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8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82화(382/1105)
382회
64. 공작님과 작가님 (5)
“저기,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신데···.”
“그쪽이 신경 쓸 바가 아닙니다.”
“네에···.”
새삼, 선우가 가여워졌다. 그는 이런 자도 친구라 여기며, 여행지에서 선물까지 구매했다.
하지만 이자는 처음부터 선우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했다.
이 세상에서는 선우에게. 그리고 저쪽 세상에서는 그의 가족에게.
‘선우는 경계심이 너무 얕고, 잔정이 지나치게 많아.’
그런 모습이 선우의 장점이기는 하나, 이 세상은 그런 자들에게 그리 친절하지만은 않다. 나만 해도 선우를 이용하고, 착취하고 있다.
선우나 유지스처럼 선의로만 가득 찬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이 둘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아무나 그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나라도 나서서 막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작정 타인과 가까이하지 말라고 강요한다면, 그는 반발할 것이다.
다른 수를 생각해 봐야겠다.
“그보다, 그쪽은 어째서 시온을 돕지 않았던 겁니까?”
조금 전 이자는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는 건 그를 돕기 위해 보내졌다는 걸 의미했다. 신이 내린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하기에.
하지만 이자는 그 수습조차 하지 않고 그저 방관하였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생각해 봤을 때, 이자야말로 진정한 이단···.
“도와요? 이미 공작님과 친해질 대로 친해져서, 자신이 말만 전하면 공작님이 다 해결해 줄 것처럼 떵떵거리시고. 그게 허언이 아니라는 듯, 옷 선물까지 한가득 받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는데···. 제가 거기서 무엇을 더 어떻게요? 괜히 어설프게 끼어들었다가 의심받느니, 적당히 거리를 두고 유용한 스크롤이나 만들어 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뿐이에요.”
내 생각을 끊어내듯. 상대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빠르게 쏟아냈다.
그 시기에는 선우와 지금만큼 가깝지 않았음에도, 타인의 눈에는 상당히 가까워 보였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뿐인 줄 아시나요? 가끔 안부 인사하며 소식을 물을 때도 그래요. 얼마 전 뭐 하고 놀았다거나, 무엇을 먹었다거나, 여행지가 어땠다거나. 그런 얘기들을 잔뜩 늘어놓으며, 대륙 생활을 즐기는 중이라는 티를 있는 대로 다 내는데···! 말이야 바른말로, 그런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제 얘기는 없었습니까?”
내 물음에 ‘작가’가 갑자기 이상 행동을 보였다. 그자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내 캐해석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시온 씨의 영향력이 큰 건지···.”
“······.”
“네, 얘기 많이 했어요. 공작님께서 편의도 많이 봐주시고, 외국에 나가면 출장비까지 챙겨주시는 데다가, 어지간한 건 다 경비 처리해 주신다면서요? 안구 정화에 탁월할 뿐만 아니라, 재정에도 풍족함을 선사하는 천사 같은 상관이라며 칭찬도 엄청 하셨어요.”
나는 그의 안구를 신성력으로 정화해 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선우가 그리 말하였다면 이는 필시 은유적인 표현일 터.
안구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자극은 바로 시각이다. 그렇다는 건···.
‘또 얼굴인가?’
선우는 내 얼굴이 심미적 만족감을 채워준다는 말을 ‘안구 정화’라고 표현한 것이 틀림없다.
예술 작품도 아닌 누군가의 얼굴로 그런 만족감을 느끼는 게 가능한 것인지 실로 의문스럽다.
불현듯,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예술 작품이 아름다운 건 기억과 감성을 건드리는 까닭’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햇살 아래 피어난 꽃을 그린 그림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따사로이 내리쬐는 봄날의 햇볕을 피부가 기억하고, 향긋한 꽃내음이 코를 간지럽히던 감각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지금이라면 어렴풋이 그 뜻을 알 것도 같다.
