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4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45화(345/1105)
345회
60. 공작님과 계획 지침 (1)
“꿈에서 본 모습과는 영 딴판이네.”
그새 잠들어버린 세르펜스를 보며 휴마누스가 혀를 내둘렀다.
동감하는 바다.
긴장을 풀고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든 얼굴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아까 내 목을 틀어쥐었던 사람과 같은 얼굴이 맞나 싶다.
“이렇게 순한 아이를 한계까지 몰고 간 세상의 잘못이죠.”
“아, 꿈 하니까 생각난 건데···. 암흑가는 원래 일루미나티 관할 아니었어? 그런데 꿈에서는 어째서 세르펜스가 장악하고 있었던 거야?”
휴마누스가 별안간 떠올랐다는 듯이 질문했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를 낮춰, 세르펜스가 깨지 않도록 했다. 하기야 눈치가 없으면 배려라도 있어야지.
‘최고의 배려는 입 닫고 잠이나 자는 거지만.’
그래도 휴마누스가 궁금해할 만도 했기에, 최대한 짧고 간략하게 설명해주기로 했다.
“일루미나티는 요번에 새로 생긴 신설 단체로, 저와 세르펜스. 유지스를 초기 구성원으로 하며, 현재는 윈스톤과 에드나가 포함되어 총 다섯 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
“꿈속에서 유지스와 합류했을 때, 은인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그게 세르펜스였던 겁니다.”
“뭐어?!”
휴마누스가 경악했다. 그에 따라 목소리까지 절로 커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검지를 세워 입 앞에 가져다 댔다.
“목소리 좀 낮춰요. 애 깨면 휴마누스가 책임지실 겁니까?”
“미, 미안···.”
다행히도 세르펜스는 깨어나지는 않았다. 아주 깊이 잠든 모양이다.
이 정도면 자세를 바꿔줘도 깨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녀석의 발목을 잡고 쭉 잡아당겼다. 불편하게 접혀있던 세르펜스의 다리가 펴졌다.
그 뒤로는 내가 손댈 필요도 없었다. 세르펜스가 뒤척거리며 알아서 편한 자세를 잡았다.
“아무튼. 암흑가 장악은 일루미나티가 아니라 세르펜스 개인이 이뤄낸 겁니다. 일루미나티는 그 후에 생겨났죠.”
“그럼 악마 숭배자들이 암흑가를 이용할 것을 예견하고, 감시하에 두어야 한다는 것도 세르펜스의 생각이었던 거야?”
“네, 맞습니다. 그러다 성검이 다른 사람에게로 가자, 사람들이 자신의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세르펜스를 깎아내렸고···. 세르펜스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몰랐기에, 대차게 엇나가 버린 거죠.”
곤히 잠든 세르펜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울컥해서 별별 소리가 다 나왔다.
휴마누스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차 싶어 그를 바라보니, 휴마누스 또한 착잡한 표정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휴마누스가 선택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세르펜스가 아니라는 것 자체에 불안해한 겁니다. 선택받은 사람이 누구건 똑같았을 겁니다.”
“나도 알아. 그냥···, 그 정도로 사람들이 세르펜스에게 많은 걸 떠넘겼구나 싶어서 그래.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양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말하는 휴마누스의 모습에서 후회의 빛이 역력하다.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다 여긴 건, 세르펜스뿐만이 아니었어. 우리 모두가 그래 왔던 거야.”
휴마누스가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씁쓸한 이야기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것은 세르펜스가 으음, 낮게 비음을 흘리며 돌아누울 때까지 이어졌다.
“아. 그런데 일루미나티가 다섯 명뿐이라면, 암흑가의 다크 엘프는 대체 누구였던 거야?”
휴마누스가 얼굴을 감쌌던 손을 치우며 내게 질문했다.
참 빨리도 알아챈다.
“보라색 분칠하고 가면 쓴 유지스요.”
내 대답에 휴마누스가 입을 떡 벌렸다.
진실의 종족인 엘프가 몸에 분칠을 하면서까지 거짓말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나 보다.
