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8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87화(387/1105)
387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2)
“공작의 말도 일리가 있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베일이 세르펜스의 말에 동의하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다.
고집부리지 않고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그래도 세르펜스에게는 너무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신분증을 받았다는 건 곧 바스툴 왕국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 조금쯤은 망설임을 보일 줄 알았다.
그런데 기껏 잡은 트집이 ‘어째서 일행 대표가 프라시더스 공작이 아닌 건가?’라니.
‘완전 중증이네, 중증이야.’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신분증을 테이블 위에 적당히 던져놓고 동봉해 준 설정집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곳에는 우리가 어째서 단체로 바스툴 왕국에 가게 되었는지, 그 까닭이 적혀 있었다.
여럿이 다녀도 이상하지 않은 변명거리를 준비해 두겠다던 약속을 이렇게 지킨 것이다.
근래 들어 악숭이들이 판을 치기 시작하여, 교단에서는 각 나라에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시작으로 17년 전 신전 추가 설립을 요청했던 바스툴 왕국이 거론되었다나?
그리고 바로 밑에 작은 글씨로 당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가 아주 구구절절이 쓰여 있었다.
요약하자면 바스툴 왕국의 귀족들이 본인 영지에 세워진 신전과 그곳의 신관들을 사사로이 부리려 하는 일이 왕왕 생겨서, 그 행태가 몹시 괘씸하여 거절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거 나더러 오해하지 말라고 쓴 거겠지만, 베일도 읽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어쩌면 베일도 같이 읽으라고 일부러 쓴 걸지도 모르겠다.
원래부터 바스툴 왕국은 싹수가 노랬고, 베일이 왕이 된 이후로 바뀌지 않으면 이단 소굴 취급 할 예정이다.
뭐, 그런 경고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신전의 대표로 발령될 주교인 나와 보필할 소수의 인원을 먼저 보내고, 나머지는 추후에 보낸다는 설정이었다.
또한 각 나라에 이단 심문관을 한 명 이상 주둔시키기로 결정되었는데, 바스툴 왕국에 파견된 이단 심문관은···.
“제가 이단 심문관이네요!”
유지스가 ‘마테리아 S. 사지타’라는 이름이 적힌 신분증을 집어 들어, 자신의 얼굴 옆에 갖다 댔다.
그 행동이 마치 ‘저랑 어울리나요?’라고 묻는 듯했다.
머릿속으로 ‘나는 악숭이들에겐 한없이 차갑고 매몰찬 이단 심문관. 하지만 선량한 대륙인들에겐 친절하겠지.’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단 심문관+유지스’는 ‘눈치 빠른+휴마누스’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므로 교단에서 유지스에게 이단 심문관이라는 설정을 부여했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유지스의 얼굴이 너무 튀니까, 가리라고 그런 거겠죠. 이단 심문관 옷에는 후드가 달렸잖아요.”
“아···.”
자존감이 바닥난 세르펜스와는 다르게 유지스는 본인의 미모가 뛰어남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내 말뜻을 곧장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유지스가 고개를 끄덕일 때, 내가 테이블 위에 던져 놓은 신분증을 유심히 살피던 에드나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온 씨, 스물일곱 살 맞죠?”
“네. 그런데 갑자기 나이는 왜요?”
“저보다 연하라고 알고 있었는데, 신분증에는 서른일곱 살이라고 적혀 있길래요.”
“예?!”
에드나의 말에 깜짝 놀라, 신분증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신분증에는 ‘에인젤 H. 셀레스트’라는 이름과 함께, ’37’이라는 숫자가 당당히 적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얼굴을 향했다.
세르펜스처럼 보들보들한 아기 피부는 아니어도 주름지거나 거칠지는 않았다.
“저···, 그렇게 노안입니까?”
본래의 나는 동안인 편이라, 제 나이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대학교 새내기 때는 어른스러워 보이길 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나이보다 늙어 보이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그것도 무려 열 살씩이나.
