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4화(34/1105)
34회
8. 공작님 없는 공작저 (5)
“미안. 그쪽이 아무 짓도 안 하길래, 미처 생각을 못 했어.”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그리고 아까부터 말이 짧아진 것 같은데.”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는 놈한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것도 웃기잖아?”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말하자, 내 쪽을 향하고 있던 그의 고개가 미세하게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였다.
보통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움직임이지만, 의심하고 있었기에 알아챌 수 있었다.
방금 철창 안의 사람과 눈빛으로 무언의 대화를 나눈 것이 틀림없다.
놈의 손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하나의 선이 되어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것은 곧 검은 화살이 되어 쇠창살 사이를 가로질러 그의 동료(추정)의 허벅지에 틀어박혔다.
“으읏-!”
진짜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가족의 모습을 취한 채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뒤트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알겠으면 얌전히 따라라.”
“···하, 하지만! 그렇다고 공작님을 배신할 수는!”
그냥 되는대로 던지는 말이 아니다.
어설프게 동의하는 척하다가, 세르펜스가 이상한 타이밍에 나타나면 변명할 시도조차 못 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또다시 타락한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이 철창 안으로 내리꽂힌다.
철창 안의 흑마법사가 또다시 고통에 몸부림쳤다.
눈물을 흘리며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입에 물린 재갈이 아니었다면 크게 소리라도 질렀을 것이다.
‘으···, 보는 내가 다 아프네.’
저런 고통을 느끼면서도 아직 환상 마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
핏발 선 눈으로 가면 놈을 노려보는 걸 보니,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냐, 평소 나에게 악감정이라도 있는 거냐’ 따위의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 그래도···.”
“여기 고통스러워하는 이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거냐?!”
“보,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걸 알아도 눈앞에서 사람이. 그것도 가족의 형상을 취한 존재가 꿰뚫리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실제로 지금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이 잔뜩 움츠러든 상태다.
거울로 본 건 아니지만 얼굴도 잔뜩 겁에 질려 하얗게 핏기가 가신 상태겠지.
‘와, 진짜 가까이 안 가길 잘했네···.’
난 비위가 무척이나 약한 편이었다.
아마 이곳이 조금이라도 더 밝았거나, 그들과의 거리가 더 가까웠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속을 게워내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망설이는 거냐!”
놈이 또다시 철창을 걷어차고, 안에 있는 녀석은 ‘으읍!읍!!’하는 소리를 내며 두려워하는 시늉을 했다.
‘재갈을 벗겨내어 도움을 요청하게 하는 쪽이 더 호소력 있는 연출일 텐데, 그러지 않는 건 목소리까지는 해결할 수 없는 건가?’
그도 그럴 것이 가면 놈이 아까부터 ‘가족’이라고만 지칭하는 꼴을 봐서, 마법을 쓴 놈도 구체적으로 자신이 누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모르니까 저런 멍청한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는 거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보고 있기는 괴롭지만, 팀킬이나 계속 유도해보자.
가지고 있는 스크롤이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저급이니 어쩔 수 없다.
한 명은 다치고, 다른 한 명의 마력을 소비시키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하, 하지만! 내 가족은 내가 그런 비열한 짓을 하는 건 바라지 않아···!”
철창 안의 사람이 미친 듯이 고개를 도리질 쳤다.
“나는 보고 있기 괴롭지만!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만둬 달라,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다, 무릎 꿇고 빌고 싶지만! 저렇게 격렬한 눈빛으로 자신은 괜찮으니 공작님을 배신하는 짓은 하지 말라고···!”
“아, 아니! 누가 봐도 살려달라는 표정이잖아!”
“네가 우리 가족에 대해 뭘 알아!!”
“······.”
“······.”
내 외침에 악마 숭배 듀오가 침묵하며 이쪽을 바라본다.
가면 쓴 쪽은 알 수 없지만, 철창 속의 녀석은 미친놈을 보는 듯한 얼굴인 것을 보니 다른 쪽도 별 다를 바 없을 것 같긴 하다.
“나, 나는 너무 고통스럽지만···, 어떻게든 돕고 싶지만···! 크윽!”
주먹을 꽈악 말아 쥐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고 느낀 걸까.
