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2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25화(325/1105)
325회
57. 공작님과 볼타 산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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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드 공국의 왕성에서 생활한 지도 어언 삼 개월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악마 숭배자의 꼬리조차 밟지 못한 것은 아니다.
열댓 번도 넘게 놈들에 대한 제보를 받고 그들을 잡으러 나갔으며, 네 번가량 직접 마주쳤다.
그런데도 성과가 없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그들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제보를 받고 함께 출동한 공왕의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어버렸다.
다른 한 명은 글을 모르는 자로, 혀가 잘려져 있어 말 또한 할 줄 몰랐다.
나머지 둘은 자결해 버렸다.
‘대체 세피는 악마 숭배자들을 어떻게 생포하는 거야?’
제자리걸음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한숨조차 안 나온다.
왕궁에 묶이지 않고 직접 발품을 팔아 정보를 모았더라면 더 나은 결과가 있었을 거다.
이는 공왕의 무능을 탓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간 선택을 후회하는 것 또한 아니다.
‘···수상해.’
세피의 말이 맞았다. 공왕은 의심스러웠다.
그녀는 도움에 대한 감사라는 명목으로 우리 일행의 발목을 왕궁에 묶어두었다.
자신이 가져온 정보만 이따금 던져줄 뿐. 우리가 직접 나서는 건, 갖은 변명을 대며 막아섰다.
문제는 행동반경의 제약뿐만이 아니다. 정보의 차단이 가장 큰 말썽거리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공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뿐.
그마저도 공왕이 허락한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세피가 볼타 산맥 쪽을 주기적으로 살펴 달라 말했었는데. 이래서야 면목이 없다.
차라리 악마 숭배자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더라면, 붙잡는 손길을 뿌리치고 공국을 떠났을 텐데.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악마 숭배자에 대한 단서가 흘러들어 왔다.
그 시간이 모여 현재에 이르렀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자라도, 이런 상황이 삼 개월이나 지속되면 눈치챌 수밖에 없으리라.
공왕이 일부러 우리를 이곳에 묶어두고 있다는 것을.
‘세피는 진작 프뤼네 왕국에서의 일을 마치고, 아니마의 언니를 데리고 제국에 도착했겠지?’
세피가 여정 도중 옆길로 빠져 느긋하게 관광 다닌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언제나 효율을 중시하는 세피이니만큼. 한 달도 더 전에 맡은 일을 끝내고 제국에 돌아와 있을 거다.
세피가 제국을 지키고 있을 테니 안심은 되지만, 모든 것을 그에게 내맡길 수는 없다.
성검의 선택을 받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에게. 그는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개인에게 떠넘겨서는 안 되는 짐이라 말하며, 내게 떠넘겨진 짐을 기꺼이 덜어 가 주었다.
그동안 홀로 그 짐을 짊어지고 있었으면서. 힘들다는 내색 한 번 한 적 없는. 그런 사람이다.
든든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믿음직한 벗이다.
‘···나도 정신 차리자.’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본래라면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고 결정해야 할 일이나,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조사를 위해 왕궁 밖을 나설 때도 공왕의 병사들과 함께해야 했고, 왕궁 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도처에 공왕의 귀가 깔렸다.
지금 이 순간조차, 공왕은 내 방문 근처를 서성이며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후우···.”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관리가 잘 되어 있는지, 문은 소리 없이 매끄럽게 열렸다.
“이 밤중에 어인 일이십니까?”
방 밖으로 나와 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공왕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따라붙었다.
“···그러는 공왕께서 이 시각에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악마 숭배자들로 인해 국내 실정이 어지러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터라. 잠이 오지 않아, 여기저기 정처 없이 거닐고 있었습니다.”
공왕은 그리 대답하였으나, 불면증에 시달려 산책하는 사람의 차림이 아니다.
몸에 착 달라붙는 밤 자락 같은 드레스와 팔뚝까지 올라오는 긴 검은 장갑.
