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8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83화(383/1105)
383회
64. 공작님과 작가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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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솔레르티아 씨가 ‘그’ 작가라고요? [성검의 주인]을 쓴?”
이미 답은 나와 있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재차 질문하자, 세르펜스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거리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치 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세르펜스, 고개 좀 들어 봐요. 대화할 땐 상대방의 눈을 봐야죠.”
내 말에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물기를 머금은 그의 녹색 눈동자를 본 순간, 혼란이 가라앉았다. 이는 마음이 진정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기보단, 누군가 찬물을 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뜨거웠던 머리가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로 와서 처음 사귄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속였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했던 거야?’
솔레르티아와 처음 만났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망가진 스크롤과 깨진 시약병을 보며 서럽다는 듯 엉엉 울어댔다. 그런 솔레르티아를 보며 나는 그녀에게 사기 치지 말라고 한소리를 했고, 물품들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사과했다.
공작령에서 수도로 올라오던 기차에서, 셋이서 함께 스콘을 먹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세르펜스와 솔레르티아가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솔레르티아가 가게를 얻어 공작저를 나가기 전날. 가게로 놀러 오지 않을 거냐며 서운해하던 그 표정마저, 전부 거짓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나를 친구라고 여기지도 않았겠지.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나를 바라보는 세르펜스의 표정이 점차 울상으로 일그러졌다. 한참 동안 다물려있던 녀석의 입술이 달싹였다.
“···미안하다.”
“사과는 됐습니다. 그보다 저 잠깐 좀 나갔다 올 건데, 따라오려면 빨리 옷 갈아입고 와요.”
“늦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를 세르펜스가 붙잡아 도로 앉혔다.
지지난 주말에 솔레르티아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모자나 뺏으며 소극적으로 굴던 것과는 다르게.
오늘의 세르펜스는 내 오른손목을 단단히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 지금 시간 따위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다. 정말로···, 미안하다.”
세르펜스의 얼굴이 죄책감으로 얼룩졌다. 내 손목을 붙잡은 녀석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손목에서 전해져 오는 그 떨림에 나까지 덩달아 불안해졌다.
“그자는 이미 떠났다.”
“떠났다니, 어디로요?”
“그대가 살던 세상으로.”
세르펜스의 대답에 앞서 그가 언급했던, ‘내가 본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이 연상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니까···. 죽었다고요?”
“그 육신은 본디 다른 세상에서 불려올 누군가를 위해 마련된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돌아갈 수 있는 별도의 수단이 준비되어 있었다고 하더군.”
녀석이 여전히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그 간절한 눈빛이 되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이 보였다.
“지금 그 말, 거짓말이죠?”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은가? 선우를 속이려고 작정했다면 돌아가는 방법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겠지.”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녀석의 말마따나 무언가를 숨겨야 한다면, 그건 내가 본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솔레르티아가 돌아간 방법이 아니라.
“뭐···, 그것도 그렇네요.”
“혹시 내가 그자를 죽이기라도 했을까 봐 그러는 건가?”
내 대답이 시원찮게 들렸는지, 세르펜스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언성이 절로 높아졌다.
“아니, 누가 그렇대요?! 대체 무슨 끔찍한 소릴 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런 끔찍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여 내 말을 믿지 못하고, 거짓말이냐 물은 것 아닌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한 거지?”
내가 열심히 부정했으나, 세르펜스의 표정은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세르펜스의 보호자로서의 감이 비상등을 깜박거려서···. 아이고, 이게 오래 써서 고장이 났나 봅니다! 어서 수리를 맡겨야지, 이것 참!”
“나는 이렇게나 솔직하게 전부 밝혔는데도 의심하는 건가? 그대의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지?”
“정말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진짜 내 속을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고···!”
황급히 수습해 보려 했으나 이미 늦었나 보다.
세르펜스는 아까부터 울상이긴 했지만, 한층 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한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나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이다.
‘나는 대체 무슨 의심을 한 거야?!’
녀석이 너무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모르게 ‘이 중 하나쯤은 거짓이 섞여 있지 않을까?’하고 의심했던 게 아닐까 한다.
객관식 문제를 푸는데 다섯 번 연속으로 같은 번호가 나왔을 때, 괜히 문제를 다시 읽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세르펜스가 말한 바와 같이, 녀석이 솔레르티아를 죽였다면 더더욱 숨기려 들었겠지. 혹은 숨기기 위해 죽였거나.
아무튼 그런 거라면 내가 어딜 다녀왔느냐고 물었을 당시, 기다려 달라는 부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거다.
밖에 나가서 혼자 몰래 군것질하고 왔다는 거짓말이면 모든 게 해결됐을 일이다.
그랬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를 격하게 칭찬해 주었을 거다. 어쩌면 공작저에 현수막을 내걸었을지도 모른다.
세르펜스도 이를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러지 않았다.
솔레르티아를 만나고 온 것도, 그녀가 작가라는 것도, 내가 본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그 어떤 것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단지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해서 질질 끌었을 뿐이지.’
다른 건 몰라도 돌아가는 방법은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건만.
세르펜스처럼 머리 좋은 녀석이 어째서 이런 문제에서는 매번 미련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억지로 힘든 것을 참아내며 대견하게 구는 건, 일종의 정신 학대라 들었는데···.’
