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4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43화(343/1105)
343회
59. 공작님과 우정의 자취 (3)
휴마누스의 물음에도 세르펜스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이 할 말은 이미 다 했다는 듯이.
잠시간 세르펜스의 대답을 기다리던 휴마누스가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세피’라는 애칭을 싫어하는 이유가, 그 사람이 너를 부르던 호칭이라서야?”
세르펜스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줄곧 나를 전하라 부르며 거리를 둔 것도, 그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그랬던 거고?”
휴마누스의 질문이 이어졌다.
또다시 세르펜스의 고개가 끄덕 움직였다.
“내후년이면 우리가 알고 지낸 지도 20년이야. 알고 있어?”
“네, 알고 있습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전대 공작과 관련 없는 물음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번에는 세르펜스가 목소리를 내어 대답했다.
묵묵히 침묵을 지키다가 이런 질문에만 대답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휴마누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어떻게 이런 얘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수가 있어? 어째서 내게 도움을 구하지 않은 거야? 상담이라도, 한탄이라도 좋으니까···. 하다못해 힘들다는 말 한마디쯤은 해 줄 수도 있었잖아? 내가···. 내가, 그렇게나 못 미더웠어?”
휴마누스가 질문을 쏟아냈다.
다그치는 말투였지만, 목소리의 음정 자체는 낮았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분노를 쏟아내지 않도록. 꾹꾹 억누른 듯한 목소리다.
“왜 그랬느냐고 물었잖아.”
또다시 입을 다물어버린 세르펜스를 휴마누스가 채근했다.
그렇게 재촉을 당하고 나서야, 세르펜스의 입이 열렸다.
“당시 공작저에서 일하던 이들 대다수는 제가 무엇을 강요당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럴 줄 알았다고?”
“그렇다기보다는 비난하실 줄 알았습니다. 고작 그런 것도 이겨내지 못하여 약한 소리를 한다고. 저는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뭐···? 그럴 리가 없잖아.”
휴마누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세르펜스. 너는 대체 친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긴 해?”
“······.”
“아니, 이건 됐어. 네가 얼마나 그 사람의 말을 잘 듣는지 알았으니까. 당연히 나 또한 그저 남이라 여겼겠지.”
세르펜스가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다는 듯. 휴마누스가 숨 한 번 몰아쉴 정도의 짧은 텀을 두고,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렸다.
떫은 감이라도 씹은 사람처럼 휴마누스의 입매가 일그러졌다.
그리고 약 일 분가량.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난 후.
세르펜스가 뒤늦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정 이상의 책임을 짊어진 자는 모두 저와 같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하께서도 저와 비슷한 처지라 생각했습니다.”
“아···.”
휴마누스는 눈치가 없는 거지, 머리가 없는 게 아니다.
자신이 세르펜스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처럼. 그 또한 자신에게 동질감을 느꼈었다는 말에 깨달음의 탄식을 토했다.
그 말이 내포한 뜻을 인지한 거다.
“체벌을 받은 건 저의 추악한 내면과 부덕의 소치이며, 성검의 주인이 될 자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알려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잘못되었기에, 마땅히 받아야 하는 체벌을 버거워하는 저 자신이···. 끔찍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세르펜스는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이불을 끌어당겨, 제 몸을 단단히 감쌌다.
그 행동은 어딘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공포 영화를 보는 사람을 닮아있었다.
추워서가 아니라, 고조되는 긴장과 두려움에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는 사람의 행동이었다.
평소라면 불안에 떠는 그의 손을 잡아줬을 테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문제는 온전히 둘이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미가 있다.
잘못 지나쳐온 길을 되짚어가며.
과거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둘이서 올바른 출구를 찾아내야 한다.
“어째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곧이곧대로 믿었던 거야?”
