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8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85화(385/1105)
385회
64. 공작님과 작가님 (8)
“왜 그런 사람을 얌전히 돌아가게 내버려 둔 겁니까?!”
그저 화가 치밀어서 되는대로 내뱉은 불평에 불과했다.
세르펜스를 탓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나는 아차 싶어 세르펜스의 안색을 살폈다.
녀석은 울 것처럼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내 눈을 마주 보며 신경 쓰지 말라는 듯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무리 욱해도 그렇지, 나를 위로해 주는 녀석에게 대체 무슨 망발을 지껄인 건지 모르겠다.
자신의 화를 아이에게 쏟아내다니. 보호자로서 정말 최악이다.
“그게, 세르펜스를 탓하려고 한 얘기가 아니라···.”
“알고 있다. 다만, 그자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그런 것뿐이다.”
“솔레르티아 씨가 또 무슨 말을 했길래 그런 표정을 지어요?”
“으, 으음···.”
이제까지 솔레르티아가 한 망언들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던 녀석이 갑자기 머뭇거렸다.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망설이며, 나의 눈치를 살살 살피고 입을 오물거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했길래 세르펜스가 이렇게까지 주저하는 걸까?
불안과 걱정이 발끝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 등줄기를 훑었다.
“세르펜스, 말해 봐요. 대체 무슨 얘길 듣고 온 겁니까?”
“나는···, 그자가 떠나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다.”
“그래서요?”
“하지만 그자는 자신이 ‘그 시기’에···, 내가 벌인 일들에 휘말려 죽었던 피해자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내게 신변을 정리하고 떠날 수 있도록 말미를 달라고 했다.”
지금의 세르펜스는 [성검의 주인] 속 타락펜스와는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그의 죄책감을 자극하기 위해 꺼낸 말이라는 게 너무나도 명백했다.
솔레르티아가 정말 피해자라면 그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을 저지른 건 지금의 세르펜스가 아니다.
기억에도 없고 한 적도 없는 일로 비난받은 세르펜스는 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안 그래도 죄악감으로 괴로워하는 애한테, 그딴 소리를 지껄여?! 세르펜스가 얼마나 마음이 여린 아이인데!’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다.
[성검의 주인]을 쓴 작가라면 그의 과거를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그러한 얘기를 들먹여, 도주하는 데 써먹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의 과거를 쓰면서 일말의 동정심조차 품지 못한 건가?
‘그래···.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동정심을 품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
강요할 수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솔레르티아가 한 짓은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피해자이니만큼 사과는 요구할 수 있지만, 그 죄책감을 이용하지는 말았어야 한다.
그 타락펜스와 이 세르펜스는 구분해야 한다.
악숭 세력에 들어간 타락펜스와 달리, 세르펜스는 악숭이의 계획을 무산시켜왔다.
일종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선택의 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고, 유지스와도 친구가 되었다.
윈스톤과 에드나를 구해냈고, 악마도 둘이나 처치했으며, 볼타 산맥의 결계를 재생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얘는 그냥 단것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일 뿐인데···.’
만약 눈앞에 있던 사람이 타락펜스였다 해도, 솔레르티아는 똑같이 말할 수 있었을까?
타락펜스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 꺼냈을 거면서, 만만해 보이는 세르펜스 앞에서는 그런 소리를 해댔다니.
실로 ‘강약약강’의 표본이다.
이쯤 되면 룩스메아가 솔레르티아를 다른 세상에 환생시킨 건, 세기의 악인인 그녀를 이 세상에서 방출하기 위함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그런 소리를 듣고도, 어떻게 혼자 참았어요? 진작 얘길 했으면 내가···!”
“선우가 이렇게 속상해할까 봐, 말할 수 없었다.”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녀석의 말에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기특펜스가 정신만 어린 게 아니라 몸도 작고 어렸다면, 얼싸안고 둥개둥개라도 해줬을 텐데.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으나,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운동에 매진하면, 언젠가 녀석을 들고 둥개둥개 해 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럴 줄 알았다. 또 내 걱정부터 하지.”
