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0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01화(401/1105)
401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16)
“어제 공작님을 따로 불러내려고 했던 게, 혹시 아프다는 얘기를 하려던 거였습니까?”
“······.”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음에도, 베일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비참하다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나와는 얘기하기도 싫은 건지. 나를 멀리하라고 말하려 했던 탓에 찔려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싫어하는 내 앞에서 꼴불견 같은 모습을 보여, 자존심이 상해서 저러는 건지.
“차라리 아까처럼 짜증이라도 내던가···.”
입을 열지 않으니 도통 알 수가 없다.
나는 쯧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얘기는 이따 하기로 하고, 먼저 저놈의 쇳덩이부터 치웁시다. 윈스톤, 부탁할게요.”
내가 가까이 가면 학을 뗄 것이 분명했기에. 그리고 베일의 반응이 못마땅한 것도 없잖아 있어서, 윈스톤에게 부탁했다.
베일에겐 나나 윈스톤이나 껄끄럽긴 매한가지일 거다.
하지만 윈스톤의 과거에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니, 적어도 뿌리치진 않으리라.
“알겠소.”
윈스톤이 군말 없이 내 부탁을 수락했다. 그의 거대한 덩치가 내 옆을 지나쳤고, 곧이어 쇠붙이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팩하니 돌렸던 고개를 슬그머니 제자리로 되돌렸다.
윈스톤이 베일을 앉혀놓고 갑옷을 연결한 버클을 푸는 모습이 보였다. 둘 다 표정이 썩 좋지 않다.
세르펜스에게 부탁했어도 됐을 일이나, 설정극도 중단한 마당에 시켜 먹기 뭣한 것도 있고···.
‘이 자식, 알고 있었잖아?’
베일이 시종들을 물리고, 방에 딸려있는 화장실에서 몰래 구토를 했다 치자. 아니, 분명 그랬겠지.
그렇다고 해도 세르펜스가 몰랐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에일리히가 베일을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모처럼 세르펜스와 대화할 구실이 생겼으니, 최대한 세세하게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늘어놓았을 거다.
‘알고 있었으면 얘기 좀 해 주지!’
내가 세르펜스를 노려보자, 녀석이 눈을 내리깔며 시선을 피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아마도’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확실하게.
‘일부러 내버려둔 거겠지.’
몸과 마음은 따로따로가 아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그리고 마음이 강한 사람보다 약한 사람을 쥐락펴락하기 쉽다.
그러한 사실을 세르펜스는 잘 알고 있었다.
‘출발 전에 대화를 나눠보길 잘했네···.’
이걸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젯밤에라도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떠올랐다가도,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베일이 아까 과민하게 반응했던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알레르기 있는 음식을 억지로 먹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에게 억지로 우유를 마시도록 강요한 정도는 된다.
그렇지 않아도 싫은 내가 더 싫어지고, 부아가 치밀만 했다.
‘그냥 입맛이 없는 줄로만 알았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베일이 자신의 몸 상태를 숨긴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가서, 화를 낼 수도 없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싶은 건 본능이다. 더군다나 그는 나를 싫어한다. 그래서 더더욱 숨기려 했던 걸 테다.
자유분방한 휴마누스와는 다르게 베일은 모범생 타입이다. 그것도 앞뒤가 꽉 막히고, ‘올바른 것’에 집착하다시피 하는.
격식과 예의를 지키지 않는 건 예삿일이요, 자신의 친동생을 집사로 들여앉혔다는 오해까지 생겼으니.
베일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혐오하는 부류로 보였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베일의 몸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쇳덩이들이 전부 떨어져 나갔다.
그 안에는 두툼한 패드를 덕지덕지 덧댄 상태였다. 위협을 느낀 동물이 강해 보이려고 털을 부풀린 모습을 연상케 했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네.”
“그러십시오.”
베일의 말에 윈스톤이 무덤덤하게 대답하며 갑옷을 챙겨 들고 물러났다.
몸집을 부풀렸던 패드까지 떨어져 나가자, 앙상하고 연약한 몸뚱어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픈 줄도 모르고 억지로 먹이려 들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안 한 저하의 잘못도 있어요. 몸 상태를 알았더라면 억지로 권하지 않았을 겁니다.”
말이 뾰족하게 나갔다.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나도 기분이 상했다.
베일도 아픈 것을 숨기느라 힘들었을 테지만, 그것을 숨기는 바람에 나는 나쁜 사람이 되었다.
비단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유지스와 에드나도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고 곤란해하고 있다.
만약 베일이 이런 상황을 노리고 일부러 숨긴 거라면. 제 몸을 갉아먹으면서까지 목표를 달성해내는 그 의지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미련한 거다.
“그건···.”
베일이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으나, 그게 끝이었다.
할 말이 없는 건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목구멍에서 막힌 건지. 그건 베일 혼자만 아는 일이다.
“이거 하나만 물읍시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증상이 생긴 시점을 말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베일은 입가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꽉 다문 입 근육에 힘을 더하며, 고개를 떨궜다.
마치 쥐구멍이라도 찾는 듯한 그 모습이다.
어째서 그는 자신이 아픈 것을 부끄러워하는 걸까.
어찌하여 자신의 몸 상태를 세르펜스에게까지 숨기려 했던 걸까.
“···보기라도 제시해 드려야 할까요?”
나는 베일의 앞에 다가가, 쪼그려 앉아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고개를 돌려봤자 내가 따라붙을 것임을 직감했는지, 베일은 눈동자만 굴려 시선을 피했다.
