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5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58화(358/1105)
358회
62. 공작님과 룩스메아 교단 (4)
사람으로 태어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며,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신을 섬기는 마음이라.
이것이 세르펜스가 설명한 교황의 가치관이었다.
세르펜스는 내게 ‘신에 대한 언행’을 조심하라는 말을 거듭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저택을 빠져나오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교황은 너그럽고 관대하지만, 신을 향한 모욕만은 절대 용납지 않는 성격이라나?’
세르펜스는 그렇게 말하며, 룩스메아를 속되게 부를 바에야 자신을 대놓고 고양이 취급하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교황이 다 큰 성인 남성을 고양이 취급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지, 그만큼 룩스메아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건지.
살짝 헷갈렸지만, 세르펜스어 마스터인 내 판단으로는 ‘둘 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도대체 신앙심이 얼마나 깊어지면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걸까?’
그러고 보면 에일리히 또한, 내가 세르펜스를 애 취급해도 별말 없었다. 다소 얼떨떨해 보이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하기야 신의 사자가 자신의 조카를 귀여워해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 끼익.
나와 세르펜스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누가 보아도 수상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문의 문지기는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오늘 저녁에 조용히 외출할 예정임을 후문 문지기에게만 살짝 말해 둔 덕택이다.
평소라면 세르펜스가 나를 들고 몰래 담을 넘었을 테지만, 알타르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공작저 후문이었다.
또한 세르펜스가 능숙하게 담을 뛰어넘는 모습을 알타르가 봐서 좋을 건 없었다.
문은 한 사람만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약간만 열렸다.
이 또한 세르펜스가 문지기에게 미리 지시해 두었던 일이다.
세르펜스와 내가 차례로 좁은 문틈을 빠져나가자, 문지기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문을 닫았다.
“오랜만입니다.”
약속 시각까지 아직 5분가량 남아있건만. 알타르 이단 심문관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건네 왔다.
그는 후드가 달린 짙은 회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살짝 후드를 걷어 얼굴을 보여준 뒤 도로 그것을 깊이 눌러썼다.
“네. 오래간만입니다, 이단 심문관님.”
세르펜스가 ‘이단 심문관’이라는 단어를 붙이며 인사했다.
문지기에게 오늘의 외출은 매우 합법적이며, 장차 대륙을 위한 큰일을 하러 가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알리기 위함이다.
인사 하나도 참 계획적으로 한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평범하게 던진 인사에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대체 뭘 했다고 덕분에 잘 지냈다는 답변이 돌아온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알타르의 생활에 도움을 준 적은 없었다.
‘교황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골머리를 앓느라 안녕하지 못했다는 말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거려나?’
잘 지냈느냐는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다.
“저쪽에 마차를 세워두었습니다.”
알타르가 저 멀리 보이는 골목 귀퉁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와 세르펜스는 알타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방금 알타르가 가리켰던 골목으로 들어서자, 평범해 보이는 마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마부석에 앉아 있는 남성의 얼굴 또한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는 나와 세르펜스를 보고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마부 차림을 하고 있을 뿐, 그 또한 룩스메아 교단 관계자인가 보다.
내가 잠시 마차를 살펴보는 사이, 알타르가 재빨리 마차 문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세르펜스가 나에게 본받으라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나는 녀석의 시선을 못 본 체하고 마차에 올랐다. 뒤이어 세르펜스가 마차에 올라 내 옆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알타르가 마차에 올라탄 후, 문을 닫았다. 곧 마차가 흔들리며 출발했고, 우리는 답답한 후드를 벗을 수 있었다.
“교황 성하께서는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알타르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흥분해서 날뛰는 에일리히를 진정시키느라, 애먹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서일까?
어째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태도가 훨씬 정중하고 차분해진 느낌이다.
“괜찮아요. 교황 성하를 이런 골목에 방치할 수는 없으니,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해 하는 표정이다.
내가 신의 따까리를 자처했을 때만 해도 차디찬 시선을 보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변한 건지 모르겠다.
신의 사자라는 게 밝혀진 후. 에일리히도 이전보다 나를 정중하게 대했지만, 이렇게까지 돌변하지는 않았다.
만난 지 너무 오래돼서, 머릿속에서 나에 대한 이미지를 멋대로 재구축하기라도 한 걸까?
“그보다, 교황 성하께서는 무슨 일로 저와 세르펜스를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신의 사자를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실 테고.”
“물론 아닙니다. 고작 만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바쁘신 분을 함부로 불러낼 리가 없잖습니까?”
알타르가 불러냈다고 표현한 걸 보면, 바쁘신 분이 지칭하는 대상은 교황이 아닌 ‘나’였다.
교황이 불러내지 않았다면 세르펜스의 서재에서 놀고 있었을 텐데. 나를 바쁜 사람이라 지칭해도 되는 건지, 굉장히 의문스럽다.
“성하께서 오늘 시온 님을 만나 뵙길 청한 이유는 ‘잃어버린 성지’에 관하여, 자문하기 위함입니다.”
“암흑가 말이죠?”
“아, 역시나···.”
내 답변에 알타르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성지를 발견한 것까지는 좋으나, 그곳에는 성스러움 대신 상스러움만 가득했다.
그러니 알타르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성검의 주인]에서도 암흑가가 성지라는 걸 알아챘으려나?’
