 극적인 효과를 내고 싶었던 걸까?
검은 천 아래서 검을 한 자루씩 꺼내던 이전과 달리. 크레아토는 촤악-, 하고 천을 벗겨 허공에 집어던졌다.
검은 천이 나풀거리며 땅에 내려앉았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검은···.
“···이거, 성검 아니죠?”
성검을 한 번도 목격한 적 없는 에드나가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반응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솔직하게. 객관적인 눈으로 평가해도, 크레아토가 만든 검은 성검보다도 성스러웠다.
“소재가···, 소재가 너무 훌륭해서···! 크윽···!”
크레아토가 분하다는 듯 외쳤다.
앞선 검들은 사용자와 어울리는 디자인이었으나, 이 검만은 달랐다. 나보다 세르펜스에게 더 어울렸다.
‘어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세르펜스 그 자체인데?’
신성석이 너무나도 신성했고, 눈앞에 천사펜스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내가 쓰는 검이라는 걸 잠시 잊고, 모든 예술혼을 불살라 검을 만들어 버린 거다.
은백색의 검신(劍身) 또한 빼어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가드 중앙에 박힌 신성석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세르펜스의 검도 은백색이었으나, 이 검은 조금 더 특별했다.
마치 별가루를 뿌린 듯, 오묘한 펄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성함과 신비로움을 재료로 물리적인 형태를 빚어낼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아닐까?
“신성석의 모양을 다듬으며 나온 가루들을 모아, 금속과 함께 녹여낸 것이네.”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나는 오늘부터 이 검을 모시고 살 준비가 되어있다.
우선 이름부터 지어주는 게 좋겠다.
세르펜스가 만든 신성석을 주재료로 하여, 세르펜스를 모티브로 한, 세르펜스와 똑 닮은···.
“좋았어! 이제부터 네 이름은 세르펜스 주니어, 줄여서 세니어다!”
나는 세니어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소중히 움켜잡고, 하늘을 찌를 기세로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