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6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63화(363/1105)
363회
63. 공작님과 바스툴 2왕자 (3)
베일은 우리를 따라오면서도 반신반의한 기색이었다. 세르펜스가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지 않았다면, 아예 따라오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더니, 공작저 정문을 통과하고 나서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했다.
‘대체 반응이 왜 저따위지?’
의문이 가득한 나와는 달리, 세르펜스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녀석은 제온을 불러, 베일이 묵을 방의 안내를 지시했다. 먹기 전에 일단 씻으라는 의미다.
베일에게 배정된 방은 내가 생활하는 건물이 아닌 별개의 건물에 있었다.
본관과 정문을 이어 하나의 기준선으로 삼았을 때, 대칭된 곳에 자리한 건물이다.
멀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거리가 꽤 된다.
본래 기사나 시종들을 데리고 묵는 귀족들을 위해 준비한 건물이라는데, 전대 공작이 취임한 이후로 줄곧 방치됐다고 한다.
‘그동안 따로 손님을 받지 않았으니, 자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나?’
그 탓에 보통 별관이라고 하면 내 방이 있는 동쪽의 별관을 지칭하게 된 거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서쪽 별관도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순전히 휴마누스 때문이다.
예전에 휴마누스가 쳐들어와 묵어가겠다고 했을 때. 세르펜스는 그와 성검 일행에게 동쪽 별관의 빈방을 내어 줬었다.
‘세르펜스가 내 방에서 자고 가기 시작한 이래,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휴마누스를 대비해서 준비해뒀던 건데···.’
제국의 황태자 대신 타국의 왕자가 먼저 사용하게 되었다.
아무튼 베일이 씻고 식사를 하는 동안, 나와 세르펜스는 응접실에서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이 애매하지만 않았다면 같이 식사를 했을 텐데.
하지만 우리가 아침을 먹은 지, 고작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점심을 먹을 때까지 베일에게 굶으라는 건 횡포나 다름없다.
“그나저나. 베일은 어째서 세르펜스의 얼굴을 보고도 긴가민가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걸까요?”
“그대의 태도가 문제였던 게 아닐까 한다.”
“이젠 농담도 곧잘 하시네!”
내 말에 세르펜스가 피식 코웃음 치며 차를 홀짝였다.
그 태도가 마치,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하던가. 그렇다 해도 진실은 변하지 않을 거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세르펜스와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빈둥거리는 사이. 용무를 마친 베일이 제온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찾아왔다.
급한 대로 내 옷을 적당히 빌려줬는데, 삐쩍 마른 탓에 헐렁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얼마나 굶어야 고작 몇 개월 만에 저렇게 마를 수 있는 걸까?
안쓰러움이 밀려든다. 제대로 살이 오를 때까지, 열심히 먹여야겠다.
“가···, 감사합니다.”
베일이 응접실에 들어오자마자, 민망하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나와 세르펜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자신은 내 지인을 사칭한 거로도 모자라 세르펜스를 미심쩍어했는데, 나와 세르펜스는 옷과 식사 등을 제공했으니.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저리 부끄러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닙니다.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얘기가 길어질 듯한데, 우선 자리에 앉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르펜스가 부드러이 웃으며 자리를 권하자, 베일이 소파에 앉으며 앵무새처럼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베일의 시선이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그게 뜻대로 잘 안 되나 보다.
하긴 왕자씩이나 되는 인물이 거지꼴을 보였으니. 창피함이 자꾸만 머리를 쳐드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새로운 차를 준비해 드릴까요?”
베일을 이곳까지 안내해 온 제온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오며, 세르펜스에게 질문했다.
나와 세르펜스는 이미 베일을 기다리는 동안 차를 마셨다. 여기서 더 마셔봐야 물배만 가득 찰 뿐이다.
세르펜스는 제온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에 베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차가 필요한지, 베일의 의향을 묻는 거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잔을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베일의 답변이 떨어지자마자, 제온은 신속 정확한 동작으로 쟁반 위에 찻잔과 찻주전자를 올렸다.
순식간에 테이블 정리를 마친 제온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조용히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탁. 문 닫히는 소리의 여운이 가실 즈음, 세르펜스가 베일을 향해 질문했다.
“몸이 많이 상하신 것 같은데, 제가 좀 봐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됩니다.”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베일은 세르펜스의 호의를 사양하려 했으나,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세르펜스의 표정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걱정스럽다는 표정은 연기였다. 세르펜스의 머릿속은 온통 베일을 스캔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증거로 세르펜스는 하고 많은 신체 부위 중, 베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악숭이가 세뇌를 했나 안 했나, 머리 쪽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싶다는 거겠지.’
왜 하필 이마일까 의아해하기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신성력을 발하는 세르펜스의 모습은 너무나도 숭고했다.
베일은 그 어떤 의문도 떠올리지 못한 표정이다. 곧이어 은빛의 신성력이 베일의 전신을 감쌌다.
잠시 후, 세르펜스가 손을 거두었다.
“다 되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신성력이 주는 따스한 느낌을 만끽하던 베일이 아쉽다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그에 세르펜스는 후후, 온화한 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렇고, 바스툴 왕국의 2왕자 저하께서 제국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몰골이 됐느냐고 물을 법도 하건만.
