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2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29화(329/1105)
329회
57. 공작님과 볼타 산맥 (5)
“공국이 어떤 연유로 악마 숭배 세력에 가담했는지는, 지금에 이르러선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희끼리 고민하고 추측해 봤자, 현 상황을 타개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 세르펜스가 안면을 몰수하며 말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녀석은 나와 휴마누스의 질문에 대답했을 뿐이다.
고로, 녀석의 말은 이제 질문 좀 그만하고 진도를 나가자는 말이었다.
“응? 열심히 설명한 사람은 세피, 너잖아?”
명불허전 휴마눈새는 오늘도 어김없이 눈치가 없다.
세르펜스어를 최소 10년 이상 들어왔으면서, 이런 기초적인 문장도 해석하지 못하다니!
아무래도 대륙 전역이 공용어를 사용하는지라,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능력이 월등하게 떨어지나 보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친절히 번역해 줄 수밖에.
“세르펜스는 질문에 대답만 했을 뿐이잖아요. 이제 지나간 일에 대한 건 그만 물어보고,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자는 뜻입니다.”
“그, 그런 거야?”
휴마누스의 시선이 세르펜스를 향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세르펜스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고, 휴마누스는 그 미소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성검의 주인]을 읽을 때도 참 눈치 없다고 생각은 했었는데.실제로 눈앞에 두고 보니, 이렇게 답답할 데가 없다. 먹지도 않은 고구마가 가슴에 얹힌 듯한 기분이다.
“···공작 나리께서 고생이 많으시네.”
“푸로르?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야?”
“나도 참 고생이 많고.”
“······.”
푸로르가 휴마누스를 흘깃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하긴. 이번 공국 탈출 과정에서도 일행은 짐을 다 싸놓고 휴마누스를 기다렸는데, 휴마누스가 눈치를 못 채서 한참 뭉그적댔다고 하지 않았던가.
[성검의 주인]에서는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유지스가 정령을 이용해서 휴마누스에게 몰래 의사를 전달했었다.유지스의 빈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이런 곳에서 발생할 줄은 몰랐지!’
안타깝다 못해, 한심스러운 일이다.
“미리 사인을 만들어 놓는 건 어때요? 귀를 만지면 할 말이 있으니 몰래 찾아와라. 코를 만지면 오늘 떠날 준비를 해라. 눈을 세 번 연속 깜박이면 저 새끼는 악숭이니까 조심해라. 뭐 그런 식···. 아, 참고로 악숭이는 악마 숭배자의 줄임말인데 제가 설명해 드렸나요?”
“악마 숭배자를 어째서 줄여 부르는가는 둘째 치고, 사인을 만들어 놓자는 건 좋은 생각이네요!”
휴마누스가 답답했던 건 푸로르 뿐만이 아니었다.
리에나가 화색이 완연한 얼굴로 내 의견에 동조했다.
“잠깐만, 시온 경은 우리 일행도 아니잖아?”
“제삼자가 보기에도 답답했나 보지.”
아니마가 망연해하는 휴마누스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톡 쏘아붙였다.
“저기, 혹시 다들 나 싫어해···? 나 혼자만 친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 리가! 친하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얘기도 편하게 할 수 있는 거고,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거잖아?”
“푸로르 님 말씀대로예요. 정말 싫어했다면 이런 얘기도 하지 않았을걸요?”
“···마음에 안 들었으면 대화도 안 해.”
자신을 우쭈쭈 해 주는 동료들을 보며, 휴마누스가 긴가민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얼마나 눈치가 없는지 알고 있다면, 분에 넘치는 동료애에 감동하여 눈물 콧물을 쏙 뺐을 텐데.
눈치가 없어서 동료들의 배려도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다.
눈새누스를 보며 속으로 끌끌 혀를 차고 있자니···.
“으음.”
세르펜스가 낮은 침음을 흘리며, 테이블 아래에서 내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내가 꺼낸 쓸데없는 소리 때문에 대화가 엉뚱한 곳으로 빠졌다고 타박하는 거다.
‘동료 간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이후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안이다.
“일단 사인은 나중에 알아서 정하시는 거로 하고, 당장은 본론으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심펜스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대신했다.
그녀의 말에 리에나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진짜 잘못은 눈치 없는 휴마누스에게 있다는 걸 알기에, 유지스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공국이 카술라 령을 점령한 것까지는 알고 있지?”
휴마누스가 몹시 떨떠름한 얼굴로 본론을 꺼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르펜스는 어서 이야기하라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접 영지에 병사들을 주둔시켜 놨지만, 그곳에 잡혀있는 일반 영지민들 때문에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야.”
“그것 또한 들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국의 출입도 통제된 상태야. 공국으로 상행을 갔던 상인들의 완전히 연락이 끊겼어. 룩스메아 교단의 신전들은···,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공국에 악마 숭배자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납치한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공국을 찾는 개인 방문자가 없었다는 것 정도?”
불행 중 다행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타국에도 연락을 보냈는데···. 이게 좀 골치가 아파.”
“영지민들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공국을 공격하자는 제안입니까?”
“···맞아. 공국이 작은 나라라 할지라도 어쨌든 하나의 나라니까.”
볼타 산맥의 결계가 깨지느냐 마느냐도 중요한 문제지만, 국가 단위의 단체가 악마 숭배 세력에 귀속된 건 비상사태다.
조기에 진압해야 한다.
휴마누스는 성검의 주인으로서 악숭이들로부터 대륙을 지켜야 할 임무를 받았다.
하지만 휴마누스는 성검의 주인이기 이전에 신성 루멘 제국의 황태자다.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폐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까?”
