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2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28화(328/1105)
328회
57. 공작님과 볼타 산맥 (4)
17번 막사는 개인용이 아니라 회의를 위한 막사였다.
들어서자마자 막사 정중앙에 놓인 기다란 사각 테이블과 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형 테이블이 아닌 만큼 상석이 존재했으나, 휴마누스는 상석에 앉지 않고 자리를 비워 뒀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우리 일행과 성검 일행이 마주 보며 앉···.
‘···쟤는 왜 저기에 앉는 거야?’
아니마가 이쪽으로 오는 건 그럴만했다. 에드나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에드나의 옆에 앉는 게 아니라, 그녀의 무릎 위에 앉았다. 빈 의자가 많았음에도.
에드나는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아니마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무릎냥이와 그에 익숙해진 집사의 표본이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우리 집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세르펜스가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언젠가 장난식으로 말했던, 무릎 위 츄르를 떠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르펜스는 결코 내 무릎에 올라오지 않겠다는 확고부동한 의지를 눈빛에 담아, 내게 전달했다.
‘나도 그건 싫어, 인마···!’
정신적으로는 어화둥둥 내 새끼야 노래를 부르며 비행기도 태워주고 다 했지만, 물리적으로는 좀 그렇다.
나보다 주먹 하나는 더 큰 데다, 상당한 근육량을 자랑하는 성인 남성을 무릎에 올리고 싶지는 않다.
내 연약한 몸뚱어리에 몹쓸 짓이다.
“얼굴을 보고 살이 너무 많이 빠진 것 같다 생각은 했는데···. 왜, 왜 이렇게까지 가벼워진 거야···!”
한탄스럽다는 에드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잡히지 않는 아니마의 뱃살에, 허망한 표정으로 손을 쥐었다 펴며 허공에 잼잼 했다.
“이게 뭐야, 완전 비쩍 말라서는···! 대체 얼마나 고생을 했길래!”
“나 잇짜나, 간식도 제대로 못 먹고, 매일매일 걷고, 막 돌아다니구, 넘 넘 힘들어쪄~!”
이때다 싶었는지 아니마가 약한 소리를 해대며, 에드나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군것질 안 하고 활동량이 늘어서 살이 빠지고 건강해졌다는 소리였다.
“아니마, 누가 네 혓바닥을 잘라가기라도 한 거야?”
동료의 과한 애교에 참다못한 푸로르가 결국 아니마의 혓바닥 안부를 묻기에 이르렀다.
에드나 앞에서 차마 말싸움을 할 수 없었던 아니마는 베~, 하고 메롱 하며 자신의 혓바닥이 무사함을 만천하에 알렸다.
“흠, 흠!!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하니까, 다들 조용히 해주지 않을래? 아니면 밖에 나가 있거나.”
휴마누스가 헛기침하며 한소리를 하자, 푸로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아니마는 밖에 나가 에드나와 둘이서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에드나는 그렇지 않은지 아니마를 고쳐 안았다.
드디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우선 공국에서 있었던 일부터 설명할게.”
휴마누스가 공국에서 악숭이들을 조사하며 있었던 일, 공왕과 나눴던 대화, 추적해오는 공국의 병사들에게 쫓기며 공국을 빠져나온 과정 등.
최대한 간략하게 엑기스만 뽑아 설명했다.
“그렇다는 건 현재 공왕이 공국의 모든 군권을 장악한 상태라는 겁니까?”
“응, 그런 것 같아. 그리고 세피, 네가 말했던 숨겨둔 병사들도 진짜로 있었고.”
“으음···.”
모든 설명을 들은 세르펜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비밀리에 키워진 병사에 관한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이제 와서 심각해질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는 건 공왕이 공국의 군권을 장악했다는 게 문제라는 뜻이다.
“공왕이 군권을 장악한 게 왜요?”
내 질문에 세르펜스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질문은 둘만 있을 때 해 줬으면 좋겠다는 표정이다.
휴마누스의 어처구니없다는 눈빛도 날아와 꽂힌다. 아무래도 공작 보좌관이라면 모를 수 없는 국제 정세에 관한 얘기였나 보다.
