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7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73화(373/1105)
373회
63. 공작님과 바스툴 2왕자 (13)
서쪽 별관은 단체 손님을 대비한 건물이라 그런지, 숙소에 가까운 동쪽 별관과는 다르게 건물 자체만으로 하나의 별장처럼 느껴졌다.
방만 죽 늘어선 동쪽 별관과는 다르게, 1층에는 제법 넓은 거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와! 서쪽 별관이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기분 전환 겸 종종 놀러 오는 건데!”
내가 천장의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며 감탄하자, 세르펜스가 이게 뭐라고 아쉬워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손님이 계셔서 불가능하지만, 나중에라도 원하신다면 방을 옮겨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놀러’에 초점을 두고 말한 것이건만. 아예 눌러앉아도 좋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뇨, 됐어요. 어차피 잘 때 빼고는 본관에서만 생활하는데요, 뭘.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쓰는 건 인력 낭비입니다.”
“그렇습니까?”
“아! 아니면 그냥 퇴근 후에 서재로 가지 말고, 여기에서 다 같이 노는 건 어때요?”
“하루 이틀이라면 모를까. 매일 저녁, 바쁘신 분들을 붙들어 놓는 건 그리 바람직한 행동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윈스톤과 에드나는 각자 수련으로 바쁘니, 방해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지금처럼 유지스만 불러내어 셋이서만 놀자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다 치고 졸지에 유지스까지 한가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세르펜스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당연히 베일이었다. 그는 이 넓고 쾌적한 공간을 놔두고 2층의 방에만 처박혀 있었는데, 우리가 찾아왔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준비하고 내려온 거다.
말쑥한 차림새를 갖추고 있었지만, 여전히 핼쑥한 모습을 확인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식사는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한다고 전해 들었건만.
‘빼는 것은 긴 세월이 걸리지만, 찌는 건 한순간인 게 지방의 특징 아니었나?’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방증이다.
계속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실례가 될까 싶어,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대신에 오늘 간식으로 준비해 두었던 얼그레이 쇼콜라 타르트를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간식 시간도 아닌데 내가 디저트를 꺼내자, 세르펜스의 표정이 미세하게 밝아졌다.
‘설마 지금 먹고, 이따 오후에 또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세르펜스에게 알릴까 하다가, 가까이 다가와 자리에 앉는 베일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미리 사람을 보냈어야 했는데···.”
베일의 사과에 세르펜스가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당장 찾아가자고 한 건 나인데, 어째서인지 베일과 세르펜스가 사과를 주고받고 있다.
둘의 행동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세르펜스가 보좌관에게 끌려다닌다는 인상이 생겨나는 것보다, 잠깐 미안해하고 마는 게 이로울 것 같아서다.
결코 책임 회피 같은 게 아니다.
더군다나 내게는 타르트를 먹기 위한 상차림이라는 중대한 과제가 부여되었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식기 세트를 꺼냈다.
베일이 나와 아공간 주머니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런 걸···. 가지고 다니는 건가?”
어쩐지 말 사이의 간격이 길다.
그 탓에 아공간 주머니 같은 값진 물건에 그딴 걸 넣고 다니느냐는 물음으로 들렸다.
하지만 내 착각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도 그러할게 베일은 음식의 귀중함을 몸소 깨우쳤다. 따라서 먹을 것과 그에 관련된 물건을 괄시할 리가 없다.
“이 아공간 주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유지스가 구해다 준 겁니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를 입수하게 된 과정을 적당히 각색해서 설명하려다가, 라드라바의 유산이라는 걸 밝혀도 되는가 의문이 들어서 급히 말을 선회했다.
“참고로 유지스는 저와 마찬가지로 동쪽 별관에서 머무는 엘프인데, 아르케 왕의 조카입니다. 그리고 저랑 세···, 계수를 수호하는 하이 엘프들도 울고 갈 정도로 아름다우신 우리 공작님의 친구이기도 하죠.”
하마터면 세르펜스의 이름을 그냥 부를 뻔했지만, 나는 재치 넘치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뿌듯한 마음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좋아, 아주 자연스러웠어!’
하지만 세르펜스는 별로 좋지 않은가 보다.
자신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베일의 시선이 햇볕이라도 되는 양, 녀석은 손차양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공작님이 쑥스럼이 많아서, 칭찬을 해주면 종종 저렇게 민망해하곤 합니다.”
나는 세르펜스의 행동을 베일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싶어, 녀석을 대신하여 변명에 나섰다.
그랬더니 베일이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 자다. 세르펜스가 쑥스러워 할 걸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한 거냐고 묻고 싶은 걸 테다.
나는 그런 베일의 입을 막기 위해, 접시에 타르트 하나를 올려 그에게 쑥 내밀었다.
“자, 자. 일단 드세요!”
“보아하니 개인적으로 먹으려고 산 것 같은데, 굳이 나까지 챙겨 줄 필요는 없네.”
베일이 고개를 저으며 내가 내민 타르트를 거절했다.
자신의 비쩍 마른 몸이 안돼 보여서, 나 혼자 먹으려던 걸 꺼낸 줄 아는가 보다.
그런 점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진작 찾아와보지 않고, 홀로 내버려 둔 것에서 비롯된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공작가 경비로 산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또 사면 됩니다.”
“그, 그래도 입맛이 없어서···. 정말로 괜찮네.”
“그럴수록 더 먹어야죠!”
자고로 기분이 처질 땐 당분을 섭취해야 하는 법이다.