내가 아까 전 세르펜스의 눈물을 닦아줬던 것처럼. 세르펜스가 옷 소매로 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톡톡 가볍게 훔쳐내며 말했다.
이렇게 상냥한 아이에게 그런 못된 말을 한 솔레르티아를 용서할 수가 없다.
“하다못해 비비처럼 중요한 얘기라도 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딴 말만 늘어놓았다, 이거죠?”
“그자는 전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알아낸 것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나를 걱정하느라 시들시들해졌던 세르펜스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리고 칭찬해 달라는 듯 눈을 빛냈다.
그 모습이 마치 우울해하는 집사에게 힘든 일은 잊고, 자신을 귀여워해 주며 기분을 풀라는 듯 애교 부리는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혹은 퇴근 후 지쳐서 늘어져 있는 부모님께, 자신이 아껴 먹던 간식을 슬그머니 내미는 어린아이 같아 보이기도 했다.
서툴지만 따뜻한 위로였다.
“세르펜스, 우리 내일 간식으로 또 초콜릿 퐁듀 먹을까요? 마카롱이랑 마시멜로도 찍어 먹읍시다.”
“초콜릿에 마카롱과 마시멜로를 찍어 먹는다고···? 그, 그런 사치를 내가 누려도 되는 건가?”
“당연히 되고 말고요!”
내 확언에 세르펜스의 입이 헤벌레 벌어졌다.
나는 붙잡혀있던 손을 빼내어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준 뒤,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으라고 손짓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이는 그자가 자발적으로 말한 게 아니라, 내가 물어봐서 알아낸 정보다.”
세르펜스가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솔레르티아는 이기적인 나쁜 어른이고, 자신은 칭찬받아 마땅한 기특한 어린이라는 뜻이다.
“네, 네. 그 점 꼭 유의해서 들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얘기해보세요.”
내 답변에 세르펜스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자는 소설을 쓸 때 신으로부터 ‘자료’를 건네받았고, 그것을 정리하여 소설로 가다듬었을 뿐이라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성검의 주인]에는 휴마누스와 세르펜스의 속마음 같은 것도 언급되었고···.”
“그래. 당신이 그렇다고 말했었지.”
세르펜스가 저리 말한다는 건, 그 두 가지를 엮어 새로운 정보를 추론해 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 자료가 성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성검에 블랙박스 기능이 있어요?”
“그 ‘작가’는 자신이 건네받은 자료에서 자잘한 내용 쳐냈을 뿐, 중요한 정보는 전부 담아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우는 소설이 ‘선택적 작가 시점’이라 말했지. 3인칭 시점에서 쓰였으나, 생각이 직접 드러난 사람은 황태자와 나밖에 없다고 말이다.”
나는 세르펜스가 한 말을 천천히 되씹었다.
녀석의 말인즉, ‘성검의 주인’인 휴마누스가 보고 느낀 바를 성검을 통해 기록하였고. 그것을 정리한 게 [성검의 주인]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성검의 주인]에서는 세르펜스의 생각이라던가···. 뭐, 이건 솔레르티아 씨가 대충 지어서 쓴 거라 쳐요. 그런데 세르펜스의 과거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잘 생각해 봐라. ‘그 시기’의 나는 성검과 몇 번이고 ‘접촉’하였잖은가.”
“어···, 어?!”
정말로 세르펜스의 말대로였다. [성검의 주인] 속 세르펜스는 성검과 몇 번이나 직접 접촉했다.
그 검날에 베이고, 찔리며. 최후에는 심장이 꿰뚫리기까지 했다.
성검의 주인은 ‘신의 영혼 조각’인 성검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성검 또한 제 주인이 보고 느낀 것들을 신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주인공이 들고 휘두르는 무기인 줄 알았는데,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신에게 일러바치는 프락치였을 줄이야.
엄청난 반전이다.
어쩌면 [성검의 주인]의 진짜 주인공도 ‘주인’인 휴마누스가 아니라, ‘성검’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진정한 제목은 [성검의 주인(님 관찰 일지)]였다거나···.’