세르펜스는 베일이 민망해하지 않을 만한 물음을 건넸다. 거기에 입가에 머금은 청초한 미소까지 더해졌으니.
그야말로 고결한 성인(聖人)의 모습 그 자체였다.
“···제가 누군지, 알고 계셨습니까?”
대외펜스의 찬연한 자태에 잠깐 넋을 놓았던 베일이 한 박자 늦게 반문했다.
질문이 무시당한 거나 다름없었지만, 세르펜스는 자상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만일 테라룸 왕국에서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알아보지 못했을 겁니다.”
아무리 세르펜스의 눈썰미가 뛰어났다고 한들, 정도라는 게 있다.
현재 베일의 나이는 20살이다. 5년 전이면 열다섯이고, 한창 클 때니 이목구비라던가 분위기가 꽤 바뀌었을 거다.
핼쑥하고 꼬질꼬질해진 데다가 세월의 흐름까지 겪은 얼굴을 보고, 5년 전에 만난 사람을 떠올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야~, 그렇다는 건 완전 제 덕분이라는 거 아닙니까? 제가 그날 세르펜스를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왕자 저하도 마주치지 못했을 테니까요!”
어쩐지 큰일을 해낸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특히 베일은 이상함을 넘어, 괴상한 걸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분명···, 프라시더스 공작의 보좌관이라고 했던가?”
신분이 드러나자, 반대로 존댓말은 숨어버렸다.
나이보다 신분이 앞서는 건 신분 제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보다.
‘내가 세르펜스처럼 공작만 됐으면···. 아니, 하다못해 후작쯤만 됐어도 어떻게 비벼봤을 텐데.’
베일도 왕족의 권위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으니 저러는 걸 테다.
이 세계에서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존댓말을 사용하는 세르펜스가 특이한 거다. 숨만 쉬어도 고귀함이 넘치는 세르펜스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다른 귀족이었다면 어림도 없었다.
“아까 오는 길에 그렇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게다가 저랑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에 머나먼 제국까지 찾아오셨다면서요? 그런 것치고는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는 시선인데요?”
“···멋대로 이름을 팔아서 미안하네.”
“농담입니다, 농담! 사과받자고 한 말이 아니니, 그러지 마세요.”
아무래도 비꼬는 것처럼 들렸나 보다. 나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오해를 바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좌불안석하는 베일의 모습에, 세르펜스가 짐짓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로 시온 경의 말에는 악의가 없습니다. 저하께서 불편해하시는 듯하여, 분위기를 풀어주려 한 것뿐입니다. 저를 봐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세르펜스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베일을 후안무치한 나쁜 놈으로 만들어버렸다.
베일은 화를 낸 적도 없을 뿐더러, 그가 불편해한 것은 순전히 자신의 잘못이 마음에 얹혀서였다.
그런데 세르펜스의 말만 들으면, 내 말 때문에 베일의 기분이 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졸지에 자기가 먼저 잘못해 놓고, 그걸 지적당하자 언짢아하는 속 좁은 놈이 되어버린 베일이 당황을 금치 못했다.
“오해입니다!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 않았으니,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그냥 저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런 겁니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세르펜스가 일부러 느릿하게 물었다. 그 모습이 마치 베일의 눈치를 보는 듯, 퍽 조심스러웠다.
“정말이고 말고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베일이 다소 과장되게 대답하고 나서야, 세르펜스가 안도했다는 듯 푸시시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 베일은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짧은 시간 동안 베일은 지옥과 천당을 오간 기분일 거다.
세르펜스는 그걸 뻔히 알면서도, 그저 베일의 기분이 상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생글생글 눈웃음쳤다.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에 베일은 절절매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아!’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고 보니, 아까 받았던 질문에 답변을 드린다는 걸 깜박했습니다.”
베일의 말에 세르펜스는 어서 말해보라며 재촉하지 않았다.
찬찬히 얘기해도 된다고 말하는 눈빛으로 베일을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이나 사려 깊은 모습이다.
오늘 아침 밖에 나가지 말라고 떼를 쓰며, 내 모자를 뺏었던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왕자인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나라를 욕되게 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베일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얼결에 자신이 먼저 운을 떼긴 했으나, 막상 얘기를 꺼내려니 고민되는가 보다. 갈팡질팡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베일이 세르펜스를 힐끔 쳐다봤다.
세르펜스는 베일과 눈이 마주치자, 무슨 말을 해도 전부 이해해 줄 것 같은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저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저는 모릅니다. 하나, 저하께서 자국에 해를 끼치려는 마음으로 먼 제국까지 오셨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스툴 왕국과 그 땅의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기에 험한 여정을 인내하셨다고, 감히 짐작합니다. 그렇기에 저하께서 어떤 믿기 힘든 말을 꺼내시든, 저는 믿겠습니다.”
뻔히 짐작 가는 바가 있는 주제에 세르펜스가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베일이 알 리가 없었다.
믿겠다고 말하는 세르펜스의 온후한 목소리에 베일이 결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아바마마와 형제들이 악마 숭배 세력과 결탁한 것 같습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변하는 건 흔한 일이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