어려 보인다고 놀림당하는 게 낫지, 늙어 보인다고 동정받고 싶지는 않았다.
예전이라면 어차피 시온 몸이니까 하고 넘겼을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죽을 때까지 눌러앉을 몸뚱어리다.
이 몸은 진짜 시온도 인정한, 명실상부한 ‘내’ 몸이다.
‘교황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앞에서는 신의 사자니 천사의 영혼이니 뭐니 하며, 열심히 칭송했으면서. 뒤에서는 이런 식으로 매도할 줄이야.
신성 모독이다. 혹시 교황도 이단인가?
“원래 신성력 보유자들이 피부도 좋고, 젊어 보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겠죠. 고용주님의 백부님만 봐도 굉장한 동안이시잖아요?”
“하지만 열 살이나 늘린 건 너무하잖습니까? 최소 서른 살로 보인다는 뜻이잖아요!”
“저도 너무 심하다 싶어서 물어본 거였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어서요! 척 봐도 저보다 동생인데 서른일곱이라고 적혀 있길래, 엄청난 동안이신데 제가 잘못 알고 실수했던 게 아닌가 해서요. 예전에 제가 ‘누나’ 운운하며 말한 적도 있잖아요? 그게 마음에 걸려서요.”
그렇게 말하는 에드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았고, 표정과 손짓이 과장되었다. 명백하게 삐진 아이를 어르는 말투와 행동이다.
세르펜스에게 써먹을 땐 몰랐는데, 내가 당하니 기분이 묘하다.
“주교라는 직책상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닐까요? 최연소 주교인 리에나 님께서 올해 스물다섯이시니, 그 정도 나이는 돼야 한다고 생각하신 거겠죠.”
에드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신분증에 적힌 나이를 보며 의아해한 걸 되짚어 보면, 신용이 다소 떨어졌다.
“공작님. 신성력 보유자가 동안인 게 신성력 덕분이라면, 저도 신성력으로 관리를 받으면 동안이 될 수 있을까요?”
“시온 경은 신성력을 남용하는 걸 싫어하지 않으셨습니까?”
반쯤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세르펜스가 진지하게 되물었다.
만약 내가 세르펜스에게 피부 관리를 부탁한다면, 신성력뿐 아니라 피부 재생에 효과가 있는 화장품까지 동원하여 마사지라도 해줄 기세다.
전문가를 초빙하지 않고 녀석이 직접 하는 이유는 마사지사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상 속에서도 세르펜스는 내 신체를 남에게 맡기지 못했다.
‘아니, 이게 아니잖아! 의식의 흐름이 왜 이래?!’
나는 당황했다.
세르펜스의 말은 누가 들어도, 내가 원한다면 신성력을 마구 남발해 주겠다는 뜻으로 들렸으니까.
있는 듯 없는 듯 배경처럼 존재하는 윈스톤까진 허용 범위지만, 이 자리에는 에드나와 베일도 함께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에드나는 일루미나티의 멤버가 되었으니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베일은 아니다.
세르펜스는 베일을 자신이 이용하지 않으면 악숭이에게 이용당하여, 대륙에 큰 피해를 끼칠 존재라 여겼다.
아무리 대외펜스가 자신의 사람을 아끼는 참된 가주라지만 정도라는 게 있다. 보좌관의 피부 미용을 위해 신성력을 남발하는 건 조금도 참되지 않았다.
그런 효도펜스의 발언에 에드나와 베일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윈스톤은 오늘도 바위처럼 굳건히 앉아, 눈동자만 데굴 굴려 불안한 시선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멈춰 버린 그때.
갑자기 유지스가 꺄르르 웃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세르펜스는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한다니까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와, 다들 당황한 것 좀 봐요!”
나는 얼른 유지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역시 이럴 때 믿을 사람은 유지스 뿐이다. 순발력이면 순발력, 눈치면 눈치. 모든 걸 다 갖췄다.