이번에는 가면 놈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마력이 불꽃으로 화하였다.
불꽃이 다리에 닿자, 그자가 더는 신음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지르며 요동쳤다.
철창이 흔들리며 바닥에 끌려 쇳소리를 냈다.
“크읏-!”
그 잔인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 이래도 계속할 생각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얼마나 더 소중한 이에게 고통을 줄 생각인 거냐!”
본인이 해놓고 나에게 덮어씌우다니, 너무하다.
이제 불꽃은 꺼트렸는지 철창 안의 사람은 ‘흐으-, 흐읍’하는 울음기 섞인 호흡을 힘겹게 내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지진 곳, 처음 화살이 꽂혔던 장소다.
지혈이라도 한 건가? 제법 머리 쓰네···.
“하, 하지만···.”
내가 웅얼거리며 제대로 답을 못하자, 놈이 철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안의 녀석이 환상 마법을 유지하며, 더 이상의 고통을 버티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어떻게 소중한 가족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그럴 수 있는 거냐!”
“보기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어려울 것 없는 일이다. 아마 네 가족도 시간이 지나면 널 이해해 줄 거다.”
“네가 우리 가족에 대해···”
“야, 이 미친 새끼야!!!”
가면 놈이 빽 소리를 질렀다. 와, 씨···. 깜짝 놀랐네!
얼굴이 가려져 내가 판단하지 못했을 뿐, 그의 참을성이 점차 고갈되고 있었나 보다.
이제 이 짓도 끝인가···.
“너 제정신이냐? 미쳤어? 공감 능력 같은 게 전혀 없는 거냐? 아니면 눈깔에 문제가 있어서 표정 구분이 힘들어?”
“자, 잠깐만! 우리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러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
“뭐···, 뭐, 이딴 또라이 새끼가 다 있어!!”
그래도 미련이 남아 마지막 앵콜을 외쳤으나, ‘그래? 그럼 한 번 더!’를 외치며 푹 찍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도 지금의 내가 무척이나 또라이처럼 보일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걸 남에게 지적당하니 썩 듣기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본인은 자신의 동료를 고문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저딴 소리를 하다니, 세상 뻔뻔한 놈이다.
“너, 솔직히 가족들 싫어하지? 그게 아니면 여기 안에 있는 녀석에게 악감정이라도 있는 거냐?”
악감정이야 아주 많지.
우리 누나인 척하면서 날 농락했고, 나를 죽게 만들려고 계획을 짠 녀석 중 하나고, 마왕을 소환해서 세상을 전복시키려는 세력의 한 사람인데.
악감정이 없을 리가 없다.
“누구에게 말이야?”
“···뭐?”
“구체적으로 누구냐고.”
“여기 안에 갇혀있는─!”
“응, 그러니까. 1번 아버지, 2번 어머니, 3번 형님, 4번 동생.”
물론 저 중에 답은 없으므로 뭘 고르던 땡이다.
참고로 정답은 5번 누나다.
“그게, 무슨?”
“사지선다도 어려워? 그럼 1번 그. 2번 그녀. 반반의 확률은 어때?”
“···1번?”
이 와중에 그걸 또 선택하고 앉아있다니.
당황스럽다는 건 알겠지만, 슬슬 무리수라는 생각을 할 때도 되지 않았나?
1번을 선택한 건 아마 시온을 제외한 가족 구성이 남자 셋, 여자 하나라서겠지.
하지만 우리 집은 나를 제외하면 남자 하나 여자 둘이라서···.
“땡-! 아쉽게도 틀려버렸네.”
“···언제부터 눈치챈 거지?”
“글쎄, 아쉬운 대로 그거라도 맞춰 보는 건 어때?”
“···어떻게? 마력도 신성력도 갖추지 못한 놈이? 분명 처음 반응은 제대로···.”
“내가 원래 사람 보는 눈이 좀 좋거든? 처음엔 나도 깜빡 속아버렸─”
“야─ 이!! 개새끼야!!!!!”
갑자기 들려온 처절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철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래도 녀석이 마법을 이용해 자력으로 구속을 풀어낸 모양이다.
