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4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41화(341/1105)
341회
59. 공작님과 우정의 자취 (1)
■
막사 안에 적막이 가라앉았다.
나는 슬그머니 세르펜스의 머리에서 손을 뗐고, 세르펜스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휴마누스는···.
“별 이상한 꿈도 다 있네.”
침대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방금 자신이 본 것이 꿈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이다.
다시 자고 일어나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착각한 게 분명하다.
이곳이 현실이라는 것도 모르고.
“꿈 아니니까 그만 일어나세요.”
내가 진실을 말하였으나, 휴마누스는 믿지 않았다.
도리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현실을 외면하려 들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휴마누스의 이불을 잡아당겼다.
이불을 바로 내줬던 세르펜스와 달리 휴마누스의 저항은 거셌다.
비록 이불은 빼앗지 못했지만, 한참의 줄다리기 끝에 완전히 잠에서 깬 휴마누스가 일어나 앉았다.
“들어 봐, 내가 방금 엄청나게 이상한 꿈을 꿨거든? 선택의 날에 세르펜스 네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인데, 어쩐지 분위기가 굉장히 참담해져서 사람들이 너랑 나를 막 노려보더라. 그 시선을 마주하니 덜컥 겁이 나지 뭐야? 그리고 여행길에 올랐는데···.”
꿈에 관해 묻기도 전에 휴마누스가 횡설수설 그 내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눈빛은 계속 흔들리고, 한쪽 입꼬리가 어설프게 올라갔다. 그 표정이 마치 어처구니없는 개꿈을 꾼 사람 같다.
“아! 그리고 내가 마지막 무구를 얻기 위해 아르케 왕국에 갔는데, 유지스가 그곳에 있는 데다가 초면인 거 있지? 분명 유지스와 내가 처음 만난 건 제국이었고, 선택의 날 이전이었잖아. 진짜 이상한 꿈이었어.”
어색한 문맥으로 열거되는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 무언가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세르펜스의 꿈은 시간대가 오락가락했던 반면에, 휴마누스의 꿈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휴마누스가 뒤늦게 괴로움을 호소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성검의 주인] 초반부는 대체로 평온하게 진행되었으니까.“그리고 암흑가에 관한 것도 그곳에서 알게 돼서, 제국으로 향했는데···. 악마를 잡고 났더니, 세피···. 아, 아니, 세르펜스 네가 암흑가를 조종한 배후라지 뭐야? 정말 말도 안 되지? 암흑가를 지배한 건 일루미나티잖아. 게다가 암흑가를 이용해 제국에 혼란을 줄 의도가 아니라, 감시를 위해서였고. 하여튼 정말 말도 안 되는 꿈이었어.”
휴마누스는 꿈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말도 안 된다거나 이상하다거나 하는 소리를 자꾸만 반복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개꿈으로 치부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면 될 텐데도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내가 사실 여부를 묻기 위해 찾아갔는데, 네가 부정하기는커녕 바로 긍정하더라. 더 어이없는 건 뭔지 알아? 대체 왜 그랬느냐고 따지려는데···. 하, 참···.”
휴마누스가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그가 꾼 꿈이 일반적인 꿈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는 손바닥에 배어 나온 땀을 허벅지에 문질러 닦았고, 세르펜스는 눈을 내리깔았다.
이윽고 휴마누스의 입이 다시 열렸다.
“갑자기 세르펜스 네가···, 시온 앞에서 무릎 꿇은 채 쓰다듬을 받더라고. 와, 진짜 이렇게 생생하고 기나긴 개꿈은 처음이야.”
“······.”
“······.”
아무래도 휴마누스에게 꿈과 현실의 경계가 어느 지점이었는지 알려줘야 할 성싶다.
나는 세르펜스의 머리 위에 척 하고 손을 얹었다. 세르펜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으나, 얌전히 내게 머리를 맡겼다.
“여기서부터는 현실이었습니다.”
동작 힌트까지 가미된 나의 친절한 해설에 휴마누스가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그러고도 실감 나지 않는다는 듯 꼬집은 볼을 비틀기까지 했다.
어찌나 세게 비틀어 대는지, 보는 내 볼이 다 아플 지경이다.
“세르펜스도 뭐라고 한마디 해 봐요.”
“이건 그러니까, 으음···. 흔히 있는 일입니다.”
세르펜스의 첨언은 휴마누스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휴마누스는 도로 침대에 누우려 들었고, 나는 그를 일으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만 했다.