“공국은 왕권의 힘이 약한 국가입니다. 모든 영주가 공왕의 명령을 따라, 병력을 동원하여 제국의 황태자를 위협한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자신의 무식한 보좌관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의미 없이 앞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공작 보좌관이 아니더라도, 귀족이면 몰라선 안 될 얘기였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다. 이미 모르는 티를 낸 거, 나는 그냥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왜 약한데요?”
“왕은 그 나라에서 절대자로 군림해야 합니다. 하나 공국은 제국의 속국이잖습니까?”
공왕은 제국 황실의 신하나 다름없으니, 절대자로서의 권위가 제대로 설 리 만무하다는 뜻이다.
“공국 왕실은 제국 황실과 반목해 왔습니다.”
“그 해방 조건 뭐시기 때문에요?”
“예. 제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공국쯤은 손쉽게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기껏 아량을 베풀어 그 명맥을 유지해주고 있는데, 매년 주제넘은 요구를 해왔으니. 밉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하물며 폴드 왕국은 전대 성검의 주인이 겨우 봉인해 놓은 볼타 산맥의 결계를 깔짝거린 죄로, 공국으로 격하된 거다.
대륙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이단의 나라로 몰아갈 수 있었음에도, 물욕에 눈이 먼 머저리 취급으로 봐줬으니.
당대 황제가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굉장히 너그러운 양반임이 분명하다.
“공국 왕실이 힘이 없다는 건 잘 알았어요. 하지만 숨겨뒀던 병력이 있잖아요? 그걸로 귀족들을 협박했다면 그들도 따를 수밖에 없지 않나?”
“병력을 드러냈다고 한들, 본보기가 없다면 귀족들은 자존심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면, 전하···와 일행분들께서 눈치를 채셨을 겁니다.”
휴마누스의 눈치를 믿을 수 없었던 세르펜스가 그 일행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세르펜스가 성검 일행을 한 명씩 훑어보았고,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공국 내부에서 그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걸 목격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 질문이 있는데.”
“공왕이 황실과 반목하면서도 어째서 그런 요청서를 매해 보내왔느냐는 의문이라면···.”
내가 쓸데없는 질문을 하기라도 할까 봐, 세르펜스가 내 질문을 듣지도 않고 현시점에서 나올 만한 예상 질문을 뽑아 직접 언급했다.
그것에 관해 물으려던 게 맞았기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왕실이 제국 황실에 완전히 머리를 숙이지 않았음을 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거나, 누군가의 압력이 있었거나.”
나는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둔다면,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요청서는 공왕의 이름으로 보내진 것이기는 하나, 오롯이 공왕 개인의 판단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공국은 왕실의 힘이 약하니까?”
“네, 그렇습니다.”
세르펜스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께서 강의 시간에 던진 돌발 질문에 제대로 대답했을 때, 교수님의 얼굴에 걸린 미소와 엇비슷하다.
“그럼 그간 도착한 요청서들은 공왕이 아니라, 공국 귀족들이 요구한 조건이라는 겁니까?”
“귀족 전체가 원하는 조건을 취합했다기보다···.”
“그랬다기보다?”
“일부러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한 게 아닐까 합니다.”
엥? 소리가 절로 나오는 말이다.
에드나와 손장난하기에 여념이 없던 아니마까지 세르펜스를 쳐다볼 정도니, 말 다했다.
모두가 의문을 표하는 가운데, 휴마누스는 홀로 ‘역시 그런 건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꼴에 제국의 황태자라 이거겠지.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대요?”
“공국의 권력을 장악한 특정 귀족 가문일 수도, 악마 숭배 세력일 수도. 혹은 양측 모두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포괄적이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다.
세르펜스는 오늘 간식으로 딸기 몽블랑 타르트를 선호할 수도 있고, 레몬 머랭 파이를 먹고 싶어 할 수도 있으며.
혹은 그저 달달한 디저트이기만 하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단순히 권력 다툼일 뿐이라면, 기껏 해봐야 제국의 위세를 빌려 무능한 공국 왕실을 밀어내는 수준에서 그치겠지만···.”
세르펜스가 왕권 교체를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입에 담았다.
단순한 권력 다툼으로 역적모의라니. 남의 나라 일이라고 말을 막 한다.
“악마 숭배 세력이 끼어든 거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렇지. 공국의 요청서는 몇 대째, 항상 똑같은 내용이었으니까.”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의 말에 추임새를 넣듯 덧붙였다.
