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2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30화(330/1105)
330회
57. 공작님과 볼타 산맥 (6)
우여곡절 끝에 작전 회의가 끝났다.
결행일은 바로 오늘 밤.
카술라 령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오래 고민한 것치고는 빠른 결단이다.
어쩌면 휴마누스는 줄곧. 자신이 어떤 선택을 내리든, 믿고 지지해주겠다는 말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 시기의 휴마누스는 아직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니까.’
[성검의 주인] 속 휴마누스는 전형적인 ‘성장형 주인공’이다.이는 곧, 미성숙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걸 의미한다.
휴마누스는 황태자였고, 예고된 재앙으로 불안정한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악숭이들을 대비하기 위해. 무의미한 피를 흘리지 않도록, 온 대륙이 평화를 유지하며 노력한 시대를 살아왔다.
폭풍전야에 불과했지만, 그 세월이 자그마치 25년이다.
선택의 날 전까지, 휴마누스는 평생을 안정 속에서 살아왔던 거다.
‘머릿속이 꽃밭일 만도 하지.’
그런데 느닷없이 성검의 주인이 되어 버렸다.
타인의 생명을 천칭에 걸어 그 무게를 재고, 선택하란다.
고민하고 망설이는 것도 당연하다.
휴마누스는 앞으로도 이런 잔혹한 선택의 갈림길에 몇 번이고 놓일 거다.
적어도 [성검의 주인]에서는 그러했다. 훨씬 많은 생명을 저울에 올리고, 더욱 괴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제3의 선택지가 존재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에휴, 잘 돼야 할 텐데.’
아직 밤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그때까지 각자 배정된 막사에서 쉬기로 했다.
내가 배정받은 막사는 27번으로, 세르펜스의 31번 막사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아니마는 당당하게 에드나와 막사를 쓰겠노라 선언했지만, 세르펜스는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녀석은 나를 카술라 령에 데려가겠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꾸려도 모자랄 판에, 분리불안 증세가 있어 나를 데려가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던 거다.
아까 휴마누스에게 심술을 부렸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 스륵···.
천막으로 지어진 막사 입구의 천을 걷으며, 누군가 조심스레 들어왔다.
“세르···, 펜스가 아니네? 전하께서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응? 세피가 여기 오기로 했나?”
“아뇨, 그건 아닌데···.”
“아니라면 되었네.”
그렇게 말하며 휴마누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막사 안에 나 말고도 누가 있는지 확인하는 듯한 행동이다.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로 보나, 세르펜스 몰래 내게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게 틀림없다.
“크흠! 허락도 없이 불쑥 들어와서 미안하네.”
“아뇨, 뭐. 괜찮아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아, 그래?”
휴마누스가 반색을 표했다. 기다렸다는 듯 말투가 가벼워졌다.
“그런데 여기는 왜 침대가 두 개야?”
남몰래 찾아와야 할 만큼 중요한 이유가 있을 텐데도, 휴마누스는 침대 개수에 관심을 가졌다.
이해한다. 있는 거라고는 침대뿐인 휑한 막사에, 침대가 하나 더 늘어난 건 굉장히 눈에 띄니까.
정신이 팔린대도 어쩔 수 없다.
“하나는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침대입니다.”
“···침대를?”
“언제 어디서든 편한 잠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죠. 지금처럼요.”
“하긴 막사에 비치된 침대가 너무 딱딱하긴 하더라.”
“군용 물품이 다 그렇죠, 뭐.”
나는 우스개처럼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사 안에는 의자와 테이블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앉을 만한 곳은 침대뿐이다.
황태자를 딱딱한 침대에 앉히고 내가 푹신한 침대에 앉을 수는 없으니, 내가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괜찮아, 그냥 앉아 있어.”
“넵!”
원래는 안 되지만, 황태자가 허락하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혹여 자리를 뺏길까 냉큼 제자리에 앉았다.
“내가 시온 경을 찾아온 건···. 잠깐, 무릎 위에 그건 또 뭐야?”
군용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마주 보며 본론을 꺼내려던 휴마누스가 또다시 옆길로 샜다.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
휘황찬란한 광채를 자랑하는 세니어는 굉장히 이목을 잡아끄니까.
그 때문에 평소에는 천으로 칭칭 감아놓고 다녀야 했다.
검을 노리고 접근하는 쓸데없는 파리들을 예방하기 위함도 있으나, 세르펜스가 민망해했기 때문이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수제 카네이션을 만들어 드렸는데, 부모님이 그걸 보란 듯이 매일 가슴팍에 꽂고 다니며 남들에게 자랑하고 다닌다면!
심지어 그 카네이션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애칭까지 붙였다면!