물고 있던 재갈을 집어 던지며, 내게 온갖 쌍욕을 내뱉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분노로 이성을 잃은 탓인지, 다 들킨 마당에 마법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둘 다에 해당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누나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지. 30대가량의 여성으로 보였으니, 누나는 누난가?
“어···, 음. 뉘신지 모르겠지만 수고하셨습니다.”
“이, 이···! 개xx 새끼···, 죽여버리겠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뒤돌아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동시에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품속에 손을 넣어, 스크롤을 꺼내 움켜잡았다.
– 쾅─!
등 뒤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보이는 것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도 철창을 여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마법으로 날려버린 모양이다.
다시 시선을 옮겨 왔던 길을 되짚으며 내달렸다.
그러나 채 몇 발짝 떼기도 전에, 사위가 밝아지며 달리는 내 앞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게 보였다.
이건 뒤를 돌아 확인해 볼 것도 없었다.
반사적으로 왼손에 들고 있던 랜턴을 대충 집어 던지고, 양손으로 스크롤을 찢으며 그 자리에 엎어졌다.
– 챙─!
저급이라 그런지 약간의 시간 벌이밖에 되지 않았다.
방어막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니, 주먹만 한 불덩이가 그 자리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등 뒤를 비추었던 밝기에 비해 턱없이 작아 보이는 크기.
방어막이 약간의 위력을 감소해주긴 한 모양이다.
넋을 놓고 있을 시간은 없었기에 땅을 짚고 일어나, 앞으로···!
“악-!”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아챘다. 달리기 위해 앞으로 옮긴 무게 중심에 의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건 아픔 때문일까, 두려움 때문일까?
몸을 돌려 다리 쪽을 보니 검은 촉수 같은 것이 휘감겨 있었다.
잡힌 발을 털어내 보아도, 털어지기는커녕 그대로 주욱- 내 몸을 끌어당겼다.
그것의 끝에는 여성 흑마법사가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가면 쓴 놈이 그녀를 지탱하며, 여차하면 내게 날릴 기세로 사람의 머리통보다 좀 더 큰 불덩이를 띄워 올리고 있었다.
“결코! 곱게 죽이지는 않을 거야···!”
“제, 젠장!”
반대편 발로 촉수를 걷어차려 해봤지만, 그것은 마치 연기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지나쳐버릴 뿐이었다.
‘세르펜스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한스 일 똑바로 안 하냐!!’
이럴 줄 알았으면 편지가 도착했을 때 한스에게 미리 언질이라도 해둘 것을!
아니면 솔레르티아에게 사정해서 할부라도 받아, 스크롤을 더 샀어야 했다.
그때, 한 줄기의 섬광이 날아와 검은 촉수를 끊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바닥에 끌리던 몸도 그 자리에 멈췄다.
“고, 공작님!!”
내 외침에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던 여성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가면을 쓰고 있던 녀석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향해 미리 띄워두고 있던 불덩이를 지체 없이 날려버리고, 몸을 내뺐다.
“꺄아아악-!”
참혹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불길에 휩싸인 채 비틀거리다 쓰러지니, 목제 건물에 불이 옮겨붙었다.
“이게 무슨···.”
삽시간에 벌어진 일에 멍하니 활활 타오르는 건물을 바라만 봤다.
불길이 옆 건물로 또 옮겨붙으며 점차 세력을 넓혀갔다.
“아···.”
정신 차리자. 이 거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시 다리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덜덜 떨리는 다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바닥에 붙어버렸다.
“···못 걸으시는 겁니까?”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세르펜스가 불길을 향해 무언가를 던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도망갔던 놈을 던진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 아까 그놈이 내게 건네려 했던 서류 가방 같았다.
놈은 세르펜스의 손에 얌전히 뒷덜미가 잡힌 채 들려있었다.
죽은 것인지 기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 하하···.”
위협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끼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세르펜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가와 나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일단 얘기는 돌아가서 합시다.”
세르펜스는 나를 짐짝처럼 자신의 한쪽 어깨에 얹고, 빠르게 세미타 거리를 벗어났다.
배가 눌려 압박되는 게 영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다리가 질질 끌리고 있는 흑마법사에 비하면 무척이나 훌륭한 대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