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3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35화(335/1105)
335회
57. 공작님과 볼타 산맥 (11)
악마를 해치운 세르펜스가 성벽 위로 올라왔다.
세르펜스는 성벽에 착지하자마자, 마물 두 마리를 빠르게 베어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죄송해요, 제가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괜찮습니다. 덕분에 악마가 방심하여, 쉽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세르펜스가 사과하는 유지스의 말을 막으며 설명을 요구했다.
걱정과 안도가 묻어나는 목소리다.
한창 싸우는 도중에 유지스의 화살이 갑자기 멎었으니.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걱정했을 만도 하다.
그러다 멀쩡한 모습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은 거겠지.
“저는 시온이 윈스톤 님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걸 듣고, 반사적으로 활을 쏘았을 뿐이라서요···.”
유지스가 말끝을 흐리며 윈스톤에게 시선을 던졌다.
윈스톤은 아니마와 에드나에게로 달려드는 마물과 싸우느라 바빠 보였다. 그냥 내가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갑자기 병사 하나가 절 공격했어요.”
내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하자, 세르펜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보다시피 멀쩡합니다.”
세르펜스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녀석은 나를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려서, 정말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난 후에야 표정을 풀었다.
“세니어가 결계로 절 보호하는 동안 윈스톤이 그놈을 해치우고, 윈스톤에게 달려드는 마물을 유지스가 활로 쐈어요. 아 참. 절 공격한 놈이 제국 병사 복장을 하고 있어서 병사라고 했을 뿐이지, 확실한 건 아닙니다. 검푸른 오러를 썼거든요. 아마 악숭이일 겁니다.”
“정말 괜찮으신 게 맞습니까?”
“제 눈에는 세르펜스가 더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나는 세르펜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악마와의 공중전이 꽤나 치열했는지, 단정하게 묶었던 청은빛 머리칼이 반쯤 풀어 헤쳐져 있었다.
안경은 거치적거려서 벗은 건지 벗겨진 건지 어디론가 사라져, 맨얼굴을 그냥 드러내고 있었다.
새하얗던 옷은 악마나 마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피로 군데군데 얼룩졌다.
그 외에도 착지할 때 일어났던 먼지 구름 때문에 흙먼지를 뒤집어썼다거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다거나.
사소한 문제점이 몇 있었으나, 가장 큰 문제는.
“다친 건 세르펜스잖아요.”
내가 잠시 딴 곳을 보고 있는 동안 몇 번의 공격을 허용했던 모양이다.
옷이 군데군데 찢겼고, 찢긴 부위 주변에는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
싸우는 데 지장을 줄 만한 상처는 바로바로 치료한 것 같지만, 그 외 자잘한 상처는 그냥 남겨 두었다.
“전투가 모두 끝난 후에 치료해도 늦지 않습니다.”
녀석의 말대로.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마물들은 아직도 밀려들고 있었고, 아까 전 하늘이 어두워졌던 것도 신경 쓰인다.
“그러고 보니, 방금 하늘이···.”
“당신을 공격했었던 병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세르펜스가 내 말을 잘라먹었다.
손가락을 들어 발치에 나동그라진 시체를 가리키니, 녀석이 그 시체를 성벽 한쪽 구석으로 옮겼다.
나중에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따로 분류해 둔 거다.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입니까? 악마가 또···.”
“예상했던 일입니다. 어차피 공국과의 교전은 피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었다면 공국 측에서 침략해 왔을 겁니다.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먼저 공격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세르펜스가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또다시 내 말을 끊었다.
다른 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질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게 아니라, 알아도 별다른 방도가 없어서 모른 척했다는 뜻이었다.
구구절절 녀석의 말이 옳아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한동안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악마와 전투를 끝내고 돌아온 세르펜스가 지쳤다고 생각했는지, 마물들이 그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다. 녀석이 지친 건 사실이나 고작 마물 따위에게 당할 정도는 아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왜 있겠어?’
준치는 썩어도 맛있고, 세르펜스는 지쳐도 강하다.
더군다나 세르펜스는 혼자도 아니다. 윈스톤이 함께 싸웠으며, 유지스가 뒤에서 보조했다.
몰려들던 마물들이 점차 뜸해졌다.
마물들을 지휘하는 누군가가 이게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나 보다.
‘비행형 마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는 것 같고···?’
어쩐지 땅 위의 마물 숫자와 비교하면 너무 적은 감이 없잖아 있다.
“이제 슬슬 결계를 준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세르펜스가 검에 묻은 마물의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예? 아직 마물도 다 안 잡혔고, 새로 소환된 악마도 안 나타났는데요?”
“악마가 당장 이곳으로 올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왜요?”
“이곳에는 저 말고도 황태자 전하도 계시잖습니까.”
세르펜스는 지쳤지만, 휴마누스는 아직 팔팔하다.
악마 하나로는 승산이 없을 것 같으니, 전력을 보강해서 나중에 공격해 올 거라는 소리다.
“남아있는 마물 중 위협이 될 만한 마물은 없습니다. 나머지는 교단의 성기사들과 제국 군대에 맡기고, 차차 토벌해 나가면 됩니다.”
“위협이 되는 마물을 다 처치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성검의 주인]에서 볼타산맥산(産), 백몇 년 묵은 거대 지렁이 마물이 등장했었다. 지렁이가 아니라 뱀이었다면 이무기로 착각할 만한 크기다.하지만 전장 어디에도 거대 지렁이는커녕···.
“···어째서 땅에 구멍 난 곳이 하나도 없죠?”
마물이라는 종족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생물이 흑마력이나 마핵의 기운에 영향을 받아 변이한 것이다.
