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39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398화(398/1105)
398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13)
그때 세르펜스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올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휘둥그레진 눈 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워낙 짧은 순간이기도 했고, 너무 많은 감정이 뒤섞인 탓에 그 내면을 면밀히 헤아릴 수 없었다.
깜박, 세르펜스의 눈이 감겼다가 다시 뜨였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배처럼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감정이 가라앉고, 남은 것은 고요한 안도감이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과 웃음기 스며든 목소리에 안심했나 보다.
세르펜스가 나와 눈을 또렷이 맞추고, 다시금 눈을 깜박였다. 자신을 이전처럼 대해주고 웃어준 것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리라.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재빨리 표정을 추스르고 흘러내린 머리칼도 정돈했다.
‘불과 일이 분 전만 해도 얼굴을 붉히며 민망해했었는데···.’
한순간에 무표정으로 바뀌어 버리니 정색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조금은 곤란해할 줄 알았거늘 도리어 평온을 되찾을 줄이야. 그런 녀석의 반응에 보는 내가 당황스러워졌다.
단것에 환장한 사람이라는 평은 부끄러워도, 보좌관에게 쓰담 받는 공작님이 되는 건 부끄럽지 않은가 보다.
‘···아니, 그럴 리는 없나?’
녀석은 그저 불안했던 거다.
그래서 나의 웃음이. 그리고 내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는 것이. 자신의 체면 ‘따위’는 가볍게 잊을 수 있을 만큼 기뻤던 거겠지.
‘타인의 평가에 목을 매다시피 집착하는 주제에.’
아직도 대외펜스 설정을 버리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성검의 주인]에서 녀석이 타락했던 건 말할 것도 없다.
조금 전, 단것을 지나치게 탐하다 지적받아 부끄러워한 것도 그 연장일 테다.
그런데 한순간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웃기지 말라고 해라. 차라리 유지스가 유자를 끊었다는 말을 믿겠다.
다른 상황이었으면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 태도에 박수갈채라도 보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얘를 진짜 어쩌면 좋을까?’
예전이라면 어린애 눈에는 원래 부모만 비치는 법이라며 웃어넘겼을 텐데.
지금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걸까?
“···왜 그렇게 빤히 보고 계십니까?”
세르펜스가 쿠키 하나를 집어 들며 내게 질문했다.
녀석의 표정은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포장지를 부스럭거리는 손끝에 불안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조금 전만 해도 실실 웃던 내 얼굴이 또다시 굳어 버리자, 걱정스러움이 밀려든 거다.
“먹기 전에 형, 누나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죠. 그리고 간식을 준비한 저에게도요.”
나는 일부러 세르펜스가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아서 불편했다는 투로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세르펜스가 대외펜스를 연기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설정 뒤에 본심을 숨기니 묘한 안정감이 생겼다. 이러면 안 되는데.
빨리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초조함이 되어 나를 압박해 왔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그만···.”
윈스톤의 인사를 대충 받아 줬다가 혼이 났던 어젯밤의 경험 때문일까?
세르펜스가 신관펜스 설정도 잊고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연기가 서툴다는 대외펜스 설정이 남아있으니, 설정 미스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흠, 흠! 감사합니다. 오르덴 님, 레반다 님. 그리고 에인젤 주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세르펜스가 민망하다는 듯이 작게 헛기침 후, 감사를 전했다. 특히 쿠키 제공자인 나에게는 따로 예의를 갖추어 고개까지 숙여 보였다.
윈스톤과 에드나는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을 뿐이다. 부담스러워해야 할 이유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인사 잘하네! 좋아요, 이건 상입니다.”
나는 짐짓 선심을 쓰는 척 세르펜스의 찻잔에 각설탕과 우유를 넣었다.
구태여 세르펜스의 의사는 묻지 않았다.
남의 설렁탕에 허락 없이 깍두기 국물을 들이붓는 만행쯤은 서슴지 않고 저질러야, 어디 가서 꼰대라고 자기소개할 수 있다.