“지금 이럴 시간 없습니다! 체력과 신성력이 회복되는 대로 공왕을 쫓으러 가야 하는데! 이렇게 셋이 대화할 시간이 또 언제 날 줄 알고, 침대로 기어들어 갑니까?!”
“공왕? 전에는 마물들을 조종하는 자를 쫓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공왕과 마물을 조종하는 자의 상관관계를 온전히 들은 건 아니마뿐이다.
어차피 다른 성검 일행에게도 설명해야 하니, 그때 같이 하면 되겠지.
“알았어.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둘은 대체 왜 그러고 있던 건데?”
“정말 진지하게 묻는 건데요, 그런 꿈을 꿔 놓고도 지금 그게 궁금합니까?”
“어차피 그건 그냥 개꿈이잖아?”
현실과 꿈 내용의 괴리감 때문일까?
휴마누스는 자신의 꿈을 그저 개꿈으로 여겼다. 지나치게 생생하고 기나긴, 특이하고 이상한 꿈이라고 말이다.
본인이 그렇게 믿고 싶어 하니, 지금이라면 은근슬쩍 덮고 넘어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이후를 생각한다면 의혹을 남겨둬서는 안 된다.
당장은 혼란이 더해지더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여기서 끝맺음을 내야 한다.
‘작년에 악숭이들이 예언자 어쩌고 하면서, 제온에게 접근했던 일을 생각하면···.’
만일 내가 제온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가정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대로 문제를 회피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하리라.
그뿐만이 아니다.
휴마누스와 세르펜스. 이 두 사람이 각자 나아가기 위해서든, 틀어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든.
반드시 사실을 알려야 한다.
흔히들 꿈은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필시 휴마누스는 이러한 꿈을 꾸게 된 원인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으려고 할 거다.
지금처럼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라면 더더욱.
‘친구를 의심하는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자괴감에 시달리겠지.’
그리고 세르펜스는 앞으로도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계속 회피하려 들 게 뻔하다.
심지어 전적도 있다.
세르펜스는 전생을 기억하는 비비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웠다.
게다가 세르펜스와 휴마누스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고작 보좌관 노릇 몇 개월 한 시온(비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동안 세르펜스가 휴마누스를 멀리한 이유는 오해와 엇갈림 때문이었다.
그 원흉이 전 프라시더스 공작이라는 건, 굳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이 문제를 외면한다면 그건 기만이다.
‘휴마누스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하겠지.’
세르펜스는 휴마누스를 마냥 싫어하는 게 아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노발대발 날뛰지만, 한때는 친구였다.
흑역사로 생각할지언정 휴마누스에게 우정을 느꼈던 것만은 확실하다.
‘자기 입으로 존경의 감정까지 품었다고 말했잖아? 그럼 빼박캔트지.’
당당하고 밝은 모습에 존경했었는데, 그런 휴마누스가 자괴감으로 무너진다면.
그 모습을 보고도 세르펜스는 과연 무덤덤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세르펜스는 그 모습을 외면하기 위해, 더욱 두꺼운 벽을 쌓아 올릴 거다.
그렇게 된다면 둘 사이의 간극은 영원히 메꿔질 수 없다.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서, 서로를 멀리하여.
둘은 완벽한 타인이 될 거다.
‘휴마눈새 저 자식이 눈치가 심각하게 없어서 그렇지, 진짜 나쁜 애는 아닌데···.’
오히려 너무 착해 빠져서 탈이다.
세르펜스가 심히 아깝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친구를 골라 사귀는 것도 아이 정서상 좋지 못하다.
억지로 친해지라고는 못 해도, 최소한 오해는 풀어야 한다. 화해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저기, 시온? 세르펜스는 그만 쓰다듬고, 이제 슬슬 대답해주지 않을래?”
“아차! 이것저것 고민할 게 많아서, 저도 모르게 그만···.”
어째서 만화 속 악역 보스가 허구한 날 고양이를 쓰담 거리는 지 알겠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운 촉감이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여, 두뇌 회전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세르펜스 너도 그래. 어째서 보좌관에게 얌전히 쓰다듬을 받는 거야?”
“으음···, 으으음···.”
휴마누스의 물음에 세르펜스가 연신 으음 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본인이 자주 울고, 그때마다 내게 달래져서. 그만큼 우쭈쭈에 익숙해졌다는 소리를 제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걸 테다.
“휴마누스, 여기 보여요? 울어서 눈가 붉어진 거.”
나는 세르펜스의 머리 위에 올려놨던 손을 거두며, 녀석의 눈가를 손가락질했다.