상상만 해도 괜스레 부끄럽고 민망하다.
‘살짝 미안해지는데···?’
하지만 날 생각해주는 그 마음이 갸륵하고, 뿌듯하며, 자랑스러운데 어쩌랴.
“···중앙에 박힌 그거, 신성석 아니야?”
“네, 맞습니다! 세르펜스가 만들어준 거죠!”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손질 중이던 세니어를 휴마누스에게 내보였다.
그리고 그가 손을 뻗는 타이밍에 세니어를 거두어, 검집에 쏙 꽂아 옆자리에 고이 모셨다.
‘느이 집엔 이런 거 없지?’
좀처럼 자랑할 타이밍을 못 잡았는데, 이렇게 기회가 올 줄이야.
얼굴에 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세피가 시온 경을 진짜 많이 아끼나 봐···?”
“어휴, 두말하면 입만 아프죠!”
너무 재수 없게 으스댔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 정도는 해 줘야, 세르펜스의 가장 친한 친구는 자신이 아니라는 걸 휴마누스가 깨달을 수 있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절 찾아오신 건데요?”
“평소에 세피가 어떻게 하길래, 시온 경이 상급자인 세피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건지 물어보려 했었는데···. 그냥 경의 성격이 원래 그런 것 같네.”
눈치가 아예 없는 줄 알았더니, 제법이다.
‘휴마눈새 주제에 대체 어떻게 알았지?’
어쨌든 하급자와 서로 막역하게 지내는 비결을 세르펜스에게 묻고 싶었으나, 편하게 지내고 싶은 대상에 세르펜스가 포함되어 내게 물으러 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냥 내 성격이 이런 걸 알고, 실망한 듯하다.
“다들 시온 경 같았으면 좋을 텐데···.”
“다들? 지금 같이 다니는 동료들 얘깁니까? 꽤 편해 보이던데요?”
“······.”
내가 아는 휴마누스의 성격이라면 쾌활하게 웃으며 ‘역시 그렇지?’라고 말했을 텐데.
어째선지 그는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혹시 세르펜스가 계속 존댓말 해서 그래요?”
“그런 것도 있고, 그냥···. 요새 들어 나 혼자만 남들과 친하다고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예?!”
자그마치 10년이 넘었다.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의 숱한 철벽을 무시하고, 친분을 과시하고 다닌 세월이.
최근 들어 세르펜스가 이전보다 견고한 철벽을 세웠다지만, 상대는 휴마눈새다.
이제 와서 갑자기 휴마누스 혼자 이런 발상을 떠올렸을 리 만무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냥 잊어.”
휴마누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이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짓은 휴마눈새나 할 짓이다.
나는 휴마누스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누가 휴마누스에게 그렇게 말하던가요? 휴마누스가 높은 사람이라 마지못해 친한 척하는 거라고?”
“어···, 어떻게 알았어?”
마치 알아봐 달라는 듯, 갖은 티를 팍팍 낸 휴마누스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자기가 눈치 없다고 남들도 다 눈치가 없는 줄 아는 게 분명하다.
“일단 자리에 앉아 봐요. 누가 그랬어요, 누가?”
“고, 공왕이···.”
“언제요?”
“공국 왕실을 떠나던 날, 복도에서···?”
“아까는 그런 말 안 하셨잖아요!”
“동료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무래도 조금 그렇잖아?”
휴마누스는 탈출을 마음먹었던 날 공왕을 복도에서 마주치긴 했으나, 중요한 대화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따라올 것처럼 굴더니 순순히 물러났는데, 자신들이 도망갈 것을 알고 길을 봉쇄하러 간 것 같다고만 설명했을 뿐이다.
정말 별것 아니었고, 누구나 추론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휴마누스가 공왕을 마주친 것에 큰 의의를 두지 않고 넘어갔다. 당시 막사 안에 있던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자신을 싫어하느냐고 물었던 거야?’
그냥 농담인 줄 알았다.
조금 서운했나 보다 생각했다.
“아이고, 이 답답이!”
“······.”
휴마누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눈치 좀 챙기고 다니길 바랐었는데.
얼마 없는 눈치를 끌어모아, 남의 눈치를 살피려 애쓰는 휴마눈새를 이렇게 마주하니, 짠하고 갑갑하다.
“악숭이가 괜한 분란 일으키길 좋아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담아두지 마요.”
“정말 그럴까···?”
미약한 기대감이 서렸지만, 여전히 자신 없다는 목소리다.
“그렇고 말고요! 리에나는 성직자라 신분이나 직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푸로르는 친구로 지내길 마음먹었으면 신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성격이고. 아니마야 뭐···. 자기 언니 말고 마음을 연 사람은 지금 일행들뿐인걸요? 휴마누스가 이런 거로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면, 다들 서운해할 겁니다.”
