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3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38화(338/1105)
338회
57. 공작님과 볼타 산맥 (14)
내가 세니어에게 일방적으로 실망하는 동안에도 세르펜스의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가벼운 멍 정도야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는다. 건드리거나 목을 크게 움직이지 않는 이상, 별로 아프지도 않다.
따라서 신성력이 회복된 후에 치료해 줘도 상관없다.
하지만 삽질펜스는 무력함을 느끼며 땅을 파고 들어갔다.
점차 커지는 녀석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무언가 중요한 걸 까먹은 듯한 느낌이···.
‘아차, 방음 안 했다!’
내가 정신이 없긴 없었나 보다.
나는 얼른 방음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그리고 한숨을 돌리며 휴마누스의 상태도 확인했다.
가까이서 세르펜스가 이렇게나 서럽게 울고 있는데, 어쩜 저리도 잘 자는지.
참 깊이도 잠들었다.
‘쟤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걸 그랬나?’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태로 봐서는 괜찮은 것 같으나 사람 일은 모른다.
둘이 동시에 기절한 만큼, 휴마누스에게도 세르펜스와 같은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조금 전 내 목을 조르던 세르펜스와 눈이 마주쳤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보였던 세르펜스의 눈빛은 내가 여태껏 봐 온 눈빛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의 푸른 녹안에서 앙상하게 메마른 겨울나무를 보았다. 스산하고 섬뜩했다.
‘역시, 타락펜스겠지?’
그렇다는 건 [성검의 주인] 속 휴마누스도 튀어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눈을 뜨자마자 세르펜스를 죽이겠다고 날뛸지도 모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 휴마누스의 그런 모습을 목격한다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다.
휴마누스가 열등감 때문에 세르펜스를 죽이려 한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며, 성검의 주인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손가락질 당할 게 분명하다.
심하면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빠르게 해결을 봐야 한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지금은 일단 세르펜스에게 자세한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세르펜스가 당장은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 내게 붙어있지만, 진정이 된 이후에는 나를 피할지도 모른다.
내 목을 졸랐다는 죄책감 때문이든, 자신이 내게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든.
‘그렇게는 안 되지. 절대로.’
내가 도망펜스의 버릇을 어떻게 고쳤는데. 재발하게 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어느 정도 대화로 풀어 놔야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방금 악몽 꾼 것 같은데, 평범한 악몽은 아니었던 거죠? 그게 아니고서야 세르펜스가 저를 리벨론 경이라 부르면서···, 아무튼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나는 옷깃을 세워 목을 가리며, 세르펜스에게 다다다 쏘아붙였다.
역시나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세르펜스의 울음소리만 막사 안에 맴돌 뿐이다.
“세르펜스, 저랑 대화 안 할 겁니까?”
녀석이 혼란스러워하는 건 알고 있지만, 혼란스럽긴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확실히 해 둬야 할 문제다. 그래야 나든 세르펜스든 안심할 수 있으니까.
대충 타락펜스가 튀어나왔고 그게 성검 때문이라는 것까지는 알겠다.
하지만 그게 기억을 매개로 한 착란인지, 타락펜스의 인격이 따로 있어 그것이 불려 나온 것인지.
일시적인 증상인지, 앞으로도 종종 튀어나올 예정인지조차.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모르겠다.
“똑똑똑, 여보세요? 세르펜스 씨, 안 계세요? 어디 갔어요?”
정수리를 노크하듯 두드리며 물어도 대답이 없다.
아까 세르펜스가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 바로 몰아붙였어야 했는데.
잠시 틈을 준 게 화근이었다.
요전에 세르펜스는 마왕이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시온과 비비 사이의 연속성이 두렵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제정신이 들자, 그때 느꼈던 막연한 공포가 구체화되어 그를 잠식해 나갔다.
녀석의 신경을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붙잡아 둘 것이 필요하다.
“아도르, 사탕 먹을래요?”