“왕궁에서 도망쳐 나왔을 때부터 그런 겁니까? 아니면 공작저에 도착한 직후? 그것도 아니면 알타르 이단 심문관님을 만난 이후로?”
마지막 질문을 했을 때. 베일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그는 미련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겁쟁이였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누구나 그와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질문의 답을 확인했으니 계속 쭈그려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
나는 무릎을 펴고 일어나서 베일을 내려다보며 입을 뗐다.
“저하는 공작님을 존경하죠? 언제나 정의롭고, 약자를 수호하며, 악과 싸우는 걸 주저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자상할 땐 또 어찌나 자상한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아픈 곳을 살살 보듬어주는데! 이야~,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까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싶죠? 이상적이라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이보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오잖아요?”
깐족거리는 내 말투에 화가 났는지 베일이 울컥한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기대했던 반응이다.
나는 보란 듯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베일의 얼굴은 사정없이 구겨졌다.
“프라시더스 공작은 경의 상사네! 그런 가벼운 말투로 함부로 말하지 말게나!”
“왜요? 제가 공작님을 모욕하기라도 한 것 같아요? 거, 이상한 일이네요? 먼저 공작님을 모욕한 건 저하 아닙니까?”
“대체 무슨 망언을!”
“그렇잖아요? 공작님을 쩨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아픈 것도 말 안 하고 혼자 끙끙 앓은 거 아닙니까?”
“크윽···.”
베일이 허를 찔린 표정으로 낮은 신음을 흘렸다.
분해 죽겠다는 얼굴이었으나,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그런 게···, 아니네.”
“아니라면 말해 보시죠.”
“그걸 왜 자네에게 말해야 하지?”
“왜 하기 싫은데요? 저처럼 생각 없이 사는 놈은 이해 못 할, 너무 고차원적인 고민이라서?”
나는 다시 한 번 베일을 도발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더 미안하네. 그런 사과를 주고받으며 하하 호호거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렇다면 차라리 속을 박박 긁는 편이 대화를 이어나가기 쉽다.
“하도 위아래 없이 굴길래 제 분수도 모르는 놈인 줄 알았더니. 주제 파악은 잘도 하는군.”
“지금 공작님더러 사람 보는 눈 없다고 돌려서 비꼬는 거죠? 어우~, 말을 너무 심하게 하신다. 이러다 우리 공작님 마음이 아야 하겠습니다!”
“뭐, 뭣···!”
베일의 얼굴이 분노로 차올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걸 보고 ‘와! 혈색이 돌아왔다!’ 하고 좋아할 만큼 낙천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워, 워! 일단 진정하세요. 심호흡, 심호흡!”
“크으읏···!”
심호흡 좀 하라니까, 되려 남은 숨을 쥐어짜고 앉았다.
정말이지 말을 오지게도 안 듣는다.
“내쉬기 전에 먼저 들이쉬어야죠!”
“저분을 진정시키고 싶은 거라면 시온 씨가 닥···, 아니, 다물어야 할 것 같은데요?”
에드나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험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래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나는 베일이 진정할 수 있도록 입 다물고 조용히 기다렸다. 효과가 있었는지 베일이 멈췄던 호흡을 이어 나갔다.
그가 씩씩거리며 핏발 선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보지만 않았어도 안도했을 텐데.
“아무튼 그···, 뭣이냐···. 왕위에 오른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겁도 나고. 그 스트레스로 음식에 거부 반응이 생긴 거라서 숨기신 거잖아요.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서.”
“어···, 떻게···?”
분노로 점칠 됐던 베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저택에 온 첫날 공작님이 신성력으로 치료해 드렸잖아요. 게다가 그 전에도 입맛이 없어서 억지로 먹긴 했지만 소화는 됐는데. 어느 기점으로 갑자기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면 원인이야 뻔하죠.”
문제가 있다면 원인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어쩌면 처음 한 번은 다른 이유로. 단발적으로 위가 놀라서 얹힌 것뿐일지도 모른다.
이단 심문관을 만나서, 자신의 발언 하나하나에 사실 여부를 따져 묻는 그 행동에 긴장해서.
수많은 사람의. 그리고 한 국가의 미래가 자신의 선택에 걸렸다는 부담감도 있었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분명히 다른 이유도 복잡하게 얽혔을 거다.
하지만 그런 걸 침착하게 고민할 여유가 없어서. 자신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유가 ‘왕이 되어 책임을 짊어지는 게 두려워서’라고 단정 지었고.
그런 비겁한 자신이 끔찍하게 싫어서, 정말로 음식에 거부반응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어쨌거나 확실한 건, 베일이 계속 음식을 토한 건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과 기저에 깔린 감정이 자기혐오라는 것 정도다.
“뭐, 그래요. 이해가 안 가긴 하네요. 저라면 이유는 말 못해도, 속이 안 좋으니까 메뉴 좀 바꿔 달라는 말 정도는 했을 텐데. 미련하게 그걸 꾸역꾸역 먹으면 어떡합니까?”
“···무슨 속셈이지?”
내가 답답해 죽겠다는 티를 팍팍 내며 말하자, 베일이 미심쩍다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것 절반만큼만 신하를 의심했어도, [성검의 주인]에서 그런 최후는 맞이하지 않았을 텐데.
“댁을 잘 먹이고 살찌워서, 건강하게 만들려는 속셈입니다! 답이 됐습니까?!”
나는 울컥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