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0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05화(405/1105)
405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20)
“대체 무슨 얘기를 들으셨길래···.”
“또, 또 그러신다! 에인젤 주교님께서는 비밀리에 대단한 임무들을 수행해 오셨잖아요?”
얼떨떨함이 가득 담긴 내 혼잣말에도 눈앞의 신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후덕한 인상과 다소 호들갑스러운 말투 때문인지, 인정 많은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워낙에 대외비적인 일인지라 주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 ‘모르는 사람’에 이 신관님도 포함되어 있을 거다.
왜냐하면 에인젤 주교는 없는 사람이니까.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도 저런 소릴 한다는 건, 에인젤 주교가 허구 속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봐야 하나?’
세르펜스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신성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눈앞의 신관은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한 연막 장치가 아닐까 한다.
문득, 이 신관이 얼마나 알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내가 신의 사자라는 걸, 교황이 여기저기 떠들어 댔을 리는 없고.’
하물며 포르마 후작령의 신전은 최종 목적지도 아니다. 그저 하룻밤 쉬었다 가는 경유지일 뿐이다.
그러니 악숭이들의 음모를 무산시키고자, 세르펜스가 극비리에 움직이는 중이라고만 알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짐작만 할 따름이다.
“아차! 평소 존경하던 분을 만나 뵈었더니, 저도 모르게 말이 많아져 버렸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지요.”
대체 날 언제부터 알았다고 ‘평소 존경하던’ 같은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직 자기소개도 하지 않은 신관이 벙글벙글 웃으며 따라오라는 듯 먼저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 오는 동안 앞장서 걸었던 세르펜스가 살짝 물러나며, 나와 유지스 사이로 끼어들어 왔다.
그 동작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워, 하마터면 눈치채지 못할 뻔했다.
“소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클라라 G. 블라체라고 합니다.”
우리를 안내하던 신관이 살짝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며, 뒤늦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 타이밍이 너무 뜬금없어서 뭐라 답변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느냐고 질문하기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신관들뿐이라면 모를까. 신전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람 중에는 신관이 아닌 일반인들도 꽤 있었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보니, 그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기도라도 하러 온 걸 테다.
“요즘 성 밖에 도적들이 많이 나타난다면서요?”
“네. 이런 시기를 노리다니, 정말 악질인 자들입니다. 성기사님들이 꾸준히 정찰을 나가고 있긴 한데, 넓은 지역은 다 돌아다니기는 힘들어서···. 이것 참, 변명하는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대뜸 던져진 질문에도 클라라는 곧바로 답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골머리를 앓던 차에 화두가 던져지니, 자신도 모르게 한탄이 쏟아진 모양이다.
“탓하려던 게 아닙니다. 오는 길에 광장 근처를 지나쳤는데, 예전에 방문했을 때랑 광경이 사뭇 달라서, 안타까운 마음에 튀어나온 말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거야, 저도 알고 있어요.”
이곳 신전이 나름 규모가 큰 편이긴 해도 성기사의 숫자는 한계가 있다.
성기사가 되려면 태어날 때부터 신성력을 지녀야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무력까지 갖춰야 한다.
거기에 신전을 지켜야 할 인원까지 생각하면, 외부로 파견할 수 있는 인원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다.
‘신성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많아지면, 룩스메아나 신전 관계자들도 좋지 않나? 그런데 왜 혼인을 금지한 거지?’
예전부터 의문스럽긴 했지만, 요즘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며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새삼스레 이상하게 느껴졌다.
세르펜스가 정권과 신권을 분리하기 위한 관습일 가능성이 크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인력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런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걷고 있는데, 클라라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주교님께 안내해 드릴까요?”
“예? 저는 여기 있는데요?”
“에인젤 주교님이 아니라, 이 신전의 책임자이신 류드밀라 주교님을 말한 거였습니다.”
어쩐지 클라라의 말투가 신전 앞에서 마주쳤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차분해졌다.