“세르펜스가 울어서 달래 주고 있던 거야?”
“네, 바로 그겁니다!”
“그럼 세르펜스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가 내 머릿속에 자동 완성 기능을 켜놓았다.
범인이 누군지 몰라도, 잡히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건 그냥 세르펜스가 자꾸 자기가 못났다고 하니까, 제가 혼내느라 그랬던 것뿐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더 신경 쓰이는데?”
휴마누스가 몹시 궁금해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얘기가 지나치게 옆으로 샜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무튼, 세르펜스도 휴마누스랑 비슷한 꿈을 꿨거든요. 그 충격으로 울고 있는 걸, 제가 달래느라 그렇게 된 겁니다.”
“아···!”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모양이다.
휴마누스가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왜 이런 꿈을 꾸게 된 걸까 의문이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면, 역시 악마 숭배자들의 소행이었구나?”
휴마누스도 유지스과(科)였나 보다.
졸지에 신 룩스메아가 내린 성검이 악숭이가 되었다.
이런 경우, 휴마누스를 이단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하, 하하···. 결계를 펼치느라 신성력을 소모한 틈을 노려, 이런 이간질을 벌이다니. 정말 악독한 놈들이야.”
휴마누스가 안도인지 허탈함인지 모를 웃음을 흘렸다.
저토록 안심하는 모습을 보니, 정정하기 힘들다. 괜히 미안해졌다.
그렇게 내가 망설이는 사이. 세르펜스가 잽싸게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추측하신 대로, 그 꿈은 악마 숭배 세력의 이간질이 맞을 겁니다.”
“쓰읍!!”
“···거짓말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잇새로 바람을 들이켜며 눈치를 주자, 세르펜스가 즉각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휴마누스의 눈빛에 스며든 혼란이 더욱 짙어졌다.
아무래도 상황 설명이 끝날 때까지, 세르펜스는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좋겠다. 나는 세르펜스에게 껌을 물렸다.
“휴마누스가 꿨던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닙니다. 일어날 뻔한 사건. 혹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기억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에 관해 설명하려면 일단···. 제가 신의 사자라는 것부터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진중한 분위기를 잡으며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휴마누스의 시선은 약간 나를 비껴간 상태였다. 그 시선을 따라 내 옆에 앉은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세르펜스는 껌을 오물거리며,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무게 잡는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분위기를 잡으면 뭐해! 옆에서 도와주질 않는데!’
심지어 세르펜스는 시선 강탈자라 해도 좋을 정도로, 남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외모의 소유자다.
나는 세르펜스의 어깨를 잡고 180도 돌려 앉혔다. 진지한 대화에 방해된다.
“어쨌든! 휴마누스 브라이트 데바 루멘, 저는 신의 사자로서 대륙에 드리워진···.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아, 진짜 못해 먹겠네.”
프뤼네 왕국에서의 일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
기차에서 보내는 기나긴 시간 대부분을 우리는 수다로 소비했다.
그중에는 내가 에드나에게 ‘신의 사자 겸 일루미나티 수장’임을 밝혔을 때의 일화도 있었다.
그 얘기를 들은 유지스는 자기소개가 그게 뭐냐며 나를 비판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유지스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소개용 대본을 쥐여 주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대사는 오글거린다는 말로도 부족하여, 나의 항마력을 갉아먹었다.
‘이래서 분위기 잡고, 한 번에 후다닥 끝내 버리려 했는데···!’
이번 판은 망했다. 포기하자.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좋겠다.
기왕이면 다음 기회가 아예 오지 않으면 더 좋고.
“시온 네가 내 세례명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신의 사자라고 말했잖아요? 휴마누스는 성검의 주인으로 주요 인물이니까, 세례명 정도는 파악해 뒀습니다! 겸사겸사 주변 인물까지! 약혼녀인 오풀렌스 백작 영애의 세례명은 테나치아, 동료인 리에나 님의 세례명은 글로리아! 맞죠?”
이 세례명 까발리기는 무려, 교단의 이단 심문관에게도 먹혀들어간 신의 사자 증명 방식이다.
나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휴마누스를 바라보았다.
휴마누스가 놀라서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리에나의 세례명까진 모르는데?”
“예···?”
나는 [성검의 주인]에서 읽었던 내용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휴마누스와 리에나가 자신의 세례명을 동료들에게 알려준 건. 제국이 멸망하고 산맥의 결계가 깨진 후로부터 몇 개월이 더 지난 시점이었다.
즉,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