“홍차는 그렇게 마셔야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르펜스가 잊지 않고 내게 감사 인사를 한 후. 포장도 채 뜯지 못한 쿠키를 잠시 내려놓고, 잔을 들어 홍차였던 밀크티를 마셨다.
그리고 찻잔이 소리 없이 잔 받침 위에 놓였다. 양이 꽤 많이 줄어든 거로 보아,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주교님께서는 그냥 드시는 겁니까?”
“네. 쿠키도 같이 먹을 건데, 입안이 텁텁해지는 게 싫어서요.”
“······.”
“막내 신관님께서는 상관없으시죠? 마시멜로를 넣은 핫초코에 스모어 쿠키를 곁들여 먹는 분이시니까.”
“으, 으음···.”
세르펜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 내가 자신에게 심술을 부리는 건지, 친절을 베풀고 있는 건지. 헷갈려서 혼란스러워하는 거다.
“어허! 제가 어젯밤에 ‘으음’ 하지 말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하, 하셨습니다.”
“막내 신관님은 도도하고 까칠한 성격인데, 그렇게 우물쭈물 거리면 어떡합니까? 그거 설정 미스입니다, 설정 미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세르펜스가 당혹스러움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며 답했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잘 안 되나 보다.
“아까도 그래요. 단 음식을 좋아하는 게 뭐가 어때서 부끄러워합니까? 딸기에 초콜릿을 잔뜩 묻히든, 초콜릿에 딸기를 담가 먹든. 그게 부끄러워할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으···흐, 흠!”
내 잔소리에, 반사적으로 침음을 흘리려던 세르펜스가 급하게 헛기침으로 무마했다.
“룩스메아 교단의 경전에 ‘단것을 탐하지 마라.’라는 대목이라도 있습디까?”
“없습니다.”
“그럼 문제없잖아요.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겠지마는 설령 있다 하더라도! 태연하고 당당하게! 남이야 뭘 좋아하든 말든, 신경 끄라고 하세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세르펜스가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쑥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 앞에서 당당히 간식을 먹지 못해 힘들어지는 건, 내가 아닌 세르펜스다.
얘가 고치고 싶지 않아서 안 고치는 게 아닐 텐데. 답답한 마음에 애를 너무 몰아세워 버렸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저자세입니까? 도도하고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네깟 놈이 감히 나를 가르쳐?’라는 표정을 지어야죠.”
나는 우리 아이가 당당하게 살아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세르펜스는 오만함 대신 억울함을 표정에 담았다.
“하지만 에인젤 주교님은···. 주교님이시잖습니까?”
“맞다, 그랬네.”
직장 상사에게 문책을 당했으니. 절로 겸손한 자세를 취할 만도 하다.
심지어 예전에 같은 문제로 지적을 받았다가, 못 고쳐서 다시 지적받은 셈이다. 거기다 대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따질 수는 없겠지.
인정한다. 내 생각이 짧았다.
“잠시 깜박했습니다. 막내 신관님께서 기운 없어 하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영 편치 않아서요.”
“아···, 열심히 기운 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르펜스가 내가 말한 대로 턱 끝을 치켜들며 오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훅 치고 들어오는 녀석의 재롱에, 나는 그만 푸핫 웃고야 말았다.
‘젠장, 웃으면 지는 건데!’
정말 장렬하게 패배해 버리고 말았다.
기운을 내 보겠다 말하면서, 순둥이 같은 얼굴로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진짜 반칙 아닌가?
이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는가 보다.
나는 여전히 녀석이 걱정스러웠다. 앞으로도 세르펜스가 말썽을 일으키면 속상하고, 힘들어할 거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기분이 꽤 좋아졌다. 이 기분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자 눈에 많은 것이 들어왔다.
무언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유지스라던가, 어딘가 초탈한 듯한 윈스톤의 얼굴이라던가.
조마조마해 하는 에드나와 기막혀하는 베일의 모습이 이제서야 보였다.
정신적으로 몰리면 시야가 좁아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보긴 했는데, 그걸 몸소 체감하게 될 줄이야.
살다 보니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본다.