“참고로 일루미나티의 정체는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됩니다. 제국 황실은 물론, 교단에서도 모르는 사실이거든요.”
“그, 그래···.”
“오늘 꿈에서 본 건 비밀로 해주세요.”
“그거야 당연하지.”
“기왕이면 세르펜스의 과거도요. 겸사겸사 제가 신의 사자라는 것도 비밀로 해주시면 좋고요.”
“그냥 오늘 나눈 대화 자체를 비밀로 하면 되는 거지?”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나는 휴마누스에게 몇 번이고 비밀 엄수를 강조했다.
이걸로 안심이다. 앞으로는 일루미나티가 의심스럽다니 어떻다느니. 그런 소리는 안 나오겠지.
“그나저나 일루미나티의 수장이 세르펜스였을 줄이야···.”
휴마누스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말하는 듯한 어투로, 눈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일루미나티는 대륙을 구원하는 비밀 결사 단체인데. 신의 사자인 제가 수장을 맡는 게 당연하잖아요?”
“···세르펜스가 아니라?”
“세르펜스는 제 보좌관입니다.”
“어, 어엇···.”
신분제 사회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중생이 어버버거렸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가 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한 줄 모르는 무지몽매한 자여, 반성하세요.”
“미, 미안···.”
반성이 빠른 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
“더 궁금한 거 있으세요?”
“당장 생각나는 건 없는데···. 나중에라도 생각나면 물어봐도 괜찮을까?”
“물론이죠.”
내 명쾌한 대답에 휴마누스가 미소 지었다.
평소의 시원시원한 웃음과 달리 어딘가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마음이 좀 어수선한가 보다.
“그럼 난 이만 내 막사로 돌아가 볼게.”
“그냥 여기서 쉬셔도 되는데요? 침대 불편하잖아요.”
“아니야, 시온도 쉬어야지. 그리고 땀 때문에 찝찝하기도 해서. 목욕은 못 하더라도, 대충 닦아내고 옷이라도 갈아입으려고.”
그렇게 말하며 휴마누스가 성검을 챙겨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욕조 있는데, 빌려드릴까요?”
“그런 걸 왜 가지고 다니는 거야?”
“오늘 같은 때를 대비해서?”
“···아니야, 난 됐어.”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까 싶어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나를 바라보는 휴마누스의 눈빛이 어딘가 떨떠름하다.
무언가 따지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휴마누스의 입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그는 말없이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참, 시온.”
휴마누스가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뒤돌아서며 나를 불렀다.
“왜요?”
“···고마워.”
또 묻고 싶은 게 떠올랐나 했더니, 그냥 감사 인사였다.
“별말씀을요.”
* * *
목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에 스르르 눈이 떠졌다.
흐릿한 시야에 청은색 형체가 어른거렸다.
“신성력 다 회복됐어요?”
“···약간은.”
세르펜스가 내 목에서 손을 거둬들이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서 미세한 자책감이 느껴졌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건만.
“우선 식사부터 해라.”
내가 입을 떼는 것보다, 세르펜스가 말하는 게 더 빨랐다.
녀석이 한 손으로 들고 있던 쟁반을 내게 불쑥 내밀었다. 쟁반에는 2인분의 빵과 수프가 올려져 있었다.
먼저 일어나서 식사를 받아 왔나 보다.
그러고 보니 세르펜스의 모습이 굉장히 말끔하다.
머리카락도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입은 옷도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하다.
“세르펜스도 욕조 가지고 다녀요?”
“그럴 리가 없잖은가.”
세르펜스가 헛소리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내게 쟁반을 떠넘기고는, 수프 그릇 하나를 손에 들었다.
한 손에 그릇을 들고 떠먹는 모습조차 우아하다.
내가 저렇게 먹으면 게걸스러워 보일 텐데.
“다른 사람들은요?”
“진작 식사를 끝내고 모여 있다.”
“지금이 몇 신데요?”
“3시 조금 넘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더니 딱 그 짝이다. 생활 리듬이 파괴되어간다.
“어휴, 공왕도 잡으러 가야 하는데···. 이러다 올해 안으로 공작저에 돌아갈 수 있긴 하려나?”