“아바마마께서는 내 뜻을 존중하겠다고 하셨어. 언젠가 내가 이어받을 나라니까, 이런 결정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이런 결정이란,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눈감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말하는 휴마누스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알고는 있으나,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한 듯하다.
“내가 너무 나약한 걸까?”
자신의 선택에 따라 수많은 이들이 희생된다는데, 망설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세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다수의 생명이 목숨을 잃게 될 겁니다. 선택의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누군가는 반드시 전하의 선택을 비난할 겁니다.”
“······!”
세르펜스의 모진 말에 휴마누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놀란 건 휴마누스 뿐만이 아니다.
‘대외펜스는 집에 갔나?’
세르펜스의 본성을 알고 있는 나도 놀라고, 유지스도 놀랐다. 아무 것도 모르는 리에나와 에드나는 말할 것도 없다.
막사 안에서 놀라지 않은 사람은 아니마와 푸로르, 윈스톤. 딱 세 사람뿐이다.
아니마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인 반면, 푸로르는 전쟁의 무자비함을 알고 세르펜스의 말을 이해하는 표정이다.
최근에는 룩스메아 교단이 나라 간 전쟁을 금지하고 있어, 푸로르가 직접 전쟁을 경험한 건 아닐지라도 세상에는 간접 경험이라는 게 있다.
그녀는 용병들 사이에서 자랐고, 그들로부터 전쟁의 참혹함을 배웠을 거다. 용병으로 고용되어 집단전도 겪어 봤겠지.
윈스톤은 ‘주군께서 어련히 생각이 있으시겠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나 몰래 세르펜스에게 생각을 맡겨놓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십시오. 전하의 곁에 선 자들은 전하의 뜻을 지지하고, 따를 겁니다.”
모진 말을 내뱉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나 보다.
세르펜스가 자애로운 미소를 꾸며내며,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휴마누스를 바라보는 시선 처리까지 완벽하다.
녀석의 푸릇한 녹음을 닮은 두 눈동자 가득, 온화함이 넘실거렸다.
“나는···. 직접 카술라 령에 잠입하겠어. 확인된 바에 의하면 공왕은 그곳에 있어. 공왕을 사로잡는다면, 공왕의 병사들 또한 해산시킬 수 있을 거야.”
휴마누스가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카술라 령의 영지민들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며, 두 손 놓고 별일 없기를 기도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어. 어쩌면 함정일 수도 있다는 것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걸 원치 않아.”
정의로운 주인공이 내릴 만한 결단이다.
“다만, 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모두의 도움이 필요해.”
가장 먼저 동의를 표한 사람은 리에나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으로는 푸로르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마는 고개를 돌려 에드나의 얼굴을 한 번 보고 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동료들을 돌아본 휴마누스가 감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기, 세피는?”
“예?”
이 막사 안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세르펜스다.
이렇게 중요한 작전에 세르펜스를 쏙 빼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작전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세르펜스는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게다가 휴마누스는 세르펜스가 친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으니···.
“앞서 말씀드렸잖습니까. 전하의 뜻을 지지하겠다고···.”
은근슬쩍 빠져나가려던 세르펜스가 아쉬움을 감추며, 아까 자신이 했던 말을 끌어와 휴마누스를 타박하는 투로 말했다.
“당연히 알아들으셨을 줄 알았는데···. 으음···. 전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주 잘 알겠습니다.”
“세, 세피? 잠깐만, 지금 무슨 말을···.”
“아닙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휴마누스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세르펜스의 의중을 물었을 뿐이다.
그러나 세르펜스는 그의 말을 싹둑 잘라먹었다. 휴마누스가 자신에게 사과해야 할 정도로 심한 말을 했노라,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제가 전하께 믿음을 드리지 못하였기 때문이거늘, 어찌 전하를 원망하겠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제 평소 행실이 못난 탓일 겁니다.”
“아, 아니야! 세피는 항상 바르고, 성실하지! 내가 세피를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데!”
“괜찮습니다, 그런 식으로 포장하려 하지 않으셔도···.”
세르펜스가 고개를 팩 돌리며 눈가에 맺힌 거짓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냈다.
그저 휴마누스에게 심술을 부리는 것뿐이라는 건 알지만, 미인의 눈물은 쉽게 외면하기 힘들다.
심지어 세르펜스는 그냥 미인도 아니다.
진짜 천사의 날개를 부욱 뜯어다가, 피투성이 날개를 등에 갖다 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봐도, ‘아, 날개를 계승하는 중이었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만한.
천사보다 신성하고 고결한 얼굴의 소유자다.
세르펜스가 연기 중이라는 걸 까맣게 모르는 성검 일행과 에드나는 물론, 진실을 알고 있는 나와 유지스, 윈스톤까지.
막사 안의 모든 이들이 휴마누스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 순간, 대륙 제일의 쓰레기는 휴마누스였다.
“아, 아니···. 진짜, 그런 거 아닌데···.”
억울하다고 항변해 봤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저 눈치 없는 새끼가 결국···.”
누구의 것인지 모를 여성의 목소리가 막사 안을 울렸다.
휴마누스가 양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세피,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하고 끊임없이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여간 충격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은 있으신가요?”
리에나가 휴마누스의 변론조차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화두를 돌려버렸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계획은 계획이었기에, 휴마누스가 얼굴을 가린 손을 내렸다. 죄책감 가득한 휴마누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건 지금부터 다 같이 세워야지.”
“세상에, 신 룩스메아시여···!”
“어쩔 수 없잖아! 방금 떠올린 작전이니까!”
휴마누스가 뭐라 뭐라 말하였으나, 신을 찾으며 기도에 들어간 리에나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하다.
“제가 저쪽 일행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에요···.”
유지스가 성검 일행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심으로 안도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