“혹시 그의 진짜 가족 중, 저와 닮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되묻는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에 단호한 부정이 가득 담겼다. 가당찮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선우에게서 내가 그의 가족과 닮았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가능성이 작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허망함이 밀려드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난데없이 그런 이상한 질문은 왜···.”
“전언은 없습니까?”
“없어요. 저는 그저 시온 씨의 보조이자, 예비 선수 격으로 온 거라서요.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한 뒷수습 같은 거죠. 시온 씨가 워낙···. 잘 해주셔서 굳이 나설 필요가 없어졌지만요.”
“그쪽은 그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원래도 그랬지만, 지금은 특히나 더 그럴 자신이 없네요.”
주제 파악은 제대로 할 줄 아는 모양이다.
“그래도 뭐, 별수 있나요? 한낱 피조물인 제가···.”
“신 룩스메아는 이 세상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되려면 우선 자료 조사부터 제대로 하십시오.”
“네?”
“신 룩스메아를 ‘여신’이라 지칭했을 때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로 아는 게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네?”
“······.”
구태여 이자의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아 주고 싶지 않았다.
선우가 던지는 온갖 자질구레한 질문에 답을 하거나, 윈스톤 경을 비롯한 가문의 기사들에게 검술을 지도하는 건 분명 즐거웠었는데.
이상하게도 눈앞의 상대에게는 전부 귀찮기만 하다.
“어, 어쩔 수 없잖아요! 신학 같은 건 배운 적이 없는데···. 그 시간에 마법 관련 서적을 한 권이라도 더 보는 게, 살아가는 데 더 도움이 됐는걸요.”
“그쪽은 어떻게 그 소설을 쓰신 겁니까?”
“그, 그냥 잘···? 글을 쓸 땐 이미 자료를 조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는 걸 어쩌겠어요?”
슬슬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자는 이해력이 월등히 떨어졌다. 선우나 유지스라면 내가 무슨 뜻으로 질문했을지 바로 알아차리고,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 소설에서는 선택의 날 이후 황태자 전하께서 겪은 일들은 물론이거니와, 저의 과거까지 언급되었다 들었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그쪽이 어떻게 알고, 글을 쓴 것인지 질문한 겁니다.”
“저는 관련 자료를 건네받았을 뿐이에요.”
“그렇다면 소설에 담지 못한 내용 중, 악마 숭배 세력의 주요 인사에 관한 인적 사항 등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없습니까?”
“없어요. 저는 자잘한 내용을 쳐내고, ‘소설’로 다시 쓰는 작업을 했을 뿐이에요. 중요한 정보는 다 적었어요. 각색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닌데···.”
“각색이···, 있었습니까?”
나는 선우가 읽은 그 소설을 예언서와 비슷한 종류의 것으로 여겼으나, 결국 소설은 읽는 자의 재미를 위한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내게 배정된 역은 주인공이 넘어야 할 마지막 장벽이자, 그에게 역경을 부여하여 위기를 만들어내는 자다.
아주 어쩌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악행도, 내가 저지른 짓으로 각색되지 않았을까?’
그런 기대감이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죄를 축소했다면 모를까, 그 반대의 가능성은 없다.
“죄송하지만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최악의 비극에서 나름 해피 엔딩을 위해 노력했어요.”
“‘엔딩’이라면···. 각색된 부분은 결말부입니까?”
“말 그대로 끝이에요, 끝.”
선우가 말한 [성검의 주인]의 끝은 나의 죽음과 황태자의···.
“그건 그렇고, 제가 작가라는 거···. 시온 씨에게 말씀하실 건가요?”
‘작가’가 초조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돌돌 감았다. 이자는 자신의 잘못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누님 대신 자신이 낯선 세계로 온 것을 다행이라 말하던 선우가. 자신의 가족을 낯선 세계로 보내려 접근한 자를 만나고도, 대충 넘어갈 리 없다.
“저도 제가 잘못한 건 알아요. 하지만 제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고, 결국 저도 심부름꾼 같은 거라서···.”