갑자기 돌변한 태도에 당황하긴 했지만, 지금 모습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아까 보았던 호들갑스러운 모습은 과장된 연기였던 모양이다.
“아뇨, 괜찮아요. 내일 날이 밝자마자 떠날 예정이기도 하고, 주교님께서도 바쁘실 텐데 시간을 뺏을 수야 없죠.”
그냥 내가 불편하고 딱히 나눌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방은 이쪽 세 개를 나눠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2인실이긴 하나, 욕실이 붙어있는 방이 얼마 없어서···.”
클라라가 송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터럭만큼도 유감이 없다.
공용 욕실을 이용해야 하는 1인실보다, 욕실 딸린 2인실이 백배 천배 낫다.
또한 나는 원래 공작저에서도 2인실 같은 1인실을 사용해 왔다. 원래 개인이 쓰도록 준비된 방에 세르펜스가 매일 밤 쳐들어오며 생긴 사달이다.
“감사합니다. 근데 잠깐 외출하고 와도 괜찮죠?”
“그건 상관없지만, 이 늦은 시각에 밖은 어쩐 일로···. 아! 혹시 야시장을 구경하러 가십니까?”
클라라의 반응이 영 찝찝하다.
포르마 후작령하면 당연히 야시장인데, 어쩐 일이냐는 말이 먼저 나오다니.
“설마···, 안 열리나요?”
유지스가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기며, 시름에 젖은 눈빛으로 클라라를 쳐다보며 물었다.
만약 에드나의 마법으로 귓바퀴를 둥글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긴 귀를 축 늘어뜨려 더욱 처량하게 보였을 거다.
하지만 귀 모양이 바뀌었어도 엘프는 엘프다.
유지스의 얼굴은 여전히 빛이 났고, 그런 미인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 누구나 가슴이 아파 오는 법이다.
“죄송합니다.”
야시장이 닫은 것과 하등 상관없는 신관 클라라가 면목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효과를 노리고 후드를 벗었던 건 아니었는지, 유지스가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클라라 님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나중에 사정이 나아졌을 때, 다시 놀러 오면 되죠. 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심각한 것 같아서 걱정이네요.”
“그렇다기보다는 피해가 확산되는 걸 막으려는 조치입니다.”
누구는 장사하는데, 누구는 팔 물건을 구하지도 못하니.
위험하다는 걸 머리로는 인지해도, 심란하고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심리다. 갈수록 불만이 쌓일 테고, 어떤 돌발 행동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포르마 후작은 아예 야시장을 막아 그들의 눈앞에서 치워버린 모양이다.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야시장 문을 닫는 날이 오게 될 거다. 그날이 조금 앞당겨진 것뿐이다.
“혹시 필요한 거라든가, 질문하실 게 더 있으십니까?”
클라라가 우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내가 습관처럼 손을 번쩍 들어 올리자, 클라라가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은 안 드셔도 괜찮은데···.”
“내일 아침 식사로 위에 부담 가지 않는 가벼운 음식으로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말을 타야 하는데, 무거운 음식을 먹으면 멀미를 할 것 같아서요.”
“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새벽 기도는 빠지겠습니다.”
“네?”
당당한 나의 선언에 클라라가 황당을 금치 못했다. 저 표정을 보니 쉽게 양보해 줄 것 같지가 않다.
어떤 말을 해야 그 지루한 시간을 피할 수 있을까?
나는 긴장하여 바짝 메마른 혀로 입술을 축인 후, 말문을 열었다.
“이곳의 주교님께서 예배를 진행하실 텐데, 주교복을 입은 제가 참석하면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게다가 저는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마음속으로 신 룩스메아께 기도를 올리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예 자리를 잡고 떠들어대면, 신께서 시끄러워하실까 우려스럽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침잠이 많아서, 푹 자고 일어나야 하루를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는 체질인지라···.”
