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5화(35/1105)
35회
9. 공작님과 사건 진술 (1)
공작저에 돌아오니, 당연하다는 듯 정문에 한스가 서 있었다.
세르펜스는 보초를 서던 경비에게 들고 있던 흑마법사를 건네며, 내일 아침 자문회에 데리고 갈 예정이니 잘 감시하라고 명했다.
“그건 감금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아직 체포할 사람이 남았던가?
또 다른 흑마법사가 등장한 건가 싶어, 세르펜스의 어깨를 잡고 상체를 세워 주변을 살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렸으나, 수상한 자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의아한 마음에 한스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가 나를 향해 삿대질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저를 왜 감금합니까?!”
“그런 게 아니라면, 왜 그렇게 들려 계신 겁니까?”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옥신각신하는 나와 한스의 대화를 세르펜스가 끊어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저택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한스가 따랐다.
나는 여전히 세르펜스에게 들려진 상태였기에 선택권이 없었다.
‘슬슬 걸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익숙해지니,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 말고는 이 자세도 할 만한 것 같다.
오늘 하루 수고했으니, 이렇게 된 거 좀 더 쉬자는 생각으로 세르펜스의 어깨 위에 몸을 늘어뜨렸다.
‘어차피 내려줄 때가 되면 내려주겠지.’
도착한 곳은 세르펜스의 집무실과 연결된 응접실이었다.
세르펜스가 나를 긴 다인용 소파에 내려놓고, 자신은 상석에 있는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아까 자문회에 참석한다고 말했으니, 오늘 잠자기는 글렀다.
“왜 보좌관님이 공작님께 들려 오시는 겁니까?”
“험한 일을 당했는데, 그럴 수도 있죠.”
지금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 건가?
좀 더 궁금하거나 해야 할 얘기들이 많을 텐데도, 그게 더 신경 쓰인다니.
이 양반도 참 중증이었다.
“리벨론 경께서 다리에 힘이 풀려 걸을 수 없지만, 신성력의 힘은 빌리고 싶지 않다기에 어쩔 수 없이···.”
“아! 지금은 괜찮아졌으니, 회복시켜주셔도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정신이 불안정할 때는 쓰지 말아 달라고 얘기해뒀었다.
‘워낙 정신이 없어, 잠깐 깜박했네···.’
내 허락을 받자마자 세르펜스가 곧바로 내게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그 모습에, 한스가 기함하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아마도 내가 직접 걷기 귀찮아서, 세르펜스를 이동수단으로 이용했다고 오해한 게 아닐까?
“아니, 이건···!”
“일단 상황 정리가 우선입니다.”
그것을 해명하려 입을 열었으나, 세르펜스가 그를 저지했다.
백번 옳으신 말씀이라, 열었던 입을 도로 다물었다.
“이전의 상황은 편지로 받아 보셨을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아니, 어제 도착한 쪽지입니다.”
한스가 내민 것은 전임자가 어쩌고 하는 내용이 언급된 쪽지였다.
이전 상황이란 말에 언제부터 눈치챈 건가 의문이었는데, 그냥 내 방을 주기적으로 드나든 모양이다.
“보좌관님은 결국 주인님을 믿지 않으신 겁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쪽지에 불려 나가다니···!”
“네?! 아니 그게 왜 그렇게 됩니까? 쓸데없는 비약입니다!”
“··· 리벨론 경의 말씀이 옳습니다.”
내가 반박할 필요도 없었다. 세르펜스의 청량한 목소리가 단호하게 답했다.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대체 주인님께선 어째서 또다시 저 녀석의 편을 드시는 겁니까!”
분통을 터트리는 그의 외침에, 세르펜스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한스를 바라보았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세르펜스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과 연결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둘만 남기고 자리를 뜨면 난 어쩌라고···.’
나를 날카롭게 쏘아보는 한스의 눈빛을 묵묵히 견디고 있자니, 세르펜스가 이내 서류뭉치를 들고 돌아와 앉았다.
“자료를 보면 아시겠지만, 현재 제국 어딘가에 암흑가가 형성되어 사회를 좀먹는 중입니다.”
나라면 갑자기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어, 눈만 끔뻑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한스는 공작님의 말씀이니, 가타부타 따질 것 없이 곧장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전 보좌관은 암흑가에 관한 일들을 몰래 덮어주었을 뿐 아니라···. 두 달 전, 제가 잡아낸 마약 거래상을 기억하십니까?”
“네, 기억··· 합니다···.”
서류를 확인하느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 내용이 충격적인 것인지. 한스가 떠듬떠듬 대답했다.
세르펜스의 말을 미루어 짐작하자면, 전 보좌관을 수상히 여겨 미행하던 중에 그가 마약 거래상과 만나는 것을 목격한 듯하다.
그리고 전 보좌관은 죽이고, 마약 거래상은 체포했다는 건가?
“그자는 암흑가에 마약을 유통하려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상인은 잡을 수 있었으나, 꼬리를 끊어내기 위함인지···. 아시다시피 이전의 보좌관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조사에 따르자면 소수의 귀족이 연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한 탓에 폐하의 명에 따라 정보의 유출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며, 비밀리에 수사하는 중입니다.”
보통 철저하게 제한한 게 아닌 듯했다.
황태자인 휴마누스조차, 지금으로부터 1년이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성검의 주인]에서 휴마누스가 제국 내, 암흑가의 존재를 알게 되자마자 어떻게 행동했던가.‘그 위치를 듣기도 전에 분개하며, 쳐들어가려 했었지···.’
휴마누스에게까지 비밀을 지킨 황제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정의심이 너무 투철한 것도 문제다.