대답은 없었지만 상관없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사과 맛 사탕을 꺼내 녀석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세르펜스가 우는 와중에도 자신의 손바닥에 놓인 사탕을 곁눈질한 후 입에 넣었다.
입안에 퍼지는 단맛 덕분인지, 세르펜스의 울음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 대신 달그락달그락, 입안에서 사탕 굴리는 소리가 났다.
역시 우는 아이에겐 사탕만큼 훌륭한 특효약이 없다.
매번 사탕으로 때우는 건 좋지 않다고 들었지만, 어쩌다 한 번은 괜찮겠지.
“혹시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사탕을 버릴 수는, 흐끅! 없으니까···.”
세르펜스가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땅에 떨어질 미트볼이 불쌍해서 주는 대로 받아먹었던 사람이 하는 말이다. 믿어주기로 하자.
“아무렴요, 믿고 말고요. 그건 됐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얘기나 해 봐요.”
“악몽을···, 꾸었다.”
“어떤 악몽인데요?”
“내가···. 으음···.”
세르펜스가 무언가 말을 할 듯 말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앞서 내 눈치를 살폈던 게 목을 조른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다른 이유로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세르펜스의 손을 잡아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잡히는 것은 없었다.
녀석이 흠칫 어깨를 떨며 손을 등 뒤로 감춰버린 탓이다.
“세르펜스가 내 손을 피하다니!!”
녀석이 내 목을 조른 것만큼 충격적이다.
세니어도 그렇고 세르펜스도 그렇고. 누가 닮은꼴 아니랄까 봐, 쌍으로 배은망덕하다.
“그, 그게,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너무···.”
“너무 뭐요?”
“끔찍해서···.”
“그게 지금 길러 준 사람 앞에서 할 소립니까?”
“미, 미안하다.”
세르펜스가 잽싸게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국의 공작치고 너무나도 값싼 무릎에 헛웃음도 안 나온다.
마음 같아서는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었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무슨 꿈을 꿨는지 대충 짐작이 가기도 하고.’
튀어나온 게 타락펜스였으니, 꿈에 나온 것 또한 타락펜스의 기억일 터.
그걸 보았다면 녀석이 저런 반응을 보일만도 하다.
불현듯 악몽을 꾸면서 괴로워하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꿈을 꾸는 동안 세르펜스는 누구였어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아니면 피하고 싶은 물음이었는지.
세르펜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꼭 말해야 하는가?”
“문제를 회피한다고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되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쌓이고 또 쌓여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돌진하기 마련이죠.”
“······.”
“세르펜스도 잘 알잖아요. 침묵이 얼마나 위험한 독인지.”
과거 프라시더스 가문의 사용인 중, 단 한 명이라도 어린 세르펜스의 처지를 알리려 애썼더라면.
어린 세르펜스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더라면.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누군가만 아니었다면.
세르펜스는 그렇게 오랜 세월 고통받지 않았을 거다.
– 아그작.
사탕이 깨지는 소리가 막사 안을 울렸다.
평소 세르펜스는 사탕을 깨물어 먹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급하게 보고를 올리기 위해 행정관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사탕을 급하게 씹어 삼켰을 때, 녀석이 얼마나 서러워했는지,
나도 모르게 사탕을 하나 더 꺼내주고 말았다.
단맛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느끼고 싶어서, 그는 커다란 회오리 사탕도 천천히 녹여 먹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작디작은 사탕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입안에 씹을 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세르펜스가 불안을 짓씹으며 말했다.
“죄 없는 누군가를 고문하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힘없는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두 손이 타인의 피로 붉게 물들었음에도, 더러운 흙탕물이 튄 감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무서웠다.”
세르펜스가 뒤로 숨겼던 손을 앞으로 가져와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손은 아무것도 붙잡지 않았다. 더러움을 어딘가에 옮기고 싶지 않다는 듯, 빈 주먹을 꽉 움켜쥘 뿐이었다.