휴마누스가 침착하려 애쓰는 게 훤히 보였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도, 심호흡과 함께 힘을 쭉 빼고 어깨를 늘어뜨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전하께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제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택의 모든 이들은 침묵했고, 제게 가해졌던 모든 체벌은 대의를 위한 것으로 포장되었습니다. 모두가 그것을 당연하다 여겼고, 제게도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한 구절, 한 문장. 말을 꺼내는 것이 힘겨운 건 세르펜스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이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전하께서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 저를 기만했던 게 아닐까. 자꾸만 그런 의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전하께서는 단지 모르셨을 뿐이라는 걸 압니다. 하나,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건 별개였습니다. 그 정도로, 남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제게는 너무나도 당연했습니다.”
세르펜스의 말이 이어질수록, 휴마누스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나는···. 몰랐어. 네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거리를 두려는 네가 매정하다고만 생각했어. 서운한 마음에 네게 어리광만 부렸어. 네가 어째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거야. 미안해, 정말···. 정말로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이 막사 안을 가득 채웠다.
세르펜스는 아니라며 예의상의 말을 건네야 할지, 쌓아왔던 원망의 말을 쏟아부어야 할지. 고민하고 망설인 끝에 살짝 입술을 달싹였다.
“이젠 됐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솔직히 말해서, 전하께 사과를 받는 것이 불편합니다.”
“그렇게나 내가 싫어?”
“제게 사과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어째서?”
싫으냐는 질문에 세르펜스가 부정하지 않았다는 걸, 휴마누스는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다.
‘뭐, 어쩔 수 없지.’
휴마누스가 눈치 없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듯. 세르펜스가 휴마누스를 불편하다 여긴 것 또한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쌓여 왔던 앙금이다.
과거의 일을 털어놓고 사과를 받았다고 해서,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질 수는 없다.
지금은 마음속 깊숙이 가라앉았던 침전물을 끌어올렸을 뿐이다.
그것들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자신을 싫어하느냐는 휴마누스의 물음에, 세르펜스가 대답을 피한 이유다.
그리고 세르펜스가 본인은 사과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한 까닭은.
“전하께서 꿈을 통해 보셨던 건, 그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 이후, 저는 더욱 끔찍한 짓을 일삼았습니다.”
역시나. 그놈의 죄의식 때문이었다.
“그건 지금의 네가 한 게 아니잖아.”
“시온이 저를 바로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제가 저질렀을 죄악입니다.”
“그건 좀 이상한데? 네가 이후에 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내가 너에게 잘못했던 과거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자기비하를 늘어놓는 세르펜스를 향해, 휴마누스가 의문을 제기했다.
휴마누스 주제에 꽤 날카롭다.
“네가 나를 용서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내 사과를 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 저는! 대륙에 큰 해악을 미쳤습니다. 그, 그리고···.”
세르펜스도 휴마누스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는 듯,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냥 내버려뒀다가는 있는 죄 없는 죄를 모두 까발릴 기세였다.
다행히도 그렇게 되기 전에 휴마누스가 녀석의 말을 끊었다.
“내가 바꿀 수도 있었어.”
짧지만 많은 것이 함축된 말이었다.
휴마누스가 자책과 후회 어린 시선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내게도 그의 시선이 닿았다.
그 눈동자 속에는 감사와 함께 뭔지 모를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내가 그 감정의 정체를 채 파악하기도 전에, 시선이 거두어졌다.
“만약 세르펜스, 너에게 일어난 일을 내가 일찍 알아챘더라면. 네가 고통받지도 않았을 테고, 네가 말하는 그 죄악이라는 것도 저지르지 않았겠지. 바로 지금처럼.”
“그건···.”
“아니야?”
“······.”
세르펜스가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상상 속의 생물을 마주한 듯한 얼굴이다. 그 상상 속 생물의 이름이 ‘눈치 빠른 휴마누스’라는 것은 두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항상 네 가장 친한 친구라 떠들고 다닌 주제에. 나는 정작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내가 봐도 이렇게 한심하고 답답한데, 너는 오죽했을까?”
휴마누스가 자조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이 걱정스럽긴 한데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반박 거리를 찾을 수가 없다.