반쯤 의식의 흐름에 맡긴 생각이었는데, 너무 그럴듯해서 소름이 돋았다.
“그럼 세르펜스가 이전에 성검과 접촉했을 때 떠올랐던 기억은···. 성검에 남은 ‘기록’인 걸까요?”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세르펜스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 또한 그런 기대를 했었으나, 고민 끝에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는 뜻이리라.
“그런 거라면 성검과 접촉하고 있을 때, 실시간으로 전해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 그 ‘꿈’은 내가 잠든 틈을 타, 내부에서 비집고 튀어나온···.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세르펜스의 얼굴에 불안이 언뜻 드러났다.
“그놈의 시발검은 진짜, 시발점이 아닌 적이 없네!”
만일 내가 화병으로 드러눕게 된다면, 보나마나 성검 때문일 것이다.
세르펜스가 집은 초코칩 쿠키에 초코칩이 덜 들어가 있어도 성검 잘못이고, 유지스가 유자차를 마시다 사레가 들려도 성검 탓이며, 윈스톤에게 근손실이 생겨도 성검이 존재하는 까닭이요, 에드나가 마법 실험에 실패하는 것 또한 성검으로 인한 일이다.
아무튼 성검이 다 잘못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아낸 게 더 있어요?”
“무언가를 알아냈다기보다는, 단서를 얻었다고 봐야 하나?”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알쏭달쏭한 소리를 했다.
“뭔데 그래요?”
“그자가 소설의 끝부분은 자신이 임의로 각색한 것이라 말했다.”
“예? 임의로 뭘 어쨌다고요?”
“각색했다고 하였다.”
혹여나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되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그 말에 나는 급하게 어이를 찾았지만, 어이가 없었다. 어이는 내게 편지 한 장 남기지 않고 나를 떠나버렸다.
“나더러 제정신이 아니라더니, 본인이 더 제정신이 아니네!”
“동의한다. 그자는 제정신이 아닌 작자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르펜스가 맞장구를 쳤다.
아이 앞에서 남 욕하는 거 아니랬는데. 이러다 세르펜스가 뒷담화에 맛 들이는 게 아닐지, 심히 우려스럽다.
“왜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거지? 안구를 정화하는 중인가?”
“네? 안구 정화라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 온 겁니까?”
“내 얼굴이 선우의 안구 정화에 탁월한 기능을 한다고, 당신이 말하고 다닌다고 들었다.”
“그것도 솔레르티아 씨가 말한 겁니까?”
내 물음에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나를 떠난 어이는 오늘 내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그런 얘기는 대체 왜 한 거래요?”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이렇게 이상한 성격을 그동안 감쪽같이 속여왔다니. 그 완벽한 연기가 경악스럽다.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연기자는 세르펜스였는데, 그 순위가 뒤집힐 정도로 놀라웠다.
“정확히 어떤 부분을 고친 것인지 물었으나, 그자는 제약을 운운하며 답을 피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름대로 행복한 결말로 고쳐 쓴 거라고 말했다.”
“행복한 결말? 그게 행복한 결말이라고요?”
그 결말부에서 세르펜스가 죽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세르펜스 면전에다 대고 행복한 결말이란 소리를 해대다니. 사이코도 이런 사이코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휴마누스는 제국이 멸망함에 따라 국적도 뭣도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고, 그를 도와줄 수 있는 교단은 여전히 분열되어 서로를 헐뜯었다.
성직자인 리에나 또한 그 모습에 회의를 느껴야만 했다.
진작 에드나를 잃었던 아니마는 말할 것도 없으며, 푸로르 또한 연이은 전쟁으로 아버지와 동료 용병들을 잃었다.
유지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악숭이들의 계략으로 아르케 왕국 역사상 첫 반역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그녀는 가족을 잃었다.
“그게 어떻게 행복한 결말이야···.”
“모르겠군. 이해가 안 된다.”
“그딴 건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인공 일행 전원이 돌아갈 장소를 잃어버린 걸 두고, 그 누구도 행복한 결말이라 말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