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4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48화(348/1105)
348회
60. 공작님과 계획 지침 (4)
“어, 어어···. 언니는, 왜···?!”
아니마의 목소리가 달달 떨렸다.
그에 따라 에드나의 표정이 난처함으로 물들었다.
“언니는 프라시더스 씨께 고용되었다고 말했잖니.”
에드나가 부드러운 말씨로 아니마를 타이르며,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우리 쪽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대충, 미안하지만 아니마를 떼어낼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뜻이겠지.
그런 에드나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아니마는 몸을 반쯤 틀어, 그녀의 품에 찰싹 들러붙었다.
“남들이 하는 말들 다 무시해도 된다며! 그럼 그냥 다 같이 공국으로 가도 되는 거 아니야?”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아니마가 혀 짧은 소리도 못 내고 정확한 발음을 구사했다.
여기서 말한 ‘다 같이’라는 단어가 에드나에게 국한되어 있음을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나저나 에드나와 장난치느라, 오가는 얘기에는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서 갖다 붙여서 그렇지.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나누는 대화를 제대로 듣고 있긴 했나 보다.
“남들의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과 무시하는 건 좀 달라.”
“그럼 언니만이라도 우리랑 같이 가면 안 돼? 악마 숭배자들과 싸우려고 고용된 거라며? 그럼 우리랑 같이 가도 계약 위반은 아니지 않아?”
아니마가 순진한 얼굴로 자신의 진짜 목적을 드러냈다.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에드나를 올려다보았지만, 에드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마,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왜, 왜 안 되는데···? 나 약속 잘 지켰어. 동료들이랑 싸우지 않고 잘 지냈고, 나쁜 놈들도 얍얍 물리쳤어!”
“그럼, 잘 알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힘내자. 응?”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순 없다고···!”
아니마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에드나의 품 안을 마구 파고들었다.
눈물까지 펑펑 쏟아내는 아니마를 보고 있자니, 어딘가 처절하게 느껴질 정도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둘을 영원히 떼어놓기라도 하는 줄 알겠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르펜스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베네볼렌 씨께서는 프루이토 씨와 함께 계시는 편이···.”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세르펜스가 헛소리를 하기 전에, 나는 녀석의 말을 가로챘다.
아니마가 의심스러우니 에드나를 인질로 붙잡아 둬야 한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물론 녀석의 인질 계획은 전적으로 반대하는 바다. 그래도 이건 얘기가 좀 다르다.
‘남의 집 아이의 교육 방침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나 또한 보호자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 놓는 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영원히 끼고 살 수만은 없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유치원도 보내고, 학교도 보내서 친구를 사귀게 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팀의 균형을 생각해 봤을 때, 아니마와 에드나를 한 팀에 몰아넣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 하지만, 저렇게 함께 있고 싶어 하는데···. 가엾잖습니까.”
세르펜스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녀석은 정말로 아니마가 가엾어서 저러는 게 아니다. 그녀의 감정에 이입했을 뿐이다.
정말로 아니마가 안쓰러웠다면, 내가 아니라 에드나를 보고 저런 얘기를 해야 한다.
‘나한테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으면, 바로 돌려보내겠다는 식으로 말해 놓고···.’
간접적으로 시위하는 건가 싶어서 세르펜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녀석의 표정으로 봤을 때, 고의로 이러는 건 아닌 듯하다. 그냥 저도 모르게 불쑥 그런 말이 튀어나온 것 같다.
“와! 그럼 이제부터는 언니도 우리랑 가치 다니눈 고얌?”
여유를 되찾은 아니마가 어린애 같은 언어를 구사하며 에드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기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에드나의 쇄골 부근에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비벼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드나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마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뒤로 밀어냈다.
“안돼.”
“어, 어째서?! 언니네 고용주도 그러라고 허락해 줬는데, 왜 안 된다는 거야?”
“네가 이러니까, 마지못해 그러라고 하신 거지. 고용주님께서 돈이 썩어 넘쳐서 계약금으로 보육원을 사주고, 매달 급여까지 주는 줄 아니? 안 그래도 받은 게 너무 많아서 죄송한데···. 아니마, 너까지 이러면 안 돼.”
에드나가 엄격하게 말하려 노력했으나, 목소리에 섞여든 안타까움을 완벽하게 숨기지는 못했다.
아니마도 그것을 알아챘는지, ‘우우우···.’하는 소리를 내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돈이 썩어 넘치는 건 어느 정도 맞지 않나?’
세르펜스는 원래부터 부자인 데다가, 라드라바의 유산도 녀석이 관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순수하게 사적으로 남용할 수 있는 자산만 따지자면, 황제보다 부유할지도 모른다.
혹여라도 세르펜스가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며 끼어들까 싶어, 나는 녀석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리고 성검 일행과 에드나 몰래, 등 뒤로 길게 늘어진 세르펜스의 머리카락을 슬쩍 손에 쥐었다.
여차하면 잡아당길 테니 끼어들 생각일랑 하지 말라는 의지 표명이다.
“아니마, 너도 어리광부리고 떼쓸 나이는 이제 지났잖아?”
“아니마는 아직도 아기인데···.”
생후 247개월 된 아니마가 칭얼거리며 억지를 부렸다.
자신을 아기라고 주장하는 아니마의 모습에, 그녀의 동료들은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쥐구멍을 찾았다.
“아니마는 아기 아니야. 이렇게 말 잘하는 아기가 세상에 어디 있어?”
에드나가 고개를 팩 돌려 아니마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말 잘하는 아기가 리벨론 령에 실존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괜히 상황만 복잡해진다.
“자아, 자. 울지 말고. 우리 아니마, 언니한테 자꾸 이런 모습만 보여줄 거야?”
채찍을 줬으니, 이제는 당근의 차례인가 보다.