“다들 안 먹고 뭐 해요? 아이고, 차 다 식었네!”
“제가 마법으로 다시 데울까요?”
내가 호들갑 떨며 말하자, 에드나가 옷 소매에서 작게 줄여놓은 스태프를 꺼내 들며 말했다.
그 호의는 고마웠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관님. 신관은 마법 못 써요. 그리고 성화(聖火)는 물을 데우는 데 적합하지 않죠.”
“설정에서 벗어난 행동은 하면 안 되는데, 설정을 운운하는 건 괜찮아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설정을 바로 잡느라 그런 거죠. 앞으로는 설정의 ‘설’ 자도 꺼내면 안 됩니다.”
“···네.”
에드나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스태프를 도로 집어넣었다.
한때는 나 역시 그녀처럼 설정을 짜는 세르펜스와 유지스를 보면서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런 만큼 에드나의 반응도 이해한다.
나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고, 에드나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고는 자신 몫의 쿠키 하나를 까서 먹었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테이블 위로 향했다. 세르펜스의 앞에 잔뜩 쌓인 쿠키들이 보였다.
녀석은 쿠키에 손도 대지 않은 채, 다 식은 밀크티만 홀짝거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먹어야 먹을 생각인가 보다.
‘어르신이 먼저 숟가락 들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야 하는 유교 사상이 이 세계에 침투하기라도 한 건가?’
나는 속으로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농담을 던지며 쿠키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포장지를 벗긴 후 내용물을 입에 넣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바닐라 향이 감도는 쿠키가 파삭, 부서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샌드 된 초콜릿과 함께 혀 위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확실히 고급진 맛이다. 이 정도면 개별 포장 할 만했다.
만족해하는 내 표정을 본 세르펜스가 드디어 쿠키를 하나 먹었다.
얼굴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녀석이 맛을 음미하고 있다는 건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조금씩 움직이는 턱관절과 오물거리는 입술. 그리고 깜박거리는 눈꺼풀 외의 모든 움직임이 정지해 있었으니까.
“이거 맛있네요! 처음 보는 쿠키인데 이름이 뭐죠?”
유지스도 쿠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벌써 세 개째 포장을 벗기며 내게 질문했다.
순간 그녀에게 이 쿠키의 이름을 말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이 쿠키의 이름을 알게 된다면, ‘유자 랑그 드 샤’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이미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법도 해서, 그냥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파는 사람이 ‘랑그 드 샤’라던데요?”
“이게 랑그 드 샤라고요? 제가 예전에 먹어봤던 거랑은 많이 다르게 생겼네요. 그건 얇고 길쭉해서, 진짜로 고양이 혀처럼···.”
유지스가 말끝을 흐리며 세르펜스의 입을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을 받은 세르펜스는 조용히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세르펜스는 정신적 고양이일 뿐, 신체까지 고양이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세르펜스에게 혀를 내보여 달라고 부탁해 봤자, 랑그 드 샤의 원형을 떠올릴 수는 없다.
유지스도 그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는지 세르펜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쿠키의 끄트머리를 베어 물었다.
다시 돌아올 침묵이 싫어, 나는 쿠키 포장을 벗겨내며 입을 열었다.
“원래 음식이라는 게···. 아니, 꼭 음식이 아니어도 뭐든 간에. 시대나 유행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죠.”
“변화가 이로울 때도 있지만, 본래의 가치가 퇴색될 때도 있으니 늘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었는데, 세르펜스가 올렸던 손을 내리며 진지하게 답했다.
언젠가 내게 변하지 말아달라 간청하던 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의 말이 자책처럼 들렸다.
어쩌면 자신이 내게 악영향을 끼쳐서, 내가 안 좋은 방향으로 변해간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싫어졌어요?”
나는 방금 포장을 벗겨낸 쿠키를 세르펜스에게 들이밀며 물었다.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겁니다.”
세르펜스가 쿠키를 받아들며 답변했다. 녀석의 답은 분명 ‘나’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쿠키를 받아 든 순간, 평생 단것을 좋아하겠다는 선언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