“다 본 겁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대화할 수도 없었겠지.”
세르펜스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은 단편적이었고, 순서도 뒤죽박죽이었다. 황폐해진 제국의 수도를 거닐다가, 느닷없이 선택의 날이 되었다가···.”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자, 세르펜스는 끊임없이 악몽의 내용을. [성검의 주인] 속 세르펜스의 기억을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마치 모든 것을 입 밖으로 털어놓으면, 머릿속에 박힌 기억도 말에 담겨 내뱉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세르펜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확실히 할 수 있었다.
그는 꿈에서 보았던 타락펜스를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있을 뿐, 영향을 받은 건 아니라는 것을.
‘이 정도면 영향을 줄 수 없는 거라고 봐야 하나?’
느껴지는 게 있어야 영향을 주든 말든 할 텐데, 그러기에 타락펜스는 지나치게 무감하다.
세르펜스는 조금씩 성장하고 나아가고 있지만, 타락펜스는 그러질 못했으니까.
고작 단편적인 기억으로는 세르펜스를 어찌할 수 없다.
정작 세르펜스는 꿈을 통해 겪은 일들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혼동하고 있었으나, 세르펜스는 여전히 내가 아는 세르펜스였다. 변하지 않았다.
안도감이 몰려왔다.
“앞으로는 절대 성검에 가까이 가지 마세요. 간접적인 접촉도 이 정도인데, 직접 성검을 쥔다면···.”
“음···.”
우리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세르펜스가 성검을 직접 쥐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에 관해 토론하지 않았다.
어째서 세르펜스가 성검과 접촉했을 때 이런 반응이 나타난 것인지, 그에 관해서도 서로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솔직히 이쯤 되면 그냥 입안에 떠먹여 준 수준 아냐?’
결계를 펼칠 때 성검이 보인 반응과 휴마누스가 성검의 힘을 다루기 힘들어했던 것 등.
본래 성검의 선택을 받을 예정이던 사람은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세르펜스가 맞았을 것이다.
다른 결론은 내릴 수 없다.
다만 세르펜스가 성검의 주인이 된 이후에 겪을 시련을 이겨낼 수 없다고 판단하여, 대체자로 휴마누스를 선택한 걸 테다.
정신력이 강한 편인 휴마누스조차 몇 번이고 주저앉았다.
그대로 일어나지 못할 뻔한 적도 많았다.
‘[성검의 주인]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라, 지금 상황도 썩 좋지 못하지···.’
깨어나면 정말로 잘 해줘야겠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어떻게 하다니?”
“자다 깼잖아요. 좀 더 잘래요?”
“지금은···, 그다지 자고 싶지 않군.”
몹시 피곤할 텐데도 세르펜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해하는 바다. 잠드는 게 두려울 만도 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엉망으로 헝클어진 세르펜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으으으···.”
쥐 죽은 듯 자고 있던 휴마누스가 갑자기 뒤척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잠꼬대일지도 모르나, 그렇게 생각하고 가볍게 넘어가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너무 많다.
워낙 평온하게 잘 자고 있어서 내버려 뒀을 뿐.
깨우러 갈 생각조차 못 하고 긴장감에 몸이 굳었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악몽에 그대로 억눌려 꼼짝도 못 하던 세르펜스와 달리, 휴마누스는 혼자서 깨어났다.
–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며 잠에서 깨어난 휴마누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세르펜스를 노려보았다.
“세피, 대체 왜!! 왜 그···러고 있어?”
울분으로 시작한 외침은 순수한 의문으로 끝맺음 되었다.
언제 분노를 표출했느냐는 듯, 휴마누스가 얼빠진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원래 물어보려던 건 저게 아니었을 텐데?’
휴마누스의 물음에 나는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세르펜스는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내게 머리를 쓰담 받고 있었다.
인정한다. 휴마누스가 분노를 잊고 의문을 가질 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