거기다 잔머리 하나 없이 단정하게 틀어 올린 붉은 머리카락까지.
만반의 태세를 갖춘 공왕의 모습은 중요한 예식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방금까지 침대에서 뒤척이며 잠을 설치다가, 산책을 나선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전하께서도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나오신 거라면, 저와 함께하시겠습니까?”
“저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러 갈 예정이라, 권유는 감사하나 거절하겠습니다.”
“이 시각에 말입니까?”
“오늘 낮에 잡았던 악마 숭배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다, 어딘가 꺼림칙한 점이 떠올라서···.”
“무언가 단서라도 찾으신 겁니까? 참으로 기쁜 소식이군요. 그게 무엇인지 저에게도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공왕이 자신의 붉은 머리칼보다 더욱 선연(鮮然)한. 새빨간 눈동자를 빛내며 관심을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여 손을 성검의 손잡이에 올릴 뻔했다.
“아직 감이 안 잡혀서,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동료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면 뭐라도 떠오를까 하여, 그들을 찾아가려던 길입니다.”
“그런 거라면 저도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머리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라 하잖습니까?”
확신할 수 있다. 그녀는 결코 산책을 나온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나를 적으로 규정하고, 경계하며,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제 동료들이 신분 높은 사람을 좀 불편해해서, 그건 좀 곤란할 듯합니다.”
“왕의 이름을 단 저보다 높은 위치에 서 계신, 위대한 제국의 황태자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선명한 적대심이 느껴졌다.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공왕은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숨겨왔던 것일까.
“지금의 저는 루멘 제국의 황태자가 아닌 성검의 주인이며, 동료들과는 동등한 관계입니다.”
“그들이 전하와 동등하게 여겨지는 것은, 전하께서 높은 위치에서 허리를 숙여 그들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대등하다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전하뿐이며, 그들은 여전히 전하를 올려다보고 있다는 걸. 전하께서만 모르시는 듯합니다.”
공왕의 말이 묵직하게 가슴을 내리눌렀다. 숨이 턱 막혔다.
“부럽습니다. 자신을 낮추어도 존중받을 수 있는 그 위치와 여유가.”
탁, 적막 속에 작은 발소리가 울렸다.
내 발밑에서 들려온 그 소리는 벽에 반사되어, 귓가에 윙윙거렸다.
고작 한 걸음 뒤로 물러섰을 뿐인데.
벽에 부딪혀 점차 작아지는 반향은, 마치 내가 저 멀리 도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복도에 울려 퍼졌다.
“오래 붙잡아서 죄송합니다. 어서 가시지요.”
뜻밖에 공왕이 순순히 물러났다.
스르륵 드레스 자락이 끌리는 소리와 또각거리는 구두 굽 소리가 적막을 집어삼키며 멀어졌다.
포식자를 피해 숨었던 적막이 다시 돌아올 즈음에야, 나는 내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참아왔던 숨을 훅 내뱉고, 다시 들이켰다.
숨을 너무 오래 참고 있었던 탓일까? 머리가 조금 어지럽다.
‘역시···. 다들 나를 그렇게 여기고 있는 걸까?’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료들에게 배정된 방은 나와 같은 건물이었으나, 층이 달랐다. 그 위치 또한 꽤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멀었었나?’
어두운 계단을 홀로 내려가고, 침침한 복도를 혼자 걸었다.
생생하게 와 닿는 거리감에 외롭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아득하게 느껴졌던 기나긴 복도를 지나, 저 멀리서 동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각자 방에서 쉬고 있을 줄 알았던 일행은 사이좋게 한 방에 모여 있었다.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들어 올리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안 들어오고 문 앞에서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푸로르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멍하니 들어 올려진 내 손목을 우악스럽게 잡고, 방 안으로 끌어당겼다.
– 쾅!
그들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문이 등 뒤에서 닫혔다.
“푸로르 님, 살살 닫으셔야죠.”
“내 말이. 이러다 경비병들 듣고 다 몰려오겠네.”