“공국이 왕국이던 시절, 볼타 산맥의 결계를 건드린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의 자원을 욕심낸 것이 아니라, 악마 숭배 세력이 개입한 걸지도 모릅니다.”
당시는 대륙을 위협했던 흑마법사가 처치되고, 볼타 산맥에 결계를 펼쳐 대륙이 안정을 찾은 직후다.
모두가 기쁨의 축포를 쏘아 올리며 방심하고 있을 때다. 제대로 된 경비 체계도 갖춰지기 전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할 일을 마친 성검은 신 룩스메아에게로 반환된 상태였겠지.
다시 성검이 내려오고 새로운 주인을 선택하려면 최소 25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미수에서 그쳤기에 천만다행이다. 만일 그때 결계가 깨지기라도 했다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을 거다.
위기에서 벗어나자마자, 새로운 위기가 닥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망하고 두려워했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제국은 바로 근처에 악마 숭배자들을 두고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가···.”
휴마누스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언이 이보다 적절히 맞아떨어질 수가 없다.
“기정사실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누군가의 뒤에 숨어 압박하고 몰아가며, 한편으로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척 악마 숭배 세력으로 끌어들이는 건. 그들이 흔히 쓰는, 오랜 수법 중 하나입니다.”
“악마 숭배자들의 손을 잡을 만큼, 현 공왕은 유약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전하의 말씀대로···. 기회가 주어졌다면, 공왕은 스스로 이겨냈을 겁니다.”
세르펜스가 혼잣말이라도 하듯,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런 녀석의 얼굴이 조금은 우울해 보인다.
[성검의 주인]에서 공왕은. 폴드 왕국의 왕, 러스티 뤼제 폴드는 당당한 지도자였다.대세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성검 일행을 지지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이길 망설이지 않았다.
러스티 뤼제 폴드는 제국 멸망 후, 몰래 키워왔던 병력을 드러냈다.
그 병력을 이용해 성검의 주인을 지지하길 반대하는 몇몇 가문을 본보기로 숙청하고, 왕권을 다지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숙청당한 가문 중에 악숭 세력의 손길이 미친 가문이 있었던 거겠지?’
제국이 건재할 때는 사용할 수 없는 방식이다.
몰래 병력을 키워왔다는 사실이 들통나면 반란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귀족 가문을 숙청하는 것 또한 제국의 눈치를 봐야 했으니까.
그들이 악숭이라는 증거가 있었다면 모를까.
제국에 올릴 요청서에 적을 내용을 강요했다는 것만으로 귀족들을 처형해대면, 공국의 귀족 이전에 제국 황실이 가만있지 않을 거다.
‘어쨌든 폴드 공국은 신성 루멘 제국의 속국이니까.’
아래에 있는 신하가 군주의 허락 없이, 자신의 말을 안 듣는다고 부하들을 마구 죽이는 격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번 처형대 앞에 서는 자는 폴드 공국의 왕족이다.
“그래도 꼭 이런 방식을 택해야만 했을까?”
“전하께서는 모르시잖습니까. 뼈에 아로새겨질 만큼 오랜 세월 억압되어온 자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숙원은. 선대로부터 후대에 전달된 그 의지는.
어찌 보면 강요에 가까웠다.
현 공왕을 포함하여 역대 공왕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 의지를 강요받았을 거다.
그게 자신의 의지인지, 주입된 의지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어린 나이에.
세르펜스가 울적해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지.
“···응?”
우울한 세르펜스의 음성에 휴마누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역대 공왕들은 왕국의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는 숙원을 떠안고도, 힘이 없어 귀족들에게 휘둘려 그것을 행하지 못하였잖습니까? 왕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 판단했든, 오랜 세월 왕권을 억압해온 귀족 가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든.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흘러내리지도 않은 안경을 고쳐 썼다.
자신의 감정을 냉정한 표정 뒤로 감췄다.
“어···. 너 되게 차갑게 말한다.”
냉랭하게 말하는 세르펜스가 낯설다는 듯, 휴마누스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공왕의 처지는 동정할 만하나, 지금은 악마 숭배 세력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죄 없는 카술라 령의 영지민들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볼타 산맥의 결계를 깨부수는 것이며, 이는 대륙에 큰 위협이 될 겁니다. 공왕의 처지는 동정하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지. 이젠 돌이킬 수 없지.”
휴마누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곱씹듯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을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