“지금 저에게 그를 속이라고 종용하시는 겁니까?”
“시온 씨는 공작님께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이상한 말로 논점을 비켜 나가려 하지 마십시오.”
주제에서 벗어난 말로 화제를 엇나가게 하는 것은 선우의 특징이자 버릇 중 하나다.
그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내가 이런 자의 말장난에 넘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답답했는지, 상대는 주먹 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려댔다.
“애초에 당신이 한 일은 정말로 그저 ‘심부름’이었습니까? 정당한 대가를 받은 ‘거래’가 아니라? 그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온 리벨론’의 가족에게 죄의식을 느끼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쪽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잘못을 회피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돌려보내 주시려고요?”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단박에 새하얘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문제로부터 계속 도망치려 했다. 일찍이 선우가 지적했던, 내 나쁜 습관 중 하나다.
“아까 안색이 갑자기 나빠진 것도 그렇고···. 공작님께서는 시온 씨를 보내고 싶지 않으신 거 아닌가요?”
나도 모르게 이를 악다물기라도 했는지, 귓가에 으득하고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맞은편에 앉은 자가 이상하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런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그는 돌아갈 방법을 찾아도, 돌아가지 않기로 저와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에게 숨기지 않을 겁니다. 하물며 그 방법이 죽는 것임에야···. 그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그러니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러나 조금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오히려 안 좋은 상상만 떠올랐다.
선우라면 나에게 자신을 죽여 본래 세상으로 되돌려 보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건만.
나를 위로해주던 그 다정한 음색으로, 자신을 죽여달라 말하는 환청이 귓가에 웅웅 맴돌았다.
“공작님,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네. 그는 저와의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니, 말해도 괜찮습니다.”
“그게 아니라, 공작님의 상태가 괜찮은 것 맞느냐는 질문이었어요.”
“지금 제가 괜찮지 않아 보입니까?”
“구체적으로 답하자면···, 제가 쓴 소설과는 다른 방향으로 안 괜찮아 보여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아···, 진짜 괜찮은 거 맞나? 좀 불안한데···.”
“불안할 건 없습니다. 저는 신의 뜻대로 이 대륙을 지켜낼 겁니다.”
“그게 아니라···.”
“더는 참견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그쪽은 그저 방관자일 뿐이잖습니까?”
“아~, 네. 그래요. 둘이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 사세요, 그럼!”
느닷없이 ‘작가’가 비꼬는 말투로 나와 선우의 행복을 기원해 주었다.
그 행동이 이해되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저는 가게 정리하고 떠날 테니까, 말하는 건 좀 미뤄주실 수 없나요? 비겁하다고 욕하셔도 되는데, 어차피 저는 ‘이 몸’으로 전달할 수 있는 얘기는 다 전했거든요. 본의로 돌아온 건 아니지만, 망한 스크롤 사업의 한도 풀었고 겸사겸사 경영 실습도 했으니···.”
“떠나는 건 안 됩니다.”
“왜죠?”
“그쪽이 악마 숭배 세력에 들어가거나, 그자들에게 붙잡히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내 답변에 ‘작가’는 웃긴 얘기라도 들은 듯이 깔깔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이렇게 해요. 가게 정리 후, 저는 죽을게요. 그러면 됐죠? 대신 일주일만 시간을 주세요.”
“죽음을···, 꽤 가볍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야 저는 이미 죽어봤으니까요. ‘그 시기’를 제가 무사히 넘겼을 리가 없지 않나요? 그에 비해 죽음의 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죠. ‘다음’이 기약되어 있기도 하고요.”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자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거짓이라고 확신할 방도는 더더욱 없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죄와 업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주일간 기다려드리겠습니다.”
* * *
그러나 내가 선우에게 ‘작가’의 정체를 밝힌 건, 약속한 일주일을 훌쩍 넘긴 이후였다.
나와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그자는 원하던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