우울하다 못해 감정이 거의 결핍 상태에 다다랐던 세르펜스조차, 단 음식을 잔뜩 먹고 난 후로는 별것 아닌 일에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던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시온 경은 의식주 중에서도 ‘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거절하면 지금처럼 오히려 더 강압적으로 나오니, 그냥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세르펜스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꾸며내며 베일에게 말했다.
빨리 타르트를 먹고 싶은데, 베일이 자꾸 거절하며 시간을 질질 끄는 게 답답했나 보다.
“아, 그래서 이런 걸···. 가지고 다니는 거로군요.’
베일의 시선이 테이블 위를 훑었다.
아무래도 아까 ‘그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던 그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내가 식기류를 들고 다니는 걸 신기하게 쳐다본 거였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멀리 가는 도중, 문득 케이크가 먹고 싶어졌는데 식기가 없으면 큰일이잖습니까? 이런 타르트 같은 건 어찌어찌 먹는다 쳐도, 생크림 케이크 같은 건 맨손으로 들고 먹을 수 없잖아요.”
내 설명에 베일은 동조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바다. 나 또한 이해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선행 지식이 없으니까.
내가 간식을 챙기게 된 건 오로지 세르펜스 때문이다.
케이크가 먹고 싶어졌는데 식기가 없으면 큰일 나는 사람 또한, 내가 아닌 세르펜스를 지칭하는 거였다.
녀석만 아니면 식기류를 챙겨 다니면서까지 간식을 꼬박꼬박, 다양하게 챙겨 먹을 이유가 없다.
이는 손수건 따위 사 본 적도 없던 사람이 애를 키우고 나서부터, 손수건이며 물티슈며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어쨌거나 자신이 타르트를 받지 않으면 대화가 진행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섰는지, 베일이 내가 내민 접시를 받았다.
나는 잊지 않고 포크도 내밀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포크를 받아 든 베일이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세르펜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돈을 받으러 온 채권자를 바라보는 채무자의 눈빛이 저러할까?
준비된 돈이 있다면 당당할 텐데도 저렇게나 초조해 하는 걸 보니, 아직 돈이 준비되지 않았나 보다.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 중인가 보네.’
고민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고민거리가 그의 발목을 잡으리라.
그가 왕이 된다고 마음을 먹었다 한들, 바로 즉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룩스메아 교단이 바스툴 왕궁에 들이닥쳐 그들을 죽이고, ‘이제부터 너희들의 왕은 이 사람이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과연 사람들이 그렇구나 하고 이해해 줄까?
왕실을 이단으로 고발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바스툴 왕실이 악숭이와 결탁했다는 사실이 표면으로 드러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가 왕위에 오르는 모든 과정이 교단의 힘으로 이루어진다면, 베일은 제대로 된 왕으로 인정받지 못할 거다.
그러므로 베일이 직접 내란을 일으켜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점은, [성검의 주인] 때와는 달리 룩스메아 교단이 건재하다는 거다.
그래서 최종 처분. 즉, ‘사형’을 베일이 직접 주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뿐이다.
이단으로 잡아서 교단에 넘기면 되니까.
하지만 [성검의 주인]에서 베일을 지겹게도 따라다녔던, ‘패륜 왕’이라는 꼬리표는 이번에도 그를 따라다니게 될 거다.
어쩌면 뭣 모르는 사람들에게 ‘왕이 되고 싶어서 가족들을 이단으로 팔아넘겼다.’라는 말까지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졌지만, 그래도 우리 애 먹을 건 챙겨 줘야 한다.
나는 타르트 한 조각을 빈 접시에 담아 포크와 함께 세르펜스에게 건네주었다.
세르펜스는 마치 맡겨둔 물건을 돌려받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접시를 건네받았다.
“성검의 주인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아···!”
세르펜스의 말에 베일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한 반응이다.
애초에 베일이 휴마누스를 만나고자 한 건 바스툴 왕실을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그 목표는 진작에 달성했고,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으니. 휴마누스에 관한 건 까맣게 잊을 만도 했다.
“수신인은 저로 되어 있지만···. 직접 읽어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세르펜스가 우아하게 포크를 들어, 타르트 조각의 뾰족한 앞머리 부분을 자르며 말했다.
녀석이 생판 남인 베일 앞에서 당당하게 타르트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동이 밀려들었다.
‘비록 내가 강압적으로 남에게 음식을 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랴 싶다.
이렇게 조금씩 발전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연회장 한복판에서 푸딩을 퍼먹는 날도 오겠지.
‘그보다 자신이 세르펜스에게 쓴 편지를 여럿이서 돌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휴마누스는 과연 알고 있을까?’
휴마누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베일이 직접 편지를 읽는 건 나도 찬성하는 바다.
그가 보낸 편지에는 베일을 향한 걱정이 드러나 있었으니까. 바로 찾아올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얘기도 있었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늘었으며, 성검의 주인이 자신을 도우러 와 주겠다고 약속한 글을 보면 베일에게 큰 힘이 되리라.
“저, 그래서 편지는···?”
편지를 직접 읽으라고 말해놓고 세르펜스가 타르트만 먹고 있자, 베일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시선을 받은 세르펜스가 나를 쳐다봤다.
“왜 절 봐요?”
“집무실에서 편지를 들고나온 사람은 경이잖습니까?”
“아, 맞다!”
나는 타르트 상자 밑에 깔려있던 편지를 베일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