아무 때나 ‘이의 있소!’를 남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설픈 변호는 반감만 살 뿐이다.
“세르펜스.”
“네, 말씀하십시오.”
“어떻게 해야 내가 네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차분하고 이완된 분위기 속에서, 찬찬히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깜박이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휴마누스가 한 질문 중, 어찌 보면 가장 난해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세르펜스는 어려워하지 않고 즉각 대답했다.
미리 준비해 놓았던 내용을 복붙한 수준의 답변 속도다.
답변이 바로 튀어나온 것도 놀라운데 그 내용까지 괴상한 탓에, 휴마누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남에게서 들은 듯이 말하는 거야?”
“시온이 유지스에게 그리 말하였습니다.”
“그 둘은 네 친구지?”
“네, 그렇습니다.”
휴마누스가 ‘이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세르펜스와 눈을 마주쳤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가보다.
“···어때? 친구가 될 것 같아?”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멍청한 짓인지 모르겠다.
제국의 황태자와 공작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누가 본다면, 나라에 망조가 들어섰다고 혀를 찰 노릇이다.
어휴 하고 한숨을 내뱉자, 휴마누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이다.
어쨌거나 세르펜스가 순순히 눈을 마주쳐 주었다. 그런 걸 보면 녀석도 휴마누스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작은 조언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존재합니다. 참고로 그건 유지스 전용이에요.”
유지스는 기본 바탕에 눈치가 깔렸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요구된 것은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었다.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가까이 있어도 괜찮다는 신뢰가 필요했다.
하지만 휴마누스는 유지스와 반대다.
그가 안전하다는 건 지난 세월이 보장한다. 다만, 휴마누스는 눈치가 심하게 없다.
세르펜스가 다가오지 말라는 뜻으로 꼬리를 세워 경고했음에도, 휴마누스는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자꾸만 치댔다.
그런 세월이 반복되었으니, 눈을 마주쳐 봤자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그냥 보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따위 수박 겉핥기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제대로 봐야 합니다, 제대로! 햇빛이 선명하게 나뭇잎을 핥듯이! 확실하게!”
“으, 응?”
“제가 하는 말, 이해하셨어요?”
“그, 그러니까, 세르펜스를 핥으라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세르펜스의 앞을 막아섰다.
대체 머리에 뭐가 들어있으면 저딴 결론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성검의 주인]에서 무려 네 명의 여자와 혼인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하긴, 그러니까 순수한 세르펜스에게 그렇고 그런 취향을 가르치려 들었던 거겠지.
“세르펜스가 무슨 사탕입니까? 핥긴 뭘 핥아요?”
“네가 핥으라고 할 땐 언제고, 왜 갑자기 사람을 변태 취급이야?!”
“와, 진짜 생사람 잡네! 제가 언제 그딴 소리를 했다는 겁니까?”
근거 없는 모함에 억울해서 팔짝 뛰다가, 트리플 악셀까지 돌게 생겼다.
“세르펜스는 제대로 들었죠? 제가 방금 뭐라고 말했는지 설명해봐요.”
“시온은 겉으로 드러난 바에 현혹되지 말고, 상대를 면밀히 살피어 그 진의를 파악하고, 신중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외면이 아닌 상대의 내면을 보았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을 바로 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제대로 된 인간관계 형성을 위한 기본예절이자 준비 단계라고 강조했습니다.”
나는 세르펜스의 완벽한 해석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훌륭하다. 이 정도면 선우어(語)를 통달했다 하여도 손색이 없다.
“봐요! 세르펜스는 이렇게 잘 이해했잖습니까? 휴마누스는 다 좋은데, 눈치가 너무 없는 게 흠입니다.”
“그 말이 정말 그런 뜻이었다고?”
“제가 바로 신의 사자입니다! 이런 거로 거짓말하지 않아요.”
“아···. 이래서 신탁을 해석하는 게 어렵다고들 하는 거구나···.”
휴마누스가 의미 불명의 말을 중얼거리며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