“그걸 왜 당신이 잡지?”
내가 건더기 가득한 미스트로네 수프를 휘휘 저으며 한탄을 내뱉자,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물었다.
“물론 제가 아니라 세르···펜스가···. 잡으러 안 가요?”
“성검의 주인이 해야 할 일이다.”
세르펜스가 휴마누스에게 일을 떠넘기겠다는 소리를 당당하게 했다.
바로 이 막사에서,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었는데.
왠지 심경이 복잡하다.
“그런 뜻이 아니다.”
세르펜스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느닷없이 부정의 말을 꺼냈다.
“그게 아니면요?”
“현재 황태자는 성검의 주인으로서 그 입지가 불안정하다. 도적단을 소탕하긴 했으나, 도적들이 악마 숭배 세력과 연관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잖은가.”
도적단 수뇌가 악숭이표 약을 먹고 파워업 하는 걸 목격한 사람이 없는 탓이다.
심지어는 휴마누스가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냈다는 얘기까지 떠돌았다.
‘확인할 것도 없이 악숭이들이 퍼트린 거겠지.’
도적단에 관한 소문이 크게 퍼지지 않은 게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심각한 일이다.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 알았다면, 이번에 나타난 악마는 황태자에게 맡겼을 텐데···.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이었다.”
합리성을 운운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미약하게나마 미안한 감정이 느껴졌다.
일지가 밀렸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참상에 대해 알려준 것도 그렇고, 긴장을 풀고 잠든 것도 그렇고.
휴마누스에게 조금은 마음을 열었나 보다.
“사람이 반성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실실 웃지 마라.”
“세르펜스가 잘 자라고 있는 게 흐뭇해서 그만.”
“···빨리 먹기나 해라.”
세르펜스가 새치름하게 톡 쏘아붙이듯 말했다.
하지만 뿌듯해하는 표정과 절로 으쓱여지는 어깨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모습이 보기 좋다.
우리는 재빨리 식사를 끝낸 후, 일행들이 모여있는 막사로 향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딱 좋을 때 왔어. 방금 유지스에게서 마물들을 조종한 자가 공왕일 가능성에 대해 들은 참이야.
세르펜스의 사과에 휴마누스가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유지스 덕분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눈으로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어차피 공왕이 악마 숭배 세력에 붙은 이상, 처리해야 한다는 건 바뀌지 않으니···.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겠네.”
휴마누스가 서 있는 우리에게 앉으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휴마누스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미지의 적이 늘어나지 않아 다행이란 듯이 말하였으나, 착잡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카술라 령이나 공국에 관한 보고는 없었습니까?”
세르펜스가 자리에 앉으며 대뜸 질문했다.
녀석 나름대로 공왕에 관한 건 마음에 담아 두지 말라는 표현인 것 같은데, 과연 휴마누스가 눈치챘을지 모르겠다.
‘휴마누스가 눈치 없는 거 뻔히 알면서···.’
나에게 하는 것의 반만이라도 솔직하면 좋으련만.
벽을 쌓아온 세월이 긴 만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나아지는 게 눈에 보여서 그런가,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안 그래도 네가 오면 바로 얘기하려고 했어.”
휴마누스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말에 의하자면, 카술라 령 쪽에서도 마물들이 나타났다는 모양이다.
그러한 탓에 병력의 우위가 뒤집혀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카술라 령에 나타난 마물들은 수비에만 집중해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나 봐.”
불행 중 다행이었으나, 마냥 안도할 수는 없다.
마물들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장기전을 고려하여 전력을 아끼기 위함이다.
이어진 설명에 따르면, 공왕의 병사가 마물들과 함께 갑자기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그 직후 산맥의 결계가 복구되었다니까, 우리 쪽에 나타난 마물들이 체계를 잃고 날뛰었던 바로 그 시각이다.
“마물을 조종할 수 있는 거리에 제한이라도 있는 걸까요?”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고, 특정할 수 있는 시간대에 움직인 걸지도 모릅니다.”
유지스의 의견에 세르펜스가 반박했다.
양측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었기에, 해당 주제는 일단 보류해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