지렁이 말고도 땅속에서 살아가는 생물은 한둘이 아니다. 당연히 그놈들이 드나든 구멍이 전장 곳곳에 생겼어야 한다.
발밑에서 튀어나오는 효과적인 기습 방법을 포기한 채, 정정당당하게 땅 위를 기어온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는 건.
“아니, 미친! 이 와중에 마물들을 빼돌렸다고?!”
내 자문자답에 세르펜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볼타 산맥의 결계가 깨지면 당연히 우리 쪽으로 총공격해 올 줄로만 알았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악숭이들은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결계를 펼치고 휴식을 취한 뒤, 마물을 부리는 자를 쫓아야 합니다.”
“여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원격으로 제어하는 것 같은데. 그놈이 어딨는 줄 알고요?”
“단서라면 있습니다. 마물들을 운용하는 솜씨로 보아, 체계적으로 병법을 배운 것이 틀림없습니다. 현 상황에서 유추해 보자면···. 공국 출신의 참모. 혹은 공왕 본인 정도입니다.”
“······.”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공왕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얼이 빠져나갈 틈도 없이 세르펜스가 쐐기를 박았다.
평범한 사람에게 마물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 악마와 계약한 게 틀림없다.
단순히 마물을 조종하는 능력을 얻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든다.
공국이 왕권이 약한 나라이기는 하나, 공왕은 한 나라의 지배자다. 병법뿐 아니라 제왕학이나 행정학 등, 고도의 학문을 익힌 인재다.
고작 마물이나 조종하게 둘 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악숭이네가 좀···. 머리가 부족하잖아?’
[성검의 주인]에서 악숭 세력은 신성력을 지닌 타락펜스를 참모로 활용했다.타락펜스가 맡았던 역할을 공왕이 차지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만약 공왕이 악마와 계약한 게 확실하다면, 온갖 마찰을 일으켰던 타락펜스와 달리 전적으로 신임할 거다.
하물며 공왕은 자신의 나라를 통째로 악숭이에게 바쳤으니···.
‘잠깐만.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말아먹은 건 타락펜스도 마찬가지잖아?’
아무래도 악숭 세력의 참모가 되기 위한 기본 요건은 ‘자기 나라 말아먹기’인가 보다.
공기업도 아닌 주제에, 너무 어려운 자격증을 요구하는 것 같다.
“언니, 언니. 저 사람은 바쁘다면서 왜 보좌관에게 일일이 설명해 주고 있는 거양?”
혀 짧은 소리를 낼 기력도 없는지, 아니마가 차선책으로 말끝에 ‘ㅇ’받침을 붙이며 에드나에게 질문했다.
에드나가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추측하건대 내가 일루미나티의 수장이라는 걸 밝혀도 되는지 묻는 것 같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유지스, 정령으로 주교님을 불러 주십시오. 저는 황태자 전하를 불러오겠습니다.”
“거리상 제가 휴마누스를 부르는 게 더 낫지 않아요?”
“겸사겸사 마물 처리를 도우려 합니다.”
“많이 지치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누군가의 희생을 줄일 수만 있다면야. 괜찮습니다.”
걱정하는 사람 마음도 몰라주고, 세르펜스가 자애로운 미소를 꾸며내며 대외펜스했다.
“그, 그래요···. 세르펜스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대신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녀석의 행각에 유지스가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어째···.’
희생정신이 투철한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접어두고 그 뜻을 지지해주겠노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떨떠름한 미소도, 근심을 억누르며 억지로 그려낸 안타까운 미소로 승화되었다.
모르고 보면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나, 진실을 알고 보면 기가 차는 광경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세니어를 세르펜스에게 가져다 댔다.
“베네볼렌 씨와 프루이토 씨께서는 마력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최대한 배분하며 쓰긴 했지만, 거의 바닥났어요.”
세르펜스가 에드나와 아니마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대답을 한 건 에드나 뿐이었다. 아니마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의사를 표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마력을 아끼시고, 황태자 전하께서 결계를 만드시는 동안 주변을 경계해 주십시오.”
“네, 알았어요.”
역시나 대답은 한 사람뿐이다.
세르펜스도 굳이 아니마에게 대답을 듣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그녀들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시온, 당신은···. 지금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지시를 끝낸 세르펜스가 뒤늦게 자신의 몸에 닿은 세니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 안에 있는 거 세르펜스의 신성력이잖아요. 세르펜스가 신성력을 많이 소모했으니까, 이렇게 하면 역삼투압 현상 비슷한 작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르펜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세니어를 세르펜스용 보조 배터리로 써먹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녀석은 더 이상 붙잡지 말라는 듯,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성벽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잠시 후, 리에나가 성벽 저 끝에서 달려왔다. 그녀와 함께 온 성기사는 마물들을 처리하러 떠났다.
리에나가 뛰어오면서 차오른 숨을 가라앉히는 사이, 휴마누스도 도착했다.
“일단 여기로 가라고 해서 오긴 했는데···. 설마 지금 결계를 만들어야 하는 거야?”
세르펜스가 선뜻 휴마누스에게 간다고 했을 때, 웬일인가 했더니. 아무 설명도 없이 냅다 가라는 말만 전한 모양이다.
말 섞기 싫었나 보다.
어쩔 수 없다. 내가 핵심만 요약해서 빠르게 설명해 줄 수밖에.
“빨리 결계 만들고 체력 회복한 뒤에, 마물들을 조종하는 자를 쫓아야 한대요.”
“으, 응?”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요.”
대충 급하다는 건 전달이 되었는지, 휴마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런데 여기서 하는 거야? 산맥과는 거리가 좀 있는데?”
“마물들 한복판에서 할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어지간히도 자신이 없나 보다.
휴마누스가 긴장된 얼굴로 성검의 손잡이를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