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1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14화(414/1105)
414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29)
나도 슬슬 식사를 시작해 볼까 하고 도시락 뚜껑을 여는데,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어 확인할 것도 없이, 그림자의 주인은 분명 세르펜스일 테다. 다른 일행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니까.
‘반성하면 못 이긴 척하고 봐줄까···?’
나는 슬그머니 떠오른 생각을 숨기기 위해, 얼굴 근육에 힘을 줬다.
마음이 약해진 걸 알면 세르펜스는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을 거다.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며 불쌍한 표정을 짓고 동정심을 유발하려 들 게 뻔하다.
분리불안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잘못을 어물쩍 넘어가려는 건 정말로 나쁜 버릇이다.
이번 기회에 녀석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겠다는 생각으로, 뒤에 선 세르펜스를 모른 체하며 미트볼에 포크를 찔러 넣었다.
미트볼을 입에 넣으려는데, 그림자가 거둬졌다.
그리고 눈앞에 불쑥 육포가 튀어나왔다. 세르펜스가 내 옆에 앉아 자기가 먹던 육포를 내민 것이다.
“뭐 어쩌라고요?”
“일전에 주교님께서 제가 먹다 남긴 음식을 먹고 싶다 하셨잖습니까?”
세르펜스의 폭탄 발언에 도시락을 까먹던 일행의 시선이 나에게로 쏘아졌다.
심지어는 등을 돌려 앉아있던 베일까지도,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떡 벌어진 베일의 입안 내용물이 훤히 보였다.
순간 비위가 상해서 들고 있던 포크를 도시락통에 걸치듯 내려놨다.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안 했습니다!”
“정말로 그런 말을 하셨어요?”
에드나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내 단호한 부정이 그녀의 귓가에는 도달하지 않았나 보다.
“아니, 안 했다니까요?”
“방금 하셨다면서요.”
“했지만 안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쪽이죠?”
대화가 제자리를 맴맴 돌았다. 에드나의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나는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원흉을 노려봤다.
세르펜스는 신관펜스 설정대로 도도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그 표정 탓에 녀석의 손에 들린 육포가 하사품이라도 되는 듯 보였다.
‘좋아, 버리자!’
나는 세르펜스의 손에 들린 육포를 받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신발 앞코로 땅을 파서 육포를 고이 묻었다.
그렇게 육포의 무덤을 만들어준 후, 새 도시락을 꺼내어 녀석에게 건네줬다.
“남을 것 같으면 먹기 전에 미리 덜어놓는 습관을 기릅시다.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
“네, 유념하겠습니다.”
세르펜스가 도시락을 받아들었고, 우리는 잠시 중단했던 식사를 이어나갔다.
오늘부로 육포가 꼴도 보기 싫어진 사람은 세르펜스가 아닌 내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치우고 있자, 저 멀리서 ‘성직자님들!’ 하고 부르는 플라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플라가가 팔을 크게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쪽도 식사를 마친 모양이다.
우리는 다시 말 위에 올랐다. 세르펜스만 빼고.
말을 대신 몰 거면 아래에서 저러고 있지 말고, 뒤에서 등받이나 되어 줄 것이지.
햇볕은 따사롭고, 배는 부르고, 운전은 신경 꺼도 되고. 몰려드는 졸음에 하암, 크게 하품을 했다.
“경계를 풀지 마십시오.”
“주위를 경계하는 건 성기사님이 할 일이지, 주교인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세르펜스가 고개를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며, 눈동자만 흘깃 움직여 뒤쪽을 눈짓했다.
“뒤는 왜···.”
“돌아보지 마십시오.”
반사적으로 돌아볼 뻔한 것을 세르펜스가 저지했다. 그 심각한 분위기에 구부정히 굽었던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대체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저러는 걸까?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세르펜스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아까 주교님께서 땅에 묻으셨던 걸 파냈습니다.”
“아니, 먹다 버린 육포를 대체 왜요?”
허탈함마저 밀려드는 답변에 맥이 탁 풀려 버렸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세르펜스는 여전히 얼굴을 굳힌 상태다.
“저자들은 그것이 육포라는 걸 모르잖습니까? 단순한 호기심일지도 모르나, 다른 생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생각?”
“저희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경계해야 할 만한 짓을 꾸미고 있다거나, 그런 짓을 벌이기 위해 정보를 모으는 중이거나.”
“정말 그런 목적으로 땅을 파낸 거라면 엄청 황당해하겠네요.”
흙이 덕지덕지 묻은 육포를 보며 떨떠름해 하는 플라가의 표정을 떠올리자, 헛웃음이 다 나왔다.
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얘기다.
세르펜스의 추측대로 플라가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접근한 거라면. 내가 동행을 허락함으로써 일행을 위험에 빠뜨린 거나 다름이 없다.
“동행을 수락해서 참 다행이네요.”
마음에 얹어지려는 돌을 유지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밀어냈다.
“네? 다행이라니요?”
“만약 저희가 거절했다면, 다른 성직자님들께서 위험해질 뻔했다는 얘기가 아니었나요?”
유지스는 자신이 한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님을 증명하듯.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근거를 내놓았다.
“뭐···,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긴 하죠.”
플라가는 우리가 교단 소속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아니, 그래서 접근했다.
안전하게 국경을 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정말로 세르펜스의 말이 맞는다면.
‘악숭 세력의 끄나풀이라는 소린데···.’
우리의 정체를 알고 접근한 걸까? 아니면 ‘에인젤 주교’의 임무를 저지하기 위해?
그것조차 아니라면, 룩스메아 교단의 성직자들을 닥치는 대로 노리는 걸까?
잘 모르겠다.