상황 판단을 끝낸 세르펜스가 겸연쩍이 웃으며 수줍게 입을 열었다.
“으음, 죄송합니다. 가벼운 농담은 친분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들어서, 노력한다고 노력한 거였는데···. 시온 경처럼 재밌는 사람이 되기엔 제가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공작께서 저런 사람처럼 될 필요는 없습니다! 농담 같은 걸 하지 않아도, 공작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습니다!”
세르펜스의 말에 베일이 펄쩍 뛸 듯이 놀라 소리쳤다. 마음이 바른 사람이라 그런지, 말도 바르게 한다.
백 번 천 번 옳은 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공작님은 얼굴만 봐도 재밌고, 언제나 흥미진진하죠!”
나는 베일의 말에 호응해 주었을 뿐인데, 그가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영문을 모르겠다.
“왜 그렇게 보세요?”
“아까는 도움받는 처지에 불만을 품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며 한소리 할 땐 언제고, 경은 고작 나이 때문에 이런 상황을 만드는 건가?”
“네? 도움을 받는 건 제가 아니라 왕자 저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불만을 품어도 괜찮습니다.”
나는 이 대륙의 평화를 위해 룩스메아에게 불려와 무료 봉사 중이다.
세르펜스에게 월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건 보좌관 업무에 따른 보상이자 세르펜스 본인의 양육비다.
룩스메아가 나에게 준 건 아니다.
그러니 교단이 아니라, 룩스메아의 면전에 대고 불평을 늘어놓아도 나는 정당하다. 이건 룩스메아도 인정해 줘야 한다.
‘세르펜스가 안쓰럽기도 하고 키우는 보람이 있는 아이라서, 내가 참고 협조하는 거지···.’
만약 휴마누스를 키우라고 들이밀었으면 어림도 없다.
매일같이 ‘황태자님, 눈치채 주세요!’를 외치다가, 결국 울화통이 터져서 제 명에 못 살고 본래 세상으로 귀환해 버렸을 거다.
‘하지만 베일은 그런 사정을 하나도 모르니까, 어쩔 수 없나?’
더군다나 베일은 고작 스무 살밖에 안 되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에게 내가 이상한 사상을 주입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 적의가 생기는 것도 이해한다.
오해에서 비롯된 작은 실수다.
그래서 그런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저 모습조차 맹랑해 보일 뿐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깽깽 짖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당연하게도 그 범은 내가 아닌 세르펜스다.
세르펜스가 나를 노려보는 베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더없이 잔잔했지만, 그의 녹색 눈동자를 본 순간 내가 살던 세계에서 유명한 희곡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질투는 초록 눈을 가진 괴물이라 했던가?’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세르펜스는 베일을 경쟁자로 판단하여 질투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베일은 내게 적의를 불태우고 있으니, 도리어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현재의 세르펜스는 어엿한 집냥이지만, 한때는 유기냥이었다. 집사의 관심을 뺏기는 것만큼 두려운 것도 없겠지.
그런 와중에 어디서 굴러 들어온 하룻강아지가 자신의 영역에 침범했으니. 고양님께서 뿔난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대한 오류가 세 개나 존재한다.
베일은 어디까지나 임시 보호된 아이라는 것이 첫 번째.
쫄쫄 굶은 채로 골목길을 전전하는 베일을 발견한 건, 내가 아닌 세르펜스라는 사실이 두 번째.
그리고 정작 베일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게, 마지막 세 번째다. 그는 세르펜스 앞에서만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 댔다.
즉, 세르펜스는 경계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얘가 오늘따라 대체 왜 이래?’
한 번 이상하다고 생각하자, 간식 시간에 무심코 지나쳤던 녀석의 말이 우다다 쫓아와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테라룸 왕국에서 형이라 불러달라고 말했을 땐 극구 거부했으면서.
훨씬 더 강한 거부감을 느낄 ‘아버지’라는 호칭에는 어째서 노력해 보겠다고 말했던 것인지.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대체 언제부터 이상해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