리에나와 아니마가 푸로르에게 한소리를 했다.
푸로르는 겸연쩍은 웃음과 함께 미안하다며 비는 시늉을 했다.
멀뚱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그들이 외출복을 갖춰 입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다들 어디 가?”
내 물음에 리에나가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 선 아니마는 한술 더 떴다. 그녀는 기겁하는 표정을 짓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됐고, 이거나 빨리 그 뭐시기 주머니 안에 챙겨 넣어!”
푸로르가 각자의 짐이 든 커다란 배낭 세 개를 나에게 던졌다.
“내가 왜 왔는지···. 아니, 그 전에 내가 올 줄 어떻게 알았어?”
나는 오늘, 몰래 왕궁을 빠져나갈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들에게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얘를 어쩌면 좋으냐?”
“푸로르 님께서 답답해하시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좀 참아요. 이제라도 온 게 어디에요?”
어째서 푸로르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저런 말을 하는지. 왜 갑자기 리에나가 푸로르를 달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우린 저번 주부터 떠날 준비를 마쳤거든.”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아니마가 한심하다는 듯한 어투로 설명했다.
“뭐?! 내가 혼자서 얼마나 고민했는데, 어떻게 너희끼리만! 눈치라도 좀 주지!”
“줬거든?!”
“지금 본인이 눈치 못 채 놓고 우리한테 따지는 거야?”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요. 휴마누스 님께서 오셨으니, 들키기 전에 빨리 나가요.”
리에나가 흥분한 아니마와 푸로르를 진정시켰다.
“아···.”
“휴마누스 님? 왜 그러시죠?”
“여기 올 때 공왕과 마주쳤는데···.”
“······.”
나를 바라보는 리에나의 남색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무,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 어쩔 수 없잖아! 게다가 창문 밖에도 경비들이 쫙 깔렸었다고!”
“빨리 출발하죠.”
“으응···.”
일행의 짐을 아공간 주머니에 재빨리 주워 담았다.
“어차피 들킨 것 같으니까, 최단 경로로 가자고!”
“쉿, 조용히.”
푸로르가 창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외쳤다. 그런 그녀에게 리에나가 검지를 세우며 작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경고를 받은 푸로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두 팔을 힘없이 내려뜨렸다.
“쯧.”
기다리다 못한 아니마가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완성된 마법진은 곧바로 흩어져 일행의 주위를 감쌌다. 우리의 모습이 마치 유령처럼 희끄무레해졌다.
투명화 마법이다.
우리끼리는 희미하게 보이지만, 타인의 눈에는 투명하게 보인다는 게 아니마의 설명이었다.
처음 이 마법을 선보였을 때. 움직이면 남들 눈에는 윤곽선을 따라 공간이 일그러지듯 보이니, 주의하라는 말도 덧붙였었다.
그녀의 경고를 되새기는 사이, 두 번째 마법진도 완성되었다. 몸이 두둥실 저절로 떠올라 활짝 열린 창문을 통과했다.
아니마의 마법이라는 걸 알았기에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땅에 내려설 수 있었다.
병사들은 우리를 바로 코앞에 두고도, 활짝 열린 창문만 올려다보았다.
도망 계획을 들켰다고 한들, 위치가 발각되는 건 최대한 늦추는 게 좋다.
우리는 기척을 잔뜩 죽이고 살금살금 움직였다.
“이 머저리들! 어딜 보고 있는 거냐?! 저쪽이다!”
병사들을 지휘하던 기사가 우리 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우리가 선 공간을 찢어발길 기세로 거친 오러가 쇄도했다. 나는 일행의 앞을 막아서며, 왼쪽 손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목에 고정해 두었던 방패가 밝게 빛났다.
용사의 무구로 탈바꿈한 방패가 우리를 지켜줬지만, 위치가 발각된 이상 투명화 마법은 마력 낭비에 지나지 않았다.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도중 공격받지 않은 것으로 그 쓸모를 다 한 셈이다.
아니마가 투명화 마법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