“저희는 강하니까 괜찮을 거랍니다.”
유지스가 살짝 후드를 들어 올려, 얼굴을 드러내며 말했다. 마주친 두 눈이 곱게 휘며 상긋 눈웃음을 지었다.
플라가의 부탁을 거절했던 유지스가 그렇게 말해주니,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한편으로는 든든했다.
“그리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닌데 땅을 파서 확인하는 거로 봐서, 저희의 진짜 정체는 모르는 것 같아요.”
유지스가 다시 후드를 푹 눌러쓰며 말했다. 세르펜스의 정체를 알았다면 대놓고 땅을 파지 않았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으나, 마냥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우리 중에는 이단 심문관도 있잖아요. 그것도 활이 주 무기라서 시력도 뛰어난. 그냥 조심성이 떨어지는 거 아닐까요?”
“정면을 보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방심한 게 아닐까요? 게다가 저는 아직 어리잖아요. 고작 스물일곱 밖에 안 된, 새내기 이단 심문관이랍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세자릿수의 세월을 살아온 것만은 확실한 유지스가 생기발랄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이단 심문관은 교단 내의 다른 직종에 비해 배워야 할 게 많다.
교리에 빠삭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무력도 어지간한 성기사들보다 뛰어나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추적과 은신, 심문과 고문 등.
누군가는 한평생 바쳐서 갈고 닦아야, 겨우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골고루 익혀야 한다.
‘그러다 보면 20대 청춘도 후딱 지나가겠지.’
50대 중반인 에일리히도 은퇴만 안 했으면 한창 현역으로 뛰었을 거다.
스물일곱이면 아직 신출내기라 할 만하다. 지금 바스툴 왕국으로 향하는 게, 첫 임무라는 설정을 붙여도 문제없으리라.
그러니 교단 내 엘리트 집단으로 통하는 이단 심문관이라 한들, 아직 풋내기 수준일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자만하고 방심했대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 이 속도로 간다면, 오늘 내로 펠로 왕국에 도달하지 못할 겁니다.”
세르펜스가 대화에 끼어들며 말을 얹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자들이 평범한 상단이 아니라 악숭 세력의 끄나풀이라면.
오늘 밤, 우리가 잠든 사이에 기습할 거라는 뜻이었다.
“아, 아니. 잠깐만요! 우리 야영해요?”
“그럴 각오로 저들의 속도에 맞추기로 한 것 아닙니까?”
아무런 준비 없이 길바닥에서 자게 생겼는데도, 세르펜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침대랑 천막은 꺼내면 안 되죠?”
“보는 눈이 있으니 침대는 당연히 안 되고, 마찬가지 이유로 군용 천막이나 대형 캐노피도 곤란합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질문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처참했다.
내 아공간 주머니 속에 있는 그 어떠한 물건도 꺼낼 수 없다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작은 텐트라도 사둘 것을.
이래서야 캠핑도 아닌 그냥 노숙이다.
‘무엇보다 바비큐 없는 캠프파이어라니!’
우리 아이의 첫 캠프파이어가 이따위여서야, 부모 실격이다.
나는 스스로의 부족한 준비성에 통탄하며 눈물을 삼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전에 주교님 몫으로 사두었던 침낭이 아직 제 짐 속에 있습니다.”
암흑가에서 지낼 것을 대비하여 사 놨던 걸,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았나 보다.
당시에는 내가 챙겨온 침대에서 잤지만. 어쨌거나 사놓으면 쓸모가 생긴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저도 침낭이 없는데요? 길에서 자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 해서···.”
인생의 첫 원거리 여정을 우리와 함께했던 에드나가 민망하다는 듯이 말했다.
프뤼네 왕국에서 제국으로 오는 동안 노숙을 한 번도 안 하고 이동했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무척이나 공감하는 바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잠자리 문제로 고민하는 에드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유지스였다.
“그런 거라면 괜찮아요. 저번에 주교님 몫으로 제가 준비해 놓은 침낭이 있거든요.”
“감사하···긴 한데···. 네, 감사해요.”
에드나가 묘한 눈길로 나를 힐끔 곁눈질하고는 유지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분명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는데, 급히 마무리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유지스는 그런 에드나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베일에게 질문을 던졌다.
“렉스 님은 개인 침낭 있으시죠?”
“없···습니다.”
베일은 바스툴 왕국에서 제국까지 혼자 건너 온 사람이다. 침낭쯤은 당연히 있을 줄 알고 던진 가벼운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부정이었다.
유지스는 당황하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동안은 어디에서 주무셨나요?”
“그냥 맨바닥에서···.”
“······.”
베일의 짠한 대답에 일동은 침묵했다.
나는 암흑가에서 함께 숙식했던 또 다른 구성원, 윈스톤에게 기대를 걸어 보았다.
“큰 성기사님도 있으시죠? 저를 위해 준비한 침낭이!”
“없습니다.”
“이, 이런 매정한 사람!”
“주교님은 다른 건 몰라도 의식주만큼은 잘 챙기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챙기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누구보다 잘 챙겨 오셨잖습니까?”
윈스톤은 내 매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를 착실하고 꼼꼼한 사람으로 봐서 챙기지 않았다는데. 거기다 대고 더 이상 따질 수는 없었다.
“이따가 저쪽에 남는 침낭이 있는지 물어볼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엄지로 뒤쪽 상단 행렬을 가리키며 말하자, 세르펜스가 고개를 저었다.
“설마 작은 성기사님을 차디찬 땅바닥에서 그냥 재울 생각입니까?!”
“어차피 최소한 한 명씩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야 하니, 침낭이 하나 모자라도 상관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아···.”
녀석의 말에 나는 머쓱해 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