나도 아직 멀었나 보다.
절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르펜스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내가 더 미안해졌다.
눈앞에 둔 세르펜스가 안쓰러워, 솔레르티아를 향한 분노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어이구, 우리 공작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울상이실까? 누가 울렸어요, 누가? 응?”
“···레세라투스 씨가 그랬다.”
내가 호들갑 떨며 말하자, 세르펜스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자질했다. 울적한 표정도 조금 나아졌다.
“거 엄청 나쁜 사람이네! 내가 아주 그냥 혼쭐을···!”
녀석의 표정이 살짝 밝아져서 나도 모르게 신이 나 떠들다가, 순간적으로 아차 했다.
나는 급하게 말을 멈추고 세르펜스의 표정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미간은 찌푸려지고 입술은 양옆으로 길어지며, ‘흐으···.’하는 소리가 잇새로 흘러나왔다.
지금 달래지 못하면, 세르펜스는 분명 울어버릴 거다. 이건 최소 한 시간짜리다.
무조건 달래야 한다.
“아,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소립니다! 지금 당장 만나러 가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나중에 제가 죽어서 저쪽 세계로 가게 되면···.”
“선우는···, 죽을 생각인 건가?”
“제가 죽으려 하지 않아도, 인간은 결국 언젠가 죽기 마련이고···.”
“결국 죽는 건가···?”
미치겠다.
하늘나라가 정말 하늘에 존재하는 비행 섬이라도 되는 줄 아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녀석이 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알았어요, 알았어! 앞으로 천년만년 함께 살 테니까, 뚝 그쳐요, 뚝!”
“정말로···?”
“그럼요, 그럼요!”
“말뿐이라도 고맙다.”
내 답변에 만족했는지 세르펜스가 찌푸렸던 인상을 풀고 비시시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면서도, ‘내가 이렇게 마음을 졸였는데 실실 웃다니!’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얄밉기도 하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는 말이 있는데, 한번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왼쪽 소맷자락으로 녀석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톡톡 찍어 닦아주며, 짐짓 심술궂은 말투로 물었다.
“이곳은 다른 세상이라 괜찮다.”
내 농담에 마음이 좀 놓였는지, 세르펜스가 아까부터 잡고 있던 내 손목을 놓아주며 답했다.
이런 얘기에도 당황하거나 울지 않고 능숙하게 넘기는 걸 보면, 적어도 청소년기쯤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떨 때는 마냥 어린애처럼 느껴져서, 이 녀석이 정확히 몇 살 정도 된 건지 모르겠다. 유지스 나이보다도 알 수 없다.
“아도르는 지금 몇 쨜?”
“이제 안정이 되었으니, 그런 장난으로 위로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소 생뚱맞은 질문에 세르펜스가 헛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위로할 생각으로 장난친 게 아니다.
“저는 진지하게 물은 겁니다. 아이의 성장발달 파악에 나이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아십니까?”
“그런 건가?”
“그런 겁니다!”
“으음···.”
태어난 햇수를 답한다면 바로 스물여섯이라는 답변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세르펜스는 침음까지 흘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이런 점이 얼마나 나를 흐뭇하게 하는지. 녀석은 알고나 있을까?
“나도 잘 모르겠군. 선우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신에게만은 지금처럼 어린아이로 남고 싶으니.”
명쾌한 답변을 내어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듯,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뱉어진 세르펜스의 말이 묘하게 익숙하다.
그의 말을 해석하자면···.
“아도르도 아직 아기예요?”
“아기까지는 아니다.”
“아기 맞는 것 같은데? ‘응애’해 볼래요?”
이번에는 장난으로 한 말이었다. [성검의 주인] 작가가 [성검의 주인]으로 벌어들인 수익 전액을 걸고서.
그렇게 맹세하고 났더니, 사실 아주 약간은 진심이 섞였던 것도 같다. 안 섞였으면 지금이라도 섞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 탓에 내 얼굴은 몹시 진중해졌고, 이런 나를 바라보는 세르펜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으, 으응···, 읏···. 차, 차라리 야옹을 하겠다!”
세르펜스가 ‘응애’를 시도하다가 실패 후, 타협안을 제시했다.
의문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제안이다.
“어째서 야옹은 되고, 응애는 안 돼요?”
“아기는···. ‘그 마법사’처럼 혀 짧은 소리를 내야 하잖은가.”
어째서 혀 짧은 소리와 응애는 부끄럽고, 야옹은 괜찮은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내 어처구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해 버렸다.
“그렇게 따지자면 고양이는 사람 말을 할 수 없어요, 세르펜스.”
“아···!”
깨달음을 얻은 세르펜스가 깊고 깊은, 심각한 고뇌에 빠졌다.
이게 대체 뭐라고 저렇게까지 진지해질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아이는 원래 어른이 이해 못 할 일로 심각해지고는 한다는 걸 알기에, 녀석이 답을 도출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기로 했다.
“···으, 으읏···. 으응······애···.”
결국 세르펜스는 치욕스럽다는 얼굴로 ‘응애’를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말 못 하는 고양이와 혀 짧은 소리라도 말할 수 있는 아기 중에서, 아기가 되길 선택한 것이다.
장족의···. 아니, 종족의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