“···내 일행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제, 제가 원래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납니다! 척하면 척이죠! 네!”
어색한 변명이었음에도 휴마누스는 감탄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아니, 많이 부담스럽다.
“시온 경이 보기에, 동료들이 정말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진심으로 나를 벗이라고···. 편한 친구라고 여기는 것 같아?”
“암요, 그렇고 말고요!”
“세피도?!”
“아···, 음···.”
“···세피···는?”
나는 조용히 휴마누스의 시선을 피했다.
그의 자신감을 채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애를 제물로 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일단 그 세피라는 애칭부터 갖다버리죠!”
“응? 그건 왜···. 아, 설마 애칭으로 불리는 게 부끄럽대?”
“네, 뭐, 그···, 음···. 대충, 네.”
“하긴 세피도 사회적 체면이 있는데···. 공식 석상에서는 자제할 걸 그랬네.”
“기왕이면 사석에서도 좀···. 신성석을 받을 정도로 친한 저도 꼬박꼬박 세르펜스라고 부르잖아요? 애칭으로 불리는 걸 싫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휴마누스가 생각 없이 세르펜스에게 했던 행동들이. 사실은 세르펜스가 지극히 꺼리는 행위였음이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휴마누스의 표정이 심각하게 어두워졌다.
“···그래서 내가 싫대?”
“시, 싫다기보단, 말 그대로 불편한 거죠.”
어쩌면. 확신할 수 없지만. 꺼리는 기색이 완연하지만. 배신감을 느끼고 있지만.
나는 내뱉을 수 없는 뒷말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도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거구나···. 선택의 날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휴마누스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대외펜스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거였으나, 그냥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내버려 두는 게 좋겠다.
한 번에 너무 많은 희망을 빼앗으면 일어나기 힘들 테니까.
“그런데 휴마···, 아, 아니. 전하께서는 왜 세르펜스를 애칭으로 부르시는 겁니까?”
“실컷 이름으로 불러놓고, 이제 와서 전하라고 부르는 거야?”
“제가 그랬어요?”
“응.”
정말로 내가 그랬나 보다.
휴마누스가 없을 때도 꼬박꼬박 전하라 부르라던 세르펜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제, 제가 왜 그랬을까~요?”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아. 어차피 내 동료들도 그러고 있고. 이런 상담도 해 줬으니까, 이 정도면 친구···라고 해도 되지 않아?”
장족의 발전이다.
세르펜스의 친구니까, 너도 내 친구 같은 소리를 하지 않다니! 거기다 저 조심스러운 말투까지!
앞으로 휴마누스를 이름으로 찍찍 불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보다, 휴마누스가 친구의 정의를 고쳐 쓴 게 몇 배로 놀랍고 감격스럽다.
“네, 바로 그겁니다! 오늘부터 저희가 친구 1일이기 때문에!”
“···세피가 참 특이한 친구를 사귀었구나?”
“세피가 아니라, 세르펜스라고 해야죠! 자, 자! 다시! ‘세르펜스가 참 훌륭한 친구를 사귀었구나?’ 한번 따라 해 보세요!”
“세, 세르펜스가 참···, 잠깐만. 호칭만 바뀐 게 아닌 것 같은데?”
들켰다. 휴마눈새라면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는데. 눈치가 늘었나?
“아무튼! 세르펜스를 왜 애칭으로 부르시는 겁니까? 싫다는 티는 제대로 못 내도, 그러지 말아 달라는 말은 했을 텐데요?”
“했던 것도 같고···.”
“친구가 된 기념으로 툭 까놓고 말하는 건데, 호칭만 그런 게 아니라 세르펜스가 자제해 달라는 거 전부 다 무시하고, 멋대로 밀어붙이셨잖아요? 왜 그러신 겁니까?”
“···시온은 친구가 됐다고 생각하면, 할 말 다 하는 스타일이구나?”
이건 오해다. 나도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는다.
그는 나에게 조언을 얻고자 찾아왔다. 그러니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받을 각오도 했으리라.
‘휴마누스라면 이런 태도를 더 반길 것 같기도 하고.’
예상대로 딱히 트집을 잡거나 대답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지, 휴마누스는 조용히 회고에 잠겼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이유를 떠올리는 데도 한참 걸리는 모양이다.
“음···. 아마도, 오기로?”
“······.”
휴마누스와 친구 하기로 한 지, 고작 3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컵라면도 익지 않을,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도 절교하자는 말이 벌써부터 목구멍에 걸린 까닭은, 결코 내 변덕 탓이 아니다.
전부 휴마누스의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