“어쩔 수 없이,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드리게 되었으나···.”
“네, 절대 입 밖에 내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날, 전임 보좌관을 열심히 칭찬하였던 한스가 얼굴을 붉혔다.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괜스레 세르펜스에게 건네받았던 자료들을 정리하여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보좌관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래서 그 조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한스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물었다.
그의 질문에 세르펜스 또한 어떻게 안 거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야 뭐···. 적당히 눈치챘죠?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좋아서. 아, 물론 그분을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세간의 평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다들 절 보면서 전 보좌관이 어떻고 한마디씩 하는 걸···.”
오늘도 되는대로 횡설수설 얘기하고 있자니, 왠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무척 뒤숭숭하다.
“잠시만요! 집사님은 제 방에 들락날락할 정도로 저를 철두철미하게 감시하셨으면서, 전 보좌관은 아무런 조사도 안 하셨던 겁니까?”
“그, 그야. 그는 누구와는 달리···.”
한스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 덕분에 세르펜스가 예정보다 일찍 돌아올 수 있었으니 그냥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세르펜스였다.
어째서 그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 거지?
‘한스야 그렇다 쳐도, 넌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되지 않아?’
나를 옹호해 주려는 연기를 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그냥 자신이 미리 언질을 줬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그만이다. 그럼 내가 알아서 어련히 맞장구 쳐줬겠지.
‘그걸 세르펜스가 몰랐을 리는 없고···.’
내가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그 자리에 나간 거로 생각하고 있는 거다.
갑자기 배신감이 훅 치고 올라왔다.
“···공작님은 대체 언제부터 와계셨던 겁니까?”
“······.”
그는 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한스를 밖으로 내보냈다. 표면상으로는, 앞으로 나눌 이야기가 기밀 사항이라는 이유에서다.
“리벨론 경이 세미타 거리에 들어섰을 때,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 그런데 왜 가만히 지켜보고 계셨던 겁니까!”
설움이 왈칵 치밀어 올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자신이 내뱉은 소리에 순간 흠칫 놀랐을 정도. 이내, 이곳이 업무상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방음 처리가 된 장소였음을 떠올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십니까!? 미리 와계셨다면 미리 신호라도 주시지 왜···!”
“······.”
“···절 시험하신 겁니까?”
만약 내가 당장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했다면.
그 정도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세르펜스를 의심하는 기색을 보였다면···.
‘···나 또한 오리지널 시온처럼 살해당했겠지.’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기어 올라왔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그렇다면 저를 관찰하신 겁니까?”
“···예. 그런 셈입니다.”
차분하기 그지없는 그의 목소리에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거나 그거나 다른 게 뭡니까?!”
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을 견제하며, 긴장하고 있을 때도.
환상 마법에 속아 공황상태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도.
흑마법사를 두 명이나 앞에 두고도, 어떻게든 상황을 호전시키려 애를 쓰며 연기하던 것도.
‘그리고 그들에게 쫓기던 그 순간조차 .’
그 최후의 최후까지. 더는 몰릴 수 없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그 순간까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는 겁니까?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하-.”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다 나온다.
그런 줄도 모르고, 시간을 끌면 반드시 그가 나타나 도와줄 거라 믿었던 스스로가 너무나도 멍청하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그러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저도 생각이 조금 복잡하여···.”
“그렇다고 해도, 좀 더 일찍 구해줄 수 있었잖습니까!”
이를 악물고 세르펜스를 노려봤다. 그가 내 눈을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그에게 일방적으로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는데···.’
그가 내게 조금씩이나마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 또한 내게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착각을 해버렸다.
무의식중에 그를 계속 내 편으로 여겼다.
내가 그에게 호의를 보내는 만큼, 그 또한 나에게 답을 해줄 거라 생각했다.
‘배신당한 사람의 기분이 이런 걸까···.’
허탈감이 밀려들어,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지금이 앉아있는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서 있었다면 또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저 사과가 진심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리벨론 경이라면···, 당신이라면. 어쩐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금 그걸···.”
그딴 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하다못해 좀 더 성의라도 갖출 수는 없던 걸까.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
급격히 피로해졌다. 괜찮다니, 대체 무엇이?
‘아, 그래. 내가 어찌 되든, 본인은 아무래도 괜찮다 그 얘긴가?’
그래, 처음부터 믿은 내가 잘못이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아등바등 노력해왔던 모든 게 헛짓거리에 불과했다.
애당초, 그는 타인의 고통 따위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그는 이 세상 그 무엇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녀석이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거나, 의지하려 할 리가.’
그딴 건 다 개소리다. 그런 일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짐을 싸서 외국 어딘가 시골 마을에 얌전히 처박혔어야 했다.
운이 나빠 전란에 휘말려 죽어버릴지언정, 지금처럼 거지 같은 기분은 모르고 살았겠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당장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리벨론 경. 그대라면 괜찮을 거라고···.”
세르펜스가 언제나처럼 청명한 음색이 아니라, 억지로 쥐어짜는 듯 잔뜩 잠긴 목소리를 끄집어낸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지금 세르펜스가 뭐라고 말한 거지?
믿음을 입에 담는 그의 모습을 믿을 수가 없다.
“믿···다뇨?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을.”
나를 믿었다고? 지금 세르펜스가 나를 믿고 있다고 말한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무언가 잘못 들은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연기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분명 그렇게 나를 속여서···.
‘···그래서?’
나를 속여서 그가 얻게 되는 게 뭐지? 나의 믿음? 그걸 얻어서···.
그래서? 그딴 게 그에게 필요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