에드나가 아니마의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이대로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니잖아? 앞으로도 이번처럼 만날 기회가 종종 있을 텐데. 헤어질 때마다 이러면, 다시 만나기도 힘들어지잖니. 그래도 괜찮아?”
“아, 안돼!”
아니마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때, 세르펜스의 머리카락을 잡은 손이 살짝 위로 들렸다. 녀석이 고개를 아래로 숙인 거다.
나는 곁눈질로 세르펜스를 살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맨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이렇게 떼쓸 거야?”
“아니···. 안 그럴게.”
에드나의 물음에 아니마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힘없이 대답했다.
그 모습이 안타깝고도 기특하다는 듯, 에드나가 슬며시 미소 지으며 아니마를 한 번 꽉 끌어안았다가 놓아주었다.
당장 몇 분 더 붙어있겠다고, 앞으로 만날 기회를 없애 버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아니마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에드나의 무릎에서 내려왔다.
이제 세르펜스의 머리카락은 그만 잡고 있어도 될 것 같다.
나는 녀석의 머리카락을 놓아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뒷짐 졌다.
“고용주 님도 그래요.”
우여곡절 끝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에드나가 세르펜스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저 ‘고용주 님’이라는 호칭은, 제국의 공작인 데다 고용주인 세르펜스를 과연 ‘~씨’라고 불러도 되는가 고민한 결과물이다.
‘나로서는 그냥 모두가 서로를 이름으로 불렀으면 좋겠는데···. 그편이 헷갈리지도 않고.’
하지만 나도 대외적으로는 세르펜스를 공작님으로 부르고 있는 마당인지라,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애가 떼를 쓴다고 그냥 받아 주시면 어떡해요?”
“아···, 죄송합니다···.”
에드나의 말에 세르펜스가 과하게 울적한 표정으로 답변했다.
뒷생각 없이 무작정 아이에게 사탕을 쥐여주며 상황을 넘어가려는, 육아 기초 상식 없는 어른에게 한소리 늘어놓으려던 에드나가 움찔했다.
“저, 저기···. 제가 고용주님께 뭐라고 하려던 게 아니라, 보육원에서 애들을 대하던 버릇이 튀어나와서 그만···.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아기가 운다고 애들이 자꾸 젖병을 물려주지 뭔가요? 그래서 분유도 금방 동나고 아기가 살이 쪄 버려서···. 아! 다행히도 아기의 건강에는 지장이 없었고, 잘 입양됐어요!”
에드나가 많이 당황했는지,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아무튼 죄송해요!”
“아닙니다.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듣고 보니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제 슬슬 출발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세르펜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이 얘기는 적당히 넘어가는 게 좋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 말에 에드나가 시간을 끌어 미안하다며 허리 숙여 사과했다. 그 옆에서 아니마도 슬쩍 고개를 숙였다.
자기 때문에 에드나가 고용주에게 밉보일까, 뒤늦은 걱정이 들었나 보다.
언제나 그러하듯, 세르펜스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쩐지 그 웃음 속에서 미세한 부러움이 느껴졌다. 보호자와 떨어지는 건 아니마이며, 자신은 나와 함께 가는데도 말이다.
“미안해, 세르펜스. 내 동료 때문에···.”
상황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성검 일행의 리더인 휴마누스가 뻘쭘하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수만은 없다. 동등한 동료라 생각했던 사람이 돌연 아기 선언을 하는데,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닙니다. 제가 베네볼렌 씨께 미리 일정을 알렸더라면, 두 분께서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세르펜스가 씁쓸하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녀석이 기절한 후 중간에 깨어났다는 건 휴마누스와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남들이 보기에 세르펜스는 쭉 기절해있다가, 깨어나자마자 대충 식사를 때운 후 이곳으로 왔다. 일정을 알릴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렇기에 세르펜스의 말에 ‘그래, 네가 잘못 했네!’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린 사람은 아니마뿐이었다.
“다시 못 볼 것도 아닌데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세르펜스도 참, 비약이 심하네! 너무 신경 쓰지 마.”
휴마누스의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정작 아니마의 상태를 신경 써야 할 휴마누스도 눈치 없이 저러고 있는 판국이다. 세르펜스가 미안해할 이유 따윈 어디에도 없다.
“···그럼 정말로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그 전에 할 말이 있어.”
몸을 돌려 나가려던 세르펜스를 휴마누스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바쁜 것 같으니까, 긴말은 안 할게.”
사실 그다지 바쁘지 않았기에 세르펜스는 순순히 되돌아섰다.
긴말이었다면 고민해 봤겠지만, 짧은 말 정도는 들어주겠다는 태도다.
“다음에 만날 때는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을래?”
휴마누스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표현이다.
위풍당당하게 세르펜스에게 더 의지하겠노라 말할 땐 언제고, ‘불러 줘.’도 아닌 ‘불러주지 않을래?’라니.
저자세로 나오는 휴마누스의 언행에 세르펜스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마워.”
휴마누스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세르펜스는 여유로움을 가장하며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넓은 보폭으로 막사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도망이라도 치는 것 같다.
우리 일행도 녀석을 따라 막사 밖으로 나갔다.
“계속 묻고 싶던 건데, 휴마누스는 공작 나리를 애칭으로 부르지 않았어? 왜 갑자기 호칭이 바뀐 거야?”
“알고 보니까 세르펜스가 애칭으로 불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더라고. 아하하···.”
“잠시만요. 두 분께서 알고 지내신 세월이···. 세상에, 신 룩스메아시여!”
“···눈치 없다고 욕할 만도 했네.”
등 뒤로 성검 일행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차 멀어지는 말소리를 들으며, 나는 간절히 기원했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휴마누스에게도 눈치가 생겨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