잠시 그런 호기심이 떠올랐으나 금세 가라앉았다.
어차피 제국이 폭삭 망해버렸으니, 그 지하에 있는 성지 또한 그대로 잊혔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뒤숭숭해졌다.
“확인 끝났으면, 이제 돌아가도 돼요?”
“···혹시 많이 바쁘십니까? 그런 게 아니시라면, 조금만 더 시간을 내주시지 않겠습니까?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내 물음에 알타르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교황을 안 만나도 되는 건가 기대했는데, 안 되나 보다.
하긴. 암흑가가 성지인지 확인받고 싶은 거라면, 굳이 교황이 나를 만나자고 청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나만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고···.’
나는 옆자리에 앉은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세르펜스는 양손을 무릎에 올린 채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내 시선을 눈치챈 거다.
녀석은 무슨 용건이라도 있냐는 눈빛으로 생긋 미소 지었다. 나는 아무 용건도 없었기에, 녀석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거의 도착했다는 알타르의 말대로 마차는 금세 멈춰 섰다. 우리는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우리가 마차에서 내리자, 마부는 마차를 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길 한복판에 마차를 세워둘 수 없으니, 우리가 용건을 끝마칠 때쯤 돌아올 작정인 듯하다.
“이쪽입니다.”
알타르가 안내한 곳은 평범한 가정집으로 보이는 건물이었다.
건물 뒤쪽으로 난 작은 문을 통해 들어가자, 외관만큼이나 평범한 가정집의 부엌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가정집 같네요.”
“네, 평범한 가정집입니다.”
내가 후드를 벗으며 가볍게 감상을 내뱉자, 알타르가 긍정의 답변을 내놓았다. 이건 내가 예상했던 답안이 아니다.
여기가 평범한 가정집이라면 집주인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교단을 자주 방문해 주시는 신자 님께 양해를 구하고, 오늘 하루만 빌렸습니다.”
내가 ‘설마?’ 하는 의문을 떠올리기 전에, 알타르가 설명을 덧붙였다. 하마터면 큰 오해를 할 뻔했다.
“교황 성하께서는 밖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상 누군가의 집을 빌리는 겁니까?”
“원래 이렇게까지 할 작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온 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려, 최대한 조심하자는 생각에···.”
“아, 네. 잘하셨어요. 조심하면 좋죠.”
악숭이가 호시탐탐 교황의 목을 노리고 있다는 내 얘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했다는데. 따지기 뭣해서 되는대로 말했더니, 알타르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정집을 빌리자는 의견을 낸 사람이 알타르 님인가?’
물어볼까 하다가, 교황의 의견이라는 답이 나오면 기분이 더 오묘해질 것 같아서 그만뒀다.
알타르는 사전 답사라도 왔던 건지,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우리를 거실로 안내했다.
거실에는 일반 신관 복을 입은 사람이 세 명 있었는데, 그중 누가 교황인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세르펜스가 교황은 58세라 말하였고 두 명은 딱 봐도 젊어 보였으니까.
교황이 기적의 동안이 아닌 바에야. 중년인지 노년인지 아리까리한 사람이 교황이고, 나머지는 호위로 따라온 성기사겠지. 굳이 물어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교황이 일반 신관 복장을 한 이유도 뻔했다. 교황의 옷은 눈에 띄니까, 안전을 기하기 위함이리라.
“드디어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스페라 V. 슈테판이 신의 사자께 인사를 올립니다.”
내가 교황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이 자신을 소개했다. 세르펜스가 교황의 이름이라고 알려줬던 그 이름이다.
직책 정도는 말할 줄 알았는데. 간단하게 이름만 밝힌 것이 예상 밖이라면 예상 밖이다.
‘신의 사자 앞에서는 다 똑같은 성직자다, 뭐 그런 건가?’
만나기 전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교황은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황제처럼 무게를 잡고 위압감을 주기는커녕, 신의 사자가 맞느냐며 나를 의심하지도 않았다.
“시온 리벨론입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신 룩스메아께 사명을 받고 세르펜스랑 이것저것 하고 있어요.”
“오오, 그러시군요.”
사명에 대해 자세하게 말할 수 없다는 설정에 따라 대충 얼버무려 말하자, 교황이 감명 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교황은 룩스메아 처돌이구나.’
나는 교황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를 끝냈다.
이 사람은 내가 ‘오늘부터 악마 숭배자라는 명칭은 폐기하고, 악숭이라 부릅시다.’라고 말하면, ‘오늘부터 악숭이를 악마 숭배자라 부르는 사람은 이단.’이라고 공표할 사람이다.
“제가 직접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이리 누추한 곳에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여기 빌린 집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누추한 곳이라니, 집주인께 너무 실례되는 표현 같은데···.”
“아, 아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과연 신의 사자께서는 자비로우시며 생각이 깊으십니다.”
교황이 황홀하다는 얼굴로 나를 칭송했다. 광적인 모습이 무척이나 부담스럽다.
만일 내가 룩스메아를 룩쓰렉아라 부른다면, 저 광기가 어디로 튀어나갈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정중한 태도에 살짝 긴장을 풀 뻔했는데, 이제는 만나기 전보다 더 긴장되었다.
세르펜스가 괜히 ‘차라리 날 고양이 취급해라.’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