“‘주교님’께서 들어오시는 모습을 본 사람이 많습니다. 참석하지 않으신다면 다른 식으로 말이 오갈지도 모르니, 반드시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주무신다면, 새벽에 일어나도 잠이 모자라는 일은 없을 겁니다.”
친근했던 클라라 신관은 차분한 클라라 신관을 거쳐, 냉정한 클라라 신관으로 3단 변신을 끝마쳤다.
기필코 나를 새벽 기도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혹시 제가 뭔가 해야 하는 건 아니죠?”
“예. 그냥 예복을 갖춰 입으시고, 단상 위에 앉아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예복을···입고요? 단상 위에?!”
“네. 자리를 따로 마련해 드릴 테니, 류드밀라 주교님께서 예배를 진행하시는 동안 바른 자세로 앉아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
어쩐지 예복까지 챙겨주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다. 교황의 음험한 계략에 치가 떨렸다.
신전에서 묵을 수 있어서 다행인 줄 알았는데, 눈곱만큼도 다행스럽지 않았다.
연설 따위를 시키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라도 해야 하나 싶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날 테니, 편히 쉬시지요.”
클라라가 양손을 모으고 다소곳하게 인사를 한 후, 우리를 지나쳐 왔던 방향으로 걸어나갔다.
나는 그런 매몰찬 신관님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막내 신관님. 내일 기도 시간에 졸지 않으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블라체 신관님께서 조언해 주신대로, 지금 당장 주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만약 제가 내일 졸게 된다면 저번처럼 옆구리라도 찔러 주실래요?”
“단상에 자리가 마련되는 건 에인젤 주교님뿐일 겁니다.”
“왜죠? 기왕이면 저보다 막내 신관님을 앉혀 놓는 게, 보기도 좋을 텐데요?”
“주교님을 장식용으로 앉혀 놓는 게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내 질문에 대답했다. 신관펜스가 아니라 그냥 매정펜스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신전에서 묵지 말고, 여관에서 자면 안 돼요?”
“버젓이 근처에 신전이 있는데, 신관이 외부에서 묵는다면 다들 이상하게 볼 겁니다.”
세르펜스가 내 마지막 남은 기대마저 짓밟았다.
내가 원망스럽다는 눈초리로 녀석을 쳐다보자, 세르펜스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럼 다들 푹 쉬고, 내일 아침···. 아니, 새벽에 봐요.”
나는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대충 옆에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당연하게 세르펜스가 내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오려 했다.
“자, 잠깐···.”
절그럭거리는 갑옷 소리를 내며 베일이 입을 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나와 세르펜스가 같은 방을 쓴다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게 틀림없다. 누군가와 2인실을 써야 한다면, 세르펜스와 같이 쓰겠다고 말하고 싶은 걸 테다.
‘순순히 그렇게 하게 둘 줄 알고?’
어림도 없다.
나는 뒷걸음질로 방에서 나와, 세르펜스의 앞을 가로막는 듯이 섰다.
“왜요? 뭐 불만 있습니까?”
“그, 그게···. 주교님의 안전을 생각하면, 일반 신관이신 프레이 님과 함께 방을 쓰는 것보다···. 성기사와 함께 방을 써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베일이 떠듬떠듬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댔다.
안전을 생각하면 세르펜스와 방을 쓰는 게 가장 안전하다. 더군다나 이곳은 신전 내부에 있는 숙소다.
설정 놀이에 끼어들어 원하는 바를 쟁취하려는 노력은 가상했으나, 소질이 영 꽝이다.
“죄송하지만, 막내 신관님은 제 수발을 들어야 해서 양보해 드릴 수 없습니다.”
“프레이 님이 아니라···, ······.”
베일이 웅얼거린 데다가, 투구까지 쓰고 있어서 뒷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르펜스가 아니라는 앞말은 똑똑히 들었다.
그렇다는 말은 곧.
“작은 성기사님께서 제 수발을 들겠다고요?!”
“그냥 할 얘기가 있으니, 방을 같이 쓰자는 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베일이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